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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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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B390><colcolor=#373A3C>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1]
Hans Christian Andersen
파일:HCA_by_Thora_Hallager_1869_crop.jpg
출생 1805년 4월 2일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오덴세
(現 덴마크 퓐 섬 오덴세)
사망 1875년 8월 4일 (향년 70세)
덴마크 코펜하겐 외스테르브로
국적
[[덴마크|]][[틀:국기|]][[틀:국기|]]
직업 동화 작가
신장 185cm
종교 개신교(루터교회)
서명 파일: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서명.svg

1. 개요2. 생애
2.1. 독신2.2. 연보
3. 평가4. 여담5. 작품
5.1. 소설5.2. 동화5.3. 기행문5.4. 희곡5.5. 자서전
6. 작품 미디어
6.1. 애니메이션
7. 창작물에서의 등장8. 안데르센 동화마을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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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든 사람의 일생은 신의 손가락으로 쓰인 동화다.
덴마크의 아동문학가. 19세기 창작 아동문학의 기틀을 잡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동화작가로 유명하긴 하나 여행기, 희곡, 소설, 시를 주로 썼다. 안데르센이란 이름은 어릴 때 루터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 대부모가 지어준 이름이다.

2. 생애

1805년 4월 2일 덴마크-노르웨이 왕국[2]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11살에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3][4] 온 가족이 일용직 노동자 신세로 전락해 버린 까닭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훗날 연극배우가 되려고 코펜하겐으로 상경했으나, 정규 교육 부족으로 인해 배우로서 필요한 자질인 문법이나 발음이 어색해서 연극배우로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 어린시절 자체가 불우했기 때문에 동화라는 길을 그가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극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일로 자살까지도 생각했으나, 그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안 국회의원 요나스 콜린의 충고로 라틴어 학교에 뒤늦게 입학하여 문학을 배우기 시작한다.[5] 그러나 그 생활도 학교장과의 갈등으로 인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이 학교장은 훗날 60세가 넘은 안데르센의 악몽에서도 등장하는 등 그에게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교장은 안데르센의 모든 창작 활동을 금지하고 하찮게 여겼으며, 헤어지는 순간까지 그에게 악담을 내뱉었다고 한다. 이는 나중에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에 영향을 주었다.

의외로 처음에는 주로 소설을 집필했다. 동화로 유명하지만 다수의 시와 희곡을 집필한 시인이자 극작가이기도 했다. 동화를 제외하고 잘 알려진 안데르센의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즉흥 시인(Improvisatoren)"이 있다.# 소설가로서의 재능도 상당해 거의 첫 소설이었던 <즉흥시인>의 경우 문단과 대중 양쪽의 호평을 받으며 바로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 이외에도 어느 정도 소설을 집필했고 생전에는 모두 호평을 받고 많이 읽혔다. 다만 '즉흥시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소설이 지금 와서는 거의 잊힌 실정이다.

30살인 1835년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현대에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당시에는 어린이를 속이는 글이나 쓴다고 욕도 많이 얻어먹은 모양이다. 하지만 명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앞에는 "'즉흥시인'을 집필한 뛰어난 소설가"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즉흥시인을 집필할 정도로 뛰어난 소설가가 왜 저런 저급한 글을 쓰냐는 안타까움에 가까운 욕을 먹은 것으로 봐야 한다.

1835년에서 1872년까지 150편 이상의 동화를 발표했다. 이 중 초기에 쓰여진 이야기들은 안데르센이 어릴 때 들은 민간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작가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각색한 것이다. 나중에 나온 작품들은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들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중세 스페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고, “하늘을 나는 트렁크”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장미 요정”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따온 것이다.

1837년에 순수 창작품인 인어공주를 발표하여 절찬을 받자, 용기를 얻어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더 많은 창작품에 몰두했다. 1843년, 발표한 미운 오리 새끼가 대성공하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안데르센의 동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안데르센의 유명세가 대단해서 심지어 그를 기념하는 우표가 발행되고, 말년에는 정부로부터 특별 연금까지 수령하는 등 국내외적인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했다. 안데르센을 애호하던 유명인사 가운데서 찰스 디킨스는 그와 여러 번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다.[6][7]

이후 1840~60년대까지 유럽이나 미국, 터키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기행문 책자를 쓰기도 했다. 작품적, 경제적 인정을 받으며 잘 살다가 갔으나 1872년 침대에서 떨어져 다친 뒤로 제대로 걷지 못했고, 이후 여러 합병증 증상을 보이며 자리에 누워 병마에 시달리다가 1875년 8월 4일,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8월 11일에 거행된 장례식에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9세헤센카셀의 루이제 왕비까지 참석했다.

