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50><tablebordercolor=#143d69><tablebgcolor=#143d69>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25 시즌 내야수 |
{{{#!wiki style="margin: 0 -10px;" {{{#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000000,#e5e5e5 | 0 코다마 료스케 · 4 야마노베 카케루 · 5 토노사키 슈타 · 6 겐다 소스케 · 8 와타나베 켄토 · 10 사토 류세이 · 30 모토야마 히유 · 31 히라누마 쇼타 32 야마무라 타카요시 · 44 헤수스 아귈라 · 50 타카마츠 와타루 · 60 나카무라 타케야 · 62 타키자와 나츠오 · 67 노무라 다이쥬 · 99 무라타 레온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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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노사키 슈타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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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APBC {{{#c7bc69 우승}}} | ||||||||||||||||||||||||||||||||
2017 |
2019 WBSC 프리미어 12 {{{#c7bc69 우승}}} |
2019 |
2020, 2022년 퍼시픽리그 2루수 골든글러브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44번 | ||||
미사와 마사루 (2014) | → | 토노사키 슈타 (2015~2017) | → | 오가와 류야 (2018~2019)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5번 | ||||
오니자키 유지 (2016~2017) | → | 토노사키 슈타 (2018~) | → | 현역 |
<colbgcolor=#143D69><colcolor=#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No.5 P | |
토노사키 슈타 外崎修汰 / Shuta Tonosaki | |
생년월일 | 1992년 12월 20일 ([age(1992-12-20)]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 |
학력 | 아오모리현립 히로사키실업고등학교 - 후지대학 |
포지션 | 유틸리티 플레이어(2루수[1]) |
투타 | 우투우타 |
체격 | 177cm, 78kg |
프로입단 | 2014년 드래프트 3순위 (세이부) |
소속팀 |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15~) |
등장곡 | TUBE - Miracle Game[2] 히로세 코미 - Promise[3] |
응원가 | BRADIO - Flyers [4] |
계약 | 총액 약 6억엔 (2023~2026) |
연봉 | 1억 6000만엔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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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소속의 선수. 2018-19년 팀의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공헌한 프랜차이즈 스타이다.2.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중학교 때 인근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출신이자 훗날 팀메이트가 되는 키쿠치 유세이와 상대로 만난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엔 1학년 봄부터 바로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았으나 코시엔엔 진출하지 못했다.이후 후지대학에 진학해[5] 4학년 때인 2014년엔 주장을 맡아 춘계, 추계리그 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같은 해 전일본 대학야구 선수권 대회, 메이지 신궁 야구대회에도 출장했다. 수상 경력으로 2학년 때 추계리그 타점왕, 3학년 때 추계리그 도루왕, 4학년 때 추계리그 수위타자 및 2루수 베스트나인, 우수선수상이 있다.
대졸 시즌인 2014년 드래프트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3순위로 지명되었고 계약금 5000만엔, 연봉 1200만엔(추정)에 계약을 맺고 프로에 데뷔하게 되었다.
3. 프로 입단 후
3.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데뷔 시즌인 2015년엔 7월에 처음 1군으로 승격되었고, 7월 8일 오릭스전에서 첫 출장 및 첫 안타, 7월 25일 닛폰햄전에서 첫 선발 출장 및 첫 홈런+타점[6]을 기록했다. 1군 승격 이후엔 주로 유격수를 맡아 43시합에 출장하며 시즌 내내 1군에서 계속 뛰었으나 타율 .186/OPS .488, 1홈런 4타점 9도루의 부진한 성적에 그쳤다.[7]2016년에도 개막부터 1군에서 출장하며 주로 유격수로 나왔으나 37시합 타율 .176/OPS .516, 2홈런 5타점 6도루로 2년 연속 부진한 성적에 그쳤다.
2017년엔 신인 겐다 소스케에게 유격수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개막 초반엔 대주자 혹은 2, 3루 대수비로 나서는 경우가 많았으나 4월 중반부터 코너 외야수로 선발 출장 기회를 잡았고, 츠지 하츠히코 신임 감독의 조언으로 타격 또한 각성하여 개인 첫 만루홈런을 치는 등의 활약과 함께 119시합에 출장해 첫 규정타석 도달은 물론 타율 .258/OPS .706, 10홈런 48타점 23도루로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줬다. 시즌 후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표로도 선정되었고 대회에서 타율 .462 1홈런 4타점의 맹활약으로 MVP에 선정되었다.
2018년에도 코너 외야수, 3루수로 선발 출장하며 작년 이상의 준수한 성적을 이어갔으나 9월 2일에 등 부상을 입게 되어 이틀 후인 9월 4일에 1군 등록이 말소되면서 그대로 정규시즌을 끝마쳐야 했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복귀했으나 팀의 업셋 패배를 막지 못했다. 최종 성적은 119시합 타율 .287/OPS .830 18홈런 67타점 25도루로 첫 OPS 8할을 찍는 등 순조로운 모습을 보여줬기에 시즌 막판의 부상이 아쉽게 되었다.
