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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 장편 연출 작품
,(1980년 이후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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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1FAA><colcolor=#fff> 娼(노는계집 창) (1997) Downfall | |
감독 | 임권택 |
각본 | 임권택, 김대승 |
제작 | 김성룡, 이태원 |
제작사 | 태흥영화(주) |
출연 | 신은경, 한정현, 정경순, 신성일, 박상면, 오지혜 |
촬영 | 전조명, 구본창 |
음악 | 김수철 |
편집 | 박순덕 |
개봉일 | 1997년 9월 13일 |
상영시간 | 105분 |
상영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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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권택 감독의 1997년작 영화.197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말까지의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의 환락 산업의 변천을 통해 한 개인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 준다. 1990년대 당시로는 에로영화에서나 다루던 사창가라는 배경을 진지하고 우울하게 묘사해서 화제가 되었고, 주연 배우 신은경도 당시 음주운전 사고로 연예계 활동이 중단된 상황에서의 재기작으로 화제를 얻었으며, 이 영화를 통해 여성적인 이미지로의 변신에 성공하며 1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1]
참고로 남주인공 '길룡' 역을 맡은 배우 한정현의 연기가 충공깽 수준의 발연기다.(...) 이후 연기 대신 무술감독, 무술팀, 무술연기, 스턴트 쪽으로 활동하면서 간간이 단역으로도 출연하고 있다. 이 배우에겐 연기자로서는 유일무이한 주연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박상면이 포주로 나오는데, 그것도 무려 독실한 교인 포주로 나온다. 이때부터 신은경과 인연을 맺은 듯하다.
1997년 여성관객들이 뽑은 최악의 영화로 선정된데다가 비평가들도 외면하는 등 하나의 작품으로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임권택 감독도 애초에 느닷없이 시작한 기획이라 공들여 만들지 못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정성일 :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노는 계집 창〉에 대해 아직도 저는 호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서편제〉에 이어서 〈태백산맥〉, 그리고 〈축제〉를 만들면서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던 감독님의 영화 계보에서 이 작품은 느닷없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물론 매춘을 찍을 수도 있고, 사창가를 다룰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인물 또는 그런 장소에 관심을 돌린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까지 감독님은 그런 소재의 영화를 만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잖습니까. 주문 제작 시대의 1960년대를 포함해섭니다.
임권택 : 이건 좀 사연이 있어요. 〈태백산맥〉과 〈축제〉가 모두 흥행에서 실패했잖아요. 그때 태흥영화사에서 이런 소재를 제안한 거예요. 나도 〈티켓〉에서 미진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나빠져가는 사회라는 어떤 구조, 이런 사회가 굴러가는 흐름 안에서 자기가 자꾸 몰락해가고 때묻어가고 인성 자체가 타락해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요. 그런데 추석에 대달라 이렇게 된 거야, 그때 이미 여름이 막 넘어오고 있는데. 내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했으면, 한 3개월만 시간이 있었어도 그렇게 안 됐을 거야, 〈노는 계집 창〉이라는 영화가. 그때 이태원 사장도 영화를 계속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차요. 결국 한쪽 목적(흥행)은 어느 정도 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작품 안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가 전혀 소화도 안 되어 있고 뭣도 안 돼 있고. 그렇게 하면서 간 거요.
ㅡ 정성일과 임권택의 대담 中에서.[2]
임권택 : 이건 좀 사연이 있어요. 〈태백산맥〉과 〈축제〉가 모두 흥행에서 실패했잖아요. 그때 태흥영화사에서 이런 소재를 제안한 거예요. 나도 〈티켓〉에서 미진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나빠져가는 사회라는 어떤 구조, 이런 사회가 굴러가는 흐름 안에서 자기가 자꾸 몰락해가고 때묻어가고 인성 자체가 타락해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요. 그런데 추석에 대달라 이렇게 된 거야, 그때 이미 여름이 막 넘어오고 있는데. 내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했으면, 한 3개월만 시간이 있었어도 그렇게 안 됐을 거야, 〈노는 계집 창〉이라는 영화가. 그때 이태원 사장도 영화를 계속 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차요. 결국 한쪽 목적(흥행)은 어느 정도 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작품 안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가 전혀 소화도 안 되어 있고 뭣도 안 돼 있고. 그렇게 하면서 간 거요.
