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07:24:12

코가 사부로

코우가 사부로에서 넘어옴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코가 사부로(인명)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덴노의 후손
2.1. 지저국 방랑기2.2. 귀환과 승천
3. 미나모토 가문의 일원4. 사슴 사냥꾼5. 대중문화에서6. 기타

1. 개요

[ruby(甲, ruby=こう)][ruby(賀, ruby=が)][ruby(三, ruby=さぶ)][ruby(郎, ruby=ろう)]

야요이 시대, 혹은 헤이안 시대에 활동했다는 인물로 나가노현 스와 지방의 전설 속 주인공이다. 형들에게 미움받아 고난을 겪게 되었지만 막내 보정을 받아 끝내 행복한 결말을 쟁취해 낸 인물로, 혈통과 행적에 관해서는 여러 전승이 산재하고 있다. 전설 자체는 가마쿠라 시대 말기부터 무로마치 시대 초기에 정립되었다고 한다.

자료 출처: 위키피디아: 코가 사부로, 괴이, 요괴전승 데이터 베이스: 지저국, 호수의 근처에서: 코가 사부로 전설, 시나노노테츠모노가타리: 코가 사부로 전설, 이나바나 닷컴: 코가 사부로 전승 1편, 2편, 3편, 아르카익 하우스: 스와노혼지

2. 덴노의 후손

안네이 덴노의 5대손 코가 곤노카미 요리타네(甲賀権守諏胤)는 아즈마노쿠니(東国)[1]의 33개국을 다스리던 군관[2]이었다. 그에게는 야마토노쿠니(大和國)에서 시집온 카스가 곤노카미(春日権守)의 장녀에게서 본 세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타로 요리무네(太郎諏致), 둘째 지로 요리타다(次郎諏任), 막내 사부로 요리카타(三郎諏方)[3]였다.

요리타네는 유독 막내를 예뻐했는지, 70세[4]에 병상에 누워 유산과 작위를 분배해줄 때에도 사부로에게만 많은 것을 남겨줄 정도였다.[5] 그렇게 사부로는 도카이도의 15개국을 다스리게 되었고, 타로는 도산도의 8개국을, 지로는 제일 적은 호쿠리쿠도의 7개국을 물려받게 되었다. 미카사야마묘진(三笠山明神)에게 참배함으로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형제들은 사부로가 카스가 곤노카미의 손녀 카스가노히메(春日姫)와 치른 혼례식에 참여한 후에야 코가군으로 돌아갔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사부로의 삶은 형들이 질투심을 품으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형제들끼리 이부키 산에서 사슴 사냥을 하며 경호가 소홀해진 사이 텐구가 카스가노히메를 채가자, 사부로는 형들을 동원하고 66개국에 있는 산들을 뒤져가며 세 달 동안 그녀를 수색했다. 마침내 시나노에 다다라 소문을 듣고 나서야 다테시나 산(蓼科山)의 깊은 동굴[6]에 갇혀 있는 아내를 발견할 수 있었던 사부로는 허리에 밧줄[7]을 매고 내려가 텐구를 죽이고[8] 아내와 함께 돌아가려 했으나, 아내가 동굴 안에 염마대왕으로부터 받은 가보인 거울[9]을 놔두고 와버렸다고 하니 망설이지 않고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이때를 노린 지로는 사부로를 지탱하고 있던 밧줄을 냅다 끊어버렸고, 그렇게 사부로는 깊은 땅 속으로 추락해 지하세계를 수십년 동안이나 떠돌게 된다.

지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동굴의 입구를 거대한 바위로 막은 뒤 사부로가 다스리던 땅의 주인이 되고자 했으며, 한 술 더 떠서 사부로의 집에 눌러앉아 사는 것도 모자라 제수까지 노렸다.[10] 카스가노히메는 지로의 유혹을 한사코 거부하고 정절을 지켰으며, 이에 격노한 지로가 죽이려 들자 겨우 친정으로 피난을 갈 수 있었다.[11] 무사들을 모아 지로를 토벌하자는 의견이 대두될 정도로 정세가 험악해졌으나, 카스가노히메는 암굴에 틀어박혀 사부로의 안녕을 빌 뿐이었다.

2.1. 지저국 방랑기

다시 지상으로 기어올라갈 수 없을 만큼 깊은 땅 속에 떨어진 사부로는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남아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내가 그토록 찾고 싶어하던 거울과 텐구의 보물들[12]을 손에 넣은 사부로는 땅 밑의 세계지저국(地底国)의 여러 나라들을 모험하게 된다. 호공국(好貢国), 호담국(好湛国), 초미국(草微国), 초저국(草底国), 설강국(雪降国), 초류국(草留国), 자재국(自在国), 사포국(蛇飽国), 도수국(道樹国), 호수국(好樹国), 도배국(陶倍国), 반수국(半樹国)을 포함하여 72개국을 떠돈 사부로는 이윽고 유마국(維摩国)[13]이라 불리는 나라에 당도하게 된다.

