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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 여당 | ||||
Fidesz-KDNP 135석 | ||||
청년민주동맹 116석 | 기독교민주인민당 19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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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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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yar Szocialista Párt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6px" | 약칭 | MSZP | |
한국어 명칭 | 헝가리 사회당 | ||
창당일 | 1989년 10월 7일 | ||
대표 | 토트 베르털런[1] 아그네스 쿤하미 | ||
당사 | 1073 부다페스트, VII. Erzsébet krt. 40–42. fsz. I-1. | ||
이념 | 사회민주주의 친유럽주의 | ||
스펙트럼 | 중도좌파 | ||
유럽정당 | 유럽 사회당 | ||
유럽의회 교섭단체 | 사회민주진보동맹 | ||
국제조직 | |||
청년조직 | Societas – Baloldali Ifjúsági Mozgalom | ||
정당연합 | DK-MSZP-대화 동맹 | ||
국민 의회 | 10석 / 199석 | ||
유럽 의회 | 0석 / 21석 | ||
지방 의회 | 18석 / 419석 | ||
당 색 | 빨간색 (#FF0000, Red) | ||
공식사이트 | 홈페이지 |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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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의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 약칭은 MSzP이며, 흔히 "사회당"으로 불린다.[2] 당대표는 토트 베르털런이며, 현재 녹색당 계열의 헝가리를 위한 대화(이하 대화당)와 연대 중.2. 역사
동유럽의 사민당들이 으레 그렇듯이, 이 당도 공산당의 후신이다.사회당의 역사는 1944년 11월 5일 라코시 마차시, 쿤 벨러 등의 주도로 설립된 헝가리 공산당(Magyar Kommunista Párt)에서 시작한다. 2차대전이 끝나고 제2공화국 체제가 설립되자 공산당은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나선다. 그러던 중 1948년 6월 12일 헝가리 사회민주당(Magyarországi Szociáldemokrata Párt)과 공산당은 헝가리 노동자당(Magyar Dolgozók Pártja)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그리고 1949년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설립되며 노동자당은 헝가리의 유일정당이자 여당이 되었다.
그러나 서기장인 라코시 마차시는 집단농장 설립, 가톨릭 탄압, 수많은 숙청과 인민재판 등을 일삼으며 헝가리 민중의 지지를 상실했고 이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는 발단을 제공한다. 결국 헝가리 혁명이 터지자 라코시를 비롯한 기존 노동당 지도부는 사임하고 소련으로 망명, 헝가리 노동자당은 카다르 야노시를 서기장으로, 너지 임레를 수상으로 하는 새로운 지도부를 설립한다. 허나 임레가 다당제 도입,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 등을 주장하자 당시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15만명의 병력과 2천대의 전차를 들이밀어 헝가리 혁명을 진압한다. 서기장인 카다르는 소련군에 협조하여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였고 임레는 후일 소련에 의해 처형당한다.
헝가리 혁명이 끝나고 다시 서기장으로 복귀한 카다르 야노시는 헝가리 노동자당을 해체하고 헝가리 사회노동당(Magyar Szocialista Munkáspárt)이란 이름으로 노동자당을 재조립했다. 헝가리 혁명이 끝나고 33년 동안 사회노동당은 안정적으로 헝가리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동유럽 혁명의 물길이 헝가리에 닥치자 사회노동당의 장기 공산독재에 대한 여론의 피로감과 염증이 사회 전역에 퍼졌고, 이에 사회노동당의 대표이자 헝가리의 지도자였던 카다르 야노시가 사임하기에 이른다. 공산주의의 붕괴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당의 향후 노선을 두고 내분이 발생하는데, 당권을 잡은 네르시 레죄[3]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재창당할 것을 선언했다. 이렇게 하여 1989년 10월 7일 사회노동당은 역사책 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의 사회당이 생겨났다.
물론 공산주의를 철저하게 표방하던 보수-강경파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했으며, 결국 12월 17일 헝가리 노동당(Magyar Munkáspárt)으로 살림을 따로 꾸리기에 이르른다. 이렇게 사회노동당은 "사회당"과 "노동당"으로 정확하게 갈라졌다.
여하튼 헝가리는 자본주의로 전환되었고, 1990년 민주화 이후 첫 총선에 도전하지만 그간의 분노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386석 중 겨우 33석만 가져가는 대참패를 당한다.[4][5] 민주토론회, 독립소농당, 기독교민주인민당 등 우파가 초압승한 상황에서 당연히 연정에도 들어가지 못한 건 덤. 그러나 우파 연정이 예상과는 달리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으며, 이 때 사회노동당의 후신인 사회당은 구 공산당 시절의 향수 속에서 부활하기에 이른다. 이후 1994년 총선에서 비록 33%라는 저조한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과반(209/386)을 차지하며 대승을 거두었고, 따라서 단독으로도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지만, 공산주의 색채를 희석시키기 위해 중도우파 정당인 자유민주연합(이하 자민련)과 연정을 구성하여 호른 줄러 내각이 수립된다.
