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5 13:38:07

퀘벡 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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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폐하의 정부
파일:캐나다 자유당 로고 (하얀색).svg
자유당

159석
국왕 폐하의 가장 충성스러운 야당
파일:캐나다 보수당 아이콘(흰색_빨간색).png
보수당

119석
교섭단체 야당
파일:bloc logo.png
퀘벡 블록

33석
파일:NDP 로고 (영프 조합 white).svg
신민당

25석
비교섭단체 야당
파일:캐나다 녹색당 로고 (영프 조합 white).svg
녹색당

2석
[[무소속|무소속
1석
]]
재적
338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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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 Québécois
(블록 케베쿠아)
한국어명칭 퀘벡 블록
영어명칭 Quebec Bloc
프랑스어명칭 Bloc Québécois
창당일 1991년
이념 퀘벡 분리주의
퀘벡 내셔널리즘
사회민주주의
생태주의
정치적 스펙트럼 중도좌파
당 색 하늘색
당사 위치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당원 수 19,000
당대표 이브-프랑수아 블랑셰
(퀘벡주 벨로유-샴블리 선거구)
총재 이브 페롱(Yves Perron)
상원 의석 수
0석[1] / 105석 (0%)
하원 의석 수
32석 / 338석 (9.5%)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프랑스어)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이념 및 주요 지지층3. 퀘벡 주 내에서의 위치4. 역사
4.1. 2019년 연방 총선4.2. 2021년 연방 총선
5. 역대 선거

[clearfix]

1. 개요

캐나다정당. 퀘벡주 지역의 이권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당이다. 약칭은 BQ이나, 실제로는 영어로든 불어로든 그냥 블록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공화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임에도 '여왕 폐하의 가장 충성스러운 야당'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지만,[2] 2011년 총선에선 당시 신민당 대표였던 잭 레이튼의 퀘벡 주 하드캐리에 떡실신, 4석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로도 2010년대 계속된 침체로 인해 원외로 퇴출되는거 아닌가 하는 의견도 나왔지만,[3] 2019년 연방총선에서 원내 3당으로 부활했다.

2. 이념 및 주요 지지층

이념적으로는 중도좌파, 사민주의 정당에 가깝다. 주요 의제로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확대 및 기후위기 대응 강화[4], 성소수자 권리 지지, 조력 자살권 지지, 임신중절권 지지, 투표연령의 16세로의 하향, 공화주의, 상원 폐지 등을 주장한다.

허나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문화주의 반대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방 전체의 다문화주의는 큰 불만이 없지만 퀘벡은 빼달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행태는 미국 예외주의 등 세계에서 종종 보이는 현상이긴 하나, 이들에게는 더 절박한 이유가 있다. 캐나다 프랑스어 및 퀘벡 문화 보존이라는 가치는 이민자 유입에 의한 문화적 다양성 제고와 상충할 수밖에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이민자들이 영어와 불어 중 어떤 언어를 더 잘하겠는가? 이 때문에 캐나다의 일부 유권자들(특히 불어를 못하는 앙글로폰들)은 "블록 케베쿠아는 내로남불의 인종주의 정당이다!"라는 비판을 보내기도 한다. 특히 캐나다 정치지형상 주요 정당 중 가장 좌측에 있는 신민당은 인도계인 자그미트 싱 당수가 의사진행 중 블록 케베쿠아 원내대표 알랭 테리앙 의원을 인종주의자라고 비난하다 퇴장당하는 일도 있었다. 프랑스를 본받은듯 라이시테를 명분삼아 무슬림 여성의 니캅히잡, 시크교인 남성의 터번을 금하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이 당은 이념 스펙트럼은 둘째치고 퀘벡주권과 퀘벡 독립운동 대변자로서의 포지션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5] 이 당은 애초부터 퀘벡을 위해 출범한 정당이기 때문에 퀘벡주 외 타지에서는 후보도 잘 안내고 설령 내더라도 표를 별로 못받고 있다. 그럼에도 온타리오 주 다음가는 의석수를 자랑하는 퀘벡 주의 규모 덕분에 선거마다 상당한 의석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허나 2010년대 들어선 그 퀘벡 주에서도 자유당이나 신민당에 대거 의석을 내주며 유일했던 지지 기반마저 흔들리는 모양새를 보였다. 특히 자유당도 자유당이지만 신민당에게 입은 타격이 막심했다. 다만 쥐스탱 트뤼도 집권 이후 서서히 지지 세력을 회복하는데 성공, 2019년엔 퀘벡 주에 걸린 의석 총 78석 중 32석을 차지할 정도의 기반은 되찾았다. 2021년에도 같은 성적을 받았다.

