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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과 NEC 홈 일렉트로닉스가 공동 개발한 게임기 목록 | |
초대 PC 엔진 | PC 엔진+CD-ROM2+인터페이스 유닛[1]+시스템 카드 | 코어그래픽스와 코어그래픽스 2 |
PC 엔진 셔틀 | 슈퍼그래픽스 | PC 엔진 듀오 |
PC 엔진 듀오 RX | 북미판 터보그래픽스-16 + CD | 레이저액티브[2] |
1. 개요
PCエンジン(PC Engine) / TurboGrafx-16
허드슨(現 코나미)과 NEC 홈 일렉트로닉스[3]가 공동으로 개발하고, NEC 홈 일렉트로닉스에서 1987년 10월 30일에 발매한 8비트 가정용 거치형 게임기. 발매 당시 가격은 일본 기준으로 24,800엔이었다. 약칭은 PCE로, 에뮬레이터에서 롬 파일의 확장자도 PCE다.
북미에는 터보그래픽스 식스틴(TurboGrafx-16)이라는 이름으로 1989년 8월 29일에 발매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경우 일본에서 PC 엔진을 직수입하기도 했고,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은 유통사를 통해 Turbografx[4]를 발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스페인 같은 경우 유통법 문제 때문에 조기 단종했다.[5]
2. 역사
패미컴의 1호 서드파티라 할 수 있는 허드슨에서는 1984년에 패미컴 베이직을 통해 패미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패미컴의 성능 한계를 빨리 알아차렸다. 허드슨의 경영자인 쿠도 유지, 쿠도 히로시 형제는 같은 해에 패미컴으로 발매한 너츠 앤 밀크와 로드러너의 히트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밑천 삼아서 더 쉬운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강력한 성능을 얻을 수 있는 칩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그저 자사용 게임에 사용할 보조 연산 칩 같은 걸 만들 생각으로 사내의 반도체 회사 출신 기술자 등을 모아서 사양서를 만들고 반도체 회사를 찾아 다녔으나 아무리 허드슨이 소프트업계의 거물이라고 해도(NEC를 포함해서) 컴퓨터를 만드는 콧대 높은 대기업들에서는 게임기용 칩을 만들려는 홋카이도의 촌뜨기들을 상대해 줄 리 만무했다. 전국을 돌다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세이코 엡손과 계약을 채결한 허드슨에서는[6] 마침내 1985년 봄, 칩의 개발에 착수하여 1986년경에 완성했는데 C62 시스템이라 불렀다. C62라는 명칭의 유래는 한 때 자신의 고향 홋카이도의 하코다테 본선을 달렸던 C62형 증기 기관차이다.[7] 개발 비용은 2억엔. 수량은 1천개였나 1만개 정도였다고 한다(사장의 적당한 증언). 그렇게 만들어진 칩의 성능이 생각보다 좋게 나오자 쿠도 히로시 사장은 '이걸로 뭔가 될까?' 하며 게임기 사업을 생각했다.처음에는 퍼스컴으로 면식이 있는 샤프로 들고갔고, 샤프 측에서도 '이건 장사가 되겠다!'하고 이야기가 오갔지만 샤프와 닌텐도의 관계 때문에 결국 유야무야 하고 말았다. 그러자 쿠도 히로시 사장은 NEC로 들고갔는데, 마침 NEC에서는 '마침 우리도 게임기 해볼까?'하는 단계에 있었기에 이야기를 잘 진행했다고 한다.[8] 이해가 일치한 덕분에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1987년 10월에 PC 엔진을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개발 배경이 이런 만큼 당연히 허드슨의 게임들이 많다. 이 밖에도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타이토, 남코, 아이렘의 아케이드 작품들은 거의 PC 엔진으로 이식했는데, 해당 이식작들의 품질이 아케이드 원작과 비슷했기 때문에 PC 엔진의 판매량 상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아이렘의 R-TYPE의 이식이 결정적이였는데, 그 이전까지는 그냥 커다란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PC수준의 그래픽을 가진 게임들밖에 없었지만 아케이드버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그래픽 이식능력을 처음으로 보여준것이 R-TYPE의 이식이였다.
NEC 홈 일렉트로닉스에서는 허드슨과의 개발 이전부터 CD-ROM을 활용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초기 PC 엔진을 발매한지 1년 조금 지나 1988년에 'CD-ROM2'[9]이라는 이름의 CD-ROM 드라이브 확장 기기를 발매해 최초의 CD 게임기가 되었다. 이를 통하여 당시의 타 게임기의 추종을 불허하는 540 MB의 대용량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을 이용하여 에메랄드 드래곤, 부라이 시리즈, 아루남의 이빨, 천외마경 등의 명작을 쏟아낸 게임기이기도 하다.
