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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Piero Cappuccilli1926년 9월 9일 ~ 2005년 7월 11일 (향년 78세)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출생의 성악가로 에토레 바스티아니니, 티토 곱비, 셰릴 밀른즈, 레나토 브루손과 더불어 바리톤 중에서 비교적 굵직하고 극적인 목소리를 가진 부류이다.
또, 성악적으로 카를로 베르곤지, 미렐라 프레니, 니콜라이 갸우로프, 마리엘라 데비아와 더불어 모범적인 발성의 소유자로 꼽히고 있다. 특히, 바리톤 음역을 가진 성악도들이 에토레 바스티아니니 보다는 카푸칠리의 발성법을 더 많이 공감[1]한다고.....
피에로 카푸칠리는 벨리니, 도니제티, 베리즈모 오페라[2] 등 수많은 작품의 주역으로[3] 참여했지만, 그의 진가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베르디 오페라[4]와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에서 였다.
2. 생애
피에로 카푸칠리는 1926년 9월 9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건축가를 지망하였지만, 친척들의 권유로 오페라쪽으로 자신의 경력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는 같은 고향에 사는 베이스 루치아노 도나조에게 사사 받았으며, 1951년에 고향에 있는 작은 오페라 극장에서 데뷔했다. 물론, 이 시기에는 병풍이나 공기급 비중의 조연이라 카푸칠리의 본격적인 데뷔라고 할 수는 없었다.1956년 밀라노의 테아트로 누오보에서 개최된 젊은 가수를 위한 오디션이 열렸는데, 카푸칠리가 이 오디션에서 합격한 것이었다. 그리고, 1957년 자신이 합격한 극장에서 본격적인 무대 데뷔를 가지게 된다. 카푸칠리의 데뷔작은 팔리아치의 토니오 였다. 뒤이어 피렌체 페르고라 극장에서 열린 토스카 공연에선 스카르피아도 맡게 되었는데, 당시 평론가들 사이에서 "이렇게 빛나는 미성을 가진 바리톤은 님이 처음임."이라는 찬사를 받게되고, 이 때부터 카푸칠리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허나, 스카르피아 배역은 카푸칠리의 존재를 알리게 해준 배역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1980년대 중반까지 자신의 레퍼토리에서 제외시킨 배역으로 전해진다. 이유는 목소리를 보존하기 위함과 아직은 자신하고 맞지 않아서 였다고....[5]
EMI의 사장 월터 레그[6]와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 역시 카푸칠리의 목소리에 감탄하여 얼른 자신의 레코드사로 데려오게 한다. 그리고, 카푸칠리는 EMI와 계약하여, 1959년에 첫 오페라 음반을 녹음하게 되는데, 바로 마리아 칼라스, 페루치오 탈리아비니와 함께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전곡반[7]이었다. 이 음반에서 카푸칠리는 엔리코역 이었고, 이 녹음으로 그의 이름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1960년에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극장에 데뷔하여 라 트라비아타의 조르쥬 제르몽을 맡았고, 한 동안 미국에서 연주 여행을 가졌으며, 1964년에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데뷔하게 된다. 이 당시 카푸칠리가 맡은 역은 루치아의 엔리코 역이었고, 당시 타이틀롤을 맡은 가수는 호주 출신의 소프라노 조운 서덜랜드. 공연 자체는 호평[9]이었고, 카푸칠리는 더욱 명성을 더해갔다. 이어 1967년에는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으로 데뷔하였고, 1967년 10월 10일에는 레나타 스코토,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토리노 라디오 방송을 위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에도 참여하였다.[10] 그리고, 1971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린 시몬 보카네그라 공연의 타이틀롤을 맡아 크게 성공하였고, 1977년에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이 오페라의 전곡반을 녹음하기도 했다.[11]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로 이뤄진 이 음반은 시몬 보카네그라의 결정반 이라는 찬사와 동시에 카푸칠리 최고의 오페라 녹음으로 평가받는다. 