비록 1998년 잠시 정권을 내주기도 했지만,[6] 새로 집권한 오르반 정권이 각종 논란에 휘말렸고,[7] 이 틈을 타 사회당은 2002년 자민련과의 연정으로 재집권에 성공한다. 이 때 양측간의 조율을 위해 무소속인 메드제시 페테르를 총리로 선출했지만, 2004년 당대표인 주르차니 페렌츠로 교체되면서 호른 줄러 이후 두 번째로 당이 총리를 직접 선출하게 되었다.
당시 주르차니는 나이 43세로 유럽의 대표적인 젊은 지도자로 손꼽혔으며, 이러한 카리스마에 힘업어 2006년 총선에서 사회당은 단독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한다.[8] 하지만 경기 침체로 지지율이 하락하던 와중에 일명 "가을 연설"이라고 불리는 스캔들이 터져 지지율이 급락하였고,[9] 결국 연정 파트너인 자민련이 연정을 탈퇴하기에 이른다. 이후 제1야당인 청년민주동맹이 무려 60~70% 대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밀리다가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대참패(4/22)를 당하기에 이르고, 2010년 총선에서 386석 중 단 59석만을 건져 그야말로 망했어요 신세를 맞이하기에 이르른다.
이렇게 총선에서 제대로 응징을 당하고 가히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그래도 제1야당의 위치에 있었으며, 초기 약 3년 간은 지지율이 20~30%를 찍으면서 일단 가망은 있었다. 하지만 총선 패배 직후부터 당이 내분에 빠졌고, 이 와중에서 그래도 당의 굳건한 기반이나 다름 없었던 주르차니 전 총리가 아예 탈당하고 민주연합을 창당하는 등,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2013년에 들어서는 지지율 20%대가 붕괴된 여론조사까지 나오자, 이를 만회하게 위해 연합이라는 야권연대를 결성했다. 초기 지지율이 30%를 넘나들면서 희망이 보이는 듯 싶었으나, 결과는 아시발꿈 그 자체였고, 의석 점유율이 20%도 되지 못하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이후에는 지지율이 더 추락해 급기야는 극우 정당인 요빅에게도 밀리는 형국이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총선 참패 직후 사임한 메슈테르하지 어틸러를 대신해 토비아시 요제프를 신임 대표로 선출했고, 이 컨벤션 효과가 먹혔는지 국회의원 및 시장(셜고터랸) 보궐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걸로 지지율이 오르는 일은 없었으며, 어쩌다를 제외하면 요빅에게도 지지율 2위를 내주면서 질질 끌려다녔다. 비록 청년민주동맹과 오르반이 숱한 비난을 받기도 했고, 지지율이 추락하는 일도 있었지만, 이에 반등을 얻는 것은 요빅이었지, 사회당이 아니었다. 하지만 2018년 초 오르반에게 악재가 터졌고, 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다시 승리를 거두면서 여세를 다시 굳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이 여파 속에서 대화당과 연대를 구성하고, 대화당의 남성 대표이자 43세의 커라초니 게르게이를 총리 후보로 옹립하면서 인기몰이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고, 총선 결과 청년민주동맹-기독교민주인민당 연합은 의석을 그대로 유지한 반면, 사회당-대화당 연합은 의석이 더 감소해 요빅에게 제1야당의 자리를 내주기에 이르렀다. 득표율도 겨우 11.9%.
이후 베르탈란 토트를 신임 대표로 선출하며 재기를 모색하고 있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 자체. 아예 지지율이 10%대가 붕괴되는 여론조사까지 나오면서 비례대표 당선자를 1명도 못 낼 수도 있는 상황이며,[10] 2019년에 들어서는 아예 분당 세력인 민주연합이 추격하면서 헝가리 좌파 진영의 주도권을 내주게 생겼다.
결국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단 6.6%라는 처참한 득표율을 기록해, 1990년 총선 이후 도로 4위를 찍으며 제대로 몰락한다. 민주연합이 16.1%를 득표해 깜짝 2위를 기록했고, 중도 성향의 원외 정당인 모멘툼 운동도 9.9%의 득표율로 깜짝 3위를 기록한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거리가 있자면 2014년 총선 이후부터 지지율 2위를 가져간 요빅을 누른 정도라지만, 그래봤지 0.3% 차이일 뿐이고(...), 명실공히 한때 집권 여당이었다는 정당이 원외 정당에게까지 뒤졌다는 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참패가 맞다.
심지어 유럽의회 선거 직후 첫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6%로 5위를 기록하는 등[11]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다.
