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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두라스의 수도·최대도시 테구시갈파 Tegucigalpa | |||||
깃발 | |||||
<colbgcolor=#00BCE4><colcolor=#FFFFFF> 국가 | [[온두라스| ]][[틀:국기| ]][[틀:국기| ]] | ||||
주 | 프란시스코모라산주 | ||||
면적 | 1,502km2 | ||||
인구 | 1,326,460명[A] | ||||
인구밀도 | 880명/km2[A][3] | ||||
시간대 | UTC-06:00(CST)[4] |
1. 개요
테구시갈파는 온두라스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인구는 2020년 추계 128만명이다. 온두라스의 거의 정중앙에서 약간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프란시스코모라산주[5]에 속해 있다.2. 행정
프란시스코모라산 주와 중부지구(하늘색), 중부지구 시가지(회색) |
3. 역사
이 곳이 도시로 처음 성장하기 시작한 때는 콩키스타도르의 통치 시기로, 은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은의 주요한 생산지로써 발전하기 시작했다.[8] 그래서 도시 이름의 유래도 "은의 산"이란 뜻의 원주민 언어라고 한다. 테구시갈파는 1821년 법적으로 도시가 되었다.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온두라스는 옆 나라처럼 자유주의 성향의 테구시갈파와 보수주의 성향의 코마야과[9]로 나뉘어 갈등했다. 온두라스는 두 도시 사이에서 여러번 천도했고 1880년이 되어서야 최종적으로 수도를 테구시갈파로 정했다. 도시의 인구는 1905년 3만 5천명에서 1961년 16만명으로, 다시 2001년 85만명으로 폭증했다. 농촌에서 도시로 대대적인 이농현상이 발생했으나 부적절한 도시정책으로 도시는 무질서하게 팽창했다.
1998년 말 불어닥친 허리케인 미치(Mitch)는 테구시갈파를 비롯해 온두라스 전역에 끔찍한 피해를 안겼다. 폭우로 테구시갈파를 지나는 촐루테카 강이 범람했고[10] 설상가상으로 산사태까지 덮쳤다. 당시 테구시갈파 시내 건물의 1/3이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그 중에는 350년 이상 된 건물도 있었다. 일부 지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허리케인으로 온두라스에서만 7천명이 죽고 150만명이 노숙자로 전락했다.[11] 그 가운데 테구시갈파가 포함된 프란시스코모라산 주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1천명이었다. 사망자 중에는 시장 세사르 카스테야노스 마드리드도 있었다. 이때 온두라스 대통령 카를로스 로베르토 플로레스는 허리케인 미치로 입은 피해를 회복하려면 50년은 지나야 한다고 한탄했다.
오늘날에도 테구시갈파의 시가지는 구 식민지 시절 도심으로부터 동쪽, 남쪽, 서쪽으로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도시 현대화 계획의 일환으로 시 행정부는 다수의 조례와 도시 프로젝트를 통과시켰다.
4. 경제와 교통
과거 테구시갈파는 은 채굴이 주산업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테구시갈파는 산페드로술라와 함께 온두라스의 양대 상공업 중심지이다. 두 도시 모두 의류, 제당, 담배, 고무 등 경공업 위주로 산업이 발달했다. 20세기 말 테구시갈파 도시권에는 마킬라도라(일종의 보세공장제도)가 다수 들어섰다.[12] 테구시갈파는 특히 온두라스 중앙은행, 중미경제통합은행(CABEI)[13]의 본사가 소재한 금융중심지다.온두라스의 도로망은 테구시갈파를 중심으로 뻗어 있다. 단 철도는 없다.[14] 남북으로 뻗어 북서해안 푸에르토코르테스와 남해안 산로렌소를 잇는 대양간 고속도로(Inter-Oceanic Highway)가 온두라스를 지난다. 또한 동서로 뻗어 남서쪽 엘살바도르와 동쪽 니카라과를 잇는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가 테구시갈파 바로 남쪽을 지난다.
