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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평야 지역 명칭의 하나이며, 고대부터 상나라를 포함해서 황하 문명이 자리를 잡았다.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난세에 항상 전투가 벌어져서, 이를 두고 중원축록의 고사성어처럼 중국 자체, 그리고 패권 경쟁의 중심지를 의미하는 말이 됐으며, '중원 평야'는 그 격전지였다.
2. 지리
이 '중원 평야'는 '요서 회랑'[1]을 경계로 '만주 벌판'과 인접해 있다.2.1. 하북 지역
- 자세한 내용은 하북 평야 문서를 참조.
2.2. 하남 지역
- 자세한 내용은 하남 평야 문서를 참조.
3. 역사
고대 말 중세 초 5호16국시대에 오호(흉노족, 갈족, 강족, 저족, 선비족)를 비롯하여 탁발선비가 중원을 차지하였는데, 북위 제3대 황제인 세조 태무제 시기에 북하, 북연, 북량을 멸망시키고[2] 하북 평야를 점령했다. 거란족의 요나라가 중원 일부를 차지했었다.
북주의 무제가 북제를 무너뜨리고 중원 평야를 점령했다. 그 이후에 양견(楊堅)[3]이 집정한지 거의 직후에 수나라로 국명을 바꾸면서 문제가 되고나서 '장강 평야'에 있는 진(남조)를 무너뜨렸다.
수나라 시절에는 황하, 회수, 한수 등을 비틀어서 연결하는 등의 대운하 공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여 수로 교통을 급속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다만 1931년 중국 대홍수, 2020년 중국 폭우 사태, 2021년 중국 허난성 폭우 사태 등의 사례처럼 치수 상황은 여전히 난황인 상태다.
당나라의 이세민 시절에 행정구역에서 '산악 지대'와 '평야 지대'를 따로 분리하고 황하를 경계로 하여 '하북도[4] + 하남도'로 정리되었다.
이후의 송나라 시절에는 금나라의 침공으로 인하여 '중원 평야'와 관중 분지를 빼앗겼으며, 때문에 송나라가 보유한 평야 지대는 '쓰촨 분지'와 장강 평야정도만 남은 상태가 되었고, 이 때부터 장강 하류에 위치한 금릉[5]은 한족 왕조가 침투왕조, 정복왕조를 몰아내기 이전의 임시 수도로 활용되었다.
몽골족의 원나라, 건주여진의 청나라 등 이민족이 중원 평야 전체를 정복하기도 하였다.
4. 같이보기
[1] 산해관이 이곳에 있다.[2] 물론 오호의 인구는 한족에 비하면 매우 적었다.[3] '양황후(선제의 황후)의 아버지'이자 '양충의 아들'이며, 당시 대장군이자 수국공 직책에 있었다.[4] 참고로 하북도와 인접한 지역인 '하동도'는 타이항 산맥, 펀허강, '여양(呂梁 : 뤼량) 산맥'이 있는 곳이며 ,근현대에는 산서성에 포함되었다.[5] 명나라 시절에 난징으로 개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