퀘벡주는 대체로 자유당의 텃밭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 자유당의 성적은 반타작 정도에 그치는 편인데, 그 원인이 이들이다. 몬트리올 등 대도시권에서는 자유당이 우세하고 간혹 보수당도 몬트리올과 퀘벡시티 주변 일부 지역구에서 의석을 따내곤 하지만, 그 외 백인 위주의 교외지역 선거구에서는 블록 케베쿠아가 굉장한 존재감을 보이며 수십석을 가져가곤 한다.

한편, 분명 이념만 놓고 보면 자유당과 신민당의 파이만 뺏어먹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미묘하게도 보수 파이를 상당히 많이 뺏어먹는다. 1995년 퀘벡주 주민투표에서의 선거구별 승패를 분류할 시 가티노~몬트리올 일대의 영어도 꽤 쓰이는 대도시권과 북극권 원주민 거주지에서 독립 반대 여론이 강하고 생로랑강 최하류 도시들을 중심으로 찬성 의견이 우세했는데, 이 구도가 블록 케베쿠아의 오늘날 주요 지지기반과도 대강 일치한다. 퀘벡주에서 캐나다 보수당은 인기가 별로 없기 때문에[6] 블록 케베쿠아가 연방선거시엔 자유당의 라이벌 포지션을 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보수당은 1993년 블록 케베쿠아의 연방선거 데뷔 이래 퀘벡의 연방정치 헤게모니를 되찾아오지 못하고 있다. 1993년 진보보수당의 역사적인 패망의 원인 중 하나로 장 크레티앵 안면장애 조롱, 개혁당 등장 못지 않게 블록 케베쿠아의 연방선거 첫 도전을 지목하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 아닌게 아니라, 브라이언 멀로니 총리[7]가 진보보수당의 퀘벡주 연방총선 승리를 이끌고 무리하게 고향 퀘벡주의 자치권을 제고하려다 동서 대분열이 일어난 결과가 서쪽의 캐나다 개혁당과 동쪽의 블록 케베쿠아였다고 봐도 된다.

사실 블록 케베쿠아 창당멤버로서 초대 당수를 지내고 훗날 퀘벡당 당수로서 퀘벡 주총리를 지내는 뤼시앵 부샤르(Lucien Bouchard)는 라발 대학교 시절부터 멀로니 총리의 친우이자 동지로서 진보보수당에서 환경장관까지 하다가 멀로니 총리의 자치권 확대 드라이브가 좌초되며 장관직을 그만두고 탈당한 인물이었다. 즉, 블록 케베쿠아는 태생적으로 보수정당에서 분당한 정당에 가깝다.[8] 멀로니 총리가 무리하게 자치권 확대를 추진하기 전까지 퀘벡주는 연방선거에서 밀어주던 자유당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진보보수당이 기세를 타던 흐름이었다. 허나 그렇게 보수화되나 싶던 퀘벡이 자기네 연방정당을 만들면서 연방 보수 세력에게서 멀어져버렸으니 보수당으로서는 환장할 노릇.(...)[9]

