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9 10:33:55

철원군/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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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주 인구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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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읍
2.1. 철원읍(구철원)
2.1.1. 구 묘장면
2.2. 동송읍
2.2.1. 구 어운면
2.3. 갈말읍(신철원)2.4. 김화읍
3. 면4. 거주 주민이 없는 지역
4.1. 근동면4.2. 원남면4.3. 원동면4.4. 임남면
5. 미수복지역
5.1. 내문면5.2. 북면5.3. 인목면5.4. 마장면
6. 기타

[clearfix]

1. 개요

4읍 7면이다. 김화읍을 제외한 읍 지역은 모두 과거 철원군, 김화읍과 면 지역은 모두 과거 김화군이었다. 취소선을 그은 면은 일반 주민이 거주할 수 없는 구역인데, 옛 철원군 지역의 휴전선 인근 면들이 인근 읍에 병합된 것과는 달리 옛 김화군 지역에 속한 이들 면들은 통일을 대비해 면 행정단위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들 지역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남북통일 뿐이다.

1945년 기준으로는 철원군이 1읍 9면, 김화군이 1읍 11면이었다. 6.25 전쟁 전에는 전지역이 북한지역이었으나, 1953년 휴전협정 체결 결과 다음과 같이 되었다.
  • 철원군은 마장면 전지역, 내문면의 6개리 중 5개리, 북면의 6개리 중 4개리, 인목면의 6개리 중 2개리, 묘장면과 어운면의 북쪽 극일부를 제외한 철원읍을 포함한 나머지 1읍 5면을 수복하였다. 묘장면과 어운면은 대부분이 한국령임에도 불구하고 1963년 각각 철원읍과 동송읍에 편입되어[1], 지방의회 선거구를 읍면마다 1개씩 뽑던 당시 부활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따라 1963년 1월 1일을 기해 철원군 신서면(과 신서면에 편입된 인목면 수복지역)이 경기도 연천군으로 이관되었다.
  • 김화군의 경우 김화읍을 포함해 1읍 2면(김화읍[2], 서면, 근남면)을 완전히 또는 거의 대부분 수복하였으며, 5면(근동면, 근북면, 원동면, 원남면, 임남면)은 부분 수복하여 휴전선(비무장지대)을 사이에 두고 남북에 걸쳐 있다. 금성면, 원북면, 창도면, 통구면은 면 전체가 미수복지역이다. 대한민국은 수복한 김화군 지역에 김화군을 다시 설치했지만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따라 1963년 1월 1일을 기해 김화군 관할지역 1읍 7면이 철원군으로 편입되었다.[3]

파일:대한민국_김화군_행정지도.png
김화군에서 철원군으로 편입된 읍면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2.

2.1. 철원읍(구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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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소재지는 화지리, 관할 법정리는 15개이다.[4] 인구는 4,993명.[A] 원래 읍소재지이자 군청소재지는 관전리(노동당사가 있는 곳)[6]였으며 한국전쟁 이전까지 크게 흥했던 도시였으나, 한국전쟁과 동시에 폐허가 되고 읍소재지도 최남단인 화지리로 옮겨 왔다. 화지리 시가지는 동송읍내와 완전히 붙어 있다.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진 곳이며, 철원 노동당사가 있다. 학교는 묘장초, 철원초, 철원중, 철원고가 있다.

2.1.1. 구 묘장면

구 묘장면은 면소재지를 중세(中細)리에 두고 대마(大馬)·가단(加丹)·산명(山明) 4개리를 관할하였다. 중세·가단·산명리는 주민 미거주지역이나, 대마리는 철원읍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대마리는 500여 명이 거주하여 묘장초등학교도 있어 상당히 큰 마을을 이루고 있다. 묘장면(畝長面)의 는 '밭이랑 묘' 또는 '밭이랑 무'로 음이 2가지이기에 '무장면'으로 읽기도 하는데, 소설가 이태준의 출생지여서 畝의 한자 독음이 어디가 맞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 참고로 전라남도 영광군에도 이 한자를 쓰는 묘량면(畝良面)이 있다.

2.2. 동송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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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소재지는 이평리, 관할 법정리는 12개이다.[7] 인구는14,220명[A]으로 철원군 읍면 중 인구가 가장 많다.

본래 철원군 동변면(東邊面)과 송내면(松內面)으로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통폐합되어 신설되었다. 군인들 때문에 거주 인구 대비 유동인구가 많아 시가지가 발달해 있으며 철원읍소재지인 화지리는 동송읍내의 연장선이다. 관우리에 도피안사, 장흥리에 고석정이 있다. 학교는 동송초, 오덕초, 용정초, 장흥초, 철원여중, 철원여고가 있다.

2.2.1. 구 어운면

구 어운면(於雲面)은 구 철원군의 6면 중 하나로 1917년 어운동면(於雲洞面)에서 개칭되었다. 면소재지를 하갈(下葛)리로, 하갈리를 포함해 양지(陽地)·이길(二吉)·강산(江山)·중강(中江) 5개 리를 관할하였다. 6.25 전쟁으로 면 대부분 지역을 수복하였으나 1954년 수복지구 행정권 이양과 동시에 동송읍에 편입되었다. 양지리·이길리만 주민이 거주하고 나머지는 민간인 미거주지역이다.

