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22:50:50

헬름협곡


<colbgcolor=#2E674E><colcolor=#d4cd99> 레젠다리움의 지명
헬름협곡
Helm's deep
파일:J.R.R._Tolkien_-_Helm's_Deep_and_the_Hornburg.jpg
톨킨이 묘사한 헬름협곡과 나팔산성
파일:external/elvenesse.net/HelmsDeep.jpg
실사영화에서 등장한 헬름협곡
이름 Helm's deep
헬름협곡
위치 로한(백색산맥의 북쪽사면)
주요사건 나팔산성 전투
유형 계곡
Helm's deep

1. 개요2. 상세3. 매체에서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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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지명. 로한의 땅에 위치하는 천혜의 요새형 지역이다. 나팔산성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반지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 중 하나다.

2. 상세

이곳에는 거대한 산성인 나팔산성이 존재하는데, 과거 무쇠주먹 헬름 왕이 던랜드인과 싸울 때 이곳에서 한 해 겨울 동안 농성하며 버티다가 결국 죽었다.[1] 하지만 이후에도 산성 정상의 나팔이 울려퍼지면 헬름왕의 지원군들이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으며, 실제로 나팔산성 전투 마지막에 이 전설이 실현되기도 했다. 로한인들은 원래 나팔산성을 수스버그(Suthburg, "남쪽 요새"[2])라고 불렀으나 헬름의 일화 이후 나팔산성(Hornburg)이라고 부르게 된다.

나팔산성의 건축 양식을 보면 로한에서 건조한 것이 아니라 곤도르에서 건조한 성이다. 원래 로한의 땅인 칼레나르돈곤도르의 강역이었는데 전차몰이족과의 전쟁을 겪고나서 폐허가 되어버린 북쪽 영토들을 관리하기 힘들어진 곤도르가 로한에게 그 땅을 넘겼기 때문이다. 이 때 나팔산성의 소유권도 로한에게 넘어갔다.[3] 로한인들의 축성술은 사실 좋은 편은 아니다. 곤도르가 나팔산성을 건조할 때 점차 소실되어가는 누메노르 기술에 곤도르 축성술을 혼합한 방식으로 세웠을 것이다. 나팔산성은 로한에서 가장 강력한 요새가 되었다.

재미있게도 이 성에서 농성한 헬름은 방계 후손인 세오덴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각자 제 1왕가와 제 2왕가의 마지막 왕이고, 나팔산성과 아이센 여울목에서 싸울 때 아들을 잃은 참이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강한 적을 상대로 희망 없는 농성을 강요받고 있었다. 하지만 헬름이 계속 절망에 빠진 채 싸우다가 선 채로 죽은 반면에 세오덴은 계속 분전하다가 마지막 돌격을 감행하고 직접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다음 왕가도 살아남은 귀족 중 가장 왕실에 가까웠던 헬름의 외조카가 제 2왕가의 시조로 추대된 반면에, 아들을 잃은 세오덴은 외조카인 에오메르를 후계자로 삼아 반지 전쟁 내내 대동하고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에서 죽기 직전에 직접 왕위를 물려주고 죽었다.[4]

3. 매체에서

3.1.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

영화소설에서의 위치와 묘사가 조금 다른데, 영화에서는 방어할 수 있는 위치로 후퇴한 것으로 묘사되나, 소설에서는 에도라스아이센가드 사이에 위치하여 적에게 반격할 수 있는 요새인 나팔산성으로 기동한 것이다. 에오윈은 이때 진짜 피난지라 할 수 있는 검산오름으로 민간인들을 이끌고 피난하였다. 영화에서는 요새 안의 아글라론드 동굴로 민간인들을 대피시켰다.

