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2:59:09

9번 교향곡의 저주

1. 개요2. 원인3. 저주에 걸린 대표적인 작곡가들4. 9번까지도 못 가 본 작곡가들5. 번호를 아예 안 붙인 작곡가들6. 저주를 극복한 작곡가들7. 저주와는 거리가 먼 다작가들8. 관련 문서


1. 개요

  • 영어: Curse of the ninth (symphony)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이후[1] 작곡가들은 9번을 넘는 교향곡을 작곡하지 못한다는 징크스. 클래식 음악계에서 꽤 자주 언급되었고 현재에도 간간이 언급되는 유명한 떡밥 중 하나.

2. 원인

고전 시대까지는 한 사람이 작곡한 교향곡의 숫자가 무척 많은 편이었다. 모차르트의 경우 41번까지의 교향곡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68번까지 작곡했으며,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하이든은 현존하는 교향곡을 기준으로 무려 107곡을 남겼다.[2] 하이든 때만 해도 교향곡이 귀족 등 특권층의 여흥 음악이 주류였기 때문에 거의 브금에 준하는 용도로 대량으로 작곡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의 개성이 발휘되기 시작한 베토벤 이후에는 교향곡이 주문에 맞춰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창작하는 대작(masterpiece) 장르로 격상되었다. 그 결과 교향곡은 작곡가에게나 음악팬들에게나 작곡자의 작곡 능력과 음악적 개성을 과시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향곡 장르는 견고한 형식 안에서 작곡자의 개성과 독창성을 표출해야 하며, 때문에 제대로 작곡하려면 상당한 능력과 노력이 소요된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청년 시절에 수십 편의 교향곡을 완성할 수 있는 초안을 남겼지만 30살이 되어서야 교향곡 제1번 단 한 곡을 완성했으며 나머지는 장년기 시절 이후에 작곡되었다. 브람스는 한술 더 떠서 교향곡을 구상한지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1번 교향곡을 완성했다. 이 정도면 9번 교향곡을 써서 죽는다기보단 죽음이 올 때쯤 9번 교향곡을 쓰게 되는 것이라 해도 이상할 건 없을 듯하다.[3]

이런 작곡상의 어려움 때문인지 베토벤이 모두 아홉 곡의 교향곡을 남기고 타계한 뒤로 수많은 작곡가들이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대부분 9곡 이상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거나 9곡을 작곡한 이후 절필하는 바람에 '9번 교향곡의 저주'라는 떡밥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사실 베토벤 이후에도 교향곡 수가 9곡을 훌쩍 넘긴 작곡가들이 꽤 있지만, 대부분은 유명하지 않고 작품들도 대부분 음악적인 가치가 크지 않아 잘 언급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9번 교향곡의 저주는 아무 작곡가한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사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는 대작곡가의 작품으로 현재까지 널리 연주되고 전집 음반이 발매되는, 그야말로 '고전'(classic) 음악계의 거장들에 한정된다고 보면 된다. 베토벤 이후 교향곡 분야의 대작곡가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작곡가는 대체로 브람스/차이코프스키/브루크너/말러/쇼스타코비치며 여기에 사람에 따라 슈베르트/베를리오즈/멘델스존/드보르작/시벨리우스/프로코피예프 등을 추가한다. 이들 중에서 현재까지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사람은 쇼스타코비치가 유일하다.

21세기에 활동하는 작곡가들은 의학 기술의 발달로 대부분 9번 교향곡의 저주를 넘길 여건이 되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10개를 좀 넘긴 경우가 대부분이고 교향곡 문서에서 설명하듯 현대의 작곡 경향, 장르의 위상 등이 과거와는 또 다른 만큼 기계적으로 비교하기는 애매하다.[4]