유치하지 않고, 어른이 읽어도 이야기에 깊숙이 몰입해 가슴 속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안데르센 동화의 특징이다. 또한 안데르센은 자신의 작품에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불우한 추억들과 주변 환경을 상당히 투영했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읽기엔 이야기가 너무 어두운 경우가 많고, 배드 엔딩, 새드 엔딩으로 끝나는 작품들도 많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자신의 동화에 자신과 자신 주변의 인물들을 캐릭터화 시켜서 등장시킬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의 동화들 중에는 분명 작가가 있는데도 발단이나 결말 등에서 다양하게 각색되어 판본이 여러 가지인 작품이 제법 있다.(눈의 여왕, 빨간구두, 인어공주 문서 참조.) 이것은 번역자나 편집자들이 아동용으로 눈높이를 맞추느라 내용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주요 작품이 덴마크어를 직역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영어나 독일어,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우리나라에서 중역한 탓도 있다. 영국 출신 안데르센 연구가 재키 울슐라거가 그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링크

그의 작품은 영화, 애니메이션, 발레 등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각색되었다.

2.1. 독신

양성애자였던 안데르센은 평생 어떤 사람과도 결혼하거나 사귀지 않고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독신으로 살게 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어릴 때 쓴 그의 일기에는 평생 성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다짐이 적혀있다고 한다.[8]

한편 젊은 시절 짝사랑 했던 리보르그 보이트(Riborg Voigt)에게 차인 것이 충격이 되었기 때문에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로 놀림을 당해 자신감이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안데르센이 난생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상당히 긴 편지로 르보르그에게 고백을 했건만, 겨우 두 줄밖에 안 되는 답장으로 무참하게 차였다. 대신 르보르그는 그의 용기를 높이 사서 그가 쓴 동화의 애독자가 되었다.[9]

하지만 독신으로 살겠다던 초년의 맹세가 아주 굳건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게 그 이후에도 그는 소피 외르스테드(Sophie Ørsted), 후원자인 요나스 콜린의 딸인 루이스 콜린(Louise Collin) 등에 관심을 표한 바가 있다. 그러나 결국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데는 실패했고, 동화 나이팅게일을 쓰는데 영감을 준 스웨덴의 오페라 가수인 제니 린드에게도 고백했으나 린드는 안데르센을 친오빠처럼 생각했기에 거절했다고 했다.

한편 유명한 동화 인어공주는 후원자 요나스 콜린의 아들 에드워드 콜린(Edvard collin)과의 관계를 반영했다고 알려져 있다. 겉으로는 친구 사이었지만, 내심 콜린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던 안데르센은 "여자와 같은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며 절절한 편지로 고백을 감행했으나 또 거절당했다. 콜린은 이성애자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백을 거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콜린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 버린다. 이 일 때문에 안데르센은 굉장히 상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 안데르센이 쓴 작품이 인어공주로, 그의 연구자들은 왕자가 콜린을 상징하고 안데르센이 인어공주를 상징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래도 콜린은 말년에 쓴 회고록에서 이 때의 일을 언급하며 자신은 안데르센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잘 몰랐고 그 때문에 그가 더 많이 상처 입었던 것이라고 썼다. 못내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외에 그가 사랑했던 남자로는 덴마크의 댄서 해럴드 샤르프(Harald Scharff),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카를 알렉산더 등이 있으며 현재까지도 콜린이나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등 짝사랑 상대들에게 보냈던 편지들이 남아있지만 역시 사귀는 데는 실패했다. 기록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종교적 신조에 반하는 일이었던 만큼 남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은 일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늙어서는 동성 섹스 파트너들과 어울렸고 함께 사창가를 찾아다녔다는 주장도 있다.유튜버)

안데르센은 늘 짝사랑 상대에게 집착에 가까운 편지와 관심을 보여줬지만, 결국 어느 누구도 안데르센의 짝이 되어 주지는 않았다. 그가 훗날 쓴 편지에서 말하기를, 자신에게 행복은 가정의 형태로 찾아올 수도 있었지만 대신 뮤즈가 되어 찾아와 주었다고 한다. 그나마 안데르센의 친척에게서 이어져온 방계 후손들은 남아있다.

