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12:41:32

한계령


파일:양양군 CI_White.svg 양양8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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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寒溪嶺 | Hangyeryeong
<nopad> 파일:한계령 가을.jpg
지도
<nopad>
소속 <colcolor=#000,#ddd><colbgcolor=#fff,#383838>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인제읍 귀둔리
위치 북위 38°05′46″ 동경 128°24′15″ (최고점)
분류 고개
산맥 태백산맥
높이 920 m (한계령휴게소)
1,004 m (최고점)
지질학적 형성 신생대 제3기 비대칭 요곡 운동
쾨펜의 기후 구분 냉대 습윤 기후 (Dfb)

1. 개요2. 지명 변경 주장3. 매체에서
3.1. 가요3.2. 소설3.3. 문정희의 시3.4. 정덕수의 시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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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계령()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과 양양군 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인제군양양군의 경계이기도 하다. '한계'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제한이 있다는 뜻의 그 '한계(限界)'가 아니라 '찰 한(寒)' 자와 '시내 계(溪)' 자를 사용한, "차가운 시내"라는 뜻이다.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로, 왕복 2차로로 잘 포장된 44번 국도가 지나간다. 설악산 국립공원을 지나가기 때문에 경치는 아름답다. 특히 단풍구경을 하면서 지나가기에 좋다. 해발고도는 1,004 m이나,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한계령휴게소 일대의 고도는 920 m이다. 이곳 정상에는 한계령휴게소와 설악산 등산로 입구가 있다.[1]

이곳의 도로는 매우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운전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그나마 인제군에서 한계령 휴게소까지는 나은 편이지만, 휴게소에서 오색리 방향은 말 그대로 낭떠러지를 보게 된다. 바람도 정말 심하게 불며 정상에서는 말 그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 때도 있다.[2] 양양읍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헤어핀 커브도 적지 않아 엔진 브레이크 없이 운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만큼 와인딩 로드가 많다. 엔진 브레이크[3]를 써가며 천천히 넘는다면 그렇게 어려운 길은 아니지만, 길에 두려움이 있는 초보 운전자라면 56번 지방도를 타고 미시령터널(유료)을 지나서 속초시로 가는 길을 추천한다.[4] 대신 라면 한 그릇 값은 바쳐야 한다. 제12보병사단에 근무하고 타 부대 출입이 잦은 보직을 받는다면 하도 자주 다녀서 신경도 안쓰게 된다.(...) 심지어 인솔하는 간부들의 경우 신병들에게 관광 가이드를 하기도

한계령이라는 지명은 예전부터 있었으나 소동라령(所冬羅嶺)과 혼용되어 쓰이다가 1970년대에 제3군단이 당시 군단장이었던 김재규의 주도로 확장 공사를 하면서 '한계령'이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 고갯마루에 공사 당시 죽은 장병들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세웠는데 당연히 김재규 본인의 이름도 있었으나 10.26 사건 이후 누군가가 이름을 지웠다고 한다.

정상에는 김수근이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한계령 휴게소가 있다. 산꼭대기의 휴게소답게 물가는 비싸지만[5] 매우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다. 또한 한계령이 비교적 오지에 속하지만, 놀랍게도 동서울 - 속초(양양 경유) 시외버스가 정상을 정확하게 찍고 넘어가며, 한계령 휴게소에도 정차한다. 이는 한계령 휴게소에 설악산 등산로가 있기 때문.[6] 서울 방향으로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도의 비율로 오는 편인 만큼 드물지는 않다. 표는 휴게소에서 판매한다. 자세한 것은 한계령정류소 참고.

눈이 오면 그야말로 헬게이트. 폭설이 내리면 체인 없이 넘어가려는 생각은 하지 말자.[7] 눈이 내리면 제설차가 계속 지나다니면서 눈을 치우지만 일반 승용차는 체인 없이 넘기 어려우며 매우 위험하다. 그런 사람들이 이따금 있는지, 눈이 오는 날이면 "체인장착"이라는 LED간판을 단 차량들이 지나다닌다.

자전거 라이딩 명소로 서울에서 양양으로 라이딩 할 경우 거쳐가는 가장 어려운 업힐이다. 설악그란폰도, 한계령그란폰도, 인제 tour de DMZ 그란폰도 등 강원권 자전거 대회의 최고 업힐로도 꼽힌다.

영서 지방에서 속초시로 넘어가는 길이 미시령과 한계령, 서울양양고속도로밖에 없고, 한계령과 인근 오색약수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의외로 통행량도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미시령터널이 뚫린 미시령이 길은 편하지만, 속초를 경유하여 돌아가는 길인 만큼 양양이나 그 남쪽으로 갈 때에는 한계령을 넘어 가는 것이 더 빠르다. 미시령터널의 통행료도 비싼데다 사실상 별다른 신호등이 없어 멈추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는 한계령 방향과 달리 미시령 방향은 용대리 주변의 교차로에서 신호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 표정속도를 크게 떨어트리는 요인이 된다. 인제/속초 지역에서도 이 문제를 알고 있어 신호 개량을 하였으나 그래도 한두번은 반드시 신호에 걸리게 되기에 큰 효과는 없는 편. 또한 양양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교차로가 보이는데, 샛길로 가면 인제군 필례약수 쪽으로 빠진다. 이 샛길에 관해서는 필례로 문서로.