3. 저주에 걸린 대표적인 작곡가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9번 교향곡 저주의 시조(?)격 인물. 건강 상태가 나쁜 말년에 9번을 공개한 후 몇 년 못 가서 사망했다. 9번이 워낙 대작이었기 때문에 8번과 9번 사이의 간격이 10년이나 되었다. 2년 정도만 빨리 완성했다면 10번 교향곡을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0번은 미완성으로 일부 스케치만 남아 있다. 이를 영국 음악학자 배리 쿠퍼가 짜깁기해서 편곡한 버전이 있지만 베토벤의 의도를 구현하기에는 완전히 역부족이란 평. 게다가 이 스케치가 교향곡 10번을 위한 스케치였는지도 논란거리다.
  • 프란츠 슈베르트: 9번을 남긴 뒤 10번을 스케치하다가 사망했다. 다만 7번의 경우 전 4악장의 초벌 작곡은 끝났지만 관현악 편곡이 덜 된 미완성 작품이라, 슈베르트와 동향인인 오스트리아 지휘자,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와 영국 음악학자, 작곡가 겸 지휘자 브라이언 뉴볼드 등이 관현악 편곡을 보완했다. 8번(흔히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작품)은 3악장 초반부까지만 쓰고 중단했으며, 그 뒤 브라이언 뉴볼드와 캐나다 음악학자 윌리엄 캐러건 등이 이 곡과 병행 작곡된 것으로 여겨지는 극음악 '로자문데'를 참고해 3악장과 4악장을 덧붙이는 작업을 했지만 공연이나 음반으로는 아직 보편화되지 못하고 있다. 슈베르트 교향곡의 넘버링은 예전부터 문제의 7번 포함 여부를 두고 혼선이 있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7번을 넘버링에 포함하면서 미완성 교향곡을 8번으로 하는 넘버링이 정착되었는데, 1960년대 중반 국제 슈베르트 협회의 결정으로 다시 7번을 빼고 여덟 곡으로 추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요즈음은 흔히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7번, 그 다음에 작곡된 C장조의 교향곡 (소위 "Great")을 8번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 안톤 브루크너: 숫자로는 총 11곡이며, 초기의 두 작품이 각각 00번0번으로 넘버링되어 있다. 브루크너는 이 두 작품의 작품성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00번 다음에 작곡한 두 번째 교향곡을 제1번으로, 0번 다음에 작곡한 네 번째 교향곡을 제2번으로 발표했다. 번호가 붙지 못한 두 교향곡은 한 때 불쏘시개로 쓸 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습작이라고 주기한 자필 악보를 그대로 보존시켰다. 번호가 붙은 교향곡으로는 9번까지 있지만, 이 9번 교향곡의 4악장이 미완성으로 끝났다. 4악장 보완판은 니콜라 사말레와 주세페 마추카, 존 앨런 필립스, 벤야민 구나르 코어스 네 사람의 공동 보완판(SMPC판)과 윌리엄 캐러건 보완판 등이 나와 있다.
  • 안토닌 드보르자크: 생전에 출판된 교향곡은 모두 다섯 곡. 그의 사후 초기 작품 네 곡이 2차대전 후 추가로 출판되었으며, 이 때 출간된 드보르자크 작품 신전집을 통해 작곡 순번대로 다시 번호가 매겨져 총 아홉 곡이 되었다. 다만 마의 9곡을 채우기는 했지만 사후 출간된 초기의 네 교향곡은 습작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고 있으며 대체로 6번 교향곡부터 그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구스타프 말러: 일단 8번까지는 차근차근 번호를 매기다가, 아홉 번째 곡은 번호를 매기지 않고 대지의 노래로 적는 등의 방법으로 저주를 피하려 했으나[5] 그도 역시 후속작으로 9번을 완성한 뒤 10번을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미완성 10번은 슈베르트의 7번처럼 초벌 작곡은 끝난 상태라 데릭 쿡, 조셉 휠러, 클린턴 카펜터 등에 의한 보완판이 계속 나오고 있다.
  • 알프레드 슈니트케: 1972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1번[6]부터 제대로 번호를 매기기 시작했다. 그 이전인 20대 때 음악원 과제물을 겸해 작곡한 초기 교향곡이 한 곡 더 있는데, 이 곡의 경우 초연 후 한참 동안 묵혀 뒀다가 브루크너와 마찬가지로 한참 뒤에야 0번이라는 번호를 붙였다. 그리고 연이은 뇌졸중과 그로 인한 오른손과 하반신의 마비, 언어 장애 등의 심한 후유증 속에서 1997년에 간신히 9번을 완성한 뒤 세상을 떴다. 9번 교향곡의 자필보는 유일하게 온전히 움직일 수 있었던 왼손으로 어설프게 갈겨쓰듯이 작성되었기 때문에, 미망인인 이리나 슈니트케가 동향인 작곡가인 알렉산드르 라스카토프에게 자필보의 해독을 의뢰해 2006년에야 제대로 정서된 악보가 출판될 수 있었다.
  • 윌리엄 볼컴(William Bolcom, 1938 ~ ): 미국의 작곡가로 2012년에 9번 교향곡을 발표했으며 2023년 현재 생존해 있기 때문에 저주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 레이프 본 윌리엄스, 쿠르트 아테르베리, 에곤 벨레슈, 말콤 아놀드, 러이터 라즐로, 쿠르트 그라운케: 모두 9번 교향곡까지 작곡했다.