2.2. 연보

1805년 : 4월 2일 덴마크-노르웨이 오덴세에서 태어남. 아버지는 가난한 구두직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인형연극이나 종이 자르기 세공에 흥미를 가졌고, 이야기를 만들거나, 나중에는 연극 줄거리를 생각하곤 하였다.
1807년(2세) : 덴마크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동맹을 맺음.
1812년(7세) : 아버지가 지원병으로 출정하였으나, 휴전이 되어 다음해 귀향.
1816년(11세) : 아버지가 세상을 떠남. 세익스피어 작품을 읽고 감동하여, 비극 「아보와 에르비아」를 씀.
1818년(13세) : 자선학교에 다님. 후에 직물공장, 담배공장에서 일함. 어머니 재혼.
1819년(14세) : 성크누드 교회에서 견신례를 받음. 9월, 코펜하겐으로 감. 이후 3년에 걸쳐 무대에 서기를 바라며 노래, 발레 수행을 계속함. 아울러 시, 각본 등을 끊임없이 씀.
1822년(17세) : 할머니가 세상을 떠남. 희곡 「빗센벨의 도적들」을 씀. 그 일부는 신문에 게재됨. 희곡 「알프솔」을 계기로, 추밀 고문관 요나스 코린을 알게 됨. 10월, 장학금으로 슬라겔세의 라틴어학교(교장 마이슬링)에 입학.
1826년(21세) : 마이슬링 교장의 전임과 함께, 헤르신겔 학교로 옮김. 시 「임종의 아들」을 씀.
1827년(22세) : 코펜하겐으로 돌아옴. 개인수업을 받음.
1828년(23세) : 10월, 대학입학시험에 합격.
1829년(24세) : 「홀멘 운하에서 아마게르섬 동쪽 끝까지의 도보여행기」 출판, 호평을 얻음.
1830년(25세) : 여름휴가를 핀 섬에서 보내고, 학우인 크리스티안 보이크트의 여동생 리포와 만나 사랑을 하지만, 나중에 헤어짐. 12월, 헨니크 헤르츠가 「영계통신」을 출판하고 그 책 속에서 안데르센을 공격함. (7월, 프랑스에서 7월혁명이 일어남)
1831년(26세) : 시집 「환상과 스케치」 출판. 비평가들로부터 교양과 형식이 없다고 비난받음. 4월, 첫 해외여행을 위해 독일로 출발. 티크, 샤밋소를 알게 됨. 9월, 여행기 「여행의 환영」 출판.
1832년(27세) : 최초의 자전 「회상기」를 쓰기 시작함. 이 무렵 쓴 것들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어머니도 폐인이 되다시피 하여, 송금에도 곤란을 겪음.
1833년(28세) : 1월, 안데르센이 사랑한 루이즈 코린이 린드 씨와 혼약함. 4월, 국비로 2년간의 해외여행 출발.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각국을 방문하고, 하이네, 빅토르 위고 등을 만나다. 이탈리아 조각의 형식미에 강한 감동을 받고, 형식의 필요를 이해하다.
해외여행 중, 극시 「아넷타와 인어」 발표. 평가받지 못함. 10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남.
1835년(30세) : 소설 「즉흥시인」을 출간, 큰 호평을 받음.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힘. 첫 동화집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부싯돌,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꾸리 클라우스, 완두콩 공주, 꼬마 이다의 꽃)」 출판. 12월, 제2동화집(엄지공주 등) 발표.
1836년(31세) : 소설 「O‧T」를 출간.
1837년(32세) : 제3동화집(인어공주, 벌거숭이 임금님) 발표. 소설 「어느 바이올린 연주자」(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즉위) 발표.
1838년(33세) : 4백 타레르 연금을 받게 되어, 생활이 안정됨. 제4동화집(데이지꽃, 들판의 백조, 장난감 병정) 발표
1840년(35세) : 「뮬라토」가 왕립극장에서 상연되어 대히트를 침. 「그림 없는 그림책」 발표. 10월, 이탈리아, 그리스 여행 출발, 여행 중에 제2희곡 「무어인의 딸」이 상연되었으나 실패.
1841년(36세) : 여행에서 귀국. 「시인 바자르」 출판.
1843년(38세) : 1월, 파리 여행, 알렉산드르 뒤마를 알게 됨. 가을, 제니 린드를 사랑함.
1844년(39세) : 희곡 「산실」 상연. 「미운 오리 새끼」 「천사」 「약혼자」 「나이팅게일」 발표.
1845년(40세) : 독일을 여행함, 그림형제를 알게 됨.[10] 연말을 제니 린드와 보냄. 「성냥팔이 소녀」를 씀.
1846년(41세) : 자전 「내 인생의 동화」 출판.
1847년(42세) :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 디킨스를 만남.
1851년(46세) : 3월, 은인 에르스티드가 세상을 떠남. 10월, 연금이 늘고, 교수 칭호를 받음.
1852년(47세) : 제니 린드가 피아니스트와 결혼.
1853년(48세) : 동화집(마음의 아픔, 모든 것은 올바른 장소에, 천년 후에는, 버드나무 나무 아래서 등) 출판.
1855년(50세) : 자전 「내 인생의 이야기」 출판.
1857년(52세) : 6월, 디킨스의 초대로 영국 방문.
1861년(56세) : 요나스 코린이 세상을 떠남.
1864년(59세) : 덴마크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짐.
1867년(62세) : 5월, 추밀 고문관으로 임명됨. 12월 6일, 고향 오덴세의 명예 시민권을 받음. 성대한 축하연이 펼쳐짐.
1875년(70세) : 8월 4일, 메르키오르가의 별장에서 세상을 떠남.||

3. 평가

안데르센은 성공한 ‘미운 오리새끼’이며, 고결한 ‘인어공주’이다. ‘꿋꿋한 양철 병정’이자, 왕의 사랑을 받는 ‘나이팅게일’이며, 악마 같은 ‘그림자’이다. 우울한 ‘전나무'이기도 하고, 불쌍한 ‘성냥팔이 소녀’이기도 하다.
전기 작가 재키 울슐라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르러 꽃을 피운 근대 아동문학은 안데르센에서 시작되었다. 근대 이전에는 아동들을 어른들에게 예속된 미숙한 성인으로 간주하였고, 그들을 독자적인 세계를 가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아동들을 위한 작품이 나올 수 없었다. 아동들을 보호하고 계도해야 할 대상으로서만 생각한 18세기 말까지 아동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것은 아동들의 천성과 기호를 무시하고 상상을 배제한 매우 교훈적인 것이었다.

