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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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 이제 묘역 | 효령대군 이보 묘역 | 삼군부 청헌당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 | |
효령대군 이보 묘역 孝寧大君 李補 墓域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동 산 24-2,산 24-3, 191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
수량 / 면적 | 건물 1棟, 분묘 2基, 석물 10基, 토지 1,535.1㎡ |
지정연도 | 1972년 8월 30일 |
시대 | 1972년 8월 30일 |
홈페이지 | 청권사 |
<colbgcolor=#94153E> 효령대군 묘소[2] |
효령대군파 종친회에서 제작한 청권사 소개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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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3대 임금 태종의 차남이자 4대 임금 세종의 둘째형 효령대군 이보의 묘소 및 사당이다.2. 이름
사당 이름 '청권(淸權)'은 '깨끗하고(淸) 권도(權, 사리에 맞는 처신)를 안다'는 뜻이다. 주나라의 고공단보가 3남 계력을 후계자로 삼을 때 차남 우중이 아버지의 뜻을 안 후 삭발하고 숨어살았던 일화가 있다. 후일 공자가 우중을 평가하면서 "숨어살며 왕위에 대한 욕심을 버렸으니 깨끗하며(淸) 사리에 맞는 처신(權)을 했다."고 칭송했는데, 거기서 유래한 명칭이다.3. 역사
숙종 시기 국가에서 효령대군의 맏형 양녕대군의 사당을 건립했다. 이에 효령대군의 후손들도 국가에서 공인하는 효령대군의 사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새로 지을 것을 건의하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존 경상도 함창에 있는 사당[3]에 사액[4]을 요청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다 사액 건의를 같이 하자는 여론이 생겼다. 그래서 경상도에서부터 상소에 붙일 사람들의 이름 명단을 작성해서 서울로 올렸고, 1736년(영조 12년) 2월에 서울, 지방 각지의 문중 대표들에게 통문을 보내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이때 효령대군의 외손들도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4월에 후손 447명과 외손 50여 명이 사당을 세울 것을 청하는 상소를 정식으로 올렸다.#이후 조정에서도 관련 문제가 언급되었다. 같은해 6월에 좌의정 김재로와 우의정 송인명 등 효령대군의 외손인 중신들이 사당 건립 및 위전과 복호를 마련하여 떼어줄 것을 건의했다.#, 그러자 드디어 영조가 이를 받아들여 경기감영에서 사당을 짓도록 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완공한 것은 1746년(영조 22년)인 듯 하다.#
이후 역대 임금들이 신하를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했다. 1789년(정조 13년)에 정조는 효령대군의 후손을 골라 등용시키게 하고 제를 올리게 했다.#
1972년 8월 3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받았다. 첫 등재명칭은 '청권사부묘소'였고 2008년 10월 30일에 '효령대군 이보 묘역'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효령대군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4. 교통
4.1. 도시철도
서울 지하철 2호선 방배역이 인근에 있다. 4번 출구로 나오는 게 가장 가까우며 1분 내로 갈 수 있다.4.2. 버스
자세한 내용은 방배역 문서 참고하십시오.5. 여담
- 맞은편에 위치한 빌딩 이름은 프린스 효령 빌딩으로 2014년에 완공한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종회 소유 건물이다.
[1] 13호부터 15호까지는 각각 해제되어 사적, 보물로 승격, 포함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1~100호 문서 참조.[2] 사진 출처 - 《중앙일보》.[3] 현, 경상북도 상주시에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효령대군의 9대 종손인 이성민이 정착하여 가묘(家廟)를 세우고 제향을 지냈다. 숙종 시기 경상감사 이규령(한산 이씨로, 효령대군의 외손이다.)이 공검면 율곡리에 정식 사당을 세웠고 위패를 모셨다.[4] 賜額. 왕이 사당, 서원 등에 이름을 짓고 글씨를 새긴 편액을 하사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