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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형 유보트 |
제원 | |
건조 | 더치베르프트 함부르크 조선소 (48척) 게르마니아베르프트 킬 조선소 (13척) |
운용 | 크릭스마리네, 독일 해군 |
건조 수량 | 61척 |
손실 | 7척 |
배수량 | 수상 234톤 수중 258톤 |
전장 | 34.7m |
전폭 | 3m |
흘수 | 3.67m |
추진방식 | 디젤-전기 추진 |
추진체계 | 575마력 MWM RS134S 6기통 디젤엔진 1기 572마력 AEG GU4463-8 이중작동 전동모터 1기 35마력 BBC CCR188 저속전동모터 1기 |
속력 | 수상 최고 9.7노트(18km/h) 수중 최고 12.5노트(23km/h) |
항속거리 | 8노트 수상 항해시 2,600해리(4,800km) 4노트 수중항해시 194해리 |
잠항 심도 | 180m |
승조원 | 14~18명 |
무장 | 어뢰발사관 2문(어뢰 2기 탑재) |
1. 개요
23형 유보트는 북해, 흑해, 지중해 등 연안에서 작전하도록 설계된 연안형 잠수정이었다. 독일이 패전을 눈앞에 두고 있던 절박한 상황이 반영되어, 대전 초기의 2형 유보트보다도 작아졌다. 무장은 어뢰발사관 2문이 전부였고 재장전은 불가능했다. 한없이 작은 잠수정이었지만 21형 유보트의 소형 버전으로써 당시로썬 혁신적인 유선형 설계, 축전량이 증대된 축전지와 스노클에 힘입어 21형 유보트 다음으로 당대 최강의 잠항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21형과 23형 유보트가 현대 디젤 잠수함의 시초로 여겨지는 이유이다.2. 배경
1942년 말, 21형 유보트의 개발이 시작되자 21형의 기술을 적용한 소형화 버전을 건조하여 기존의 2형 유보트를 대체할 계획이 세워졌다. 카를 되니츠 제독이 여기에 두가지 요구사항을 추가했다. 지중해와 흑해에서 작전이 가능할 것과 철로를 이용한 수송이 가능케 할 것이었다.23형은 개발 우선순위가 급등하여, 현재 가용가능한 모든 자원을 투입하여 개발, 건조하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개발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헬무스 발터[1]는 이전 22형 유보트 프로토타입의 설계를 기반으로 새 설계도를 뽑아냈다. 1943년 6월 30일 설계가 최종적으로 완료되어 독일 전역의 조선소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소련 점령지에서까지 건조를 시작하게 된다. 우선계약자는 함부르크의 더치베르프트 조선소이다.
21형과 23형 유보트가 모듈 조립 건조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조선소들이 만들어내는 모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몇척은 여기저기 건조 책임 조선소가 바뀌는 상황도 벌어졌다. U-2446부터 U-2460이 현재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더치베르프트 니콜라예프 지부까지 가서 조립을 하다가, 리즈너의 조선소로 옮겨갔다가
3. 특징
23형 유보트는 최초로 완전 밀폐형 선체로 건조되었다. 외부 선체가 완전한 유선형으로 설계되었고 이전 유보트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사령탑을 가졌으며 연돌을 소형화하고 배기 은폐능력을 증대시켰다. 상부갑판 역시 유선형 유지를 위해 비교적 곡선을 그렸으며, 함수 소나를 탑재하지 않을 계획이었다가 결국은 탑재했다. 스크류는 3엽이었고 방향타도 하나였다. 21형과 똑같이, 하부 격실 8개에 62셀의 배터리를 꽉꽉 채워넣었다.철로 수송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표준 차량한계 이하로 크기가 제한되었다. 수송할 때는 선체를 4등분하고 사령탑 역시 떼어냈다. 이런 공간 제약 때문에, 함수 부분은 최대한 짧게 설계되었고 무장 역시 2문의 어뢰발사관으로 제한되었고 재장전도 불가능했다. 어뢰 재보급시에는 함미 밸러스트 탱크를 충수(充水)시켜 함수를 들어올린 뒤 장전했다.
