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6 17:39:38

9번 교향곡의 저주

1. 설명2. 저주에 걸린 대표적인 작곡가들3. 9번까지도 못 가 본 작곡가들4. 번호를 아예 안 붙인 괴짜 작곡가들5. 저주를 극복한 작곡가들6. 저주 따위는 국 끓여 먹은 다작가들7. 관련 문서


1. 설명

  • 영어: Curse of the ninth (symphony)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이후 작곡가들은 9개를 넘는 교향곡을 작곡하지 못한다."라는 징크스. 클래식 음악계에서 꽤 자주 언급되었고 현재에도 언급되는 유명한 떡밥 중 하나.

고전 시대까지는 한 사람이 작곡한 교향곡의 숫자가 무척 많은 편이었다. 모차르트의 경우 41번까지의 교향곡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68번까지 작곡했으며,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하이든은 현존하는 교향곡을 기준으로 무려 107곡을 남겼다. 하이든때만 해도 교향곡이 귀족 등 특권층의 여흥 음악이 주류였기 때문에 거의 브금에 준하는 용도로 대량으로 작곡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의 개성이 발휘되기 시작한 베토벤 이후에는 교향곡이 주문에 맞춰 납품(?)하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창작하는 대작(masterpiece) 장르로 격상되었다. 그 결과 교향곡은 작곡가에게나 음악팬들에게나 작곡자의 작곡 능력과 음악적 개성을 과시하는데 가장 적합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향곡 장르는 견고한 형식 안에서 작곡자의 개성과 독창성을 표출해야 하며, 때문에 제대로 작곡하려면 상당한 능력과 노력이 소요된다. 예를 들어 베토벤은 청년 시절에 수십 편의 교향곡을 완성할 수 있는 초안을 남겼지만 30살이 되어서야 교향곡 제1번 단 한 곡을 완성했으며 나머지는 장년기 시절 이후에 작곡되었다. 브람스는 한술 더 떠서 교향곡을 구상한지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1번 교향곡을 완성했다.

이런 작곡상의 어려움 때문인지 베토벤이 모두 아홉 곡의 교향곡을 남기고 타계한 뒤로 수많은 작곡가들이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대부분 9곡 이상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거나 9곡을 작곡한 이후 절필하는 바람에 '9번 교향곡의 저주'라는 떡밥이 언급되기 시작했다.하지만 대개 이런 저주가 그렇듯이 한 번 깨진 이후에는 무력화. 비슷한 예로는 미국 대통령들의 테쿰세의 저주인데 이것도 깨졌다.[1] 이는 와글와글 클래식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실제로는 후술되는 것처럼 베토벤 이후에도 교향곡 수가 9곡을 훌쩍 넘긴 작곡가들이 꽤 있다. 다만 이들이 남긴 교향곡들은 대부분 음악적인 가치가 크지 않아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잘 언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9번 교향곡의 저주는 아무 작곡가한테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사에 한 획 이상을 그은 대작곡가의 작품으로 현재까지 널리 연주되고 전집 음반이 발매되는, 그야말로 '고전'(classic) 음악계의 거장들에 한정된다고 보면 된다. 21세기에 활동하는 작곡가들은 의학 기술의 발달로 대부분 9번 교향곡의 저주를 넘기겠지만, 10개를 좀 넘긴 경우가 대부분.

여기에 해당하는 이들로는 대체로 베토벤/브람스/차이코프스키/브루크너/말러/쇼스타코비치며 여기에 사람에 따라 슈베르트/베를리오즈/멘델스존/드보르작/시벨리우스/프로코피에프 등을 추가한다. 이들 중에서 현재까지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사람은 쇼스타코비치가 유일하다. 다만 현대 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필립 글래스가 최근에 10번 교향곡을 발표했는데, 이 분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관계로 그의 교향곡은 좀 애매한 위치에 있다.