그가 동화에 끼친 영향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창작동화의 개척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동화는 그림 형제처럼 민담을 재구성하거나, 저자가 불분명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축약, 왜곡, 구전되어오는 이야기들인 '메르헨'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그것이 동화의 전부였었다. 안데르센도 초창기에는 그림형제처럼 민담을 재구성하는 이야기를 썼으나, 점차 자신이 직접 창작한 이야기의 비중을 늘려나갔다. 그의 동화는 자칫 교훈적이고 도구적인 의미로만 흐를 수 있는 동화라는 장르에 예술성을 불어넣어, 동화가 민담의 하위 장르가 아니라, 동화 스스로가 문학적으로 훌륭한 장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동화라는 장르의 예술적 자율성을 불어넣은 셈.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창작 동화의 규격과 틀, 이야기 구조, 문체 등과 같은 기본적 요소들은 전부 안데르센의 창작 동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보면 그의 동화는 이러한 근대 동화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안데르센을 아동문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순수하게 어린이를 위해 작품을 창작한 최초의 작가라는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작품과는 별개로 그는 사생활에서는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데르센 동화가 최초의 근대 아동문학이고, 세기를 넘어서서 세계적으로 번역되어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긴 하지만,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안데르센 동화는 아이들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재의 사용, 단순한 줄거리, 아이들을 앞에 앉혀 놓고 직접 얘기하는 듯한 구어체와 간결한 문체의 사용, 그리고 어린이 독자의 감각에 호소하는 풍부한 상상력의 세계를 비롯하여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서의 요소를 다분히 갖추고 있지만 깊숙이 들어가 보면 어른들의 이야기를 어린이용 소재로 그럴 듯하게 꾸며놓은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들이 많다.

그가 쓴 동화의 상당수가 그가 상류사회에 드나들면서 상류사회 부인들을 상대로 낭독해 준 작품이었다는 사실에서도 그의 동화가 어린이들만을 염두에 두고 창작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의 동화가 순전히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지배적인 생각을 일소하고 작품의 진지한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어린이들을 위한...』라는 책 제목 대신 『신 동화집』[11]이란 제목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도 안데르센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고 있다.

4. 여담

키가 185cm로 당대에 엄청난 장신이었다. 참고로 현재 덴마크인 남성의 평균키는 181cm다.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와의 결혼 전에 낳은 이부누나 카렌 마리 다니엘스다테르 로센빈(Karen Marie Danielsdatter Rosenvinge)이 있었는데 이 누나의 존재에 대해 상당히 수치스럽게 여기고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누나는 세탁부로 살았다. 또한 안데르센과 몇 번 만나려 시도하긴 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 그는 집안을 창피하게 여겨서 성공한 후에도 가족과는 거리를 두었다. 엄청 긴 분량의 자서전을 써서 남겼지만, 어머니가 죽었을 때의 기록은 세 줄 뿐이었다.

은하영웅전설의 작가 다나카 요시키는 자신의 추리 모험소설 월식도의 마물찰스 디킨스와 함께 안데르센을 등장시켰는데, 상당히 소심하고 정서불안증이 있는 어린아이 같은 인물로 묘사했다. 작가의 말로는, 안데르센에 대해 조사하니 실제로 그런 성격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소설에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하는 대화는 실제로 이 둘이 만나서 나눈 이야기이다.

더불어, 이 작품에서 영국 평론가들에게 악평을 듣던 신문을 보고 디킨스 집 앞마당에서 울며불며 징징거리는데 1857년 실제로 벌인 일이다. 52세이던 그가 실제로 이래서 7살 연하이던 디킨스가 다독였는데 사람들이 회고하길, 어찌된 게 7살 어린 디킨스가 더 어른같고 안데르센은 정말 아이처럼 보였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처음 안데르센 동화가 나왔을 당시에는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이런 비교육적인 이야기를 애들 보는 동화라고 쓰다니!" 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물론 안데르센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혹평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갔다. 그런데 안데르센 동화 가운데 일부는 지금 봐도 어린이들이 보라고 쓴 게 아닌 것 같은 수위를 자랑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부시통#이나, 큰 클라우스 작은 클라우스# 이야기가 있다.[12][13]

웅진출판사에서 출판한 위인전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단두대를 이용한 공개처형을 목격한 바가 있었는데, 이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의 사형수는 남친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청부살해한 한 여성과 그 남친 및 여성의 하인이었는데, 그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고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던 여성의 할머니가 자신의 손녀와 손녀사위, 하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와중에, 사형 집행인과 그 조수가 집행 후에 태연작약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1837년 스웨덴 방문 이후부터 범스칸디나비아주의 운동[14] 지지자가 되어 스칸디나비아 통일의 지지에 관한 시들을 지었다.