1975년에는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에 올려진 가면 무도회 공연에서 레나토역을 맡았고[12], 1978년에는 아이다의 아모나스로역으로 파리 데뷔 공연을 가졌으며, 같은 해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로 이루어진 일 트로바토레 짤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 때는 루나 백작[13]을, 역시 카라얀의 지휘로 이루어진 돈 카를로스 빈 국립 극장 공연에서는 로드리고 포사 후작을 맡아 관객들과 비평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1983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올려진 푸치니의 외투에서는 미켈레역을 맡아 열연했으며, 1984년에는 모데나에서 콘서트를 열게 되었고, 1992년에는 아레나 베로나 극장에서 열린 나부코의 타이틀롤을 맡아 놀라운 가창을 들려주어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멋들어진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카푸칠리는 나이가 들어도 전혀 녹슬지 않은 가창을 들려주었고, 팬들도 그의 전성기가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커리어는 1992년이 마지막 이었다. 나부코 공연을 끝낸 그 다음해에 카푸칠리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카푸칠리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때는 거의 사경에 처할 직전이어서 주위 사람들이 굉장히 조마조마 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주위의 많은 도움으로 카푸칠리는 무사히 회복하고, 금세 퇴원할 수 있게 되었지만,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얼굴 일부가 마비되어 표정을 제대로 짓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14] 결국, 카푸칠리는 교통사고를 계기로 무대에서 은퇴하였고 다른 성악가들과 함께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하는 등 후진 양성에 힘쓰며 아무런 스캔들 없이 조용히 여생를 보내다가 2005년 7월 11일 자신의 고향 트리에스테에서 사망하였다.
피에로 카푸칠리의 마지막 마스터 클래스 영상. 이 영상에서 카푸칠리에게 마스터 클래스 받은 두 사람 중 바리톤 음역은 한국 사람이고, 그 뒤에 나오는 테너 음역은 일본 유학생 이라고 한다.
3. 음악적 성향
피에로 카푸칠리는 워낙 조용한 성격이었고, 화를 내는 편도 아니었기에 사생활에서도 스캔들 같은 것은 없었다. 또, 목소리 관리에도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전성기를 약 36년 동안 누렸다. 60세 넘은 나이에도 전성기 못지 않은 노래를 들려준 것은 자기관리가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증명한 셈이라 하겠다.카푸칠리가 대략 63세쯤에 콘서트를 했을 적의 모습이다. 저 영상에서 부르는 노래는 아틸라 중 에치오의 아리아 "영원한 영광의 정상에서(Dagl'immortali vertici)". 오오, 이것이 노익장의 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카푸칠리는 거의 바리톤들의 우상으로 꼽히고 있다.[15] 워낙 목소리가 미성이고, 기품과 카리스마가 넘치며, 발성적으로도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미성이라서 토스카의 스카르피아와 라 지오콘다의 바르나바 같은 악역은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의견이 많고[16], 리골레토 타이틀롤과 아이다의 아모나스로 같은 경우 너무 노블하다는 지적도 많이 존재한다.
대신, 성악적인 측면과 연극적 성향을 골고루 잘 사용하는 바리톤은 카푸칠리가 유일하다는 호평이 많다. 또, 노래에 카리스마도 있어서 대인배 인상이 느껴지는 캐릭터나 일 트로바토레의 루나 백작처럼 악역이라도 신사적인 면모를 갖춘 캐릭터 라든가, 간지가 느껴지는 캐릭터가 카푸칠리에게 갑이라는 호평이 대부분이다. 아니, 들어보면 정말 갑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카푸칠리가 부르는 돈 카를로 중 로드리고의 최후부분. 1986년 짤츠부르크 패스티벌 실황으로 EMI 전곡반에서 보다 더욱 노련한 가창을 들려준다. 거기다 목소리에서 세월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카푸칠리가 맡은 배역은 거의 대부분 많은 오페라 애호가들과 성악도들에게 찬사를 많이 받았는데, 그 중 시몬 보카네그라의 타이틀롤과 가면 무도회의 레나토, 안드레아 셰니에의 제라르는 지금까지도 초간지의 절정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 만큼 이 세 가지 역할을 카푸칠리가 잘 소화해냈다는 얘기...
