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15:41:49

호패

호패법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3. 특징4. 호패 관련 범죄5. 대중매체에서6. 타 문화권에서7. 여담8. 같이 보기9. 웹툰 작가 호패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Hopae.jpg

호패()는 호패법에 따라 조선시대에 사용된 신분증이다.

나무로 만든 팻말에 이름육십갑자로 된 출생년도와 같은 개인정보를 앞면에 썼고 뒷면에는 관인을 찍었다.

2. 역사

호패는 원나라에서 시작해 고려시대 공민왕 치세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선 후 태종 (13년)에 의해 처음 보급되었고 점차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때는 최초 시행과정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1413년부터 1415년까지 약 2년 동안만 실시하다가 곧 폐지하였다. 세조 때 다시 부활하였다. 그 후로도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다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숙종 11년인 1685년부터이다.

3. 특징

기본적으로 호패 소지는 의무 사항이었다. 이는 호패 관련 법령인 호패법에서 규정되는데, 세는나이로 16세 이상의 남성은 의무적으로 호패를 지녀야 했다.[1] 미소지자는 시기에 따라 처벌이 다르나 태형, 더 나아가 사형일 때도 있었다. 다만 법령과는 달리 실제로는 적용의 미비함과 반발이 있어 세종실록을 기준으로 호패를 지닌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 즉 양반이거나 한양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세계 곳곳의 주민 조사 체계와 마찬가지로 호패가 만들어진 이유는 군역과 요역[2]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이다.

호패의 위조는 사형이 내려질 정도로 철저하게 금지되었지만 규격에만 맞다면 자기가 쓸 호패를 직접 만들고 관아에서 관인만 찍어도 됐다. 직접 제작할 능력이 없을 땐 관아에 호패 제작용 목재를 바치면 목수가 대신 만들어주고 관인을 찍어주기도 했다.

호패는 보통 잘 알려진 대로 나무로 만들었다. 신분에 따라 나무의 종류도 달라서 관원이나 양반들은 회양목, 소나무 같은 고품질 목재부터 하급관원은 자작나무를 썼으며, 그마저도 쓸 수 없는 양민들은 잡목으로 호패를 만들었다. 관원들은 나라에서 호패를 따로 발급해주었으며 문관은 붉은색, 무관은 파란색, 음서로 오른 관원은 노란색으로 이름을 새겨줬다. 정승, 판서 급과 같이 높은 관직을 지닌 이는 상아, 등의 재질로 된 호패를 지닐 수 있었다.

숙종은 종이로 된 지패(紙牌)를 도입하기도 했다.

4. 호패 관련 범죄

일부러 호패를 두껍게 만든 다음에 관아에서 관인을 찍고 나면 호패를 깎아 호적을 양반의 노비로 옮기는 신분증 위조 범죄가 종종 일어났다. 이는 당연히 병역면탈을 위해서이다.[3] 천민은 군역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애당초 정부에서야 '효율적인 인적관리'를 하겠다고 호패를 보급한 것이지만, 이 인적관리라는 것이 민중 입장에선 결국 징세와 각종 부역일 뿐이니 호패를 그리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늘날처럼 국가가 국민한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인드인 것도 아니니...

이러한 범죄행위에 세조는 호패청을 두고 위조자를 극형에 처하고 외출 시 휴대하지 않으면 엄벌에 처하겠다고 경고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키지 않았다. 때문에 호패법이 있었음에도 조선시대에 실종 및 객사한 사람들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숙종 시기에는 남인 일파가 서인 세력을 모함하기 위해 장희재 아버지의 묘비를 훼손하고 저주물을 묻은 뒤 장희재의 종 업동으로 하여금 이를 신고하게 하며 묘비 근처에서 호패가 떨어져 있었다고 고하게 했는데 이 호패는 서인계 병조판서 신여철의 종인 응선의 것이었다. 즉 남인측이 서인측을 모함하기 위함인 것. 그러나 서인들에게는 다행히도 응선이 고문에도 불구하고 승복하지 않고 죽어버린데다 이의징네 종인 방찬이 응선을 취하게 하여 그 호패를 훔친 것과 업동이 묘소에 방문하기 전이 주위 사람들에게 뭔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드러나 남인측의 자작극으로 결론나 오히려 이홍발 등 주동자들이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5. 대중매체에서

  • 현대인에게 매우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시대 배경을 드러낼 수 있기에 사극에서 신원 확인을 하기 위한 장치로 종종 등장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사극 드라마 킹덤에서 세자 이창이 좀비사태에 불구하고 자꾸 갑질하는 사대부들을 찍어누르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호패를 던져서 보여준다. 세자의 것은 초록색 옥에 금으로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름은 써있지 않고 사조룡이 그려져 있는 디자인이다. 시즌 2에서는 참형에 처해질 자신의 심복들의 가족들을 구해주기 위해 심복들과 같이 검문소 입구에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호패를 보여준다.
  • 사이버펑크 풍의 미래 시대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한국 인디 게임 산나비에서는 주인공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호랑이가 그려진 호패가 등장한다. 어린 딸은 이 단어를 못 알아듣고 '처로패'라고 종종 부른다. 호패라고 부르니 이름도 써져있을 것 같지만 작중에서는 호랑이가 그려진 면만 나온다. 플레이어들에게도 꽤 큰 인상을 주는 물건으로, 아트북 펀딩 때 굿즈로도 발매 예정이다.