2019년부턴 주전 2루수였던 아사무라 히데토의 FA 이적으로 자리를 메꾸기 위해 2루수로 메인 포지션을 옮겼고, 이 시즌부터 2루수로 사실상 고정되었다. 초반엔 타격 부진으로 고생했으나 여름부터 서서히 타격을 회복하면서 작년의 아쉬움을 딛고 개인 첫 전시합 출장인 143시합 출장과 함께 타율 .274/OPS .846, 26홈런 90타점 22도루의 커리어 하이를 찍었으며, 2루 수비에서도 리그 최다인 14실책을 기록하긴 했지만 주전 2루수들 중 3위인 UZR 9.1을 기록하는 등 수비율을 제외한 대다수 수비 지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고 같은 해 11월에 개최된 제2회 WBSC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또 다시 팀이 4연패로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 했고 준수한 공격, 수비 성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며 베스트나인, 골든글러브도 전임 2루수인 아사무라 히데토에게 내줘야 했다.
코로나로 개막 연기와 함께 120시합제로 단축된 2020년엔 후반부터 잠시 타율이 2할 3푼대까지 떨어지는 등 타격 부진에 빠지면서 2루가 아닌 기존에 보던 외야수로 출장하는 경우가 늘었고, 결국 120시합 출장으로 2년 연속 전시합 출장을 이뤄냈으나 타율 .247/OPS .688, 8홈런 43타점 21도루로 작년보다 크게 하락한 타격 성적에 그쳤다. 대신 수비는 이전처럼 좋은 성적을 기록한 덕분에 개인 첫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21년에는 개막 초인 4월 3일 소프트뱅크전에서 왼쪽 발목에 데드볼을 맞아 종아리뼈를 골절당하면서 3달 가까이를 통으로 날리는 악재를 겪었다. 예상보다 빠른 7월 3일에 1군 복귀를 이뤄냈으나 부상으로 인한 결장의 여파로 떨어진 타격감을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73시합 출장, 타율 .247/OPS .688 5홈런 19타점 9도루로 규정타석에 미달한 것은 물론 타격에서 완전히 망한 시즌이 되고 말았다.
2022년에는 다시 풀타임 2루수로 뛰었으나 타격 부진이 더 심각해진 데다 시즌 막판에 요통으로 결장하는 일까지 겹치며 132시합 출장, 타율 .215/OPS .650 12홈런 47타점 10도루의 매우 나쁜 성적에 그쳤다. 컨택 능력이 완전히 망가지는 바람에 다른 스탯들까지 왕창 까먹고 만 것으로, 그나마 다행히 수비 능력은 UZR 1위로 여전히 준수한 덕분에 2번째 골든글러브 수상에 성공했다. 시즌 종료 후 취득한 국내 FA 권리를 행사했으나 "라이온즈에서 현역 생활을 끝마치겠다"란 선언과 함께 연봉 1억 6천만엔의 4년 계약을 체결하며 팀에 남았다.
2023년에는 지난 3년 간의 부진을 극복하고 136시합 출장, 타율 .260/OPS .738, 12홈런 54타점 26도루로 반등에 성공하며 심각한 빈타로 고생했던 팀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타격 스탯은 전성기에 비해 아쉽지만 심한 투고타저 환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위권으로 평가할 만한 수치이고 수비 역시 2년 연속 실책 1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요시카와 나오키의 뒤를 이어 UZR 2위를 기록할 만큼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베스트나인은 아사무라 히데토에게, 골든글러브는 UZR 최하위를 기록한 나카무라 쇼고에게 밀려 반등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무관에 그쳤다.[8]
2024년에는 타율 .227/OPS .649 7홈런 41타점으로 다시 폭망하고 말았고, 토노사키뿐만 아니라 팀 타선 자체가 작년 이상의 심각한 부진을 보여주면서 결국 팀이 91패로 무너지며 구단 사상 최악의 시즌을 기록하는 주 원인이 되고 말았다. 구단 수뇌부들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시즌 종료 후 그나마 팀에서 가장 좋은 타격을 기대할 수 있는 토노사키의 기량을 살리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시킬 계획을 밝혔다.
4. 여담
- 고향인 아오모리현에서 부모님이 사과농장을 하셔서 세레머니할때 애플펀치를 날린다. 토노사키의 세레머니 "애플펀치"가 여기에서 유래했다.
- A&G 올스타 2017 이벤트에서 세키군단 소속의 무명 성우 토노자키 유스케가 히다카 리나에게 성희롱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성이 같다는 이유로 애꿎은 풍평피해를 입었다.