4. 9번까지도 못 가 본 작곡가들

  • 1번
    • 세사르 프랑크, 에르네스트 쇼송, 폴 뒤카, 에드바르 그리그, 이그나츠 모셀레스[7],지크프리트 바그너[8]: 번호 없이 딱 한 곡만 완성했다.
    • 리하르트 바그너: 완성된 곡은 번호가 없는 채로 19세에 완성한 1곡뿐이다. 그 후 나중에 교향곡 1곡을 더 만들려는 시도는 했지만 1악장과 2악장 일부만 만들어진 상태의 미완성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 조르주 비제: 소시적에 교향곡을 여럿 남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현존하는 것은 C장조 교향곡 단 한곡이다. 그것도 그의 사후 한참 지나서 악보가 발견되는 바람에 작곡된지 80년, 작곡자가 사망한지 60년이나 지난 1935년에야 초연이 성사되었다.
  • 4번
    • 로베르트 슈만: 미완성인 초기 교향곡 빼고 번호 붙여서 네 곡.
    • 요하네스 브람스: 꽤 다작을 한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교향곡 쪽에서는 베토벤을 너무 의식한 탓에 1번 교향곡을 쓰는 데에 20년이 걸렸다. 선배인 슈만과 마찬가지로 최종적으로 네 곡의 교향곡을 남겼다.
    • 찰스 아이브스: 미완성으로 남은 '우주 교향곡'을 합치면 5곡이다.
    •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Witold Lutosławski 1913~1994): 폴란드의 작곡가
    • 프란츠 베르발트
    •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 ~ ):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 5번
    • 펠릭스 멘델스존: 공식적으로 다섯 곡의 작품을 남겼으며 비공식적으로는 초기에 습작으로 작곡한 10여 곡의 현악 합주용 소교향곡들이 있다.
    •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 아르튀르 오네게르
    • 윤이상: 두 곡의 실내교향곡은 별개로 취급된다.
    • 윌리엄 그랜트 스틸(1895-1978): 미국의 흑인 작곡가로 인종차별이 심했던 당시에 인종간 통합을 갈망하는 곡을 많이 남겼다.
  • 6번
    • 표트르 차이콥스키: 번호가 붙은 곡은 여섯 곡이나 4번5번 사이에 작곡한 '만프레드 교향곡' 을 합하면 일곱 곡이다. 간혹 7번이 있다는 소리도 있지만, 작곡자 자신이 포기한 스케치를 가지고 후대에 짜깁기한 곡이라 정규 목록에서는 빠져 있다.
    • 칼 닐센
    • 보후슬라프 마르티누
  • 7번
    • 페르디난트 리스: 저주의 창시자(?)인 베토벤의 제자. 생애 동안 출판된 교향곡은 1~6번 여섯 곡이었고, 사후 7번에 7번이 출판되었다. 이외에도 번호 미표기 교향곡 한 곡이 2005년에 출판된 걸 포함하면 여덟 곡.
    • 장 시벨리우스: 번호가 붙은 곡은 일곱 곡이며, 1번 이전에 작곡한 '쿨레르보 교향곡'을 포함하면 여덟 곡이다.
    •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 아놀드 박스: 번호가 붙은 교향곡은 7곡, 번호가 붙지 않은 교향곡은 신포니에타와 스프링 파이어를 포함해 10곡이며, 이 중 한 곡은 미완성.
  • 8번
    • 벤자민 프랑켈
    • 에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Einojuhani Rautavaara, 1928-2016): 장 시벨리우스 이후 핀란드의 가장 유명한 작곡가이다.[10]
    •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1번 교향곡을 사춘기 시절인 16살의 나이에 썼을 정도로 조숙한 작곡가였다. 8번까지는 제대로 썼지만, 9번은 1910년에 1악장을 쓰다가 팽개치고 193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도 대지 않았다.[11] 이 1악장 스케치는 글라주노프 사후 소련 음악학자, 작곡가 겸 지휘자 가브릴 유딘에 의해 보완되어 출판되었다.
    •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5번 교향곡의 제목이 한국이다.[12] 아홉번째 교향곡이 기대됐으나 2020년 3월 29일에 타계하면서 불발됐다.[13]

