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01:34:33

1994-95 농구대잔치

1993-94 농구대잔치
우승팀: 연세대학교
MVP: 서장훈
1994-95 농구대잔치
우승팀: 기아자동차
MVP: 허재
1995-96 농구대잔치
우승팀: 기아자동차
MVP: 김유택

1. 개요2. 참가팀3. 운영방식4. 대회결과
4.1. 정규리그4.2. 8강 플레이오프4.3. 대회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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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4년 12월 24일부터 1995년 3월 1일까지 펼쳐진 당시 대한민국 농구 대회 중 최정상 레벨의 대회. 남자부 14개팀 (실업 8팀, 대학 6팀)이 참가하였다. 이 항목에서는 남자부 대회에 대해서만 소개한다.
우승팀 준우승팀 MVP 신인상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허재(기아) 현주엽(고려대)
조성원(현대전자)

이 대회는 농구대잔치 역사상 최초로 스폰서십을 도입한 대회인데, 후원사는 한국이동통신이며 정식 명칭이 '012배 농구대잔치'였다. 또한 이전 대회까지는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체육관을 중심으로 지방 순회 경기를 했지만 이 대회 때부터는 서울 올림픽공원 제1경기장[1] 중심으로 열리게 되었다.[2]

2. 참가팀

  • 대학팀 (6팀)[3]
선수 학년 Pos. 출신교 선수 학년 Pos. 출신교
연세대 이상민 4 G 183 홍대부고 김성헌 4 G 180 경복고
김훈 3 G/F 190 대전고 김승관 2 G 178 대경상고
우지원 3 F 193 경복고 신석 2 F 187 용산고
김택훈 1 F 193 홍대부고 석주일 3 F 190 휘문고
서장훈 2 C 207 휘문고 구본근 1 C 195 대전고
고려대 신기성 1 G 180 송도고 박규현 2 G 185 부산중앙고
김병철 3 G 185 용산고 노기석 4 F 187 홍대부고
양희승 2 F 195 광주고 이지승 4 F 188 경복고
현주엽 1 F/C 195 휘문고 이익수 4 C 203 경복고
전희철 3 C 198 경복고 박재헌 2 C 200 Artesia H.S
중앙대 김희선 3 G 186 강원사대부고 이세범 2 G 180 용산고
구병두 1 G 187 동아고 신종석 1 F 193 경복고
김영만 4 F 193 마산고 한규현 2 F 188 경복고
양경민 4 F 193 용산고 이은호 1 C 196 상산전자고
안병익 4 C 195 송도고 박도경 1 C 202 부산중앙고
경희대 최명도 4 G 180 삼일상고 박성배 2 G 180 경복고
김광운 3 G 181 삼일상고
손규완 2 F 186 전주고
구장환 3 C 191 계성고 박영진 3 F/C 191 목포상고
장창곤 4 C 194 휘문고 윤영필 1 C 193 휘문고
한양대 정락영 1 G 183 삼일상고 강기중 1 G 180 대경상고
이현주 3 F 185 대전고 정재훈 3 G 184 송도고
이상영 2 F 188 대경상고 김동철 4 G 186 송도고
추승균 2 F 192 부산중앙고 지형근 3 F 190 광주고
이흥섭 3 C 200 대경상고 김동언 3 C 195 송도고
건국대 정진영 3 G 184 광신정산 박영진 1 G 182 계성고
장석환 3 G 180 대경상고
김용식 3 G 187 동아고 황준삼 4 F 179 동아고
변청운 1 F 192 대경상고 황문용 1 F 191 대경상고
신현식 2 C 196 대경상고

3. 운영방식

  • 정규리그: 14개팀이 풀리그를 통해 8위까지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부여했다.
  • 플레이오프: 상위 8팀이 8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했다. (8강, 4강전은 3전 2선승, 결승전은 5전 3선승제)