이런 복합적인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이 당은 좌우 스펙트럼만으로만 보기엔 복잡한 면모가 많다. 심지어 캐나다라는 나라 자체를 향한 미국의 침략욕이 가시화하는 2025년 기준으로는 독립 열기가 식은 수준을 넘어 퀘벡의 프랑코폰들이 캐나다의 주권을 가장 절실히 지키려 하는(...) 기묘한 정치지형이 형성되다보니 이 당의 앞날도 어찌 될런지 속단할 수 없어졌다. 영미권의 전통적인 잣대 말고도 프랑스어 및 문화적 정체성 제고를 향한 퀘벡의 강박관념과 프랑스식 정치문화의 특수성까지 가미된 정당이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복합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정당이다. 지역주의 정당이자 분리주의 정당이였지만, 지금은 또 캐나다의 독자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주목받는등 캐나다와 미국의 다른 정체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한 발자국을 남긴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3. 퀘벡 주 내에서의 위치

블록은 퀘벡 주의회 총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 대신 퀘벡당(Parti Québécois)이라는 정당에서 출마하는 후보자를 지지하며, 연방 총선때는 반대로 퀘벡당이 블록의 후보자를 지지해주는 형식으로 연대하고 있다.

헌데 정작 두 정당은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별개의 정당이다. 즉, 블록 케베쿠아의 퀘벡주 지부가 퀘벡당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라는 의미. 물론 서류상으론 별개의 정당이지만 사이가 좋긴 해서, 퀘벡 주 내에서는 퀘벡당 소속으로 연방의회에서는 블록 케베쿠아 소속으로 활동하는 이중당적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 퀘벡 블록 대표 마리오 볼리외이다.

4. 역사

4.1. 2019년 연방 총선

선거 전 여론조사에선 대체적으로 제3야당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 점쳐졌으나, 퀘벡 주의 열렬한 지지세와 신민주당의 부진으로 예측을 깨고 11년 만에 제2야당 자리를 탈환하였다.

4.2. 2021년 연방 총선

2021년 캐나다 연방 선거에서도 약 7.7%의 득표율로 지난 선거와 거의 비슷한 득표율이 나왔고, 의석 또한 32석을 차지하며 원내 3당 입지를 굳혔다.

5. 역대 선거

2000년 총선 38/301 10.7%
2004년 총선 54/308 12.4%
2006년 총선 51/308 10.5%
2008년 총선 49/308 9.98%
2011년 총선 4/308 6.04%
2015년 총선 10/338 4.7%
2019년 총선 32/338 7.7%
2021년 총선 32/338 7.7%