5. 번호를 아예 안 붙인 작곡가들

  • 엑토르 베를리오즈: 네 곡 모두 번호없이 썼으며 (환상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럴드, 로미오와 줄리엣,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 편성도 제각각이다.
  • 프란츠 리스트: 베를리오즈와 마찬가지로 번호없이 파우스트 교향곡, 단테 교향곡 두 곡을 썼다. 교향곡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통상적인 교향곡과는 거리가 있으며 교향시에 더 가깝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교향곡에 번호 같은 걸 붙인 적이 없다. 스트라빈스키가 교향곡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곡은 5개(교향곡 E플랫장조,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 시편 교향곡, C조 교향곡, 3악장의 교향곡)인데 이 중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은 프랑스어 동음이의어인 '생포니(Symphonie. 기악 합주곡이라는 뜻)'의 개념에서 착안한 곡이라 교향곡이 아니라 실내악곡으로 분류한다. 또 시편 교향곡도 교향곡이라는 제목이 붙어있긴 하지만 통상적인 교향악적인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 합창곡으로 분류되기도 한다.[14] 영어 위키백과-스트라빈스키의 작품 분류
  • 파울 힌데미트: 여섯 곡 모두 번호가 없거나 제목만 붙였다. (화가 마티스, 교향곡 E플랫조, 신포니아 세레나, 세계의 조화, 콘서트 밴드를 위한 교향곡 B플랫조, 피츠버그 교향곡)
  • 김영규, 김윤봉: 북한의 작곡가들로 이들이 창작한 교향곡에는 번호가 붙지 않았다. 김정일이 자국 관현약곡들은 기존의 노래를 주제로 해서 완전 창작하지 말고 기존 노래 선율을 최대한 살리는 2차 창작을 하도록 방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악장이 기존 노래의 제목이고 묶어서 별도의 제목이 붙는다.(예를 들면 교향곡 피바다)
  • 애런 코플랜드: 4곡의 교향곡을 남겼으며, 마지막 교향곡에만 3번(?) 교향곡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작곡 연대순으로 각각 오르간 교향곡, 무용 교향곡, 소(小)교향곡, 3번 교향곡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나중에 오르간 교향곡에 1번이라는 번호를 붙였고 무용 교향곡을 교향곡 목록에서 뺐다.
  • 벤저민 브리튼: 교향곡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곡은 세 곡(단순 교향곡, 봄 교향곡, 진혼 교향곡)이다. 이 외에 심포니에타라는 자신의 공식 첫 작품도 종종 교향곡에 넣기도 한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2번까지는 번호를 붙였으며 3번째(가정 교향곡), 4번째(알프스 교향곡) 교향곡은 번호 대신 표제를 붙였다. 표제가 붙은 두 교향곡은 교향곡보다는 교향시에 가깝다는 견해가 많다.
  • 올리비에 메시앙: 교향곡이라는 표제가 붙은 유일한 작품인 투랑갈릴라 교향곡(Turangalîla Symphony)이 있다. 다만 전통 교향곡의 형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 이중 협주곡(피아노, 옹드 마르트노)에 가까우며, 10악장으로 이루어진 대곡이다.