유마국의 왕은 텐구를 무찌른 코가 사부로를 보고 믿음직한 사나이라 여겨 호의적으로 대해 주었으며, 둘째 딸 이마히메(維摩姫)[14]와 혼인하여 부디 이 나라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다. 사부로는 이 청을 받아들였으며, 13년 하고도 여섯 달 동안 유마국에 머무르게 된다.

유마국의 풍습대로 사슴 사냥도 꾸준히 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되나 싶던 사부로였지만, 그는 본처 카스가노히메를 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지상에 대한 그리움은 날로 커져만 갔다. 결국 사부로는 이마히메에게 솔직히 본심을 터놓고,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이마히메는 향수병에 시달리는 남편을 굳이 붙잡지 않고 주술이 담긴 을 만들어 그의 귀향에 보탬이 되어주기로 한다.[15] 이 떡은 사슴의 이 재료인데, 하루에 한 개씩 먹으면 지치지 않고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신비한 떡이었다. 사부로는 이마히메가 만들어 준 떡 천 개를 가지고 지저국의 출구인 아사마 산(浅間山)으로 향한다.

2.2. 귀환과 승천

겨우 고향에 돌아오나 싶었지만, 사부로는 자신의 몸이 어느새 으로 변해버렸다는 걸 알아챈다.[16] 이 꼴을 어떤 사람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했던 사부로는 아버지에게 바쳐진 사사오카(笹岡)의 불단에 몸을 숨겼다. 그러자 그의 앞을 지나가던 스님들이 사부로에 대한 이야기를 떠드는데, 마치 숨어있는 사부로더러 들으라는 듯 뱀의 몸에서 벗어날 방법을 넌지시 알려주었다.[17] 그들의 말대로 한 사부로는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으며, 그 스님들이 자신을 돕고자 온 영험한 땅의 신령들[18]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기나긴 세월 끝에 돌아온 사부로는 카스가노히메와 재회했고,[19] 그동안 난동을 부렸던 지로와도 화해해[20] 일가 전체가 신으로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사부로와 카스가노히메는 진단(震旦)의 남쪽에 있는 헤이조노쿠니(平城国)[21]의 천자에게서 신통력을 전수받아 스와 대사용신, 혹은 뱀신으로서 모셔지게 되었다. 두 사람은 스와다이묘진(諏訪大明神)으로서 각기 상궁(上宮)과 하궁(下宮)[22]에서 섬겨지고 있으며, 지금도 미나구치쵸(水口町)의 다이코지(大岡寺)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남아있다고.

타로는 시모츠케노쿠니 우츠노미야의 지겐다이묘진(示現大明神)으로, 잘못을 뉘우친 지로는 와카사노쿠니(若狭国)의 타나카묘진(田中明神)으로, 아버지는 세키잔다이묘진(赤山大明神)이, 어머니는 닛코우곤겐(日光権現)이 되며 코가 사부로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3. 미나모토 가문의 일원

다이고 덴노의 치세를 배경으로 삼은 판본으로, 시나노의 모치즈키에 미나모토노 요리시게(源頼重)라는 관리에게 무예가 뛰어난 세 아들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조정의 명을 받고 와카사노쿠니의 전장에 뛰어들었다. 특히 셋째 사부로의 활약이 아주 빼어났지만, 모든 공이 막내에게 돌아갈 것을 시기한 형들이 사부로를 기절시켜 깊은 구멍 속에 밀쳐넣어 생매장 하고는 자기네들끼리 돌아가 버리고 만다. 사부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생환했으며, 이를 보고 경악한 형들은 달아났다. 형들이 도망간 덕택에 주인 없는 영토까지 차지하게 된 사부로는 죠헤이 덴쿄의 난[23]에서 또 다시 큰 공을 세웠고, 그 공으로 고우슈(江州)의 절반을 받고 코가군으로 옮긴 후 코가오미(甲賀近江)를 지켰다고 한다.

