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시 로시츠키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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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시 로시츠키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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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hletic Club Sparta Praha Fotbal, A.S. | ||
<colbgcolor=#8e192b,#191919> 이름 | 토마시 로시츠키 Tomáš Rosický | |
출생 | 1980년 10월 4일 ([age(1980-10-04)]세) | |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 ||
국적 | [[체코|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9cm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경영인 | |
소속 | <colbgcolor=#8e192b,#191919> 선수 | ČKD 콤프레소리 프라하 (1986~1988 / 유스) AC 스파르타 프라하 (1988~1998 / 유스) AC 스파르타 프라하 (1998~200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1~2006) 아스날 FC (2006~2016) AC 스파르타 프라하 (2016~2017) |
경영 | AC 스파르타 프라하 (2018~ / 단장) | |
국가대표 | 105경기 23골 (체코 / 2000~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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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코의 前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별명은 '그라운드의 모차르트'.18살에 체코 명문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데뷔하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아스날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특히 파벨 네드베드가 대표팀을 떠난 이후 역대 최연소로 체코 대표팀 주장이 되었으며 2010년대 페트르 체흐와 함께 위상이 떨어진 체코 대표팀을 이끌어가는 노년가장이었다.
특유의 투지와 매력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이른 나이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나, 누구보다 겸손하고 검소했으며,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선수였다. 비록 부상으로 점철된 커리어를 가졌지만, 그럼에도 그 실력과 인품으로 인해 주변으로부터 인망을 잃은 적이 없었던 선수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자세한 내용은 토마시 로시츠키/클럽 경력 문서 참고하십시오.2.2. 국가대표 경력
2000년에 아일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로시츠키는 유로 2000, 유로 2004, 유로 2008, 유로 2012, 유로 2016까지 모두 5번의 유로컵에 참여했으며 월드컵은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한게 전부다.
특히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E조 1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2골을 터트리며 3-0 대승을 이끌었고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팀은 가나와 이탈리아에 연달아 0-2로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5년에는 100번째 A매치를 치름으로써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였다.
유로 2016이 끝난 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2.3. 플레이 스타일
동시대의 알렉산드르 흘렙, 데쿠 등과 함께 2000년대 중반 들어서부터 각광받게 되는 속칭 '땀 흘리는 플레이메이커'의 대표주자 중 하나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경기를 완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가는 지네딘 지단이나 후안 로만 리켈메 스타일의 느리고 고전적인 템포의 플레이메이커들과 다르게, 그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경기를 쥐락펴락 할 순 없지만 대신에 자신의 다재다능한 무기들을 살려서 부지런히 헌신하며 팀원들의 경기력을 살리는 유형의 플레이메이커. 따라서 로시츠키를 비롯한 이러한 유형의 플레이메이커들은 개인의 압도적인 경기 장악력이나 눈에 확연히 띄는 스탯 생산성은 부족했으나, 팀의 밸런스와 경기력 향상, 일관성 등에 있어서 중요한 몫을 하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로시츠키 자신도 인정할 정도로 겉보기에는 호리호리하고 유약했으나, 동시에 굉장히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축구 지능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한 마치 락커와도 같은 터프하고 거친 마인드를 동시에 품고 있었던 선수였다. 실제로도 락 음악을 좋아하고 단발 머리에 일렉 기타를 연주할 정도로 정도로 남성적이고 호쾌했는데, 그것이 천부적인 재능과 맞물려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는 축구를 매우 경쾌하고 독특한 리듬으로 했는데, 남들보다도 빠른 두뇌회전으로 우리 팀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 지를 아는 것처럼, 언제나 패스의 두수, 세수 앞을 보고서 플레이를 가져갔기 때문에 무척 독특하고 경쾌한 템포의 게임 리딩을 선보일 수 있었다. 게다가 유려한 선수들이 으레 그렇듯 속도는 평범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꽤 과소평가된 준족이었다.
재밌는 점은 이러한 예술적인 면모를 갖춘 선수인 동시에, 부상을 달고 살던 선수답게 거친 슬라이딩 태클을 자주 구사하던 선수였다. 이는 당시 비슷한 케이스였던 조 콜과 유사한 점. 조 콜도 로시츠키처럼 마인드적으로는 마초적이고 용맹했으나, 다소 빈약한 피지컬로 스스로의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구사하며 부상을 달고 살던 선수였다.
