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8 01:36:12

페드루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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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페드루 데 알칸타라 프란시스코 안토니오 주앙 카를루스 자비에 데 파울라 미겔 라파엘 조아킴 조세 곤자가 파스코알 치프리아노 세라핌
(Pedro de Alcântara Francisco António João Carlos Xavier de Paula Miguel Rafael Joaquim José Gonzaga Pascoal Cipriano Serafim)
출생 1798년 10월 12일
포르투갈 리스본 켈루스 궁전
사망 1834년 9월 24일 (35세)
포르투갈 리스본 켈루스 궁전
재위 브라질 제국의 황제
1822년 10월 12일 ~ 1831년 4월 7일
포르투갈 왕국의 왕
1826년 3월 10일 ~ 1826년 5월 2일
배우자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1817년 결혼 / 1826년 사망)
로이히텐베르크의 아멜리아 (1829년 결혼)
자녀 마리아 2세, 미겔, 주앙 카를루스, 자누아리아, 파울라, 프란치스카, 페드루 2세, 마리아 아멜리아
아버지 주앙 6세
어머니 스페인의 카를로타 호아키나
형제 마리아 테레자, 안토니오, 마리아 이사벨, 마리아 프란시스카, 이자벨 마리아, 미겔 1세, 마리아 다 아순산, 아나 데 제주스 마리아

1. 개요2. 폭력적인 성향3. 가족관계

1. 개요

페드루 4세 또는 페드루 1세(이하 페드루 4세)는 포르투갈의 국왕이자 브라질의 황제이다. 페드루 4세는 1798년 10월 12일에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6세스페인의 카를로타 조아퀴나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형인 프란시스쿠 안토니우가 1801년 6살에 세상을 떠나자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1821년 브라질이 독립하자 1822년 3월 10일 브라질의 황제로 즉위했다. 1823년 브라질 의회가 소집되어 제대로 된 입헌군주 국가의 모습을 보였으나 의회와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1825년 시스플라티나 주가 브라질에서 독립하려 하자 그걸 막으려고 아르헨티나500일 전쟁을 치뤘고 이 전쟁에 패배해서 시스플라티나 주가 우루과이로 독립하고 말았다. 이것 때문에 브라질 황제를 그만두고 포르투갈 본국으로 도망쳤다. 1826년 부왕인 주앙 6세가 사망하자 왕위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결국 페드루 4세는 1826년 3월 10일부터 1826년 5월 28일까지만 포르투갈 국왕으로 재위하고 포르투갈 왕위를 딸 마리아 2세에게 양위했다. 1828년마리아 2세가 남동생(마리아에게 숙부) 미겔 1세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자 페드루 4세는 딸 마리아 2세의 왕위를 확고하게 하려고 전쟁을 했다.

1831년 페드루 4세는 아들 페드루에게 브라질의 제위를 물려주고 남동생 미겔 1세의 왕위를 찬탈해 딸 마리아 2세에게 왕위를 다시 양도하였다. 1834년 9월 24일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2. 폭력적인 성향


첫번째 아내였던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그의 폭력성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언니 마리 루이즈에게도 몇통씩 써 보냈지만, 그녀와 프란츠 1세는 레오폴디네에게 거의 편지를 쓰지 않았다.

친정 가족들은 왜인지 끝까지 레오폴디네의 불행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레오폴디네는 자신을 합스부르크가의 희생자라 부르며, 자신은 곧 남편의 폭력에 의해 죽을 거라고 비통한 편지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곧 2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가족관계

첫 아내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나 : 1797년 1월 22일 ~ 1826년 12월 11일
둘째 아내 로이히텐베르크의 아멜리아 : 1812년 7월 31일 ~ 1873년 1월 26일

마리아 : 1819년 4월 4일 ~ 1853년 11월 15일
미겔 : 1820년 4월 26일 사산
주앙 카를루스 : 1821년 3월 6일 ~ 1822년 2월 4일
자누아리아 : 1822년 3월 11일 ~ 1901년 3월 13일
파울라 : 1823년 2월 17일 ~ 1833년 1월 16일 : 말라리아로 병사하였다.
프란시스카 : 1824년 8월 2일 ~ 1898년 3월 27일
페드루 : 1825년 12월 2일 ~ 1891년 12월 5일
마리아 아멜리아 : 1831년 12월 1일 ~ 1853년 2월 4일 : 성홍열로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