그리고 헬름협곡 안에서 최후의 피난처라 할 수 있는 아글라론드 동굴이 소설에서는 협곡 끝, 즉 위 사진에서는 묘사되지 않은 뒷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5] 전투에서 김리는 아글라론드까지 밀려왔다가 그만 동굴의 아름다움에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그냥 동굴이라고 부를 수 있냐"고 할 정도로 첫눈에 반하기도(...) 했고, 실제로 4시대에는 일족과 함께 그곳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영화에서 아글라론드 동굴은 요새 내부, 즉 위 사진 한가운데 보이는 탑의 왼편에 함께 있고, 협곡은 그냥 절벽으로 처리되었다. 이게 어딜 봐서 협곡이란 말이오

영화판에서는 성벽이 완파되는 모습을 볼 때 누메노르 석공술로 짓지는 못한 모양이다. 다만 이는 피터 잭슨의 각색으로, 원작에서는 수로를 폭파한 것이 아니라 수로를 막고 있던 장애물을 폭파해서 침입한 것이므로 누메노르 석공술로 지은 것이 맞다. 애초에 영화판에서는 누메노르 석공술의 절정이며 사우론 본인이 와도 함락시키지 못할 거라던 미나스 티리스 성벽 위에 세운 누각, 탑들은 퍽퍽 잘만 부숴진다. 일루바타르가 직접 힘을 부여한 이스타리의 지팡이를 마술사왕이 부러뜨리는 말도 안되는 장면도 있고해서 영화판은 보다 현실적인 영웅담으로 각색했기 때문에 원작의 신화적인 색채가 많이 줄었다.

다만 굳이 따지자면 영화에 나오는 나팔산성은 요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공성전에 취약하게 설계, 시공되어 있다. 물론 고증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판타지 영화라는 특성상 비단 나팔산성뿐만 아니라 반지의 제왕 영화판에 등장하는 시설들이 다 방어면에서는 꽤 취약한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6] 나팔산성은 물을 끌어오기 쉬운 장소에 있음에도 일단 공성전에서 방어의 기본인 해자가 없다.[7] 또한 성문에 이르기까지 직선주로가 나 있는데 그나마 폭이 좁고 튀어나와 있어 적 병력이 한꺼번에 성문으로 들어가지는 못하며 어느 정도 공격에 노출되게 하기는 하지만, 도개교가 없어서 공격군은 그대로 성문으로 직행 가능하다. 또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주변의 시설이 없다. 성문 왼쪽의 긴 벽에서 화살과 투창으로 공격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정작 이 벽 부분에는 마땅한 총탑 같은 방어시설이 없고 문과의 거리가 멀다, 게다가 직선주로와 높이가 거의 같은데다가 벽 자체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어 벽 위의 방어군이 효과적으로 공격군을 저지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 벽 위에 있는 방벽의 높이도 낮아서 방어병력의 허리 정도밖에 안 되어 반격에 취약하다.

또 성문이 뚫리고 난 뒤도 문제인데, 이중으로 성벽이 되어 있어 안쪽으로 들어온 적들을 본성벽 위에서 몸을 뒤로 돌려 활로 공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본성벽에는 안쪽으로 향한 방어벽이 전혀 없이 뻥 뚫려있어서 방어군도 공격군의 반격에 취약하다. 게다가 내성 진입을 막는 두 번째 성문도 없기 때문에 공격자 입장에서는 화살은 좀 맞을지언정 막힘없이 성 안쪽까지 그대로 돌파 가능하므로 상당히 부실한 구조다.

사실 외벽과 내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 방어시설과 튼튼한 성문이 있다면 공격자 입장에서는 외벽과 내벽 위의 방어군에게 협공받으면서도 그 좁은 공간에 억지로 공성추를 밀어넣고 성벽을 부숴야 하므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기 마련인데 어째서인지 이런 부분을 충분히 넣을 만한 형태임에도 전혀 그런 게 없다. 가운데땅 곳곳에 지어진 성들이 성문 앞길을 지그재그로 꺾고, 이중성문과 '치'를 만들어서 성문돌파를 막아낸 것과 대조적이다.

다만 영화상에서는 이런 취약점을 반영한 묘사는 없고, 성벽의 높이가 기본적으로 높기 때문에 원시적인 화약을 동원해서 수로 위의 성벽을 통째로 분쇄하기 전에는 우루크하이 대군만으로는 쉽사리 어찌할수 없어 세오덴 왕이 사루만의 술수가 고작 이거냐면서 자신감을 드러내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4. 여담

국내의 한 사람이 8개월에 걸쳐서 레고로 이 헬름협곡을 재현해냈다. #

부산광역시의 비슷한 장소. 참고로 이 곳은 아파트 건설을 위해 산을 새로 깎아낸 것이 아니라, 원래 채석장이던 부지에 아파트를 지어서 이런 모양이 된 것이다.