4. 사슴 사냥꾼

혈통적 요소가 강조되진 않지만, 사슴을 비롯한 짐승을 잘 잡는 사냥꾼의 이미지가 부각된 전승도 몇 있는 편이다. 자세한 것은 아래에 후술.
  • 사부로는 두 형과 함께 사슴을 사냥하며 생계를 꾸리던 코가 마을의 청년이었다. 이 셋은 와카사노쿠니의 산에서 사냥을 하던 중에 거대한 오로치로 모습을 바꾼 산의 신과 마주쳤는데, 겁을 먹은 타로와 지로는 넘어지거나 도망치는 등 꼴사나운 모습만 보였지만 사부로만큼은 용감하게 오로치에 맞서 싸웠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사부로가 돌아오지 않자, 먼저 달아난 형들이 '사부로가 오로치에게 죽어버렸다' 는 소식을 마을에 전했다. 이에 사부로의 아내와 아이는 사부로를 애도하고 공양하기 위해 관음당을 세웠다. 다시금 사부로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며 기도를 올린지 33년째, 드디어 사부로가 돌아왔지만 자신이 무찔렀던 거대한 뱀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탓에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이에 사부로는 빠르게 관음당 아래로 숨어들어 원래 몸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며 간절히 빌었다. 그러자 사부로는 다시 인간이 되었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처자식과 재회하게 되었다.[24] 남은 생애 동안은 오우료시(押領使)[25]라는 관직을 받아 일하다 훗날 용신으로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 이다시의 전설로, 센토우 산(千頭山) 릿샤쿠지(立石寺)를 세운 코야산 진언종의 창시자가 코가 사부로라는 설이다. 사부로는 활을 잘 쏘고 말타기에도 능한 사냥꾼이었는데, 그 활솜씨로 잡은 사슴의 수가 무려 900마리나 될 정도였다. 어느 날, 사냥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사슴 사냥에 나선 사부로는 3일 내내 짖는 개들이 수상해 나무 그늘을 살펴보니 오척[26]이 넘는 큰 사슴을 발견해냈다. 생각보다 커다란 사냥감에 신이 난 사부로는 재빨리 활을 매겨 쏘았지만, 화살을 맞은 사슴은 어느새 일촌팔분[27] 짜리 관음보살상으로 변하고 사냥개들은 돌로 변해버리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이 광경에 놀란 사부로는 즉시 무릎을 꿇고 여지껏 사냥당하는 짐승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은 채 무익한 살생을 저질러버렸다며 관음보살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는 사냥용 옷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제사를 올리며 불도에 입문했다고 한다.

5. 대중문화에서

세계적으로는 꽤 마이너한 전설이지만 일본 본토에서는 중세, 정확히는 에도 시대부터 조루리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등 인기가 있던 전설이었다. 쇼호 3년(1646년)에는 스와노혼지 카네이에(すわのほんぢ兼家)가 쓰여진 바 있고, 호에이 원년(1704년)에는 치카마츠 몬자에몬오니 퇴치를 하는 코가 사부로의 이야기를 담은 코가 사부로(甲賀三郎)를 썼다. 교호 20년(1735년)에는 극작가 타케다 이즈모(1대)가 거대한 오로치 그림이나 간통을 하는 그림 등의 삽화를 곁들여 코가 사부로 이와야모노가타리(甲賀三郎窟物語)를 쓰기도 했다. 가부키에도 코가 사부로의 소재는 적극적으로 쓰여져, 우와나리가 만들어지기도.

현대의 작품으로 넘어가자면 여신전생 시리즈코가 사부로가 등장하는 것이 있겠다. Fate/Samurai Remnant에서도 등장. 자세한 것은 어쌔신(영월의식) 문서 참고.

6. 기타

어느 판본을 막론하고 불교적 색채가 상당히 짙게 드러나는 전설이기도 하다. 코가 사부로 전설이 쓰여지고 유행할 시기가 일본 고유의 신앙과 불교가 합쳐질 신불습합이 한창일 때라 그렇다는 설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코가 사부로가 코가 일족 53가문의 선조이자 모치즈키 이즈모노카미를 필두로 한 코가류 닌자의 선조라고도 한다. 시가현 코카시에 자리잡은 코가류 인술 저택에서도 코가 사부로를 모시는 사당이 있을 정도. 여러 창작물에서 등장하는 동물을 부리는 닌자 중에 뱀을 부리는 이들이 많이 보이는 것도 그 영향 때문이라고.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는 주인공이 수십 년이나 타지를 떠돌고 여자한테도 붙잡혀 살다가 겨우 귀향해 해피엔딩을 맞았다는 점에서는 고대 그리스서사시오디세이아와 흡사한 구조를 띠고 있다. 코가 사부로와 오디세우스 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부로는 작은형을 용서하고 같이 신으로 승천하기까지 했지만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들을 남김없이 족쳐버렸다는 점이 있겠다. 코가 지로도 페넬로페의 구혼자들 못지 않게 상당한 패악질을 부렸음을 생각하면 호구 수준의대인배거나, 그래도 가족이라고 넘어가 준 듯.흠씬 두들겨 팬 후 겨우 용서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전설이 형성된 시기는 상당히 늦은 편이고 내용 자체도 기존의 일본 신화와는 거리가 먼데, 이에 대해서는 호조 도키유키가 일으킨 나카센다이의 난에 참전하고 패한 스와 요리시게[28]의 권위가 실추되자, 스와씨와 관련없는 인물로 대체하기 위해 무로마치 막부 측에서 현지의 전설에 주목하여 코가 사부로를 스와 대사의 신앙 대상에 편입시켰다고 전해진다.[29] 기존에 섬겨지던 타케미나카타의 수렵신, 군신으로서의 특성과 미샤구지의 뱀 속성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지금의 코가 사부로라고.[30]