4. 대회결과

4.1. 정규리그

1994년 12월 24일 개막하여 1995년 2월 2일까지 총 14팀 (실업 8팀, 대학 6개팀)이 풀리그전을 펼쳤고, 상위 8개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
순위 결선리그 비고
1위 연세대 13-0
2위 고려대 11-2[4]
3위 기아자동차 10-3[5]
4위 SBS 8-5 골득실 (SBS > 현대 > 상무)
5위 현대전자 8-5
6위 상무 8-5
7위 중앙대 7-6 승자승 (중앙대 승)
8위 삼성전자 7-6
9위 경희대 6-7
10위 기업은행 5-8
11위 산업은행 3-10
12위 한양대 2-11 승자승 (한양대 승)
13위 한국은행 2-11
14위 건국대 1-12
  • 정규리그 최고의 사건은 기아자동차가 1승 4패에 머물던 한양대에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추승균, 이상영 등 저학년 선수들을 주축으로 치열한 수비를 펼치며 연장 접전끝에 기아를 89:76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기아자동차와의 경기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한양대는 더이상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꼴찌 건국대의 1승 제물까지 되면서 2승 11패의 아쉬운 성적으로 농구대잔치를 마무리한다.
  • 전 시즌 대학팀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했던 연세대의 스토리가 유독 화제가 된 시즌이었다. 94년 봄 MBC배 대학농구대회 결승에서 고려대에 어이없이 역전패 당한 것을 시작으로, 주전들의 국가대표 차출 및 슬럼프로 농구대잔치 출전 티켓조차 확보가 어려운 지경까지 몰릴 만큼 연세대는 유독 대학리그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대회인 대학농구 연맹전 3차에서 다시 풀전력이 된 연세대는 라이벌 고려대를 65:40으로 압살해버리는 등 전승을 거두며 간신히 농구대잔치 출전 티켓을 따냈다.
  • 이 당시 연세대는 졸업한 문경은의 공백을 느낄 수 없을 만큼, 기량이 더 성장한 서장훈과, 아직 건재한 이상민, 우지원등의 선수들, 그리고 현주엽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 괜찮은 포워드[6]인 김택훈과 백업센터 구본근 등의 활약으로 지난해와 같이 정규리그 전승 행진을 이어갔다. 자연히 기아자동차나 고려대와 같은 우승후보 팀들간의 경기는 큰 관심을 끌었는데, 결과적으로 기아자동차와의 경기에서 작년 시즌과 같이 경기 내내 연대콜이 심해[7] 연장에 가는 대접전을 펼쳤지만 김택훈의 의외의 활약으로 연장에서 싱겁게 승리한다.[8]. 문제는 고려대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 우세한 경기를 펼치며 후반 막판까지 적지 않은 점수차로 이기고 있던 연세대는 이상민의 뜻하지 않은 부상아웃 이후 추격을 허용하며 종료 2초를 앞두고 동점 허용... 거기서 서장훈의 버져비터가 성공하며 2점차로 가까스로 승리해 2년 연속 정규리그 전승을 달성했지만, 이상민의 시즌아웃은 훗날 비극의 전주곡이 되고.... 종료 직전 마지막 공격권을 가늠하는 터치아웃도 오심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9] 관련 영상은 유튜브에 있으니 판단은 알아서.... 경기하이라이트(영상원본: KBS nSports "스포츠人 명불허전")

4.2. 8강 플레이오프

1995년 2월 9일부터 1995년 3월 1일까지 진행되었다.
8강전 4강전 결승전
연세대학교 (1위)
85 : 76
72 : 81
77 : 83
삼성전자 (8위)
삼성전자
84 : 82
60 : 64
92 : 64영상
SBS
삼성전자
82 : 92
72 : 89
74 : 72
75 : 83
기아자동차
SBS (4위)
55 : 48
73 : 67
현대전자 (5위)
고려대학교 (2위)
61 : 54
77 : 86
64 : 54
중앙대학교 (7위)
고려대학교
67 : 69
78 : 70
71 : 79영상
기아자동차
기아자동차 (3위)
86 : 76
81 : 76
상무 (6위)
  • 정규리그 전승무패의 연세대가 8강전에서 삼성전자에 1승 2패로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 때 삼성전자는 이상민이 없는 연세대와 상대하는 것이 고려대를 상대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가 판단해 정규리그 막판 석연치않은 고의 패배를 불사하며 결국 연세대를 만나는데 성공했고, 계획대로 서장훈을 해치우며 4강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 연세대 8강 탈락의 가장 큰 원인은 전술했듯이 이상민과 서장훈의 부상으로 인한 결장.[10] 이상민에 밀려 4년 내내 벤치만 달구던 동기 김성헌이 이상민 대신 선발출전해 가까스로 공백을 메워 1차전을 승리로 가져가긴 했지만, 시리즈 내내 서장훈을 잡기 위한 삼성전자의 육탄 방어를 견뎌내지 못하고 내리 2연패를 당해 탈락하고 말았다. 특히 서로간의 불만과 승부욕이 폭발한 3차전은 까놓고 말해 농구가 아닌 이종격투기에 가까웠고, 결국 필살의 엘보우 어택에 맞아 목을 다친 서장훈은 경기 중 들것에 실려나가 버렸다.(...) 서장훈이 실려나간 후 1학년 센터 구본근이 19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팀은 패했고, 구본근조차도 경기 종료 후 갑작스런 호흡 곤란으로 산소 마스크를 쓰고 실려나가는 등 이날은 연세대 농구부의 잔혹사와도 같은 날이었다.[11]
  • 이 대회는 삼성전자의 선수인 김현준의 은퇴 대회였다. 그러니까 김현준에게는 이게 선수로서는 마지막이었고, 그래서 삼성전자는 오직 김현준에게 은퇴 선물을 주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밀고 나갔다. 그렇게 끝판왕인 연세대학교를 넘어뜨리고 SBS까지 꺾으며 결승에는 도달했지만, 결승에서 만난 기아자동차까지는 힘들었다. 그렇게 삼성전자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김현준에게 선물을 주는 데에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김현준은 농구 코치로로 전향해 생활하다가 출근하던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 연세대의 조기 탈락으로 기아자동차 vs. 고려대의 4강전이 실질적인 결승전과도 같았다. 고려대로서는 당시 전력이 우승의 최적기나 다름없었지만 1차전의 2점차 패배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12] 1승 2패로 탈락하고 말았다.[13]
  • 삼성전자와의 결승전 4차전에서 허재가 41득점, 그 중에서도 후반 연속 17점을 혼자서 꽂아넣는 마이클 조던 놀이를 시전하며(...) 우승 트로피를 기아자동차로 되찾아 왔다. 게다가 당시 삼성전자는 정규리그 막판 고의 패배 의혹과 8강전에서 대학팀 후배들을 상대로 폭력 농구를 남발한 덕택에 당시 농구 팬들 다수에게 공공의 적 취급[14]을 받았던지라 허재의 활약이 그야말로 정의구현이었다는 평이 다수였다.