허나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비록 목소리가 가장 안정적이고 성악발성에서도 모범적인 발성법에 소유자라고 불리지만 목소리가 전혀 바리톤 느낌이 나지 않아서[17] 청취자에 따라 금세 지겨워지기 마련이고 목소리 연기가 하나같이 정석적이고 전형적이라는 비판도 듣는다. 영상물에서도 영어권 성악, 오페라팬들이나 셰릴 밀른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토마스 햄슨, 브릴 터펠, 플라시도 도밍고처럼 연극성을 가진 가수들을 선호하는 성악팬들에게는 카푸칠리의 연기가 너무 목석연기라는 평가도 많이 받는다.[18] 거기다 듣는이에 따라서 목소리가 개성이 없다는 평도 상당히 있고 카푸칠리가 맡는 캐릭터를 부를때마다 노래발성에 중점을 둬서 그 표현이 진부하다는 평도 꽤 찾아볼 수 있다. 밑에 서술되어 있는 시몬 보카네그라가 카푸칠리를 대표하는 최고 배역임에도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변한 플라시도 도밍고[19]나 토마스 햄슨,사이먼 킨리사이드,셰릴 밀른스같은 연극성을 보여주는 성악가들 만큼 대중들한테 크게 어필하지 못한 큰 이유이다. 심지어 루나백작 마저도 성악 발성면에서 카푸칠리가 아무리 안정이 있다 평가받으면서도 에토레 바스티아니니나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의 루나백작만큼 대중들한테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평가들도 꽤 있다.[20]
3.1. 시몬 보카네그라의 타이틀롤
주세페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타이틀롤은 카푸칠리를 대표하는 배역이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전에 찬밥이나 아오안 또는 공기와 비슷한 위치의 취급을 받았던 이 오페라의 진가를 극장측과 관객들에게 크게 부각시킨 것도 카푸칠리이기 때문이다.카푸칠리가 시몬역을 맡은 것은 1971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였다. 당시 라 스칼라 감독이었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연출자 조르지오 스트렐러와 공동으로 프로덕션을 세워 10여년 동안 시몬 공연을 하게 되는데, 이 당시 카푸칠리가 타이틀롤 시몬역으로 선택되었다는 것. 결과는 대성공 이었다. 카푸칠리의 목소리가 시몬역에 잘 들어맞았고, 연기도 싱크로율이 높았으며, 극적 표현으로도 성악적으로도 가장 안정된 시몬을 들려주었고, 시몬역에서 가장 어려운 아버지로써의 연민과 총독의 카리스마를 잘 살렸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아바도의 지휘도, 스트렐러의 상상력 넘친 연출도, 니콜라이 갸우로프와 프레니를 비롯한 나머지 성악진의 노래도 굉장히 훌륭했다는 것도 포함된다.[21]
시몬으로 분한 피에로 카푸칠리
1976년 일본 도쿄 문화회관에서 열린 시몬 보카네그라 공연에서 아멜리아역의 카티아 리치아렐리와 시몬역의 피에로 카푸칠리
1976년 밀라노 라 스칼라 공연에서 시몬으로 분장한 카푸칠리의 모습
아멜리아 그리말디역의 미렐라 프레니와 시몬역의 피에로 카푸칠리. 부녀상봉 이중창 장면
아바도-스트렐러-카푸칠리의 시몬 공연이 라 스칼라 극장에서 크게 히트를 치자, 다른 나라 오페라 극장에서도 시몬 오페라를 자주 올려준 것은 당연한 현상[22]이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흥행 성공한 아바도-스트렐러-카푸칠리[23] 시몬 오페라 공연은 지금까지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기록되어있다. 이 스텝진 공연은 유튜브에 올려져있으니 직접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다 보고나면 카푸칠리는 물론 다른 성악진과 지휘자 아바도의 포스가 확 솟아오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24]
이 공연을 계기로 카푸칠리는 시몬 역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레퍼토리 중 최장기로 삼게 되었다. 1976년 도쿄문화회관 공연에서도 출연하였고[25], 1978년 파리 공연[26]에서도 카푸칠리가 타이틀롤을 맡았고, 1981년 게나 디미트로바와 함께 출연한 라 페니체 극장에서도, 몽셰라 카바예와 함께 출연한 1985년 오랑쥬 극장에서도, 1990년 카리타 마틸라와 함께 바르셀로나 극장에서 열린 시몬 오페라 공연에서도 전혀 녹슬지 않은 노익장을 과시하였으니 이 정도면 거의 왕본좌급. 또, 시몬 오페라를 거론할 때 카푸칠리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으면 간첩[27]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어느 오페라 평론가는 카푸칠리 외에 제대로 된 시몬 총독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언급까지 했을 정도다.[28]
1976년(또는 1981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와 조르지오 스트렐러 연출에 의해 열려진 시몬 오페라 공연에서 아멜리아역의 미렐라 프레니와 타이틀롤의 카푸칠리. 이 노래만 들어봐도 이 당시 공연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라는 것을 몸에서 저절로 느끼게 될 것이다.