6. 저주를 극복한 작곡가들

보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 의학이 발달한 20세기에 활동한 작곡가들이다. 21세기에 활동한 작곡가라면 뒤늦게 작곡을 시작하지 않은 이상 가뿐히 극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들 역시 19세기 이전에 태어났다면 저주를 극복할 만큼 장수하지 못했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 10번:
    • 요아힘 라프: 10번까지 완성했고, 미완성작으로 11번 교향곡이 존재한다. 그리고 번호가 붙어 있지 않은, 현재는 유실된 초기 교향곡 역시 하나 존재하기에 이론상으로는 12개까지 늘어난다. 19세기에 저주를 돌파한 보기 드문 인물이지만, 정작 작곡자 본인이 사후 무명화되어 좀처럼 언급이 안 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루이 슈포어: 이 분야에서 가장 특이한 사례로, 작곡가 사후에 저주가 무력화되었기 때문이다. 1번부터 9번까지는 번호 붙여서 제대로 출판했지만, 마지막 10번의 경우 본인이 만족할 수 없었는지 출판도 초연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 그 뒤 1998년에 베를린 국립도서관에서 고문서 정리 중 자필 총보와 사보가가 작성한 파트 악보가 발견되었고, 같은 해 미국 뉴욕에서 121년 만에 초연된 뒤 2006년에 출판되었다.
    • 에두아르드 투빈: 상술된 라프와 더불어 10번까지 완성했고, 미완성작으로 11번 교향곡이 존재한다.
    • 한스 베르너 헨체: 10번까지 남겼다. 쇼스타코비치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 중에서는 알프레트 슈니트케와 더불어 그나마 가장 '거물'급이지만, 음악이 워낙 난해한 탓에 연주 빈도가 높지는 않다.[15]
  • 12번:
    • 다리우스 미요: 작품 번호가 443에 달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다작가였다.
    • 알렉산드르 모이체스: 12번까지 남겼다.
    • 필립 글래스: 2019년에 12번이 초연되었다. 워낙 양산형으로 곡을 쓰는지라[16] 그가 개진하는 교향곡 싸이클은 현재 다소 평가절하되는 측면이 있다.
  • 13번:
    • 로이 해리스: 13곡을 남겼다. 이 쪽은 9가 아니라 13에 큰 불안을 느낀 케이스인지라 13번째 교향곡을 14번 교향곡이라 발표하는 촌극을 벌였지만, 이것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 되었고 추후에 13번으로 정리되었다. 일반적으로 연주 빈도가 높진 않으나 3번 교향곡만은 20세기 교향곡의 걸작 대열에 포함되어 거론된다.
    • 나운영
  • 14번:
    • 헹크 바딩즈
  • 15번: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베토벤 이후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최초(이자 현재까지 마지막)의 대작곡가로 유명하다. 번호를 제대로 붙인 곡을 15개 남겼다. 하필이면 9번을 발표하고 나서 정치적 공격을 받아 자살 충동에까지 빠졌다는데, 이 때에 생을 마감했거나 교향곡 작곡을 포기했다면 문자 그대로 저주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추가할 뻔했다. 하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자 마치 기다리기나 했듯이 10번을 발표하여 저주를 깸과 동시에 이목을 끌어모았다. 이를 두고 지옥에서 스탈린을 데려가면서 쇼스타코비치의 9번의 저주가 풀려 이후 15번 교향곡을 쓸 때까지 생명을 연장했다는 유머가 있다. 현재까지 당대 최고 수준의 대작곡가들 중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유일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 16번:
    • 알란 페터손: 1번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이후 17번까지 열여섯 곡은 모두 완성했다. 1번은 동향인인 스웨덴 트롬보니스트, 지휘자 겸 작곡가 크리스티안 린트베리에 의한 보완판이 있다.
    • 루에드 랑고르: 덴마크의 작곡가로 일반인은 물론이고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지만 무려 16개의 교향곡을 남겼다.