5. 작품

그가 쓴 작품들의 덴마크어 원문을 위키문헌에서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나니아 연대기를 번역하기도 한 햇살과나무꾼이 번역한 '안데르센 동화집'이라는 완역본 시리즈들이 있다.

5.1. 소설

  • 즉흥시인

5.2. 동화

  • 나이팅게일
  • 눈의 여왕
  • 미운 오리 새끼
  • 백조 왕자
  • 벌거벗은 임금님
  • 빨간구두
  • 성냥팔이 소녀
  • 엄지공주
  • 인어공주
  • 하늘을 나는 가방
  • 공주와 완두콩
  • 외다리 병정
  • 양치기 소녀와 굴뚝 청소부
  • 홀거 단스케(동화)
  • 다섯 개의 완두콩
    콩깍지 안에 완두콩 다섯 형제가 자라고 있었다. 콩이 다 익자 한 장난꾸러기가 콩깍지를 까서 새총으로 완두콩 다섯 개를 발사한다. 그 중 가장 작은 막내는 한 가난뱅이 여자가 살고 있는 집의 창틀에 떨어진다. '될 대로 되어라'라는 마음으로 막내는 그 창틀에서 싹을 틔운다. 한편 그 가난뱅이 여자에게는 먼저 떠나보낸 두 자식과 앓아누운 딸이 있었는데 마지막 남은 딸도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병이 깊었다. 창틀에서 싹을 틔운 완두를 본 딸은 완두를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하고 여자는 딸의 침대를 창문 가까이로 옮겨 준다. 완두가 성장해가면서 따뜻한 햇빛을 받은 딸의 증세도 점점 호전되고, 마침내 막내 완두가 꽃을 피우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딸은 스스로 몸을 세워 콩 꽃에 입을 맞춘다. 반면에 다른 네 완두 형제 중 셋은 비둘기가 먹어치웠고 나머지 하나는 수채 속에 빠져서 퉁퉁 불어 썩어버린다.
  • 그림 없는 그림책
    가난한 화가가 시골에서 도시의 한 골목길로 이사왔다. 혼자 쓸쓸해하던 그에게 달이 매일 밤 세계를 일주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연작 단편이다.
  • 어머니 이야기
    아파서 죽어가는 아이를 둔 어머니가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사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용감하고 헌신적인 어머니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것을 희생한 끝에 마침내 사신(사실 죽음 그 자체)를 만난다.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의 모티프로도 사용되었다.
  • 모래장수 올레(Ole Lukøje)
    "모래장수"(샌드맨)는 민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잠잘 시간이 된 어린이들의 눈에 부드러운 모래를 불어넣어 잠이 오게 만드는 존재이다. 안데르센 동화에 등장하는 모래장수는 "올레 루코헤"라는 이름이 있으며, 어린이를 잠재운 후 착한 어린이에게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우산을 펼쳐 좋은 꿈을 꾸게 하고, 나쁜 어린이에게는 아무 그림도 없는 우산을 펼쳐 꿈이 없는 깊은 잠을 자게 만든다. 모래장수 올레는 형제가 있는데, 그 역시 이름이 올레로 똑같지만 그가 재운 사람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즉 사신이라고 할 수 있다. 모래장수 올레는 형제 올레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사실 사신 올레도 상냥한 존재라고 말한다.[15]
  • 프시케
    항목의 신화에서 기원하는 프시케 석상을 조각하는 한 예술가의 이야기이다. 애니메이션 안데르센 동화에서는 다르게 각색되었다. 부모없이 고아로 지낸 어떤 남자아이(키르토)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각상팔이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프시케라는 귀여운 소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같이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프시케는 갑자기 사라지고 소년은 상실감을 채우기 위해 프시케의 조각상을 만든다. 조각상이 완성되었을 즈음 아름다운 어른 미녀가 소년의 앞에 다시 나타나는데 그녀는 성장한 프시케였다. 나비의 요정이었기에 소년과 보냈던 나날을 기특하게 여긴 신들의 축복으로 우화하여 나비처럼 아름다운 미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었다.[16] 그러나 소년은 그녀가 프시케라는 걸 믿지 않고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아이(조각한 프시케)야말로 진짜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돌아보지 않아 프시케는 충격을 받고 신들도 격노한다. 자신의 예전 모습을 한 조각을 없애면 된다고 생각한 프시케는 조각칼을 주워 그 조각상을 부수려 하나 얄궂게도 소년이 가로막아 자신을 사랑했던 소년이 죽게된다. 프시케는 슬픔에 빠지고 신들도 슬퍼하여 하늘과 바다에 풍랑이 일자 프시케는 죽은 소년을 안고 그대로 같이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
  • 돼지치기 왕자