1977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시몬 보카네그라 녹음의 일부분. 역시 피에로 카푸칠리와 미렐라 프레니가 부른 것으로 아바도가 조르지오 스트렐러 프로덕션에 의한[29] 시몬 오페라 공연과 거의 같은 캐스팅[30]을 스튜디오에 데려와서 같이 녹음한 것이다. 이쪽 역시 명연이거니와 위에 실황 영상보다 음질이 훨씬 좋다.
1985년 오랑쥬 극장 시몬 오페라 공연에서 아멜리아역의 몽셰라 카바예와 같이 공연하는
3.2. 가면 무도회의 레나토
시몬 보카네그라, 아래에 소개되는 안드레아 세니에의 제라르와 더불어 카푸칠리의 최고 배역으로 평가받은 것이 가면 무도회의 레나토(스웨덴 버젼의 요한 앙카스트롬 백작)이다. 그가 맡은 다른 배역들과 마찬가지로 발성적으로 가장 안정되어 있고[31], 고귀한 귀족의 이미지와 근엄함이 느껴지는 카리스마, 자신의 아내를 빼았길거 같은 불안감을 잘 나타냈기 때문이다. 혹자는 레나토를 맡았던 역대 바리톤들[32] 중 피에로 카푸칠리만큼 가장 풍부한 성량을 가졌고, 성악적으로 가장 안정되어 있는 바리톤을 접하지 못했다고 얘기할 정도이다.[33]1975년 공연에서 레나토역의 카푸칠리와 리카르도역의 플라시도 도밍고
레나토를 열연한 피에로 카푸칠리. 1975년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 공연
레나토역은 카푸칠리가 시몬만큼 많이 맡지않은 배역이지만, 실황반과 음반, 영상물이 꽤 존재할 정도로 자주 맡았던 배역이기도 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6년까지 이역을 맡았고, 1974년에는 EMI에서 전곡반 녹음도 남겼다.[34] 영상물로 남겨진 카푸칠리의 가면 무도회 중에서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1975년 런던 코벤트 가든 오페라 하우스(ROH) 실황과 역시 아바도가 지휘한 1978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실황, 파바로티와 함께 출연했던 1986년 빈 국립 가극장 실황이 남아있는데 세 가지 실황 모두 목소리의 손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최상의 노래를 들려준다. 아쉽다면 화질과 음질이 좀 나쁘다는 정도.
3.3. 안드레아 세니에의 제라르
제라르로 분한 카푸칠리의 모습. 간지 철철
4. 명반과 영상물
- 음반
- 영상물
1975년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줄여서 ROH)에서 열린 가면 무도회 실황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했으며[36], 리카르도 총독역의 플라시도 도밍고, 아멜리아역의 카티아 리치아렐리, 그리고 레나토역의 카푸칠리가 가세했으니, 지금봐도 미친 캐스팅이라 할 만하다.[37]
도밍고의 리카르도(오리지날 스웨덴 버젼의 구스타보 3세)는 1990년에 열린 짤츠부르크 패스티벌 실황보단 약간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가창에선 훨씬 싱싱하며, 카티아 리치아렐리 역시 아멜리아역으로 유명해서 다른 배역들과는 달리 좋은 노래를 들려준다.[38] 레나토의 카푸칠리는 이 영상의 발군이라 얘기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본문에 언급했듯이 연기와 성악적인 면에서 역대 바리톤들 중 가장 최상이자 최고이다.
1978년 빈 국립 가극장에서 열린 일 트로바토레 실황으로 카푸칠리의 루나 백작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실황이다.