2. 지명 변경 주장

양양군에서는 오색령으로 이름을 바꿀 것을 주장한다. 근거는 조선시대에 이 고개가 오색령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05년 한계령휴게소 양양군 측 지역에 옛 오색령이라고 적힌 표지석을 설치했고, 2010년 범군민운동을 여는 등 공론화를 했다. 당연히 인제군에서는 반발하였는데 '한계'는 인제군 북면 한계리, '오색'은 양양군 서면 오색리의 지명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대관령을 두고 강릉시평창군이 서로 다투는 것과 연유가 비슷하다. 2012년 양양군이 오색령 명칭을 군내에서만 사용하기로 하여 이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하였다. 하지만 이후 인제군이 한계령 지명 안내판 설치와 양희은(2번 목차로.)의 노래비 등을 한계령에 설치하려는 계획을 양양군 측에서 불허하면서 논란이 다시 일었다. 한계령휴게소 대지는 거의 다 양양군역에 속해서 인제군이 이런 시설들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양양군에게서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제군은 한계령 지명 안내판을 설치하려는 목적을 법정지명인 한계령을 알리고자 함이라 밝혔지만, 양양군은 이것이 오색령 표지석에 대한 맞불로 보일 수 있어 불허한 듯하다. 만약 인제군 측에서 표지판을 설치하면 같은 고개에 두 이름을 가진 표지가 설치되는 일이 생긴다.
파일:hangye.png
동여도」 에 표기된 한계령(寒溪岺)과 오색령(五色岺) 근방.
오색령 옆에 고대로(古大路), 험조(險阻)라 적힌 것을 미루어 동여도를 만들 당시 오색령이 험하여 쓰이지 않는 고갯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출처
그러나 조선조에 제작·편찬된 「해동지도」, 「광여도」, 「동여도」, 「대동지지」 등에서는 한계령과 오색령을 다르게 표기하였다. 양양군의 주장이 타당도가 떨어지는 까닭이다. 오히려 고지명을 근거로 한다면 한계령을 그대로 쓰거나 소동라령(所冬羅嶺)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위 동여도에서 한계령과 오색령 사이에 이름 없는 고갯길이 하나 더 있는데, 주변 능선 분포가 설악산 오색지구의 주전골-십이폭포 방면으로 넘어가는 길일 가능성이 높으며, 현재 오색지구 등산로중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즉, 오색령은 한계령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해야 하고[8], 조침령(필노령)보다는 북쪽에 있어야 하는데 이 위치에 맞는 고개는 단목령과 곰배령 뿐이다. 따라서 옛 오색령은 실제로는 단목령-곰배령 루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현재도 단목령과 곰배령은 길이 험해 등산로는 있지만 자동차가 통행하지 못하는 길이다.

파일:해동지도_한계령.png[9]
파일:구글어스_한계령.png
「해동지도」에서도 보면, 백담계곡 → 심원사(과거 백담사[10]) → 봉정암을 지나, 설악산을 넘어간 이후 오색령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오히려 대승암(현재 대승폭포 인근) 앞을 지나 한계산을 넘은 경로는 해동지도 제작당시(1700년대) 에는 없던 길로 보인다. 가리산촌을 지나 넘어 가는길은 소동라령으로, 현재 알고있는 길과는 다른길로 보인다. 위에서 보는 동여도에 3갈래 길로 그린건건 1800년대 넘어오면서, 현재의 한계령 고갯길을 넘나들면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동여도의 한계령이라 표시된 길은, 백담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봉정암을 지나 설악산을 넘은 옛 오색령 길. 동여도의 이름없는 중간길은, 대폭(대승폭포)에서 흘러나오는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 한계산을 넘는 현재의 한계령길, 동여도의 오색령(고대로, 험조)[11]로 적혀 있는 길은, 인제 합강정에서 덕적동으로 거슬러 올라가 가리산촌을 지나 점봉산을 넘은 경로로, 이 길이 해동지도의 소동라령 으로서, 이는 구글어스의 해당 지역과 해동지도를 비교해 볼 경우 어느정도 일치한다. 산계로 들어갈 수록 오류가 많은 동여도의 특성으로[12] 백담사에서 산을 하나 더 넘어, 대폭의 앞을지나 다시 또 산을 넘는것으로 그려져 있으며, 이때문에 대폭(대승폭포)앞을 지나 넘는 길이 2개로 표기되어 있으며 최남단 소동라령의 경로를 오색령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동지도의 반대쪽, 양양도호부 측 지도를 보면 알수있는데, 인제에서 넘어가는 2갈래 길이 합쳐지면서 뭉뚱그려 오색령 이라고 표기하고 있기에, 북쪽길이나 남쪽길이나 오색령 이라 보고 적은것으로 보인다.[13] 물론 시대가 지나면서 부르는 고갯길의 이름이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양양군에서 말하는 오색령이라고 말했던 최초 고갯길은 현재의 한계령과는 위치가 다르다.