이름의 어원이 되는 헬름 왕은 게임 미들 어스: 섀도우 오브 워에서 등장하는데, 위에서 언급된 역사에서 복수하기전에 던랜드인에게 딸을 빼앗길때 화살세례를 맞아 빈사상태가 되었다가 사우론켈레브림보르가 준 힘의 반지 덕분에 다시 일어나 던랜드인에게 복수하러 간 것으로 나온다. 문제는 여기서 사우론이 준 반지 때문에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던랜드인들을 몰살하려는 헬름은 그걸 막으려는 친딸을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고 만다. 완전히 이성을 놔버린 헬름은 맨손으로 던랜드인을 때려잡고 그걸 말리려는 자기 부하마저 패죽여버린다. 이후 행적내용은 없지만 수성전을 하다가 반지의 힘에 자아를 잃고 미쳐버려 나즈굴로 되었다고 묘사된다. 게임상에서도 매우 강력한 보스로 등장하며 드레이크를 소환하며 불난리를 피워대기 때문에 매우 어렵다.


[1] 이 때 헬름은 굶주림과 아들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반쯤 미쳐서 혼자 걸어나가 맨손으로 적을 때려잡았다. 산성을 포위한 던랜드인들은 공포에 질려 아무런 제지도 할 수 없었다.[2] 로한 협곡 북쪽의 아이센가드와 대비되어 남쪽에 위치하므로.[3] 아이센가드는 여전히 곤도르가 가지고 있다가 한참 뒤에 사루만에게 넘긴 것과는 대조적.[4] 이런 차이 때문에 로한 제 1왕가의 마지막은 비극적으로 처절한 인상이 있고 제 2왕가의 시작은 슬픔 속에 시작한 것에 비해 제 2왕가의 마무리는 장렬하되 영광스럽고 제 3왕가도 희망 속에서 시작한 느낌이 강하다.[5] 카렌 윈 폰스테드, '지도로 보는 반지의 제왕', 2002[6] 모란논은 성벽 자체가 출입문이라는 인상적인 구조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냥 나팔산성이랑 별다를바 없는 벽 한겹이고, 오르상크는 작업장 방어에만 신경썼는지 탑과 작업장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친 벽 하나가 전부다. 키리스 웅골의 탑은 무려 성벽 모서리에 정문이 나있어서 "나 잡아 잡수"하는 어이없는 디자인이다. 물론 원래 곤도르가 모르도르를 감시하기 위해 세운 곳인 만큼 호빗들이 접근한 방향인 반대편의 방어는 거의 신경쓰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에도라스는 애초에 석성조차도 아닌 목책성이니 방어력을 논할 가치도 없고, 오스길리아스 역시 자체 방어시설은 전무한 채 미나스 이실과 미나스 티리스에 전적으로 방어를 의존하는 구조이다. 미나스 티리스는 가장 나아서, 전체적인 모습은 비록 성으로서는 높은 점수를 줄수가 없는 둥그렇기만 할뿐인 전경을 지니고 있지만 정문 양편에 치가 있어서 성문에 달라붙은 적들을 3면에서 공격할수 있고 정문이 돌파당한 후에도 보조 성문이 겹겹이 있으며 항상 성벽 위의 병사들이 성내로 들어온 적들을 포위공격할 수 있어서 상당히 방어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미나스 모르굴 또한 어설프게나마 정문 양쪽에 쓸데없이 높기만 하고 형편없이 설치된 치가 나있어서 3면 공격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7] 영화상에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소설에서는 나팔산성 외벽에서 4분의 1마일(약 400미터) 밖으로 '헬름의 외호'(Helm's Dike)라는 해자와 토벽이 세워져 있다고 나온다. 나팔산성 공성전 직전, 접근하는 아이센가드 군대를 여기서 감링의 부대가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데 성공하나 적은 숫자 때문에 나팔산성으로 후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