    허영심 많은 공주와 그 공주를 사모하던 왕자의 이야기. 공주는 가리는 게 많은 철부지였지만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있었는데, 이웃 나라의 손재주 좋은 '아우구스틴'이라는 왕자는 그 공주를 사모해 귀한 꽃을 선물로 보내며 청혼을 했다. 그러나 공주는 '금방 시들어버리는 꽃보다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조화가 더 좋다'라며 사정없이 꽃을 내버린다.[17] 상심한 왕자는 '이렇게 된 이상 현피로 간다'로 나서 돼지치기로 변장해 공주의 나라에 찾아간다. 그리고 흔들면 여러가지 소리가 나는 방울이 달린 손악기를 하나 만들어 그 악기에 눈독을 들인 공주에게 키스 50회에 팔겠다 제안한다. 성격 까다로운 공주는 더러운 돼지치기와 키스하는게 꺼려졌지만 그보다 그 악기가 더 탐나 결국 키스 50회를 하고 악기를 손에 넣었으나 며칠 가지도 못해 싫증이 나자 공주는 그 악기를 손바닥 뒤집듯이 버린다. 오기가 생긴 왕자는 이번에는 가장자리에 각기 크기가 다른 방울을 달아 물을 부으면 멜로디가 연주되는 항아리를 만들었고 여기에도 눈독을 들인 공주에게 이번엔 키스 100회를 제안한다. 공주는 전과 똑같이 항아리가 탐이 나 시녀들에게 자기 모습을 가리게 하고 왕자와 100회의 키스를 한다. 그러나 그 자리를 국왕에게 들키고 그것 때문에 국왕은 마음이 속상해서 공주와 왕자를 다른 왕국으로 보내버린다. 공주가 차라리 꽃을 선물했던 그 왕자와 결혼하는게 나았겠다며 울자, 왕자는 마침내 자기 정체를 밝힌 뒤, '당신은 만물의 참된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청혼을 거절당하길 잘했다'라고 공주를 비난하고 다른 공주와 결혼을 마음 먹으며 성으로 돌아가 문을 닫아버린다. 공주는 성문 앞에 혼자 남아 울면서 누군가 남편이 되어 줄때까지 슬프게 노래하는 것으로 동화는 끝난다.
  • 부시통
    한 병사가 전쟁터에서 돌아오던 길에 마녀를 만난다. 병사는 마녀의 부탁으로 나무 구멍을 통해 내려갈 수 있는 던전에 들어가 부시통을 꺼내오기로 한다. 던전에는 커다란 눈을 가진 세마리의 개들이 던전에서 각자 구리 동전, 은화, 금화 더미를 지키고 있다. 부시통을 찾는 와중에 병사는 마녀가 준 앞치마로 개들을 유인해가며 돈을 가진다. 그런데 병사가 부시통을 넘기라고 하는 마녀의 목을 베어 죽인다. 참고로 부시통은 원래 마녀의 할머니가 깜빡 잊고 던전에 두고 온 물건이라 원래 병사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후 지하에서 얻은 금화로 흥청망청 사치도 부려보고 부시통의 양초와 부싯돌로 개들을 소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부족해진 금화를 다시 얻기도 하고 개들을 시켜 1년내내 구리궁전에 갇혀 지내는(하찮은 병사와 결혼한다는 예언 때문에 갇혀지낸다.) 한 왕국의 공주를 성에서 꺼내 밀회를 가진다. 그런데 이게 들켜서 병사가 사형을 구형받게 된다. 사형장에서 마지막 소원으로 담배 한대 피우고 싶다고 하고 마법의 부시통을 써서 세마리 개들을 소환해서 재판관과 신하들과 왕과 왕비를 죽이고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 왕이 된다. 그리고 공주는 병사하고 결혼한다.
  • 길동무
    아버지를 여읜 요한은 공주와 결혼하는 꿈을 꾸고, 선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여행을 떠난다. 어느 날, 요한은 여행길에 교회에서 빚을 다 갚지 못해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시체를 보고, 가진 돈을 모두 써 그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시체를 관 속에 넣어 줬다. 그런 뒤 그는 여행 중 "길동무"라 불리는 사람과 동행하게 되고, 그와 함께하며 신기한 일들을 겪게 된다. 길동무는 여행길에 노파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고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마당비 세 자루를 가져가고, 여관의 나무 인형을 고쳐주고 칼 한 자루를 가져가고, 죽은 백조에게서 날개 한 쌍을 가져갔다. 요한과 길동무는 어느 여관에서 그 왕국의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공주에게 청혼할 수 있지만 공주는 하루에 하나씩, "자신이 생각하는 것" 세 가지를 맞히는 사람에게 청혼을 승낙하겠다고 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목이 잘려 정원은 수많은 청혼자들의 해골로 장식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요한은 아름다운 공주의 얼굴을 보고 청혼을 하게 되어 목이 베일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날 밤, 길동무는 공주가 검은 날개를 펼쳐 탑 꼭대기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백조의 날개를 써 뒤쫓는다. 길동무는 마당비를 이용해 탑 안쪽의 이야기를 엿들었고, 공주가 마법에 걸려 마법사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밤마다 마법사는 공주에게 무엇을 생각할 지 명령했고, 길동무는 그것을 엿들어 요한을 도와줘 요한은 첫번째 날과 두번째 날의 정답인 구두와 장갑을 맞히게 된다. 세번째 날, 마법사는 요한이 세번째 문제까지 맞혀 공주의 마법을 풀까봐 초조해졌고, 공주에게 자신의 머리를 생각하라고 명령했다. 공주가 떠나고, 길동무는 마법사의 탑 안으로 들어와 칼을 이용해 마법사의 목을 베었고, 그것을 보자기에 감싸 요한에게 주며 공주가 문제를 내기 전까지 절대 풀어보지 말라고 했다. 공주가 문제를 내자 요한은 보자기에 감싸져 있었던 마법사의 머리를 보여주게 되고, 공주의 마법이 풀리며 요한은 공주와 결혼하게 되었다. 요한은 자신을 도와준 길동무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했지만 길동무는 자신의 정체가 지난날 요한이 전 재산을 털어 장례를 치러주었던 죽은 남자라는 것을 밝히고 사라진다. 요한은 훌륭한 왕이 되었고, 공주와 진정으로 사랑하며 이야기가 끝난다.