4.3. 대회 결산


[1]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체조 경기가 개최되었다.[2] 이로써 잠실학생체육관이 비게 되는데 그 해부터 1994-95 한국배구슈퍼리그가 장충체육관 시절을 마감하고 잠실학생체육관으로 옮겨서 개최되었다.[3] 1994 대학농구연맹전 항목 참조[4] 기아, 연세대에 패했다.[5] 삼성전자, 한양대(!!), 연세대에 패했다.[6] 키 195로 고교시절은 원래 가드였다. 중국의 장신숲에 맞설 차세대 장신가드로 농구팬들의 기대를 모았는데, 최희암 말로는 팀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해도, 궂은일 전문 파포로 쓰는 바람에 폭망해버린 케이스[7] 편파 판정으로 한기범이 조기에 5반칙 퇴장당했다.[8] 이런거 보면 김택훈은 분명 슛터로서 재능이 없진 않았던거같은데 최희암은 특유의 분업농구 때문에, 그 이후 대학 4년동안 김택훈을 철저히 에이스킬러로 키우게 된다...[9] 간단히 정리하면 연세대에게 일부러 유리하게 판정을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의혹은 극적인 경기 상황 때문에 묻혀버렸다.[10] 기존 버전에는 서장훈의 위상이 돋보였지만 이상민 없이 치른 8강에서 다른 주전들이 전부 건재했음에도 탈락했기 때문에 이상민의 결장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했는데, 실제 양상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일단 이상민이 부상을 당한 것은 정규리그 고대전에서였고 이때 아웃되었다. 즉, 연대는 이상민 없이 삼성과 1, 2차전을 치러 1승1패를 거뒀다. 그런데 최종 3차전에서 악명높은 서장훈 린치사건이 일어나면서 경기 중 그가 실려나갔고, 연대는 서장훈의 공백을 못 이기고 맥없이 무너진 것이다. 즉, 이상민과 서장훈 중 누가 더 연대에 중요한 선수였냐와 별개로 두 선수의 결장 모두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봐야하며 '이상민이 연대 전력의 절반'이란 얘기는 그만큼 이상민이 중요한 선수란 비유적 표현으로 봐야한다. 실제로 서장훈은 1학년 시절에 이미 MVP를 차지했고, 농구에서 포인트가드와 센터는 둘 다 필수적인 포지션이다.[11]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는 원래 창단했을 때부터 폭력 농구를 추구해 왔던 팀이다. 다만 연세대 또한 원래 더티 플레이가 심했다. 그리고 연고대판인 농구계에서 항상 유리한 판정을 받아왔던 팀이었다.[12] 경기 종료 직전 3점차로 뒤진 상태에서 전희철이 자유투를 얻어냈는데 1구 성공하고 2구 고의로 실패해서 현주엽의 리바운드를 믿고 동점 혹은 역전을 노렸으나 리바운드를 김유택에게 뺏기면서 그대로 패했다.[13] 나이가 많은 기아 선수들이 1차전으로 체력이 바닥나서 2차전은 일부러 포기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체력을 충전한 뒤 3차전은 가볍게 누르고 결승에 진출한다.[14] 삼성이 종료 31초 전 김현준의 3점슛으로 역전승한 3차전도 판정 구설수가 있어서 기아에서 협회에 제소했으나 기각당하기도 했다.# 한 경기 더 하면 수익이 얼마인데라는 협회 고위관계자의 발언까지 겹친 4차전의 분위기는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