카푸칠리의 루나 백작은 역대 바리톤들 중에서 가장 미성이다. 발성적으로도 가장 안정되어 있고, 연기에서도 절제해야할 부분은 절제를, 드러내야할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표현해준다. 특히, 루나백작의 카바티나 "그녀의 빛나는 미소는(Il balen del suo sorriso)"에서는 연기와 노래 가히 절창이라고 볼 수 있다.[40] 바리톤 성악도들이 루나 백작이라는 캐릭터를 연구할 때, 또 노래를 배울 때 가장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물론, 카푸칠리의 목소리가 너무 미성이라서 "루나 백작님이 레오노라를 전혀 스토킹하지 않을 거 같다."라는 지적[41]이 많지만, 비쥬얼[42]과 연기, 발성에선 가히 바리톤계의 전설이라 할만하다.
도밍고, 카바이반스카, 코소토, 반 담은 일 트로바토레 명반과 영상물에서 언급했듯이 각 배역에 잘 어울리는 연기와 노래를 들려준다.[43] 카라얀의 지휘는 시기를 반영하듯 아직은 힘이 넘친 상태라서 템포의 처짐없이 가수진들을 잘 받치며 리드 해나간다. 또, 카라얀의 설정한 무대와 연출도 지금보면 좀 구식적으로 보일진 모르지만 극의 진행에선 아주 설득력이 있고, 보다보면 오히려 더 화려해 보일 것이다. 카메라 앵글은 요즘 세대가 보기엔 심심해 보이겠으나,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이 정도라도 꽤 괜찮은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카푸칠리를 위한 영상물일 뿐만 아니라, 음악과 연출에서도 가장 완성도높은 일 트로바토레 실황이므로 이 오페라를 접할 때 먼저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음질과 화질은 녹화된 시기를 생각하면 비교적 좋은 편.[44]
[1] 비단, 성악도들 뿐만 아니라 국내 성악과 교수들도 그의 발성에 많은 공감을 받는 이들이 거의 대부분이다.[2] 안드레아 세니에, 페도라, 라 지오콘다를 가리켜서 베리즈모 오페라 라고 한다.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현실에서 터진 사건이나 그를 바탕으로 만든 희곡을 오페라로 만든 것'이라고 보면 되며, 20세기 초에 유행한 악풍이다.[3] 물론, 조연도 했다. 대표적인 예는 아이다의 아모나스로, 로베르토 데브뢰의 노팅엄 공작..카푸칠리가 자주 맡은 조연급 캐릭터다.[4] 특히, 시몬 보카네그라는 카푸칠리를 대표하는 최고의 배역이었다. 밑에서도 설명하겠지만...[5] 1989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린 토스카 공연에서 다시 스카르피아역을 맡은 적은 있다. 당시 토스카역은 게나 디미트로바, 카바라도시역은 주세페 쟈코미니. 세간에 평을 들어보면 이 날 연주는 나쁘진 않은데, 음질은 조낸 후지고(...), 카푸칠리의 노래는 괜찮지만, 그의 단정한 음색으로는 도저히 스카르피아 같은 악당에 어울리지 않다는 평이 대체적으로 많다. 1959년 칼라스와 함께 녹음한 라 지오콘다 전곡반에서도 이런 지적이 많이 나왔다. 그래, 역시 카간지는 카리스마 총독님이 어울려!![6]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의 남편이다.[7] 덧붙이자면, 이 음반은 칼라스의 두 번째 루치아 전곡반 이다.[8] 당시 대한민국은 극도로 어려운 사정이였으므로...참고로, 국내에서 카푸칠리의 존재가 언제 알려지게 되었냐면 1990년대 후반부터다. 너무 늦어!! 거기다, 카푸칠리는 단 한번도 내한공연을 가지지 않았다(...).[9] 근데, 이 날 실황음반 들어보면 에드가르도역의 레나토 치오니가 완전 함량미달의 노래를 들려준다 카더라(...)[10] 이 실황 녹음은 Opera d'Oro에서 나왔다.[11] 미렐라 프레니, 니콜라이 갸우로프, 호세 카레라스, 호세 반 담이 참여한 음반으로, 카푸칠리의 두 번째 시몬 오페라 녹음이기도 하다. 국내에선 2012년 2월 27일에 박종호의 오페라 하일라이트 시리즈로 한글 해설집 달고 발매가 되었다. 