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2 23:22:52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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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삿포로
1988
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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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나가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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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미정
2034
미정
2038
미정
2042
미정
2046
미정
* 1940, 1944년 올림픽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역대 하계올림픽 / 역대 하계패럴림픽 / 역대 동계패럴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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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제17회 동계올림픽 경기대회
De 17. olympiske vinterleker
XVII Olympic Winter Games
1994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 경기대회
Olympiske vinterleker 1994
Olympic Winter Games Lillehammer 1994
파일: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로고.svg
파일:external/colorlib.com/1994-Lillegammer-Olympics_Posters.jpg
<colcolor=#fff> 대회기간 1994년 2월 12일 ~ 2월 27일
개최국 노르웨이/릴레함메르
슬로건 Se ilden lyse
Fire in your heart
(당신의 마음에 불을)
마스코트 호콘&크리스틴
주제가 Fire in your heart
참가국 67개국
참가선수 1,737명
(남자: 1,215명, 여자: 522명)
경기종목 12개 종목, 61개 세부 종목
개회 선언 하랄 5세
노르웨이 국왕
선수 선서 베가르 울방
스키
심판 선서 카리 코링
성화 점화 호콘 왕세자
개·폐회식장 리스고스바켄 스키 점프 아레나

1. 개요2. 유치3. 대회4. 기타

[clearfix]

1. 개요

1994년 2월 12일부터 2월 27일까지 노르웨이 인란데릴레함메르시에서 개최된 제17회 동계올림픽.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직후 2년 만이었다. 1986년 IOC 총회에서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의 개최 주기를 변경하기로 하였고, 이 올림픽부터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2년 단위로 번갈아 개최하기로 하였다.

하계, 동계 올림픽을 아울러 역사상 최고위도 지방(61° 06' 53”)에서 열린 올림픽으로 오슬로 동계올림픽의 자체 기록(59 ° 55') 을 깼다. 한편 뒤이은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역시 1972년 삿포로 대회의 기록을 깨면서 가장 낮은 위도(36 ° 34')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이 되었다. 또한 역대 동계올림픽 중에서 가장 추웠던 대회로 기록됐다. 이 대회 당시 릴레함메르 일대의 평균 기온은 영하 11도.

이 대회는 몇 안되는 흑자 올림픽이었다. 이 대회가 흑자를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회건물을 모두 가건물로 건설했다가, 대회가 끝나기 무섭게 철거해 버려서 시설 건설비용을 감축하고 유지비용 및 관리비용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이쪽보다는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쪽을 모델로 취하고 있다.

2. 유치

1988년 하계올림픽이 열렸던 대한민국 서울 IOC 총회에서 열리게 되었다. 유치 경쟁도시로는 노르웨이의 릴레함메르, 스웨덴외스테르순드, 불가리아소피아, 미국앵커리지였다.
1994년 유치 투표 과정
국가 도시 1차투표 2차투표 3차투표 결과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25 30 45 유치 선정
스웨덴 외스테르순드 19 33 39 유치 탈락
불가리아 소피아 23 22 유치 탈락
미국 앵커리지 17 유치 탈락

스웨덴은 이 대회 유치에서도 떨어지면서 연속 4번 탈락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옛날 식민지이자 지난번 투표에서 공동 3위였다가 패자부활전에서 차점자 탈락을 한 노르웨이에게 패배했으니 안 그래도 매 유치전마다 신통찮았던 스웨덴으로서는 말 그대로 통한의 패배. 그리고 1998년 유치과정과 2002년 유치과정, 그리고 2026년 유치과정에서도 떨어졌다.