2.3. 갈말읍(신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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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소재지는 신철원리, 철원군청도 신철원리에 있다. 관할 법정리는 10개이다.[9] 인구는 11,718명.[A]

시외버스를 탈 때 신철원, 지포리 등의 지명은 이 갈말읍이라고 보면 된다. 휴전 이후 군청이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도시가 성장하였다. 철원군청, 철원경찰서, 철원소방서, 철원우체국, 철원교육지원청, 의정부지방법원 철원군법원이 있는데, 소방서는 읍내가 아니라 동송으로 가는 길목인 문혜리에 있다. 학교는 내대초, 문혜초, 토성초, 신철원초, 신철원중, 신철원고가 있다.

2.4. 김화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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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소재지는 학사리, 관할 법정리는 9개이다.[11] 인구는 3,156명.[A] 구 김화군의 중심지이다.

읍내리는 6.25 전쟁 전까지 김화읍 소재지이자 군청소재지였으나, 전쟁으로 군청사가 파괴되고[13] 휴전 후 민통선과 비무장지대에 위치하게 되어 그 지위를 잃었다. 학교도 김화초, 청양초 정도밖에 없다.

3.

3.1.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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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소재지는 자등리, 관할 법정리는 2개이다.[14] 인구는 5,257명(中 와수출장소 3,526명).[A] 구 김화군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서면이다.

면소재지인 자등리보다는 와수리가 더 번화한 지역이며, 와수리는 사실상 김화권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 119센터, 파출소같이 김화라는 이름이 붙은 관공서가 와수리에 있다. 학교는 서면초, 와수초, 김화중, 김화고, 김화공고가 있다.

3.2. 근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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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소재지는 육단리, 관할 법정리는 6개이다.[16] 인구는 2,005명.[A] 56번 국도를 통해 화천군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학교는 근남초 하나 있다.

3.3. 근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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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면소재지는 휴전선 이북의 두촌리이고, 관할 법정리는 4개이다.[18] 김화읍이 행정업무를 대신하고 있다. 면의 대부분이 민통선 안에 있다. 인구는 99명[A]으로 재개발지역을 제외한 주민등록인구통계에 잡히는 전국 읍면 중 인구가 가장 적다.

4. 거주 주민이 없는 지역

아래의 네 곳은 면 전체가 민통선 내에 있어서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들이다. 또한 행정상으로는 철원군에 소속되어 있으나, 철원의 북동쪽에 일렬로 길게 자리잡고 있어서 철원을 통해 직접 이어지는 도로는 없고, 화천군 상서면화천읍으로 우회해야 진입할 수 있는 곳들이기에 이 쪽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은 화천으로 나간다.

4.1. 근동면

과거 면소재지는 교전리이며, 광삼리·방통리·수태리·아침리[20]·하소리를 관할한다. 이 중에서 광삼리와 방통리만 수복되었으며 모두 민통선 내에 있다. 광삼리에 승리전망대가 있으며 승리전망대로 이어지는 도로가 하나 있다. 현재는 폐선된 금강산선남북분단 이전까지 이곳을 지나갔으며, 광삼역, 하소역[B], 행정역[B]이 있었다.

4.2. 원남면

과거 면소재지는 개야리이며, 경상리·구룡리·남둔리·노동리·백양리·월봉리·주파리·죽대리·진현리·풍동리를 관할한다. 이 중에서 노동리·주파리·죽대리·진현리·남둔리가 수복되었으며 모두 민통선 내에 있다.

철원군에서 유일하게 화천군 농어촌버스가 다니는 지역이지만 제7보병사단 셔틀버스인 27번 뿐이고, 산양리까지 민통선 이북 지역이므로 민간인은 탈 수 없고 제7보병사단 장병들의 출타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 노선은 주파령을 통해 화천군 상서면으로 빠진다. 칠성전망대가 주파리에 있으며, 방문을 원하는 민간인은 차량을 가지고 화천군 산양리에서 출입 신청을 하면 방문 가능하다. 월요일은 휴무.

이곳에 적근산이라는 해발 1071.1m의 이 있는데, 1965년 1월 12일에 -32.0℃라는 역대급 혹한이 관측되었다.

4.3. 원동면

과거 면소재지는 장연리이며, 등대리·방평리·세현리·송실리·용연리·율사리를 관할한다. 이 중에서 등대리와 세현리만 수복되었으며 모두 민통선 내에 있다. 아래의 임남면과 더불어 다른 지역에서 연결되는 도로가 아예 없는 지역이다.