5.3. 기행문

  • Shadow pictures
  • 시인의 바자르
    "안데르센의 지중해 기행"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지금은 절판.
  • A visit to Spain 1862
  • A visit to Portugal 1866

5.4. 희곡

  • 1828- 1829년의 도보여행기, 홀멘스 운하부터 아마게르섬 동부까지
  • 니콜라이 탑에서 사랑을
  • Mulatto(1840)
  • The Moorish girl

5.5. 자서전

  • The true story of my life
    "안데르센 자서전: 내 인생의 동화"로 번역되어 나왔다.
  • Collected works
  • En Biografi
  • The fairy tale of my life

6. 작품 미디어

6.1. 애니메이션

파일:세계명작극장.png
세계명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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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앤 ~Before Green Gables~ - - - -
A: KBS2에서 돌고래 요정 티코라는 제목으로 국내 방영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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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데르센 이야기(アンデルセン物語, 1971년)- 81년과 80년대 후반에 MBC로 더빙 방영. 52부작으로 비디오로는 만화 세계 옛날 이야기 등과 묶여져서 비디오로 84년 현대영상에서 더빙하여 낸 바 있다. 한국애니 은비까비가 이 애니에 나온 두 주인공 포지션과 설정을 베꼈다고 할 정도이다. 무시프로덕션에서 제작. 52부작.
  • 안데르센 이야기 극장판 アンデルセン 物語, 1968. - 극장판으로 위에 있는 티브이판과 달리 도에이에서 3편을 묶어 만든 극장판이다. 빨간 구두, 엄지공주, 성냥팔이 소녀 3편을 묶어 제작.

7. 창작물에서의 등장

  • 덴마크 드라마 1864에서 잠시 등장한다. 주인공들이 일하던 영지의 남작 저택에 초대되어 동화를 낭송하는데, 도중 덴마크독일 연방 간의 전쟁[18]이 발발했다는 엄청난 소식이 날아들어 낭송회가 중단되자 울먹거린다. 웃음 포인트는 안데르센이 운 이유가 비극적인 전쟁이 발발해서가 아니라 전쟁 비보가 자신의 동화를 끊어먹고 관객들이 그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서라는 점이다. 다만 순진한 그답게 '불쌍한 내 동화가 무슨 죄가 있다고' 라는 식으로 울먹거리며, 초청자인 남작이 그를 위로해준다.
  • 게임Fate/EXTRA CCC》에서 캐스터로 등장하며 문서 참고. 독설을 내뱉고 일하기 싫어하는 소년의 모습으로, 독자들의 '이런 비정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일 것이다' 라는 인식에 의해 전신에 동화속 인물들같은 상처를 입고 있다고 한다.
  • 일본의 모바일게임 그림노츠 Repage에서 그의 동화 속 인물들과 함께 창조주로 등장.

8. 안데르센 동화마을

안데르센의 고향인 덴마크 오덴세에 있다. 오덴세 시의 대표적인 관광지. 오덴세는 안데르센이 10대 유년기를 보낸 지역으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작가 생활을 했지만 60세가 지나면 다시 오덴세 시로 돌아와 명예시민이 되어 생을 마감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오덴세의 안데르센 박물관과 MOU 체결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확보하고 안데르센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것을 발표했다. 2021년 기준으로는 안데르센 극장과 테마숲만 있으며 주변 부지에 추가로 동화마을을 건설한다고 한다.