3. 대회

대회 마스코트인 '호콘'과 '크리스티'는 2022년 현재까지도 올림픽 유일의 인간형 마스코트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조직위는 인형탈을 만들지 않는 대신 마스코트를 직접 연기할 어린이들을 초등학생 중에서 선발했다.뒷이야기

개회식에서 선수단이 입장할 때에는 해당 국가의 언어, 영어, 프랑스어 순의 환영 문장으로 국가들을 소개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이 입장할 때에는 노르웨이인 어린이가 한국어로 "한국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고, 장내의 영어 아나운서와 프랑스어 아나운서가 같은 뜻의 영어, 프랑스어 문장을 말하는 식으로 소개하였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어, 영어, 개최국의 언어로 소개하던 것과 비교하면 꽤나 특이한 경우였다.

3.1. 메달

1994년 올림픽 메달 순위
순위 국가 합계
1 러시아 11 8 4 23
2 노르웨이 10 11 5 26
3 독일 9 7 8 24
4 이탈리아 7 5 8 20
5 미국 6 5 2 13
6 대한민국 4 1 1 6
7 캐나다 3 6 4 13
8 스위스 3 4 2 9
9 오스트리아 2 3 4 9
10 스웨덴 2 1 0 3

  • 소련에서 독립해 이번 대회에 첫 출전한 국가 중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이 첫 출전만에 메달을 획득했다.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와 남반구의 호주가 동계올림픽 첫 메달을 획득한 것도 이 대회. 이 중 우즈베키스탄은 리나 체르야조바가 프리스타일 여자 에어리얼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 현재까지 유일한 동계올림픽 메달이다. 카자흐스탄 역시 크로스컨트리의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가 금 1개 은 2개를 혼자 따내며 분투했는데, 이것이 이번 대회 카자흐스탄이 땄던 모든 메달이고 아직까지도 유일한 카자흐스탄의 동계올림픽 금메달이다.
  •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는 16세의 옥사나 바이울이었으며, 그녀는 조국인 우크라이나에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스케이터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고아소녀가 올림픽 챔피언까지 오른 성공스토리가, 당시 북미언론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바이울의 갈라 프로그램인 '백조'는 아직까지도 명프로그램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갈라프로그램으로 꼽고 있다. 당시 옥사나 바이울은 쇼트에서 낸시 캐리건에 이은 2위였다. 이 대회부터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는 쇼트 1위가 올림픽 우승을 하지 못하는 징크스가 생겼다. 이 징크스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우승하며 깨진다.
  •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는 앞선 세 번의 올림픽에서 연거푸 분루를 삼켰던 미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간판스타 '댄 젠슨'이 자신의 올림픽 8번째 레이스에서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1]

3.2.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1994 17회 릴레하메르 동계올림픽 (1994 Winter Lillehammer Olympics)
  • 기간 : 2월 12일~2월 27일
  • 규모 : 67개국
  • 종목 : 61개
  • 참가선수 : 1,737명
  • 개막일 : 1994년 2월 12일
  • 폐막일 : 1994년 2월 27일
  • 쇼트트랙 남자 1,000m 김기훈 (금메달)
  • 쇼트트랙 남자 500m 채지훈 (금메달)[2]
  • 쇼트트랙 여자 1,000m 전이경 (금메달)
  •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전이경, 김윤미, 김소희, 원혜경) (금메달)
  • 쇼트트랙 남자 1,000m 채지훈 (은메달)
  • 쇼트트랙 여자 1,000m 김소희 (동메달)

대한민국은 종합 6위의 성적을 거뒀다.

파일:대한민국동계올림픽성적13.png
  • 대한민국김윤미 선수는 만 13세 3개월의 나이[3]쇼트트랙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서 동/하계 올림픽 합산 역대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4] 이 기록은 현재 깨지지 않고 있다. ISU에서는 1996년부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자에 나이 제한[5]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스케이팅 부문에서 깨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 이 대회는 올림픽 비운의 영웅 콩(?) 이규혁이 첫 출전한 대회이기도 하다. 항간에 최연소 대표라고 알려졌지만, 바로 윗줄에 김윤미가 있고, 스피드 스케이팅 팀에 백은비가 있었다.
  • 한국은 지난 알베르빌 대회와 마찬가지로 쇼트트랙 편중을 벗어나려 했으나 실패했다. 사실 스키와 피겨스케이팅 같은 종목을 빼면 스피드 스케이팅 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런데 스피드 스케이팅의 경우 제갈성렬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김윤만은 의외의 불행이 있었다[6] 여자 팀의 유선희는 부담감[7]과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8] 이후 한국이 쇼트트랙 이외 종목에서 메달이라는 것을 건져온 것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가서야 가능했다.[9]