또한 '땀 흘리는 플레이메이커' 답게 수비 가담과 상대의 역공 상황시 백코트가 매우 역동적이고 헌신적인 선수였으며, 대표적으로 2006-07 시즌 호날두의 치고 달리기 상황을 저지하는 달리기 장면과, 07-08시즌 세비야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홈경기에서, 당시 유럽 최강의 오른쪽 라인이라 불리던 헤수스 나바스와 다니 알베스 라인이 로시츠키의 부지런한 수비 가담으로 인해 아무것도 못하게끔 만든 경기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경기는 아스날이 세비야를 갖고 농락하다시피 하며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플레이메이커답게 패스와 드리블은 물론, 전반적인 킥력도 매우 훌륭했다. 사실상 모든 스킬에 있어서 수준 미달인 부분이 없었으며, 커리어 내내 골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이는 그가 경기 중에 슛을 하는 상황 자체가 많지 않아서 그렇다. 오히려 골로 결정지어야 하는 상황에선 결정력이 있는 선수였다. 게다가 호리호리한 체격과 달리 슛 파워는 굉장히 강해서 호쾌한 중거리 슛으로 넣은 골들이 많은 편.
가장 큰 플레이 특징은 2:1 패스와 원터치 플레이, 아웃사이드 킥이 꼽힌다. 루카 모드리치 이전에 가장 유명한 아웃사이드 패서였으며, 로시츠키 그 스스로가 부상으로 존재감을 잃어가기 전까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바로 아웃사이드 패스였다.# 또한 2:1 패스와 원터치 플레이는 그를 상징하는 특징인데, 로시츠키가 뛰는 경기들에서 유독 유려해보이고 예쁜 전개가 많이 나오는 이유였다.
분데스리가 시절을 제외하면 프리미어리그에서 10년간 보내며 부상으로 인해 딱히 전성기라 할 만한 시즌은 없었으나, 데뷔부터 말년까지도 그 클래스와 폼이 언제나 일정하고 수준 높았던 선수로서, 그 수많은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면서도 피치 위에 복귀했을 때 감독과 선수와 팬들 모두를 '축구'로 실망시킨 적이 없는 선수였다. 여론은 언제나 로시츠키의 부상에 안타까워했을 뿐, 그의 실력과 경기력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것이 아르센 벵거가 무려 10년간 그를 데리고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그의 독특한 플레이스타일과 마인드로 인해 역사에 남을 위대한 선수 중 하나는 아니지만, 특징적으로 매우 유니크한 선수 중 하나로 남아 있을 것이다.
3. 은퇴 이후
2018년 6월 9일 은퇴경기가 열렸는데, 은퇴경기에는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 페르시, 옌스 레만, 키어런 깁스, 바카리 사냐, 페트르 체흐 등 아스날 출신의 전•현직 선수들과 체코 출신 얀 콜러 등이 참여했다.경기는 체코팀이 월드팀[1]을 5-2로 이겼다.[2]로시츠키는 두 골을 넣었는데[3],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은퇴 이후 AC 스파르타 프라하의 단장직을 맡고 있다. 이후 2024년 아스날 FC의 에두 가스파르가 구단을 떠나자 차기 디렉터 후보로 꼽히고 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 AC 스파르타 프라하
- 1. 체스카 포트발로바 리가: 1998-99, 1999-00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분데스리가: 2001-02
- 아스날 FC
- FA컵: 2013-14, 2014-15
- FA 커뮤니티 실드: 2014
4.2. 개인 수상
5. 로시츠키에 대한 말, 말, 말
로시츠키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선수였다. 그를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지능적으로 볼을 다루며 모든 것들을 쉬워보이도록 만드는 능력이 있다.
마르코 로이스
마르코 로이스
로시츠키는 미드필드에 문제가 있는 유벤투스에게 최고의 옵션이 될 것이다.
파벨 네드베드
파벨 네드베드
그라운드 위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역시 소프라노를 위한 아리아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오라 이런 노래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김동완 해설위원
김동완 해설위원
6. 여담
- 동유럽권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와는 달리 은근히 동구권에서 천재형 축구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로시츠키도 그 중의 한 명이다. 동구권의 천재형 플레이메이커 계보로는 직접적으로 불가리아의 불세출의 플레이메이커였던 크라시미르 발라코프의 뒤를 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파벨 네드베드와 카렐 포보르스키로부터 체코의 에이스 바통을 이어 받은 적자이다. 또한 동시대에 때로는 상대팀으로서, 때로는 같은 소속팀 동료로서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흘렙과 함께 동구권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경쟁을 펼쳤다.