6. 타 문화권에서

현대인은 신분증을 지니고 있는 것이 매우 일상적이니 전근대 조선에도 비슷한 게 있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계적으로 호패와 같은 신분증을 전국적으로 발급한 곳은 그리 흔치 않았다.[4] 중세 후기 유럽 같은 데서 보면 자기 신분을 증명할 물건 같은 것은 귀족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발급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서 조선에서 호패 도입에 여러 반발이 있었던 데에서 알 수 있듯 민중들은 이런 신분증 자체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 호구조사가 제대로 된다면 정권에 의한 병역과 조세, 노역 의무를 피할 길이 없고, 더하여 전근대 행정 특유의 부정부패와 착취가 겹쳐져 못 볼 꼴 본 사례가 역사 속에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적 회피 시도가 나타났는데, 이를 관리할 만한 공권력이 없으면 금세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시도나마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전근대 중국-한국-베트남[5]의 강력한 중앙집권 관료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중국, 한국, 베트남에서 국가의 일괄적인 국민 인적사항 관리에 반발이 덜한 것은 이러한 전통에서 기인한 바가 있을 듯하다.

7. 여담

호패술은 호패처럼 생긴 도구로 싸운다고 붙은 이름이다. 다만 문서에서 보듯 조선시대에 호패가 쓰이던 당시에 있었던 무술은 아니고 현대에 창작된 것이다.

8. 같이 보기

9. 웹툰 작가 호패

작가 블로그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활동했던 작가. 1983년 출생의 남성이다. 도전만화가에서 데스티니를 연재해 큰 인기를 끌어 정식 작가로 진출했다. 데스티니와 관련해서 총 3부작을 연재했는데 도전만화가 시절에 연재했던 내용과는 영 딴판인 평행세계를 다뤘다. 데스티니 3을 격주 연재한 것을 마지막으로 연재 소식이 없더니 2014년에 데스티니 시리즈를 전부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뒤로 소식이 들리지 않더니 2015년 6월부터 네이버 웹툰에서 엄재경 작가와 함께 마법스크롤 상인 지오를 연재하고 있다.[6] 2014년 데스티니 시리즈가 내려간 비하인드에는, 2010년 데스티니 3부를 연재 끝내고 나서 차기작 대신에 일을 하고 3년만에 들어오니 이미 자신이 연재를 할만한 공간이란 것이 없어져서 자신이 너무 도태된 작가임을 느끼고 다음 연재를 끝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7]

작가의 블로그에 올라온 해명에 따르면 예전 데스티니 연재가 힘에 부쳐 커리어를 쌓고 연재를 재개하려 했으나 생계로 인하여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한동안 웹툰 연재를 중단하고 잠시 택배업으로 근무했었다고 한다. 이후 스토리 작가를 구해 연재를 시도했으나 연재처를 구하지 못 하였으나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여 다행이였으나 4부 연재 중 호패 작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연재 중단되었다.


[1]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만 17세(세는나이로 약 18세)가 되는 해에 주민등록증을 만드니 조선시대의 호패가 약간 더 이른 셈이다.[2] 부역이라고도 하는데 병역 의무 외에 나라에서 공적인 일에 국민을 동원하는 걸 말한다.[3] 군역은 양반도 면제되었지만# 양반으로 호적을 위조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순순히 넘어가줄 가능성도 낮았을 것이다.[4] 사실 지금도 모든 나라가 한국과 같은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것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가까운 일본만 해도 한국의 주민등록증 같은 것은 없다.# 2010년대부터 도입되는 마이넘버가 그나마 비슷한 물건이다.[5] 다만 이쪽은 원래의 베트남 영역이었던 하띤성 ~ 꽝빈성 이북, 즉 통킹 지역 한정으로 원래 참파의 영역이었던 꽝찌성 이남지역은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있었고 아예 광남국이라는 응우옌씨의 자치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베트남 전체의 완전한 행정망 통합은 대남국민망 황제 시기가 되어서야 이루어진다. 물론 광남국 자치정부 역시 응우옌 가문이 확고한 권력을 가지는 중앙집권제가 이루어졌다.[6] e스포츠 팬들에게 왕년에 스타리그 해설자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 오히려 만화 스토리 작가가 그의 본업이다. 대표적으로는 마이러브, 까꿍이 있다.[7] 2014년 데스티니 카페에서 밝힌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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