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고등학교 야구부 春川高等學校 野球部 | |
창단 | 1956년 ~ ? 1971년 ~ 2007년 |
소속 리그 | - |
감독 | - |
연고구단 | - |
우승 기록[1] | - |
대회 | 우승 | 준우승 | 4강 |
대통령배 | - | - | - |
청룡기 | - | 1회(1999) | - |
황금사자기 | - | - | - |
봉황대기 | - | - |
1. 개요
1956년에 창단되었다가 해체되었고, 1971년 재창단하였다. 짧지 않은 역사에 비하면 영 존재감이 없는 팀. 가끔 8강 정도에 오를 뿐, 전반적으로는 별 볼일 없는 성적만을 기록하고 있었는데...[2]
1997년 연세대학교 진학과 LG 트윈스 입단 사이에서 갈등하던 휘문고 손지환이 LG를 택하면서 사단이 벌어진 것. 한창 프로와 아마추어간에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대학 지도자들은 '프로로 간 고교 팀의 선수들은 5년간 받지 않는다'고 결의한 것이다.[3] 결국 이 때문에 휘문고 이명섭 감독은 사임했고, 휘문고 야구부 저학년생 7명이 춘천고로 전학하기에 이른다. 왜 하필 춘천고냐면 당시 춘천고의 감독이었던 구명근 감독이 이명섭 감독과 대학 동기였기 때문.
이 때 건너온 선수들이 성장한 1999년 청룡기에서 장충고, 중앙고, 선린정보고를 차례로 제압하며 결승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 강원도 지역 야구부 역사상 최초의 결승 진출이다.[4] 특히 준결승전에서 만난 선린정보고와의 대결이 명승부였는데, 초반 9점을 내주며 9:0으로 끌려가던 경기를 꾸역꾸역 따라잡더니 11:4로 뒤지던 7회말 5점을 내며 추격, 그리고 9회말 만루상황에서 투 아웃 풀카운트 상황에서 9번타자 민경민이 2루타를 치며 11:12로 기적적인 역전승을 일궈내면서 결승에 올랐던 것이다[5].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장준관 - 이정호 원투펀치가 마운드를 지키던 대구상고를 만나 3:4로 박빙의 승부끝에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다.[6]
그러나 이것이 춘천고의 처음이자 마지막 불꽃이었다. 애당초 지역의 야구 저변이 두텁지 못한 상황에서 외부의 전학생으로 일궈낸 성과는 오래갈 수가 없었다.[7] 이명섭 감독은 2000년 초 발생한 아마추어 야구 비리 문제에 연루되어 물러났고, 2002년에는 야탑고 선수들의 상당수가 춘천고로 전학을 오면서[8] 부흥을 노리기도 했으나, 신입생이 단 한명도 춘천고에 입학하지 않는 등 선수수급에 문제가 발생해 대회진출까지 자진 포기할 상황이 닥치게 되자 학부모 전원이 전학을 요청, 결국 2007년을 끝으로 야구단은 해체되었다.###
2012년부터 야구부 재창단 논의가 이어져왔지만,## 실제 재창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5년 재창단을 발표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정작 춘천고나 대한야구협회, 포털 어디에도 관련 기사가 없는 것으로 봐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강원고등학교 야구부의 창단과 함께 춘천시 관내 야구부가 부활했다.
뜨거운 감자로 유명한 김C가 이곳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했다.
유영준 전 NC 다이노스 2군 감독이 1996~1997년 2년간 여기서 감독 생활을 했다.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인 허문회도 은퇴 후 춘천고에서 타격코치로 잠시 재직한 적 있다.
2. 출신 선수
이름 | 포지션 | 프로입단 | 경력 |
김대원 | 투수 | - | [9] |
이대환 | 투수 | 1999년 고졸우선지명 | 동국대-현대(2002~2007)-넥센(2008~2010)-LG(2011~2012)-KIA(2013~2014)-NC(2015) |
김동건 | 내야수 | 2001년 2차 1라운드 | SK(2001~2009)-NC(2012~2013) |
김용호 | 내야수 | 2011년 5라운드 | 성균관대-한화(2011~2014) |
양승진 | 투수 | 2006년 2차 2라운드 | 한화(2006~2011)-LG(2011~2015) |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2] 1993년에 스포츠 신문에 팀을 해체할 것이라는 기사가 떴을 정도였다.[3] 1993년 김재현, 이호준이 대학과 프로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가 프로로 간 것을 계기로 나왔었던 내용이다. 물론 이는 아마야구 스스로 제 발목을 자르는 결과밖에 되지 않았기에 실제로 시행된 적은 없었으며 1997년 프로 출신들에게 아마야구 일선 지도자 자리가 개방되면서 슬그머니 폐지되었다.[4] 강원도 고교 야구부 첫우승은 강릉고가 2020년 대통령배에서 이뤘다.[5] 여담으로 이때 결승 끝내기 적시타를 쳤던 민경민은 전년도까지 상대였던 선린정보고 재학생이었다.[6] 대구상고는 2000년 청룡기 결승전까지 진출해 대회 2연패를 노렸으나 성남고에 패했다.[7] 이 문제는 2010년대 중반 이후 강릉고등학교 야구부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강릉고는 그래도 야구부에 대한 투자가 적극적이고 전국대회 우승을 달성했지만 선수 중 지역 출신 선수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8] 선수가 부족해진 야탑고는 13명의 인원으로 봉황대기 8강까지 진출해서 중앙고와 대결했으나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경기 후 서럽게 울던 오재원의 모습이 강렬했던 경기였다.[9] 지명되지 못하고 가수로 데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