시몬 오페라 못 들어본 사람은 국내 정식 발췌반을 듣는 것도 괜찮을 듯...[12] 이 공연은 DVD로 나와있다. 자세한것은 명반과 영상물 참조.[13] 이 당시 공연은 TDK에서 DVD로 발매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일 트로바토레 최고의 영상물로 칭송받고 있다.[14] 그의 마지막 마스터 클래스 영상을 보면 표정을 제대로 못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5] 우상으로 치자면 에토레 바스티아니니쪽이 인지도가 더 높긴 하지만, 전통적인 벨 칸토 발성 측면에서는 피에로 카푸칠리를 더 많이 꼽는 것이 사실이다.[16] 이는 에토레 바스티아니니,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도 마찬가지.[17] 실제로 카푸칠리는 처음에 성악을 배웠을때 테너로 공부했다고 한다.[18] 실제로 카푸칠리를 포함한 위에 적혀진 모범적인 성악 발성의 소유자라고 불리는 카를로 베르곤지나 미렐라 프레니, 마리엘라 데비아, 루치아노 파바로티, 레나토 브루손은 영상물 보면 연기에서 보면 움직임이 굉장히 부자연스럽고 딱딱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19] 도밍고는 2010년에 바리톤으로 전향할때 시몬 보카네그라를 첫 타자로 삼았다. 결과는 테너음을 가진 바리톤이라는 평이 많았지만 뛰어난 연극성과 총독으로써의 연민을 잘 표현하여 성공을 거두웠고 3가지 종류의 실황물도 출시된바 있다.[20] 에토레 바스티아니니는 복합적인 면을 가진 루나 백작의 원조라고 불리고, 드미트리의 루나백작은 천연은발 이미지 그 자체로도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했고 특히 여성팬들에게 동정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일단 드미트리 루나백작이 섹시함도 겸비하니깐[21] 그리고, 본문에서 적혀있다시피 1977년에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당시 공연의 성악진을 기반으로 시몬 보카네그라 전곡반을 녹음하게 된다. 전곡반도 상당한 명연이니 함 들어보는 것을 추천.[22] 그 전에 미국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시몬 오페라 올려주긴 했었는데, 지금처럼 자주 올려진 레퍼토리는 편은 아니었다. 메트에서 시몬 오페라 자주 올려진 것은 1970-80년대 이후니까, 이 역시 카푸칠리의 시몬 덕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23] 이 시몬 공연의 성악진을 자세히 소개하자면 피에로 카푸칠리(레나토 브루손), 니콜라이 갸우로프(체자레 시에피, 루제로 라이몬디), 미렐라 프레니(카티아 리치아렐리, 키리 테 카나와), 베리아노 루게티(호세 카레라스, 쟌니 라이몬디), 펠리체 스키아비(레오 누치), 조반니 포이아니 였다. 그 중 카푸칠리-갸우로프-프레니-루게티로 이뤄진 스텝진이 가장 크게 성공했다.[24] 혹자는 이 위대한 시몬 영상물이 왜 DVD화 되지 않았냐는 것에 대해 한탄하기도 했다. 그에 비해 도밍고의 시몬 오페라 공연은 세 개나 출시되었다. 이런...[25] 이 공연은 일본 최초의 시몬 오페라 공연이었으며, 아시아 최초의 시몬 공연이었다. 당시 성악진을 소개하자면 타이틀롤의 피에로 카푸칠리, 피에스코의 니콜라이 갸우로프, 아멜리아의 카티아 리치아렐리, 가브리엘의 조르지오 메리기, 파올로의 로렌초 사코마니, 지휘자는 올리비에로 데 파브리티스. 이 공연은 VAI에서 DVD가 출시되었으니 참고하시라.[26] 역시 조르지오 스트렐러 무대 공연이다. 이 공연 역시 해적판 DVD가 출시된 적은 있으나, 음질과 화질이 조낸 후지다는 슬픈 정보가 있다(...)[27] 이는 마리아 칼라스가 노르마와 공식성립 하는 이치와 비슷한 사례.