2. 저주에 걸린 대표적인 작곡가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9번 교향곡 저주의 시조(?) 되시는 분. 건강 상태가 나쁜 말년에 9번을 공개한 후 몇 년 못 가서 사망했다. 9번이 워낙 대작이었기 때문에 8번과 9번 사이의 텀이 10년이나 되었다. 2년 정도만 빨리 완성했다면 10번 교향곡을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0번은 미완성으로 일부 스케치만 남아 있다. 이를 영국 음악학자 배리 쿠퍼가 짜깁기해서 편곡한 버전이 있지만 베토벤의 의도를 구현하기에는 완전히 역부족이란 평. 애당초에 이 스케치가 교향곡 10번을 위한 스케치였는지도 논란거리다.
  • 프란츠 슈베르트: 9번을 남긴 뒤 10번을 스케치하다가 사망했다. 다만 7번의 경우 전 4악장의 초벌 작곡은 끝났지만 관현악 편곡이 덜 된 미완성 작품이라, 슈베르트와 동향인인 오스트리아 지휘자,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펠릭스 바인가르트너와 영국 음악학자, 작곡가 겸 지휘자 브라이언 뉴볼드 등이 관현악 편곡을 보완했다. 8번(흔히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작품)은 3악장 초반부까지만 쓰고 중단했으며, 그 뒤 브라이언 뉴볼드와 캐나다 음악학자 윌리엄 캐러건 등이 이 곡과 병행 작곡된 것으로 여겨지는 극음악 '로자문데'를 참고해 3악장과 4악장을 덧붙이는 작업을 했지만 공연이나 음반으로는 아직 보편화되지 못하고 있다. 슈베르트 교향곡의 넘버링은 예전부터 문제의 7번 포함 여부를 두고 혼선이 있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7번을 넘버링에 포함하면서 미완성 교향곡을 8번으로 하는 넘버링이 정착되었는데, 1960년대 중반 국제 슈베르트 협회의 결정으로 다시 7번을 빼고 여덟 곡으로 추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요즈음은 흔히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7번, 그 다음에 작곡된 C장조의 교향곡 (소위 "Great")을 8번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 안톤 브루크너: 숫자로는 총 11곡이며, 초기의 두 작품이 각각 00번0번으로 넘버링되어 있다. 브루크너는 이 두 작품의 작품성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00번과 0번 사이에 작곡한 두 번째 교향곡을 제1번으로 발표했다. 번호가 붙지 못한 두 교향곡은 한 때 불쏘시개로 쓸 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습작이라고 주기한 자필 악보를 그대로 보존시켰다. 번호가 붙은 교향곡으로는 9번까지 있지만, 이 9번 교향곡의 4악장이 미완성으로 끝났다. 4악장 보완판은 니콜라 사말레와 주세페 마추카, 존 앨런 필립스, 벤야민 구나르 코어스 네 사람의 공동 보완판(SMPC판)과 윌리엄 캐러건 보완판 등이 나와 있다.
  • 안토닌 드보르자크: 생전에 출판된 교향곡은 모두 다섯 곡. 그의 사후 초기 작품 네 곡이 2차대전 후 추가로 출판되었으며, 이 때 출간된 드보르자크 작품 신전집을 통해 작곡 순번대로 다시 번호가 매겨져 총 아홉 곡이 되었다. 다만 마의 9곡을 채우기는 했지만 사후 출간된 초기의 네 교향곡은 습작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고 있으며 대체로 6번 교향곡부터 그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1번 교향곡을 사춘기 시절인 16살의 나이에 썼을 정도로 조숙한 작곡가였다. 8번까지는 제대로 썼지만, 9번은 1910년에 1악장을 쓰다가 팽개치고 193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도 대지 않았다. 이 1악장 스케치는 글라주노프 사후 소련 음악학자, 작곡가 겸 지휘자 가브릴 유딘에 의해 보완되어 출판되었다.
  • 구스타프 말러: 일단 8번까지는 차근차근 번호를 매기다가, 아홉 번째 곡은 저주를 피하려고 번호를 안매기고 대지의 노래로 적는 훼이크 스킬을 발휘했으나, 그도 역시 후속작으로 9번을 완성한 뒤 10번을 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미완성 10번은 슈베르트의 7번처럼 초벌 작곡은 끝난 상태라 데릭 쿡, 조셉 휠러, 클린턴 카펜터 등에 의한 보완판이 계속 나오고 있다.
  • 랄프 본 윌리엄스, 쿠르트 아테르베리, 에곤 벨레슈, 말콤 아놀드, 러이터 라즐로, 쿠르트 그라운케: 9번까지만 쓰고 사망했다.
  • 알프레드 슈니트케: 1972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1번부터 제대로 번호를 매겼으며 그 이전인 20대 때 음악원 과제물을 겸해 작곡한 초기 교향곡이 한 곡 더 있는데, 이 곡의 경우 초연 후 한참 동안 묵혀 뒀다가 브루크너와 마찬가지로 한참 뒤에야 0번이라는 번호를 붙였다. 그리고 연이은 뇌졸중과 그로 인한 오른손과 하반신의 마비, 언어 장애 등의 심한 후유증 속에서 1997년에 간신히 9번을 완성한 뒤 세상을 떴다. 9번 교향곡의 자필보는 유일하게 온전히 움직일 수 있었던 왼손으로 어설프게 갈겨쓰듯이 작성되었기 때문에, 미망인인 이리나 슈니트케가 동향인 작곡가인 알렉산드르 라스카토프에게 자필보의 해독을 의뢰해 2006년에야 제대로 정서된 악보가 출판될 수 있었다.
  • 윌리엄 볼컴(William Bolcom, 1938 ~ ): 미국의 작곡가로 2012년에 9번 교향곡을 발표했으며 2019년 현재 생존해 있기 때문에 저주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3. 9번까지도 못 가 본 작곡가들