4.4. 임남면

과거 면소재지는 사천리이며, 과호리·노남리·달전리·두목리·면천리·봉잔리·상판리·수동리·어운리·좌패리를 관할한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수동리만 수복되었으며[23] 모두 민통선 내에 있다. 철원군에서도 가장 추운 곳이자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24] 기온 관련 뉴스에 가끔 나온다(#1, #2, #3, #4). 미수복된 북한 창도군지역의 임남면(달전리)에는 금강산댐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임남댐[25]이 있다. 평화의 댐이 지어진 원인이 된 그 금강산댐 맞다. 여기도 화천권일 뿐만 아니라, 원동면으로 넘어가려면 북한강을 헤엄쳐서 건너지 않는 이상 화천군으로 우회해야하는 실질월경지이기도 하다. 한편 구 면소재지를 비롯한 북한 지역 임남면 대부분은 금강산댐에 수몰되었다. 위의 원동면과 더불어 다른 지역에서 연결되는 도로가 아예 없는 지역이다.[26]

5. 미수복지역

파일:철원군(이북 5도).jpg

[27]

5.1. 내문면

과거 면소재지는 창동리이며, 내문리·독검리·마방리·반석리·오동리를 관할한다. 1914년 철원군에 부분 흡수된 경기도 삭녕군에 해당한다. 독검리만 수복되어 철원읍에 편입되었다.

1952년, 1953년 화살머리고지 전투가 일어난 화살머리고지가 독검리에 있다.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 남북 전술도로가 처음으로 이어진 곳이며, 남북공동 유해 발굴을 추진 중이다. DMZ 평화의길 철원 코스 사전 신청시 가볼 수 있는 곳이다.

5.2. 북면

과거 면소재지는 회산리이며, 보막리·외학리·용학리·유정리·홍원리를 관할한다. 유정리와 홍원리가 수복되어 철원읍에 편입되었다. 홍원리는 통칭 '풍천원(楓川原)'이라 불리며, 태봉국 철원성(통칭 '궁예도성') 터와 경원선 월정리역이 바로 이곳에 있다.

5.3. 인목면

과거 면소재지는 도밀리이며, 갈현리·검사리·덕산리·승양리·신현리를 관할한다. 검사리와 승양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부분 수복되었다. 원래 인목면은 1914년 삭녕군이 폐지되면서 철원군에 편입되었으나,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신서면에 흡수되었다. 그러나 1963년 신서면이 경기도 연천군에 편입되면서 같이 넘어가 버렸다(…). 어찌 보면 좀 기구한 면. 그래서 구 인목면의 수복지구는 현재 거주민이 없으며, 모두 경기도 연천군 땅이 됐다. 덕산리에 열쇠전망대가 있다.

5.4. 마장면

과거 면소재지는 장포리이며, 남원리·대전리·밀암리·왕피리·입석리를 관할한다. 과거 철원군의 읍면 중 유일하게 전 지역이 북한령으로 넘어간 곳이다. 1914년 철원군에 부분흡수된 경기도 삭녕군에 해당한다. 북한 철원군의 첫 소재지.

6. 기타

근자와 원자가 붙은 이유는 1914년 일제가 김화군과 금성군을 병합하여 행정구역을 획정할 때 김화 쪽에 근(近), 금성 쪽에 원(遠)을 붙여놓아서이다.

[1] 구 묘장·어운면의 수복지구에 주민이 거주하게 된 것은 일일 출입영농과 가입주를 거쳐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전략 재건촌을 건설하면서부터였다. 그 이전에는 무인지대로 남아 있었다.[2] 단, 감봉리 일부 지역은 남북에 걸쳐있다.[3] 이 당시 김화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수복지역을 수복하고 나면 김화군을 재설치한다는 조건으로 편입을 강행했다고 한다.[4] 가단리·관전리·내포리·대마리·독검리·사요리·산명리·외촌리·월하리·유정리·율이리·중리·중세리·홍원리·화지리[A] 2023년 12월 주민등록인구통계[6] 철원역이 외촌리에 있었다.[7] 강산리·관우리·대위리·상노리·양지리·오덕리·오지리·이길리·이평리·장흥리·중강리·하갈리[A] [9] 강포리·군탄리·내대리·동막리·문혜리·상사리·신철원리·지경리·지포리·토성리[A] [11] 감봉리·도창리·생창리·암정리·용양리·운장리·읍내리·청양리·학사리[A] [13] 이후 남한에서는 수복된 김화군의 업무를 철원군에서 대행하다가 폐지시켰으며, 북한은 군소재지를 창도로 옮겨 폐지시켰다가 김화군을 재분리시키고 금성으로 옮겼다.[14] 와수리·자등리[A] [16] 마현리·사곡리·양지리·육단리·잠곡리·풍암리[A] [18] 금곡리·백덕리·유곡리·율목[A] [20] 일제강점기 금강산선 운행 당시 여기서 아침을 먹고 움직이면 내금강 지역을 하루만에 돌아볼 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B]평강군 지역[B] [23] 그런데 네이버 지도에는 특이하게도 미수복지역인 달전리와 좌패리가 뜬다.[24] 1월 평균 기온이 무려 -9.7℃에 이른다.[25] 문화어로도 이 댐의 이름은 임남댐이다. 임남의 한자인 任자가 원래 음이 임이기 때문.[26] 애초부터 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면내에서 끊긴다.[27] 지도에 한 가지 오류가 있는데, 전 지역이 미수복지역인 금성면, 원북면, 창도면, 통구면은 위의 법률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명목상 김화군 관할인 것과 달리 지도에는 회양군으로 편입된 것으로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