공항으로는 시가지 남쪽에 톤콘틴 국제공항이 있지만, 고지대의 험한 지형에 활주로 길이도 짧아서 착륙하기 위험한 공항으로 국제선은 취항하지 않는다. 국제선은 북서쪽의 옛 수도 코마야과 인근에 있는 팔메롤라 국제공항으로 다니며, 인천국제공항에서의 직항편은 없고 미국 도시에서 환승해 가는 것이 대부분. 위의 사진 왼쪽 윗편에 활주로가 보이는 곳이 톤콘틴 국제공항이다. 일반적으로는 보잉 757 정도가 착륙할 수 있는 가장 큰 비행기라고 한다. 항공기들은 위의 사진 오른쪽 위의 산 옆을 타고 하강하다가 왼쪽으로 150도 정도 턴을 해서 접근한다.착륙 영상
중앙아메리카 버전 그레이하운드라고 할 수 있는 티카버스를 통해 도착할 수도 있으니 참고. 도시 내 대중교통은 버스가 주가 된다. 인구는 100만을 넘기고 경제사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되지만 이래봐도 매일 40만대가 넘는 자동차들과 오토바이들이 돌아다니다 보니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그래서 일단 도심지에 건설만 된다면 수요보장은 된다는 것이 주 평가이지만 온두라스 자체의 국가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 보니까 도시철도 같은 건 없다. 설립 계획 자체는 있었지만 예산문제로 BRT 설치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현재 시내 대중교통망은 25인승 시내버스 위주로 짜여져 있는데 25인승이라는 것에서 보듯 정규 버스가 아닌 미니버스다. 특히 현대 카운티가 주로 굴러다닌다.
5. 치안
도시의 대표적 문제점이라면 역시나 치안. 세계에서도 범죄율과 살인율이 높기로 악명높은 나라인 온두라스에서도 최대 도시인지라 살인이나 각종 기타 중범죄가 많이 벌어진다. 도심부나 관광지는 경찰관들이 돌아다니며 통제하기 때문에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교외 주택가는 아예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신상에 안전하며 도심부라 할지라도 밤에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그나마 신상에 안전하다.[15] 특히 갱단들이 판을 쳐서 서민들을 삥뜯는 것이 다반사이며, 경찰관들도 갱단들에게 뇌물을 받거나 하는 경우가 은근슬쩍 많기 때문에 치안 확보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인지라 행정 통제조차 제대로 안되는 산페드로술라보다 상황이 나은 편. 문제는 그 '그나마 나은 상황'이 세계 6위의 살인율이란 거다.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낮은 것도 문제.얼마나 치안이 안 좋냐면 전반적으로는 카라카스보다는 치안이 낫다고 하지만 부촌인 동부 카라카스만 다닌다면 테구시갈파가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여행 블로거도 있을 정도이다.
6. 자매결연도시
총 16개 외국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벨루오리존치(브라질), 뉴올리언스(미국), 과달라하라(멕시코), 리마(페루), 마드리드(스페인), 키토(에콰도르), 타이페이(타이완), 암만(요르단), 보고타(콜롬비아), 카라카스(베네수엘라), 마나과(니카라과), 과테말라시티(과테말라), 라파스(볼리비아), 반자르바루(인도네시아), 팔루(인도네시아), 서울(대한민국).[A] 2023년 기준[A] [3] 단, 인구의 90%가 몰린 테구시갈파 시내의 인구밀도는 훨씬 높다.[4] 대한민국(UTC-9)보다 15시간 느리다.[5]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 대통령 프란시스코 모라산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해당 인물의 고향 역시 테구시갈파이다.[6] 그래서 중부지구를 테구시갈파와 코마야궬라(Tegucigalpa y Comayagüela)로 부르기도 한다.[7] 사실 원래 코마야궬라는 테구시갈파에 꿀리지 않는 도시였다. 19세기 말 양 도시의 인구는 거의 같았다.[8] 다만 20세기 초반에도 인구가 그리 많은 도시는 아니었다. 인구가 급증하기 시작한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9] 테구시갈파에서 북서쪽으로 56km 떨어진 도시. 인구는 2020년 추계 17만 2,069명으로, 현재까지 스페인 식민지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유명한 관광지다.[10] 이때 촐루테카 강의 수위는 제방보다 10m나 높았다.[11] 이때 난민 중 일부는 니카라과로 피신했다. 내전이 끝난지 8년밖에 안된 그 생지옥으로.[12] 마킬라도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온두라스/경제 문서에 있다. 주로 미국 의료업체에게 하청을 받아 생산한다.[13] 한국은 2021년 지역외 회원국으로 가입, 현재 이사진을 파견하고 있으며, KTF라는 명칭의 기금을 제공하고 있다.[14] 온두라스의 철도망은 북서부 산페드로술라와 라세이바(La Ceiba)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이곳은 온두라스 상공업의 중심지이다.[15] 사실 이는 중남미 국가들 수도와 대도시들 전반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