[1] 현 동일본 지역에서도 간토 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된다.[2] 츠이부시(總追捕使)라는 관직에 올라있었다고 전해진다.[3] 카네이에(兼家)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한다.[4] 78세라는 설도 있다.[5] 가보인 유만장(遊万杖)이라는 지팡이도 사부로의 차지가 되었다고.[6] 보통은 용암 동굴이라는 설이 메이저하지만, 거대한 녹나무에 생긴 굴이라는 설도 있다.[7] 등나무 덩굴이라고도 한다.[8] 처음에는 동굴 안이 너무 어두운데다 텐구가 미리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탓에 한번은 죽었다. 가보로 받은 유만장의 힘 덕분에 부활해 텐구의 목을 자를 수 있었다.[9] 오모카게(面影)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고난에서 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한다.[10] 참고로 코가 삼형제는 당시 전부 유부남이었다. 이미 아내가 있는데도 제수를 노린 것.[11] 카스가노히메가 달아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은 그녀의 유모매제였다고 한다. 다른 설에 의하면 타로가 도와줬다고도 한다.[12] 호주머니 안에 넣고 있으면 배고픔을 느끼지도 않고 밥을 먹을 필요도 없게 되는 부적인 쌍지(双紙)와 어두운 밤이라도 밝혀줄 만큼 빛을 발하는 검인 일광검(日光剣). 덕분에 사부로는 식량과 횃불 없이도 지하세계를 거닐 수 있었다.[13] 유만국(維縵国)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14] 유이마히메라고도 하며, 유만국의 명칭을 따라 이만히메(維縵姫), 유이만히메라고도 불렸다. 둘째가 아니라 막내 딸이라고도 한다.[15] 떡을 만들어준다는 것까지는 동일하지만, 이마히메가 끝까지 사부로를 따라가 이 되거나 아사마다이묘진(浅間大明神)으로서 승천하게 되었다는 전승도 있다. 카스가노히메와의 사이도 좋았다고.[16] 지상의 인간을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가워하며 인사를 건넸더니 아이들이 냅다 도망갔다는 데서 이상함을 감지했다고.[17] 유마국의 옷을 벗고 스와 호수의 물을 마신 후 주문을 외우면 된다고 한 판본도 있지만, 스님답게 경을 읽어줬다는 설도 있다.[18] 하쿠산곤겐(白山権現), 쿠마노곤겐(熊野権現), 후지아사마 대보살(富士浅間大菩薩)이라는 설이 메이저하지만 오미의 효우즈다이묘진(兵主大明神)이었다고도 한다.[19] 끝끝내 재회하지 못하고 영원히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는 설도 있고, 남편이 죽은 줄 알고 호수에 몸을 던져 익사했던 카스가노히메가 먼저 용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20] 앞서 설명했던 오미의 효우즈다이묘진(兵主大明神)이 둘을 중재해주었다고 전해진다.[21] 자세한 위치는 불명이나 천축, 즉 지금의 인도라는 설이 있다. 신토슈의 판본 중 하나에는 사부로가 신이 된 이후 아소카 왕의 막내 딸 혹은 누이동생이자 후에 누키호코다이묘진(抜鉾大明神)으로 승천하게 되는 호미녀(好美女, 호미인(好美人)이라고도 함)를 또 다른 아내로 맞이했다고도 전해진다.[22] 카미샤(上社)와 시모샤(下社)라고 부르기도 한다.[23] 939년 타이라노 마사카도후지와라노 스미토모가 각기 동서에서 일으킨 난이다.[24] 형들은 사부로가 죽지도 않았는데 괜한 소릴 했다며 후회한 것인지, 사부로의 죽음에서 얻을 이익을 노리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 장본인이 오로치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공포를 느꼈는지는 몰라도, 죄책감을 못 이겨 자살했다고.[25] 지금으로 치면 경찰이나 군인에 가깝다고 한다.[26] 약 150cm.[27] 약 6cm.[28] 스와묘진으로 섬겨졌던, 당대 스와 대사의 현인신. 패전 후 일족과 함께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29] 도망을 잘 치는 도련님이라는 만화는 이 즈음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에 코가 사부로 전설이 들어서기 전 스와 대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30] 농경이 도입된 후에도 사냥을 중시했고 뱀 신앙이 융성했던 지방이었으니만큼 코가 사부로 이야기가 두 신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원래부터 사냥꾼, 뱀 속성을 띠던 오래된 토착 설화라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