9. 관련 문서



[1] 실제 덴마크어 발음은 핸스 크라이스티안 아너슨(ˈhænˀs ˈkʰʁestjæn ˈɑnɐsn̩)에 가깝다.[2] 1814년까지 덴마크 국왕노르웨이 국왕을 겸했으나, 1539년 이래로 노르웨이덴마크의 속주 수준으로 전락했다.[3] 아버지는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뒤, 전쟁 후유증으로 신경쇠약에 걸려 사망했다. 이 때 그의 어머니는 눈의 요정이 아버지를 데려갔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훗날 눈의 여왕을 창작하게 된 배경으로 여겨진다. 참고로 안데르센의 아버지가 신경쇠약에 걸린 것은 PTSD도 한 원인이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열성 지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 유배되는 등으로 비참하게 몰락하자, 그 충격으로 앓아누운 후에 사망 직전까지 나폴레옹이 덴마크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식의 헛소리를 외쳐댔다고 한다.[4] 일각에서는 안데르센이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8세의 사생아 중 한 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5] 참고로 가난한 배우 지망생인 안데르센이 어떻게 국회의원과 인맥이 닿았느냐면, 우연하게도 그의 여사친 중의 한 명의 아버지 친구가 바로 요나스 콜린이어서 그랬다. 콜린은 안데르센에게 라틴어 학교 입학을 주선해준 것은 물론, 등록금도 덴마크 국왕인 프레데리크 7세에게 표를 올려서 지원받아 대신 지불해주었다. 때문에 그 학교의 교장 때문에 안데르센이 정신적으로 폐인이 될 지경에 이르자, 대노하여 교장과 대판 싸우고는 그에게 요양을 위한 여행을 갈 것을 제안하는 등, 사실상의 아버지 노릇을 해주었다.[6] 그러나 디킨스가 존 러셀 백작(버트런드 러셀의 조부)에게 보낸 서신에 “안데르센은 이 방에서 5주를 머물렀는데 영원한 기간으로 느껴졌다”라고 적었을 정도로 굉장히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로 안데르센과의 교류를 완전히 끊어 버렸다.[7] 사실 안데르센은 원래부터 디킨스의 팬이라서 계속 편지를 보내왔었는데, 이에 디킨스는 예의상 "혹시 잉글랜드에 오게 되면 방문하라"는 답장을 보냈었다. 이에 안데르센은 아예 2주나 디킨스네에 머물 것을 작정하고 잉글랜드로 떠나버렸는데, 이게 어쩌다가 5주로 길어진 것이다. 후술하듯 본인의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읽고 디킨스의 앞마당에서 울며불며 난리를 치거나 디킨스에게 면도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등, 온갖 기행을 저지르고 갔다.[8] Lepage, Robert (18 January 2006). "Bedtime stories". The Guardian. Retrieved 19 July 2006.[9] 정확하게는 리보르그도 안데르센에게 관심은 있었던 모양이나 과거에 결혼까지 생각한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가족들의 반대로 파탄난 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안데르센이 고백을 해오자 옛날 일이 반복될까봐 두려워서 가차없이 차버렸다고 한다.[10] 안데르센이 사전 만남 예약도 없이 찾아가서 나 아냐고 하니, 그림 형제가 모른다고 하자 자신의 작품을 열거하면서 어필했으나 그림 형제가 그래도 모르겠다고 문전박대를 당한 민망스러운 민폐담이다.[11] 한자문화권에서나 '동화'가 단어 자체로 어린이 대상 이야기라는 뜻이지만 덴마크어 Eventyr는 독일어 메르헨과 마찬가지로 공상적인 옛이야기라는 뜻이지 어린이 대상 이야기라는 뜻이 아니다.[12] 내용은 덴마크흥부 놀부라고 보면 된다. 차이점으로는 흥부 놀부는 놀부가 죄를 뉘우쳐서 흥부하고 다시 화목하게 사는 결말이지만, 큰 클라우스 작은 클라우스는 권선징악보다 피카레스크물에 가깝고 흥부 포지션인 작은 클라우스가 놀부 포지션인 큰 클라우스를 속여서 돌까지 넣은 자루속에 넣고 물속에 빠트리는 결말이다.[13] 사실 현대 이전의 동화중에는 이런 경우가 상당히 많다.[14] 독일 통일, 이탈리아 통일 운동들과 비슷하게 19세기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통일을 지향하던 운동인데, 독일이탈리아의 사례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는 이뤄지지 못하였다.[15] 이 동화에 크게 영향을 받은 그래픽 노블 작품이 바로 닐 게이먼DC 코믹스 작품인 샌드맨 시리즈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영원 일족의 구성원인 주인공 이 동화에서처럼 모래를 사용한다.[16] 판본에 따라서는 소년이 기뻐하며 프시케를 안은 채 끝난다.[17] 판본에 따라서는 꽃을 선물한 뒤로도 다른 선물들을 여러 번 보냈지만 공주가 온갖 트집을 잡으며 선물들을 내쳤다는 내용도 있다.[18] 1864년 발발했던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독일계 지역인 슐레스비히 공국동군연합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보유하고 있던 덴마크가 이 지역을 완전히 합병하려 하자, 독일의 맹주였던 프로이센 왕국오스트리아 제국이 이에 반발하며 일으킨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덴마크는 완패했고, 엄청난 영토를 빼앗기고 말았다. 전쟁 자체는 작았고 또 지금까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실은 독일 통일이라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온 대사건이었다. 종전 직후 덴마크로부터 빼앗은 영토 문제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의 분쟁이 터졌고, 이 때문에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승리한 프로이센은 통일에 더욱 박차를 가해 4년 뒤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통일의 방해자였던 프랑스 제국마저 순식간에 패배시키고 독일 제국을 결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