4. 번호를 아예 안 붙인 괴짜 작곡가들

  • 엑토르 베를리오즈: 네 곡 모두 번호없이 썼다. (환상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럴드, 로미오와 줄리엣,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
  • 프란츠 리스트: 베를리오즈와 마찬가지로 번호없이 파우스트 교향곡, 단테 교향곡 두 곡을 썼다. 교향곡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기는 하지만 통상적인 교향곡과는 거리가 있으며 교향시에 더 가깝다.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세 곡 모두 번호가 없다. (교향곡 E플랫장조, C조의 교향곡, 3악장의 교향곡) 스트라빈스키가 교향곡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곡은 5개인데 이 중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은 프랑스어 동음이의어인 '생포니(Symphonie. 기악 합주곡이라는 뜻)' 의 개념에서 착안한 곡이라 교향곡이 아니라 실내악곡으로 분류한다. 또 시편교향도 교향곡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만 통상적인 교향악적인 작품으로 보기 어려워서 주로 합창곡으로 분류한다.[3] 영어 위키백과-스트라빈스키의 작품 분류
  • 파울 힌데미트: 여섯 곡 모두 번호가 없거나 제목만 붙였다. (화가 마티스, 교향곡 E플랫조, 신포니아 세레나, 세계의 조화, 콘서트 밴드를 위한 교향곡 B플랫조, 피츠버그 교향곡)
  • 김영규, 김윤봉: 북한의 작곡가들로 이들이 창작한 교향곡에는 번호가 붙지 않았다. 김정일이 자국 관현약곡들은 기존의 노래를 주제로 하여 완전 창작하지 말고 기존 노래 선율을 최대한 살리는 2차 창작을 하도록 방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악장이 기존 노래의 제목이고 묶어서 별도의 제목이 붙는다.(예를 들면 교향곡 피바다)
  • 애런 코플랜드: 4곡의 교향곡을 남겼으며, 마지막 교향곡에만 3번(?) 교향곡이라는 표제를 붙였다. 작곡 연대순으로 각각 오르간 교향곡, 무용 교향곡, 소(小)교향곡, 3번 교향곡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나중에 오르간 교향곡에 1번이라는 번호를 붙였고 무용 교향곡을 교향곡 목록에서 뺐다.
  • 벤저민 브리튼: 교향곡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 곡은 단순 교향곡, 진혼 교향곡 두 곡이다. 이 외에 심포니에타라는 자신의 공식 첫 작품도 종종 교향곡에 넣기도 한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2번까지는 번호를 붙였으며 3번째(가정 교향곡), 4번째(알프스 교향곡) 교향곡은 번호 대신 표제를 붙였다. 표제가 붙은 두 교향곡은 교향곡보다는 교향시에 가깝다는 견해가 많다.
  • 올리비에 메시앙: 교향곡이라는 표제가 붙은 유일한 작품인 투랑갈릴라 교향곡(Turangalîla Symphony)이 있다.
물론 9번이라는 번호를 돌파한 교향곡 작곡가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대부분 20세기, 21세기에 활동한 인물들이며, 아래 목록 참조.