PC 엔진의 총 판매량은 584만 대였는데, 이 중 일본에서의 판매량이 약 390만 대였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해외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10] 하지만 일본 내 판매량 350만 대를 달성한 메가드라이브보다 많이 팔렸으며 CD-ROM2은 192만대 판매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태동하기 시작한 미소녀 게임(ex. 초대 도키메키 메모리얼, 은하아가씨전설 유나 시리즈)들과 당시 기준으로 걸출한 RPG 천외마경 시리즈를 앞세워 일본 내에서는 어느 정도 입지를 세운 게임기였다. 당시 NEC 홈 일렉트로닉스의 성공 기준은 PC-9801이기 때문에, 가정용 PC인 PC98보다는 게임기인 PC 엔진이 많이 팔려서 나름대로 만족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3. 사양
- 사운드: CPU에 내장
- 프로그램으로 제어할 수 있는 웨이브테이블 방식의 사운드 6채널.
- 그러나 파형 데이터로 5비트 값 32개만 넣을 수 있었고, 이를 프로그램으로 음높이나 음량을 제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같은 세대 게임기의 음악 수준보다 약간 더 나은 수준이었다.
- 채널 0, 1의 경우 채널 1에 LFO 기능이 있어 이를 이용해 채널 0을 비브라토 구현 가능
- 채널 4, 5는 음원 대신 노이즈 생성 가능
- 샘플 재생 주파수: 7.16MHz÷(25×32)≒7 kHz
- VDC (Video Display Controller): 허드슨-세이코 엡손 HuC6270
- 스프라이트와 배경을 합성해 팔레트 정보와 함께, 9비트 디지털 비디오 데이터를 VCE (Video Color Encoder) 칩으로 출력
- 해상도: 256, 320, 336, 512×240 까지 지원하나 보통은 256×240로 동작하며 임의로 해상도 전환이 가능
- 최대 컬러수: 512색 (RGB 각 3비트씩 총 9비트)
- 최대 동시 발색수: 482색 (241 백그라운드, 241 스프라이트)
- 백그라운드 타일: 크기는 8×8 도트, 색상은 256색 중 15색+투명색, 최대 2048개
- 스프라이트: 크기는 16×16, 16×32, 16×64, 32×16, 32×32, 32×64 도트, 색상은 256색 중 15색+투명색, 스캔 라인당 최대 16개(가로 해상도가 320의 경우 14개) 합계 최대 64개
- DMA 기능: CPU↔VRAM, VRAM↔VRAM 또는 VDC↔VRAM간의 데이터 전송을 지원
- VCE (Video Color Encoder): 허드슨-세이코 엡손 HuC6260
- VDC에 9비트 디지털 비디오 데이터를 받아 VCE에 있는 컬러 팔레트로 매칭한 후 DAC로 변환해 TV에 영상 신호를 출력한다.
- 메모리
- 메인 RAM : 8KB SRAM[11]
- VRAM: 64KB SRAM (32KB 2개로 구성)
- 게임 카트리지: HuCARD
'엔진'이라는 이름처럼 '코어 구상'이라는 설계 사상이 특징이다. 게임기 본체는 최소한의 기능만 갖고 있지만 후면에 23x3=69핀에 달하는 폭넓은 확장 단자를 가진 초창기 게임기로서는 유례없는 확장성을 가진 기종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치 현대의 IoT 스마트홈 마냥 여기에 각종 장치를 연결하여 PC엔진을 통해 조작한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었으나 그에 대응하는 장치를 만드는 것도 큰 일이었고 듀오를 개발하면서 단자도 폐기되어 결국 없던 일이 되고 만다.
8비트 CPU를 가지고 있지만 CPU의 엄청난 스피드, 패미컴의 10배에 달하는 최대 표현 색상 수, 그럭저럭 괜찮은 성능의 음원[12] 등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아케이드 게임을 원작에 가깝게 이식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특히 CPU의 빠른 클럭 주파수로 슈팅 게임에 강했으며, 백그라운드가 한 장인 것이 약점이어서 당시 고사양 그래픽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다중 스크롤'을 구현할 수는 없지만, 네오지오가 그랬듯이 스프라이트를 배경에 할당하거나 래스터 스크롤에 활용하는 테크닉으로 보충하기도 했다. 배경과 스프라이트 합쳐서이긴 해도 500개 색에 가까운 동시 표현 색수로 표현할 수 있는 그래픽은 총 화소수가 슈퍼 패미컴의 15비트 컬러에는 미치지 못하긴 했어도 동시 표현 색수가 많아 꿀리지 않는 그래픽을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PC 엔진이 16비트 시대까지 버틸 수 있었다. 더욱이 1988년에 나온 대용량의 CD-ROM으로 CD-DA로 수록된 높은 수준의 음원[13]과 성우의 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게임들은 닌텐도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세계 그 자체였다.