이후에는 단독 정당으로는 지지율이 10% 수준이지만 요빅, 헝가리를 위한 대화, 민주연합 등과 함께 야권연합을 결성해 청년민주동맹에 대항하고 있는데 2021년 5월을 기준으로 야권연합이 청년민주동맹에 10%p 차로 앞서고 있다. 내년 봄 총선까지 단일대오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관건.
3. 정책·이념
사회당은 창당과 함께 과거의 공산주의·민족주의 강령을 폐기하고, 사회민주주의·친유럽 노선을 도입했다. 유럽 내에서는 유럽 사회당 및 사회민주진보동맹 소속이며, 국제적으로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및 진보동맹에 소속되어 있다.그런데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라는 당의 이념은 사회 및 외교 정책에 국한된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 신자유주의를 표방한다. 즉 공산주의 세력의 후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구 사회노동당과는 아예 정반대의 성향을 갖게된 것. 오히려 청년민주동맹을 포함한 우익 진영이 경제적으로는 계획경제, 복지 확대를 표방하는 등, 경제적으로만 보자면 좌·우파가 아예 정반대인 것.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은 오히려 공산주의 시절의 향수가 강한 헝가리 국민들에게 별 호응이 없었으며, 결국 재기를 하지도 못 하게 된 것.[12] 최근들어 민주연합(헝가리)에 뒤지기 시작했는데, 헝가리 사회당이 실질적으로 리버럴에 가까움에도 사회주의를 공식적으로 내걸면서 모두에게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여러 면에서는 폴란드의 민주좌파연합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인 우경화로 인한 반감에다가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군소 정당으로 몰락했다는 점 등... 폴란드 좌파가 2019년 총선거에서 나름 부활하고 그 후 지지율이 시민연합을 위협할 정도까지 부활한 것과 비교하면 헝가리 좌파의 몰락은 더욱 처절하다. 좌파정당들 지지율을 다 합쳐서 피데스 지지율의 1/3을 간신히 넘을 정도이다.
그러나 2020년에는 기존 중도우파~좌익 성향 정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다시 지지율을 회복하고 있으며 특히 오르반 총리의 독재 시도로 인해 반감을 품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다시 올라가, 사회당과 요빅, 민주연합을 주축으로 한 야권 연합이 피데스를 54%대 44%로 10%p차 우위에 있는 것으로 나와 2022년 총선에서 부활할지에 대한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 Tóth Bertalan[2] 사민주의 노선을 표방하고 있어서 간혹 뉴스 등에 "사회민주당"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꽤 있으나 명백한 오역이다. 원외 군소정당이지만 헝가리 사회민주당이라는 별개의 정당이 명백히 존재한다. 무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인 1890년에 창당된 원조(?) 사민당(MSZDP)은 오늘날까지 존재하긴 하지만, 민주화 이후 노선이 겹치는 사회당에 밀려 인지도가 공기 수준이다. 2018년 총선에서는 아예 후보출마를 포기 해버렸다(...)[3] 네르시는 사회노동당 내에서 자유파에 속했다.[4] 참고로 득표율은 10.9%였지만, 한국처럼 지역구+비례대표의 병립 형태라(물론 정확히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에 더 가깝지만) 실제 의석은 10%도 되지 못한 것. 더 처참한 사실은, 지역구 당선자는 겨우 1명이었다(...).[5] 당시 4위를 기록해 가히 떡실신했다(...). 참고로 5위가 오르반 빅토르의 청년민주동맹인데, 1994년까지만 해도 청년민주동맹은 군소 정당이었다.[6] 청년민주동맹이 승리하고 빅토르 오르반 대표가 총리에 취임했다.[7] 당시 사법부 장악 논란 등이 불거졌는데, 비록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이 때부터 독재자의 기질을 보였다고 봐도 무관하다.[8] 386석 중 190석을 가져갔는데, 과반에서 7석이 모자란 것. 따라서 자민련과의 연정은 지속되었다.[9] 녹취록 중 "정부는 국민을 위해 한 것도 없고 거짓말만 주구장창 늘어놓았다"는 얘기도 문제였지만, 문제는 총리라는 인간이 대놓고 육두문자를 사용한 게 결정타였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 X발 어떤 XX가 이 X같은 나라를 개혁할 건데?", "내가 역사를 만들었지, 역사책을 쓴 게 아니라고. 뭐고 나발이고 다 X까라 그래" 등등...[10] 비례대표 봉쇄조항은 원칙적으로 5%지만, 2당 연합은 10%, 3당 이상 연합은 15%이다. 즉 양당 연합이 지역구 1,2명만 겨우 낼 수 있을 정도로 망했다는 얘기.[11] 더 웃긴 사실은, 장난 정당인 두 꼬리 강아지당을 겨우 1% 차이로 앞섰다는 점이다(...).[12] 어떤 의미에서는 베네수엘라의 인민의지당과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