[1] 상원 폐지를 당론으로 밀고 있는 당이라 상원에 진출하지 않는다. 참고로 캐나다는 하원의 권한이 상원보다 크며, 상원은 일종의 추천제로 직접 선거로 뽑는 자리가 아니다.[2] 첫 연방선거 도전이었던 1993년 총선 때의 일로, 당시 킴 캠밸 총리의 진보보수당은 당시 자유당 대표였던 장 크레티엥의 안면장애를 비웃는(...) 캠페인을 TV 광고로 내는 자폭을 저질러서 146석을 잃어 2석만 남기고 패망했고, 캐나다 서부를 중심으로 한창 떠오르던 신생 보수정당 캐나다 개혁당은 패망한 진보보수당 후보들에게 표가 갈리는 바람에 52석에 그쳤고 54석의 퀘벡 블록에 이은 원내 3당에 만족해야했다. 이후 암흑기를 거친 개혁당과 진보보수당 등 보수 정당들은 2003년 보수당으로 통합된다.[3] 질 뒤셉 대표가 2015년 사임한 후 당 대표가 축출되는 등 혼란이 있었지만(심지어 2018년에는 잠깐이지만 퀘벡 블록 의원 5명이 탈당을 선언하고 자기들끼리 회파를 구성하기도 했다), 2019년 1월 이브-프랑수아 블랑셰 대표가 취임한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4] 퀘벡주의 에너지 공기업인 이드로 퀘벡이 세계 최대급의 수력발전 기업이기 때문에 연방 차원에서 친환경 정책을 밀수록 퀘벡주는 유리할 수밖에 없다. 퀘벡만큼은 아니지만 온타리오주 역시 나이아가라 폭포 등 수력발전으로 이득을 챙기고 오대호 연안 미국 주들에게 에너지를 팔고 있기 때문에 기후위기와 환경보호 문제에서는 퀘벡과 호흡이 잘 맞는 편이다. 대서양주들의 경우 석유 및 천연자원이 나는 곳이 꽤 있지만 아무래도 앨버타만큼 딸린 인구가 많진 않고 석유에 절실히 의존하는 편까진 아니다보니 동부의 의제에 적당히 묻어가는 편. 반대로 앨버타, 서스캐처원 등 중서부 산유주들은 탄소세같은 소리가 나올 때마다 부들부들하며 보수당의 석유산업 친화정책에 호응한다.[5] 영미권에서 유사한 성격의 정당으로는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있다. 다만 영국에서는 석유가 스코틀랜드 앞바다에서 터졌다(...)는 차이가 있다.[6] 보수당의 홈그라운드인 앨버타, 서스캐처원 등의 산유주로서의 이권과 프랑스어권에 무심한 태도 등이 퀘벡에게 유리한 기후위기 대응 의제와 이중언어체제와는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7] 보수당이 자유당 피에르 트뤼도 총리의 장기 집권에 따른 만년 야당 신세를 타개하고자 퀘벡주 출신 멀로니를 밀어줬다. 이름만 보면 흔한 잉글로폰 같아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수정당 역사상 보기 드문 퀘벡주 출신 모태 바이링구얼이자 애향심이 지극한 케베쿠아였기에 진보보수당이 프레리를 넘어 퀘벡까지 접수하리라는 기대를 모았다.[8] 원래는 미치 호 협정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진보보수당과 자유당의 주권파 의원들이 잠시 초당적 협력을 하던 협의체였으나, 미치 호 협정을 문제삼은 장 샤레(Jean Charest) 의원의 보고서가 나오자 이에 반발한 환경장관 부샤르 의원이 다른 퀘벡 지역구 토리 의원 5명과 함께 블록에 입당했고 자유당 출신 2명도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연방정치를 시작했다. 얄굿게도 부샤르는 훗날 퀘벡당의 당수 겸 퀘벡주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장 샤레가 퀘벡 자유당의 당수로 올라서며 퀘벡주 정치판에서 숙명의 라이벌로 대결하게 된다.[9] 퀘벡은 20세기 오랜기간 자유당의 텃밭으로 알려졌고 틀린 말도 아니지만, 1980년대는 달랐다. 피에르 트뤼도의 말년 분위기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트뤼도는 총리 재임기간 말년에는 퀘벡주민들로부터의 평가가 미묘하게 나빠지던 편이었다. 1982년 캐나다 자치령캐나다국(國)으로의 체제 전환을 선포하는 개헌 과정에서 퀘벡주의 동의 서명을 받지 않고 밀어붙인 사건, 그리고 자유당 거물들이 휘말린 여러 스캔들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결국 1984년 트뤼도의 정계 은퇴 선언 이후, 자유당은 존 터너 총리 체제에서 열린 선거에서 퀘벡의 패권을 상실하다시피 한다. 진보보수당은 이 시기 브라이언 멀로니라는 퀘벡 출신 모태 바이링구얼 보수정치인이 당수로 전면에 나서며 퀘벡의 헤게모니를 뺏어오고 총리에 등극했다. 멀로니는 취임 직후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캐나다 경제 호황을 이끌었지만, 퀘벡 자치권 확대 정책 때문에 서부의 집토끼들이 분노하는 역설적인 흐름 덕에 실각했다. 서부냐 동부냐 그것이 문제로다. 결국 1993년에는 서부 BC 출신인 킴 캠벨 총리에게 정권을 넘긴 상태로 총선을 열었으나, 본 문서의 주인공인 블록 케베쿠아의 연방선거 데뷔가 이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