게임 매체로는 허드슨과 미쓰비시수지(現 미쓰비시 케미칼)가 개발한 Bee Card를 기반으로 만든 'HuCard(휴카드)'라는 매체를 사용한다. 롬팩보다 작고 얇아서 그대로 휴대용 PC 엔진 GT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용량이 2Mbit로 제한되어 있어서 초창기의 킬러소프트였던 알타입의 경우에는 2개로 쪼개서 발매해야했다. 휴카드의 용량은 이후 점점 커져서 6-8메가비트의 게임들도 여럿 나왔으며 스트리트 파이터 2 대쉬는 20메가비트의 대용량으로 발매된다.
휴카드는 초기에 저장 기능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PC 엔진 초기 게임들을 게임을 도중부터 이어서 하려면 부활의 주문 같은 암호를 입력하는 방식을 사용해야 했다. 1988년 발매된 CD-ROM2에는 본체에 SRAM을 추가해 게임 저장 기능을 추가했지만 PC 엔진 만으로는 1989년 8월 8일 발매된 외부 단자로 접속하는[14] '天の声2'(텐노코에2) 이외에도 세이브군, 백업 부스터 같은 기기를 사용해야 했다. CD-ROM2의 SRAM에 저장된 데이터는 배터리로 유지되기 때문에 배터리 수명이 다 하면 삭제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1991년 휴카드에 SRAM과 배터리를 장착한 저장 장치 '天の声BANK'(텐노코에 뱅크)를 발매해 저장 데이터 백업이 가능해졌다. [15]
이후 PC 엔진 CD-ROM2가 나오면서 CD를 게임 매체로 사용하나, 불법 복제 방지를 위해 파일 시스템을 1988년에 소니와 필립스가 만든 표준 규격인 CD-ROM(옐로우북)의 ISO 9660이 아닌 독자 파일 시스템을 채택했다. 일반 CD-ROM 드라이브에 PC 엔진 CD-ROM2의 CD를 넣어도 읽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16]
북미판인 터보그래픽스-16은 똑같이 생긴 휴카드를 쓰지만, 북미판과 일본판 단자의 배열 순서가 달라서 이를 바꿔주는 어댑터를 이용해야 플레이할 수 있다.
이후에 발매한 PC 엔진의 업그레이드 기기인 PC 엔진 슈퍼 그래픽스는 메인 메모리와 비디오 메모리를 각각 4배, 2배로 늘렸고, HuC6270 그래픽 프로세서를 두 개 박아 스프라이트 처리 능력도 두 배로 늘어났다. 대마계촌을 원작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이식했을 정도로 당시엔 그래픽 처리 능력은 강력했지만, 게임기의 가격이 비싸지고 부피도 커진데다 게임 프로그래머 입장에서도 개발이 복잡해지는 바람에 대응 게임을 6개 밖에 발매하지 못했다.
4. 관련 기기
4.1. 기본형 기기
- PC 엔진 (1987) - 24,800엔
- TurboGrafx-16 (1989) - PC 엔진의 해외 수출판. 정사각형인 PC 엔진과 달리 테트리스의 T블록처럼[17] 생기고 크기도 크다. 이 때문에 터보그래픽스용 인터페이스 유닛의 형상도 이에 맞추어져 있다. $199.99
- PC 엔진 슈퍼그래픽스 (1989) - PC 엔진 3총사 가운데 맏이격으로 기존 PC 엔진의 상위호환 버전이면서 고급형. 기존의 비디오 칩셋 2개를 꽂았고, 메모리도 메인 메모리 32KB, VRAM 128KB를 자랑했다. 문제는 비디오 칩셋 2개의 신호를 하나로 합성해서 보내는 복잡하면서도 귀찮기 짝이없는 구조라서 프로그래밍이 어렵고, 성능은 2배 약간 못 미쳤는데, 본체가 3배로 커졌으며, 가격이 무려 39,800엔. 이런 문제로 배틀 에이스, 마동왕 그랑조트, 대마계촌, 알디네스, 1941 카운터 어택, 다라이어스 플러스[18] 딱 6개의 대응 게임만 발매했고 금세 사라졌다. 플라스틱 하판 내부 중앙에 메인보드를 지지해주기 위한 돌기가 있는데, 이게 오히려 메인보드를 과도하게 눌러줘서 오래 쓰면 메인보드에 금이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PC 엔진 코어그래픽스 (1989) - PC 엔진 3총사 가운데 둘째격으로 기존 PC 엔진의 후기 모델에 해당한다. 사양은 기존과 완전히 같고, RF 출력이 아닌 컴포지트 출력이 내장한 것과 본체 색상 변화, 패드에 연사 버튼 추가 정도가 변경점. 24,800엔으로 PC 엔진 초기 가격과 같다.