5. 저주를 극복한 작곡가들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의학 발달한 20세기에 활동한 작곡가들이다. 21세기에 활동한 작곡가면 뒤늦게 작곡을 시작하지 않은 이상 가뿐히 극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들이 19세기 이전에 태어났다면 저주를 극복할 만큼 장수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번호 제대로 붙여서 15곡 남겼다.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10번을 발표하기 두 달 전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했는데[4], 지옥에서 스탈린을 데려가면서 프로코피예프가 저승 길동무로 데려간 게 아니고? 쇼스타코비치의 "9번의 저주"가 풀려 이후 15번 교향곡을 쓸 때까지 장수했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현재까지 당대 최고 수준의 대작곡가 레벨에서 9번 교향곡의 저주를 깬 유일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루이 슈포어: 1번부터 9번까지는 번호 붙여서 제대로 출판했지만, 마지막 10번의 경우 자신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출판도 초연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 그 뒤 1998년에 베를린 국립도서관에서 고문서 정리 중 자필 총보와 사보가가 작성한 파트 악보가 발견되었고, 같은 해 미국 뉴욕에서 121년 만에 초연된 뒤 2006년에 출판되었다. 이는 작곡자 사후에 저주가 무력화된 극히 이례적인 사례.
  • 요아힘 라프: 번호 제대로 붙여서 11곡을 남겼다.[5] 19세기에 저주를 돌파한 보기 드문 인물이지만, 정작 작곡자 자신이 사후 무명화되어 좀처럼 언급이 안 되는 것이 안타깝다.
  • 다리우스 미요: 12번까지 남겼다.
  • 에이토르 빌라-로부스: 소실 혹은 파기된 5번을 제외하고 11곡이 현존한다.
  • 잔 프란체스코 말리피에로 : 번호 붙은 걸로는 11곡 완성. 번호 없는 표제 교향곡도 여섯 곡을 남겼다.
  • 헹크 바딩즈: 14번까지 남겼다.
  • 샤를마리 비도르: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은 셋 밖에 되지 않지만 오르간 만을 위한 교향곡 10곡을 작곡했다.
  • 알란 페터손: 1번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이후 17번까지 열여섯 곡은 모두 완성했다. 1번은 동향인인 스웨덴 트롬보니스트, 지휘자 겸 작곡가 크리스티안 린트베리에 의한 보완판이 있다.
  • 에두아르드 투빈: 10번까지 완성했고, 11번은 미완성.
  • 알렉산드르 모이체스: 12번까지 남겼다.
  • 나운영: 13번까지 남겼다.
  • 한스 베르너 헨체: 10번까지 남겼다.
  • 주지안얼: 10번까지 남기고 은퇴했다.
  • 필립 글래스: 2012년에 10번이 초연되었다.

6. 저주 따위는 국 끓여 먹은 다작가들

저주를 극복한 걸 넘어 아예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개발살을 낸 굇수들도 존재한다. 아래는 그 목록.
  • 미치수아프 바인베르크: 22곡.
  • 니콜라이 먀스콥스키: 27곡으로 역대 러시아 작곡가들 중 가장 많은 교향곡을 작곡했다. 다만 독창성이 부족하고 작법도 평이한 탓에 이 분 작품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 해버걸 브라이언: 32곡.
  • 앨런 호바네스: 공식 추산된 곡만 67곡이며 가장 유명한 곡은 초기 작품인 2번(일명 '신비의 산')이다. 다만 신비의 산이 초기작품이기는 해도 그의 나이 만 44세에 작곡되었다.
  • 레이프 세게르스탐(1944~ ): 2018년 10월 기준 327곡을 발표한 이 분야의 본좌. 기네스북에 최다 교향곡 작곡가로도 등재되어 있다. 1998년 작곡된 23번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교향곡 찍어내기(?)를 시작했으니 교향곡만 1년에 평균 15곡씩 작곡해 온 셈. 다만 대부분 연주 시간이 20분 내외로 짧은 축에 속한다.

7. 관련 문서




[1] 레이건부터는 죽기 직전까지 가는걸로 저주의 강도가 크게 줄었다.[2] 한국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붙었다. 단악장의 작품인데 한국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주제가 인용된다.[3] 예를 들어 베토벤 9번, 말러 2,3,8번 같이 합창이 있는 교향곡도 있는데 왜 합창곡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편성을 보면 현악에서 바이올린, 비올라가 몽창 빠지고 그 자리를 피아노 2대가 덩그러니 차지하니까 전통적인 의미의 교향곡이라고 보기가 참 애매하다. (관악에서도 클라리넷이 빠지긴 한데 이건 굳이 따지면 고전파 교향곡에서 가끔 보이는 일이긴 하니... 물론 4관 편성곡에서 클라리넷이 빠지는건 흔한 일은 아니지만)[4] 공교롭게도 쇼스타코비치의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프로코피예프 역시 스탈린과 정확히 같은 날 사망했다. 다만 프로코피예프가 두 시간 정도 먼저 세상을 떠나서 스탈린 이후의 소련은 한 순간도 누리지 못했다.[5] 단 11번 교향곡은 미완성작이라서 좁은 의미에서는 10번 교향곡이 마지막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