4. 기타

  • 노르웨이 스키점프 선수가 성화를 들고 스키점프대에서 입장한 후 노르웨이 왕자가 바톤터치하여 성화를 점화하였다.
  • 노르웨이의 국민가수 Sissel이 플라시도 도밍고와 듀엣으로 부른 주제가 Fire In Your Heart가 히트하여 이후 동계올림픽을 대표하는 테마송으로 각인되었다. 노르웨이어 버전은 Se Ilden Lyse.
  • 올림픽 휴전이 처음 적용된 대회이다. 이 대회부터 올림픽 기간만은 전쟁을 하지 않기로 대회 이전에 합의를 보고 있다.
  • 재미없는 농담을 했을 때 분위기가 얼어붙다, 춥다, 싸하다라는 뉘앙스를 만들어낸 대회이다. 이 대회를 전후하여 누군가가 썰렁한 이야기를 하면 주위 사람들이 "릴레함메르~"를 외치는 드립도 있었는데 당시 MBC 개그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의 '썰렁이 3형제' 코너에서 유래된 것이다. 등장인물이 썰렁한 이야기를 하면 쇼트트랙 선수 차림을 한 사람들이 "릴레~함메르~ 릴레~함메르~"라고 외치면서 스케이트 타듯 지나가면서 밑에 자막으로 "썰렁! 썰렁!"이란 글자가 추가되었다.(당시는 지금처럼 예능 내내 애니메이션 자막이 날아다니지 않던 시기이다.) '썰렁하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코미디인데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를 접했을 때의 반응'으로 확장됐던 때가 바로 이 때였다.

[1] 직전 대회 이 종목에서 깜짝 은메달을 획득했던 대한민국의 김윤만은 레이스 파트너가 중도에 넘어져 혼자서 재경기를 치르는 불운이 겹쳐 18위에 만족했다.[2] 현재까지 남녀 통틀어 유일한 500m 올림픽 금메달리스트[3] 이해가 안되면 올림픽 당시 중학교 2학년 진급을 앞두고 있었다. 또한 원혜경도 중학생이었고 김소희전이경은 고등학생이었다. 당시는 쇼트트랙이 올림픽에서 자리잡아 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중고등학생 선수들이 외국의 성인 선수들과 겨뤄 호성적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전명규 코치의 빡센 훈련 때문이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4] 안타깝게도 김윤미는 다음 대회에서 계주 2연패를 달성한 이후로는 더 이상의 기량 향상을 보이지 못한 채 한창 나이에 일찍 은퇴하고 말았다. 최근에는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에서 운동치료사로 일하는 것이 확인되었다.[5] 전년도 7월 1일 기준으로 만 15세 이상[6] 경기 중 상대 선수가 넘어지면서 재경기를 해야 했다.[7] 당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메달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던 선수는 유선희뿐이었다. 김윤만은 (상대적으로) 기복이 심했고, 제갈성렬은 부상 중이었다.[8] 당시 나이 29. 지금도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는 정말 많은 나이였다. 당시 한국 국가대표들은 청소년 시절 무리한 훈련으로 인한 혹사와 체력 방전으로 심해 20대 후반만 되어도 체력 노화가 심각했다. 탁구의 여왕 현정화도 24에 은퇴했다.[9]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나온 이강석의 동메달.[10] 사라 케리건의 이름은 이 선수 이름에서 따왔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