3. 매체에서

3.1. 가요


가수 양희은이 1985년 발표한 노래. 하덕규가 4번 항목의 정덕수의 시 <한계령에서 1>에 곡을 붙였다.

그런데 정덕수 작사라는 것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다른 사람 작사로 알려져 있어 (또는 하덕규 작사/작곡으로 표시되거나) 저작권료 등 권리를 못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가 되어서야 시인 본인의 노력으로 작사자가 알려지고 권리를 되찾게 된 사실이 있다. 저작권 의식이 없던 80년대 이전 가요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예.[14] 문제는 최대 수혜자인 가창자 양희은도 수십 년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인데, 그냥저냥 묻혔다.

대중가수뿐만 아니라 성악가와 국악인도 커버한 바 있는 양희은 최고 명곡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노래의 작시자가 직접 편집한 동영상도 유튜브에 있으며, ‘다시 한계령에서’를 제목으로 한 노래도 있다.

1박 2일 2010년 10월 17일 방송분에서 기상 미션 음악으로 나왔다. 이 노래의 이름을 최종적으로 못 맞힌 한 사람(김종민)은 설악산을 등반하는 벌칙을 받았다.[15]


시노래 가수 박경하의 한계령


김애령의 다시 한계령에서


팝페라테너 임형주의 한계령

3.2. 소설

양귀자가 쓴 소설. 위 항목의 가요와 관련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원미동 사람들 문서로.

3.3. 문정희의 시

한계령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시에는 한국시인협회 회장이자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문정희가 쓴 「한계령을 위한 연가」가 있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었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상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3.4. 정덕수의 시

2번 항목의 '한계령' 노래의 원본인 ‘한계령에서’는 1981년 정덕수에 의해 처음 쓰였다.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매일지.
삼만육천오백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4. 관련 문서


[1] 설악산의 정상인 대청봉까지 거리는 편도 8km 남짓으로, 편도 5km인 오색 코스에 이어 두 번째로 짧은 코스이다. 하지만 해발 약 450m에서 시작하는 오색 코스에 비해 시작 고도가 높고 거리가 길어 훨씬 완만하기 때문에 한계령 코스가 더 쉬울 수도 있다. 2.3km 급경사를 올라 서북능선에 올라서면 경사도 완만하고 경치가 좋다. 반면 한계령 아래 오색 코스는 경치없이 5km 거리를 쉼없이 급경사로 오르다가 끝난다.[2] 바람이 없을 때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기도 한다. 그것도 해가 져버린 밤 중에...[3] 제한속도가 30~40km/h 이므로 2단 정도의 엔진브레이크면 충분하다.[4] 물론, 지도로만 봐도 고성, 속초를 거쳐 양양으로 가는 형태로 빙 돌아가는 선형이다.(이 경우, 미시령로 + 동해대로 이동경로) 덤으로 한계령 가는길과 달리 56번 지방도는 신호등이 쫙 깔려있어 속도를 빠르게 내지 못한다. 시간도 심야시간대가 아니라면 그냥 한계령으로 가는것이 훨신 빠르다.[5] 캔 커피 하나에 1,000원, 라면 한 그릇에 6,000원 수준[6] 이 등반로는 산불 예방이나 동절기에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자주 통제하는 코스다. 이 코스로 등하산을 하고자 한다면 등반로 개방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7] 사륜구동? 주행 안정성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체인 없이는 강원도의 폭설과 고갯길 앞에서는 무력하다.[8] 주전골-십이폭포 방면 고개 남쪽으로는 1424m의 점봉산이 위치하고 있어서 고개가 조성될 환경이 아니다. 점봉산보다 더 남쪽에 고개가 위치해야한다.[9] 양양 방면이 밑면이라 돌려서 작성함.[10] 백담사는 과거 자주 불에타서, 인근에 위치와 이름을 바꾸면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해당문서 참조[11] 『신증동국여지승람』제45권 강원도(江原道) 간성군편에 보면 “미시파령(彌時坡嶺)은 고을 서남쪽 80리 쯤에 있다. 길이 있으나 예전에는 폐지하고 다니지 않았는데 성종(成宗) 24년에, 양양부 소동라령(所冬羅嶺)이 험하다 하여 다시 이 길을 열었다.”라고 적혀있을 정도로 소동라령은 3~400년전에서 부터도 험한길로 알려져 있다.[12] 특히, 덕적동과 가리산의 위치를 보면, 위치자체가 다르게 그려져 있다. 위 동여도를 볼 경우, 가리산은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덕적동 앞을 지나 넘는 고갯길로 표기하고 있다.[13] 나중에 그사이에 길이 생겼으니, 양양군 입장에서는 어차피 오색령이라고 할 만 하다.[14] 당시에는 저작권 개념이 없어서 제작사가 계약시 저작권자, 연주자, 가창자의 권리를 다 가져가 버렸고, 노래가 아무리 히트해도 돈을 더 주지 않았다. 혹시 주어도 선심쓰듯 주는 것이었고, 심지어 조용필마저 자기 곡 권리를 못 찾았던 일이 있다.[15] 중간에 손오공이라고 말한 것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