ㅡ 정성일과 임권택의 대담 中에서.[2]
2. 줄거리
1970년대 후반, 17살의 나이에 시골에서 상경한 영은(방울)(신은경)은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하지만 돈을 더 잘 벌 수 있다는 술집으로 옮겨 온다. 하지만 술만 팔 수 있는 술집은 없을 뿐더러, 한번 이곳으로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도 없다. 직업소개소에서는 영은을 속여서 사창가에 돈을 받고 팔아넘겼고, 그녀를 사온 포주와 건달들은 반항하는 그녀를 윤간한 뒤 강제로 매춘을 시킨다.1970년대 산업화 이후 정치와 경제의 이동과 변천 속에서 매춘 산업도 변화를 겪고 영은은 중년에 이르기까지 팔도를 전전하며 매춘부 인생을 산다. 그 사이 영은은 사랑하는 사람도 잃고 돈을 벌기는커녕 사기를 당하고 빚만 늘고 마음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다. 그녀의 소원은 오직 옛날 고향의 메밀꽃 밭을 보는 것이다.
3. 배경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이 피격된 10.26 사건 직전부터 시작된다.[3] 한창 성장경제 정책으로 도시 공업지대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공업 붐으로 경제적 여유가 다소 생기면서 환락 산업 또한 붐을 이루지만, 아직 성에 대해 아주 보수적인 분위기상 매춘의 수요보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딸리면서 인신매매와 성매매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던 시대. 1970년대 유흥산업으로의 여성유입이 아주 일부의 강간 후 자포자기한 여성들이나 대다수 취업소개소의 더 좋은 조건의 취업 미끼에 속아 유입되었다면, 1980년대 유흥 산업의 수요가 더욱 폭발적으로 늘면서 봉고차 납치가 주류를 이룬다. 한편 1987년 6월 민주 항쟁과 1988 서울 올림픽으로 인권 의식도 성장하기 시작하고 성 윤리관도 변하면서, 자발적인 성매매 여성들과 포주를 역으로 협박하는 탕꾼들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1990년대 말에 이르면 매춘 여성의 거의 대다수가 자발적인 성매매 여성으로 대체. 이러한 변화상 또한 영화 속에 잘 드러난다.[4]4. 그 외
길룡과 영은은 오토바이를 자주 타는데 오토바이 헬멧을 안쓰고 타서 매번 경찰에 면허증을 제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지막 엔딩도 오토바이를 타다 경찰이 차량을 대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두고 시대와 사람이 바뀌어도 언제나 존재하는 위정자의 권력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늙은 매춘부'가 된 영은이 내뱉는 영화 마지막 대사가 꽤 무게있다. "아직도 갚아야 될 빚은 많은데 이제 아무도 날 간섭하지도 잡지도 않는다구. 왠지 알아? 내가 이곳 말고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노골적인 베드신 장면이 비디오판에서는 많이 삭제되었다. 당시 몰래 빌려보고 실망했던 꼬꼬마들이 나중에 여러 경로를 통해 원본을 보고 놀라기도.
박상면의 아들 역할을 한 아이가 바로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농구단에 소속되어있는 농구선수 차바위이다.
제목 표기가 중구난방인데 상영 필름 타이틀에 "娼(노는계집 창)"으로 되어 있고 이에 따라 한국영상자료원의 KMDb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도 "창(노는계집 창)"으로 등재되어 있다.
[1] 당시 유력한 수상자로 지목되던 '초록물고기'의 심혜진과 무려 세 차례의 투표가 이뤄졌는데, 결과는 5대 4로 가까스로 신은경이 수상하게 되었다.[2]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 2》, 임권택·정성일 대담, 현실문화연구, 2003, p.383~385[3] 이후 영화 초중반쯤 박통의 사망직후 사창가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한 사장이 그래도 알고보면 좋은 사람이었어의 논리로 박정희를 좋게 얘기하는데 이때 한 창녀의 대답이 참 걸작이다. "나 창녀 된 것도 저분 덕이지."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다.[4] 예시로 90년대인 후반부에선 박한상 부모 살인사건과 빨간 마후라 사건의 라디오 방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