23형은 기동성만큼은 수준급이었다고 한다. 수상, 수중 가릴 것 없이 당시로썬 수준급의 기동성을 가졌다. 급속 잠항 시간이 고작 9초였고, 최대 심도는 180미터였다. 위에 나와있듯이 잠항속도 최고 12.5노트, 수상속도 최고 9노트였다. 스노클링시에도 10.5노트의 속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4. 건조
23형 유보트 1번함인 U-2321은 1944년 4월 17일 함부르크 조선소에서 건조를 시작했다. 겨우 작전에 투입될 수 있었던 6척 중 하나였고, 이를 포함해 함부르크에서 48척, 킬에서 13척이 건조되었다. 마지막으로 건조된 함은 U-4712. 1945년 4월 19일에 건조되었다.5. 전적
작전에 투입될 수 있었던 6척의 U보트는 U-2321, U-2322, U-2324, U-2326, U-2329, U-2336이었는데 이들은 작전에 투입되어 1척도 손실되지 않고 선박 5척을 격침 혹은 손상시켰고 총 톤수 14,601톤을 격침시켰다.23형의 첫 전투출항은 1945년 1월 18일 킬 항구에서 떠난 U-2324가 기록했다. U-2324는 끝나가는 전쟁(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살아남긴 했지만 전적을 쌓진 못했다. 첫 전적은 U-2322가 따냈다. 프리드요프 헤켈 중위가 지휘한 이 유보트는 1945년 2월 6일 노르웨이의 해군기지에서 출항하여 상선단을 발견했고 연안 연락선 한척을 격침시켰다. 동일 기지에서 작전했던 U-2321 역시 동년 4월 5일에 연안 연락선 한척을 격침시켰다. 에밀 크러스메어 대위가 이끈 U-2336은 1945년 5월 7일 수송선 두척을 격침시켰다. 그 수송선 두척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 해군이 공격받은 마지막 U보트의 공격이었다.
위의 수송선 두 척은 공식 항복이 있기 약 1시간 안 되는 시간인 23시 03분에 격침되었고 그중 캐나다 국적이었던 화물선 SS “Avondale Park”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유보트에게 당한 마지막 상선으로 기록되었다. 함장으로써 첫 임무를 맡았던 크러스메어 대위가 카를 되니츠의 공격 중지 명령을 고의로 무시하고 공격을 행했다고 여겨지고 있으나 본인은 그런 명령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6. 손실
전투에 투입된 6척은 모두 살아남았고 그 외에 7척이 여러 이유로 손실되었다.- U-2323: 1944년 7월 26일 기뢰에 접촉하여 침몰했다.
- U-2331: 1944년 10월 10일 철로 수송 중 기차사고로 손실되었다.
- U-2338: 1945년 5월 4일 영국 보파이터 쌍발기에게 격침되었다.
- U-2342: 1944년 12월 26일 기뢰에 접촉하여 침몰했다.
- U-2344: 1945년 2월 18일 U-2336이 실수로 들이받아 격침되었다.
임무 못 받은것도 서럽다. - U-2359: 1945년 5월 2일에 연합군 항공기에 의해 격침당했다.
- U-2367: 1945년 5월 5일 미확인 유보트 한척이 실수로 들이받아 격침되었다.
U-2344 승조원 : 너네들도 불쌍하다.
1945년 5월 초순에 31척의 23형 유보트가 승조원들에 의해 자침되었다. 20척이 연합군 측에 항복하였고 이후 현창 작전에 동원되어 격침되었다. 살아남은 건 3척뿐이다. U-2326은 이후 영국 해군 잠수함 N35로써 취역했고 U-2353 역시 영국 해군 잠수함 N37로 취역했으며 U-4706은 노르웨이 해군이 가져갔다.
(280척 계획, 61척 건조, 6척 운용에 3척만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