[28] 심지어, 카푸칠리 이전에 시몬을 맡았던 티토 곱비, 레너드 워렌도 그렇고, 카푸칠리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셰릴 밀른즈 역시 카푸칠리에 비하면 카리스마가 부족한 시몬이라는 지적을 받아야 했으며, 현역 바리톤 토마스 햄슨,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역시 시몬역에선 그닥 좋은 평을 받진 못했다. 2010년 이후 바리톤으로 전향해서 시몬역을 맡은 플라시도 도밍고 조차 혹평을 면치 못했으니 말 다했다. 하긴, 그 누구도 카푸칠리의 시몬을 따라올 수 있는 바리톤이 현재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29] 이 프로덕션은 무려 10년이상 유럽 전역에서 시몬 오페라를 공연했었다(!!)[30] 피에로 카푸칠리, 니콜라이 갸우로프, 미렐라 프레니, 조반니 포이아니는 같은데, 호세 카레라스, 호세 반 담만은 다르다. 참고로, 이 음반 녹음이후 카레라스가 가브리엘 아도르노역을 맡게되었다.[31] 물론, 그것이 개성이 결여되었다는 단점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32] 티토 곱비, 에토레 바스티아니니, 셰릴 밀른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토마스 햄슨 등...[33] 카푸칠리 다음으로 성악적으로 가장 안정된 레나토를 꼽자면 레나토 브루손을 들을 수 있다. 이쪽은 감정 표현이 조금 약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성악적으론 카푸칠리 다음으로 안정된 노래를 들려준다는 평.[34] 이 음반은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했고, 플라시도 도밍고가 리카르도 총독을, 마르티나 아로요가 아멜리아, 피오렌차 코소토가 율리카, 래리 그리스트가 오스카의 목소리를 맡았다. 자세한 것은 명반과 영상물 항목참조.[35] 아쉽게도 시중에 구할 수 있는것도 ROH판 뿐이다. 유일하게 DVD로 나온거라서...[36] 덧붙이자면, 아바도가 애착을 가진 베르디 오페라는 시몬 보카네그라, 맥베스, 가면 무도회였다. 그 중 가면 무도회는 아바도가 시몬 다음으로 애착을 가진 오페라이다.[37] 더군데나, 시동 캐릭터 오스카역으로 유명했던 래리 그리스트까지 참여했으니, 그 중량감은 더해진다(...).[38] 리치아렐리는 배역을 잘 만나면 좋은 노래를 들려준 반면, 잘못 만나면 함량미달이 되어버리는 극과 극의 평을 가진 소프라노이다. 리치아렐리가 맡은 배역중에선 라 보엠의 미미, 가면 무도회의 아멜리아, 수녀 안젤리카의 안젤리카는 호평을 많이 받은 편.[39] 원래는 프랑코 보니졸리가 만리코를 맡기로 되어있었는데, 카라얀과의 의견 충돌로 리허셜 도중에 하차해서 도밍고가 대신 오게 된 것이다. 더 확실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일 트로바토레 명반과 영상물 부분 참조.[40] 루나 백작이 카발레타 시작하기 전에 "레오노라, 그대는 나만의 것! 오로지 내 것이 되어야만 해!(Ah no, non fia D'altri Leonora!...Leonora e mia!)"라고 외치는 부분에서 카푸칠리의 연기는 가히 소름이 돋는다. 직접 보면 스토킹의 제왕다운 전율이 느껴질 것이다(...).[41] 이러한 지적은 미국과 일본쪽 평가이다. 특히,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가 부른 루나 백작과 비교하면 카푸칠리는 너무 얌전하다 카더라(...). 그래도 발성적인 면에서 보자면 카푸칠리가 훨씬 안정적이라는 의견이 대부분.[42] 물론, 전통 무대 비쥬얼과 현대 무대 비쥬얼 애호가들 사이에선 카푸칠리의 루나 백작은 그 의견이 꽤 갈리긴 하겠지만...[43] 그 중 금세기 최고의 아주체나로 유명한 피오렌차 코소토의 얀데레적인 연기는 실로 압권이다. 직접 보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44] 다만, 1막 마지막 장면에서 화질이 많이 뿌옇게 처리되어 보기가 약간 불편한 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