7. 저주와는 거리가 먼 다작가들

20곡 이상의 교향곡을 작곡해 아예 저주 자체를 파괴해버린 작곡가들도 존재한다.
  • 미치수아프 바인베르크: 22곡.
  • 니콜라이 먀스콥스키: 27곡으로 역대 러시아 작곡가들 중 가장 많은 교향곡을 작곡했다. 초기 교향곡들은 나름대로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특히 6번의 경우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6번과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4번을 이어주는 러시아 교향곡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후기로 갈수록 독창성이 부족해지고 음악이 전체적으로 보수적으로 변한 탓에 현재는 이 사람의 작품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17]
  • 해버걸 브라이언: 32곡.
  • 앨런 호바네스: 공식 추산된 곡만 67곡이며 가장 유명한 곡은 초기 작품인 2번(일명 '신비의 산')이다. 다만 신비의 산이 초기작품이기는 해도 그의 나이 만 44세에 작곡되었다.
  • 레이프 세게르스탐(1944~ ): 교향곡 다작 부문의 본좌로, 2022년까지 352곡의 교향곡을 발표하였다. 최다 교향곡 작곡가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1998년 작곡된 23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교향곡 찍어내기(?)를 시작했으니 교향곡만 1년에 평균 15곡씩 작곡해 온 셈. 다만 대부분 연주 시간이 20분 내외의 단일악장 작품이라 짧은 축에 속하며[18], 정성이 부족한(?) 기네스 등재용 음악이라는 의혹도 받는다.

8. 관련 문서



[1] 41번까지 작곡한 모차르트(1756~1791)는 베토벤(1770~1827)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니 논외.[2]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는 아니라고 여겨지고 있다.[3] 요절한 슈베르트도 저주의 예시로 드는 경우가 있는데 슈베르트의 교향곡은 완성작만 따지면 7개이고 사실상 완성작급 인지도를 가진 미완성 교향곡까지 쳐도 7.5개라고 할 수는 있겠다. 물론 워낙 다작가라 이 만큼을 완성한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지만.[4] 쇼스타코비치 이후에는 한스 베르너 헨체나 필립 글래스가 교향곡 다작의 계보를 이어가긴 했으나 잘 연주되지도 않고, 필립 글래스는 작곡 스타일 상 작품을 많이 쓰기 용이한 게 사실이라 굳이 빗대자면 낭만주의~근대보다는 바로크~고전주의 시기와 비교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글래스 스스로도 고전주의자를 표방하기도 했고.[5] 대지의 노래는 사실 연가곡집이라고 우겨도 교향곡이라고 우겨도 양쪽 다 납득이 갈 정도로, 그 사이에 있는 애매모호한 작품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지의 노래 문서 참조.[6] 폴리스타일리즘으로 쓰인 굉장히 도전적인 색채의 대곡으로, 소련 당국의 연주 방해를 받았음에도 소련 음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7] 베토벤의 제자로 현재는 음악보다 베토벤의 제자 및 멘델스존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8] 리하르트 바그너의 아들이다.[9] 다만 작곡가 스스로 리허설해보고는 마음에 안 든다며 연주를 포기했고, 공개 연주도 1991년에야 이루어졌다고 한다.[10] 맨해튼 삼부작과 가을정원 등을 포함하면 10곡이 넘기는 한다.[11] 혹자는 글라주노프가 9번 교향곡의 작곡을 포기한 덕분에 장수한 것이라는 평을 하기도 한다.[12] 한국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붙었다는데, 해외에서는 그냥 제목 없이 불리는 경우가 많다. 뭐야 이거 이어령 당시 문화부 장관의 부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단악장의 작품인데 한국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주제가 인용된다.[13] 영문 위키백과, 국내 뉴스, 해외 뉴스[14] 예를 들어 베토벤 9번이나 말러 2, 3, 8번 같이 합창이 딸린 교향곡도 있는데 왜 합창곡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편성을 보면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 바이올린, 비올라가 빠진 5관 편성에 피아노 2대가 쓰인 파격적인 편성이라 전통적인 의미의 교향곡이라고 보기가 애매하다.[15] 생전의 윤이상도 헨체가 젊은 나이에 너무 잘 나간다며 시샘했다고 한다.[16] 자기표절(...) 의혹이 자주 제기된다. n번 교향곡을 조금 바꿔써서 n+1번 교향곡이라고 발표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들이 볼때는 그냥 같은 n번의 개정판 정도로 보인다.[17] 쇼스타코비치의 말로는 제자들에게 '자네들이 쓰는 건 다성 음악이 아니라 잡성 음악'이라 지적했다지만, 정작 본인도 잡성 음악을 많이 만들어냈다고. 15곡을 쓴 쇼스타코비치 입장에서도 먀스콥스키의 27곡의 교향곡이 어지간히 양산형으로 느껴졌던 것으로 보인다.[18] 동향인 핀란드의 선배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