- 취미는 영화감상과 위닝 일레븐.
- 아버지와 형도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축구를 했다.
- 존경하는 선수는 로타어 마테우스. 선호하는 팀은 바이에른 뮌헨. 그러나 당시 화려했던 선수층을 자랑하던 바이에른으로 가지 않고 도르트문트로 갔다.
- 스파르타 프라하 시절 유럽 대항전에서 현 소속팀인 아스날과 맞붙은 바 있다. 도르트문트 이적 후에도 02-03 시즌에 아스날과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대결했다. 이때 도르트문트의 골키퍼는 옌스 레만이었다.
- 부상이 잦은 선수였고, 유독 허벅지 부상이 많았는데 로시츠키를 담당했던 체코의 팀닥터 파벨 콜러의 의견으로는 유스시절 잘못된 훈련으로 인해 근육 구조에 불균형이 생겨서 허벅지 뒤쪽 근육이 다른 곳에 비해 과도하게 발달되고 긴장된 상태였던 것이 이러한 잔부상이 생기게 된 원인이라고 한다.출처 파벨 콜러는 영국이 독일에 비해 스포츠 의학 수준이 떨어져 아스날이 로시츠키에게 부상 예방을 위한 적절한 훈련을 제공하지 못했다[6]고 지적했는데 아스날로 이적하는 대신, 유리몸의 대명사로 악명 높았던 리베리와 로번도 강철몸까진 아니더라도 부상을 극복하고 대부분의 경기에 뛸 수 있게 갱생시킨 볼파르트 박사가 팀닥터로 있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면 어땠을까하는 궁금증이 드는 부분.
- 시즌을 통째로 날린 2008-09 시즌 경기에 하도 나오지 않게 되자 로시츠키 사망설이[7] 나돌기도 했다.
- 부상으로 하도 결장을 많이해서 네이버 카페나 디시 해축갤 등지에서는 "축구 게임을 하는데 아스날에 로시츠키라는 선수가 있네요. 실제 축구에서는 못본 선수인데. 생성선수인가요?" 드립이 유행하기도 했다.
- 한때 팀 동료였던 알렉스 송의 말에 의하면 할머니처럼 운전한다고 한다.
- 세스크 파브레가스, 알렉산드르 흘렙, 마티유 플라미니, 로빈 반 페르시, 사미르 나스리, 가엘 클리쉬, 콜로 투레, 윌리엄 갈라스 등 화려했던 시기를 함께 보냈던 많은 동료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함께 아스날을 지탱하던 바카리 사냐까지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클럽에 남아있어 많은 구너들은 로시츠키는 아스날에서 은퇴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 그래도 그 전까진 얼굴이 곱상한 편이었는데, 어느 날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
먼 옛날 SBS에 의해 로사키라고 개명당한 적이 있다. 이때 위팔루시, 얀쿨로프스키, 스미체르, 콜레르, 체흐도 대거 개명을 당했다.[8][9]
- 잠깐 스트라이커를 소화한적도 있다.
- 한 때 장나라와 닮았다고 하여 축구 게임 내에서 장나라로 불리기도 했다.
[1] 대부분 아스날 선수 출신 선수로 꾸려진 팀[2] 로시츠키는 전반전에 월드팀, 후반전에 체코팀에서 뛰었다.[3] 전부 체코팀에서 넣었다.[4] Zlatý míč(황금공)[5] 훗날 벵거는 이 말을 외질을 칭찬할 때도 그대로 인용했다.[6] 5년 동안 뛴 도르트문트에서 뛴 경기수가 149경기인데, 10년 동안 뛴 아스날에서 경기수가 170경기이다.[7] 물론 개드립. 네이버에 표시된 로시츠키 출생년도와 사망년도가 기록된 합성짤방이 히트치면서 사망설 혹은 고인설이 유행했다.[8] 참고로 해당 짤방의 경기는 2003년 3월 29일에 열렸던 체코 vs 네덜란드의 유로 2004 예선전인 것으로 추정된다.[9] 체코어 발음이 아닌 영어 발음으로 읽은 결과물들이다. 보면 체흐는 Čech, 얀쿨로프스키는 Jankulovski, 위팔루시는 Ujfaluši가 본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