5. 연도별 기록
토노사키 슈타의 역대 NPB 기록 | |||||||||||||||||
<rowcolor=#fff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WAR |
2015 | 세이부 | 43 | 110 | 18 | 3 | 0 | 1 | 16 | 4 | 9 | 6 | 30 | .186 | .240 | .247 | .487 | 0 |
2016 | 37 | 57 | 9 | 0 | 0 | 2 | 8 | 5 | 3 | 3 | 11 | .176 | .222 | .294 | .516 | -0.3 | |
2017 | 135 | 489 | 113 | 22 | 3 | 10 | 65 | 48 | 23 | 33 | 109 | .258 | .315 | .390 | .705 | 1.5 | |
2018 | 119 | 510 | 130 | 24 | 3 | 18 | 70 | 67 | 25 | 47 | 102 | .287 | .357 | .472 | .829 | 3.5 | |
2019 | 143 | 621 | 146 | 27 | 6 | 26 | 96 | 90 | 22 | 63 | 132 | .274 | .353 | .493 | .846 | 5.9 | |
2020 | 120 | 500 | 107 | 18 | 2 | 8 | 62 | 43 | 21 | 54 | 87 | .247 | .335 | .353 | .688 | 3.5 | |
2021 | 73 | 300 | 56 | 14 | 0 | 5 | 30 | 19 | 9 | 35 | 54 | .220 | .316 | .335 | .651 | 1.9 | |
2022 | 132 | 547 | 103 | 25 | 3 | 12 | 54 | 47 | 10 | 52 | 113 | .215 | .295 | .356 | .651 | 3.8 | |
2023 | 136 | 571 | 131 | 28 | 3 | 12 | 60 | 54 | 26 | 56 | 114 | .260 | .338 | .400 | .738 | 4.3 | |
NPB 통산 (9시즌) | 938 | 3705 | 813 | 161 | 20 | 94 | 461 | 377 | 151 | 349 | 752 | .251 | .327 | .400 | .727 | 24 |
[1] 1루수를 제외한 내야 전체와 외야수를 모두 맡아본 적이 있다. 데뷔 초엔 유격수와 3루수, 주전으로 도약한 2017, 2018년엔 외야수를 주로 맡다가 기존의 주전 2루수였던 아사무라 히데토가 FA로 팀을 떠나면서 2019년부턴 거의 2루수만 맡고 있다.[2] 1,4타석 한정. 쥬닌토이로(十人十色)와 마지막 미라클 게임 부분은 팬들이 합창한다.[3] 3타석 한정.[4] 駆け上がれ 夢の舞台へ
카케아가레 유메노부타이에
뛰어올라라 꿈의 무대로
無我夢中に 走れ早く
무가무츄우니 하시레하야쿠
정신없이 빠르게 달려라
みてみたいな 夢中になれる君
미테미타이나 무추우니나레루키미
보고 싶어 열중하는 너의 모습
いくぞ前進 その先へと
이쿠조젠신 소노사키에토
가자 전진 그 앞으로
ラララ ラララ 外崎修汰 ×3
라라라 라라라 토노사키 슈타 ×3
데스 퍼레이드의 주제가로 유명한 노래로, 세이부에서 실제 노래를 응원가로 쓰는 몇 안 되는 케이스다. 2024년을 끝으로 카네코 유지가 은퇴하면서 세이부 소속 선수 개인 응원가 중에서 유일하게 점프 응원을 하는 응원가이기도 하다.[5] 대학 선후배이자 프로에서 같은 팀에서 뛴 선수로 야마카와 호타카, 타와타 신사부로가 있다.[6] 여담으로 첫 홈런을 쳤을 때 좌측 외야의 파울폴 위로 날아간 탓에 처음엔 파울로 판정되었으나 이후 비디오 판독으로 홈런으로 정정되었다.[7] 대신 2군에선 27도루로 도루왕을 수상했다.[8] 나카무라가 병살갯수 1위, 수비율 1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세이버 스탯을 살펴보면 병살 수치와 수비범위가 전체 최하위에 실책방지 능력도 딱 0에 그친 탓에 UZR -9.7로 심각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이 클래식 스탯 위주로만 평가하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카케아가레 유메노부타이에
뛰어올라라 꿈의 무대로
無我夢中に 走れ早く
무가무츄우니 하시레하야쿠
정신없이 빠르게 달려라
みてみたいな 夢中になれる君
미테미타이나 무추우니나레루키미
보고 싶어 열중하는 너의 모습
いくぞ前進 その先へと
이쿠조젠신 소노사키에토
가자 전진 그 앞으로
ラララ ラララ 外崎修汰 ×3
라라라 라라라 토노사키 슈타 ×3
데스 퍼레이드의 주제가로 유명한 노래로, 세이부에서 실제 노래를 응원가로 쓰는 몇 안 되는 케이스다. 2024년을 끝으로 카네코 유지가 은퇴하면서 세이부 소속 선수 개인 응원가 중에서 유일하게 점프 응원을 하는 응원가이기도 하다.[5] 대학 선후배이자 프로에서 같은 팀에서 뛴 선수로 야마카와 호타카, 타와타 신사부로가 있다.[6] 여담으로 첫 홈런을 쳤을 때 좌측 외야의 파울폴 위로 날아간 탓에 처음엔 파울로 판정되었으나 이후 비디오 판독으로 홈런으로 정정되었다.[7] 대신 2군에선 27도루로 도루왕을 수상했다.[8] 나카무라가 병살갯수 1위, 수비율 1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세이버 스탯을 살펴보면 병살 수치와 수비범위가 전체 최하위에 실책방지 능력도 딱 0에 그친 탓에 UZR -9.7로 심각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이 클래식 스탯 위주로만 평가하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