- PC 엔진 셔틀 (1989) - PC 엔진 3총사 가운데 막내격으로, 염가판. 18,800엔. 저연령층을 노려서 우주선 모양의 외형이며, 확장 단자 관련 부품을 줄여 가격을 낮춘 것이기 때문에 CD-ROM2 장착이 불가능해서 휴카드 게임만 플레이할 수 있다. 대우전자에서 '재믹스 PC 셔틀'이라는 이름으로 들여온 게 이것.
- PC 엔진 코어그래픽스 II (1991) - 디자인과 본체의 색상 정도를 제외하면 PC 엔진 코어 그래픽스와 같은 제품. 3탕이다. 가격은 19,800엔으로, 5천엔 줄어든 염가판. 이 제품이 나오면서 가격차가 크지 않은 셔틀은 단종.
4.2. CD-ROM2 확장 기기
- PC 엔진 CD-ROM2(1988) - CD-ROM 드라이브인 CD-ROM2과 인터페이스 유닛, 시스템 카드로 구성되어 있다. 발매 초기 CD-ROM은 소비세가 도입되기 이전에는 음악 기기로 분류되어 과세 기준이 달라 별도의 기기로 분리해서 판매되었다고 한다. PC 엔진 이외에도 CD-ROM 32,800엔 + 인터페이스 유닛 27,000엔을 갖춰야 CD-ROM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초창기엔 CD 레코더도 공시디도 없었기에 개발사인 NEC에서조차 CD를 만들려면 프레스 공장으로 가야 했기에[19] 게임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고 한다.[20] PC-8801의 CD-ROM 드라이브와 물리적으로 호환된다.# 미들기어가 망가지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다.
- TurboGrafx-CD (1989) PC 엔진 CD-ROM2의 해외 수출판
- 인터페이스 유닛: PC 엔진과 CD-ROM2를 결합하기 위한 주변 기기. CD-ROM2를 구입하면 같이 동봉되어 있었다. 단순한 연결장치가 아닌 64 KB(512 Kbit)[21] SRAM과 같은 용량의 ADPCM 음원용 DRAM, 그리고 컴포지트 출력[22], 전원 분배 기능[23]을 탑재했다. 슈퍼그래픽스는 장착할 수 없고 대신 별도의 어댑터가 필요하다.
- 시스템 카드: PC 엔진 CD-ROM2는 게임 CD만 넣으면 게임을 바로 실행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 카드'라는 휴카드를 슬롯에 꽂아야 한다. 인터페이스 유닛에 시스템 카드도 동봉되어 있었다. 이 시스템 카드에는 버전이 있고 각 게임들은 대응하는 버전의 시스템 카드를 꽂지 않으면 경고 메시지만 뜨고 플레이가 불가능하다.[24]기본적으로 상위 버전의 카드들은 하위 버전을 지원하지만 100% 지원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시스템 카드 2.0 이상으로는 CD-ROM2용으로 발매한 수왕기의 구동이 불가능하다. 듀오로 구동 불가능하고 오로지 초대 PC 엔진 CD-ROM2 시스템 카드 1.0에서만 구동 가능하기 때문에 수왕기 CD판은 중고값이 똥값이다.
- 슈퍼 시스템 카드: PC 엔진 CD-ROM2 사용자들이 SUPER CD-ROM2 게임을 즐기기 위한 휴카드. 시스템 카드에 192 KB(1.5 Mbit)의 SRAM을 추가로 탑재했다.
- PC 엔진 슈퍼 CD-ROM2 (1991) - 1991년 256 KB(2 Mbit)인 4배의 SRAM을 장착한 SUPER CD-ROM2을 발매했다. 코어그래픽스부터 자체적으로 컴포지트 출력을 지원하기 때문에 인터페이스 유닛이 필요 없어졌다.[25] 슈퍼그래픽스도 마찬가지로 별도의 어댑터를 장착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구입한 기존 CD-ROM2 유저들을 위해 슈퍼 시스템 카드를 주변 기기로 내놓았는데 이걸 휴카드 슬롯에 꽂으면 슈퍼 CD-ROM2로 동작했다. SUPER CD-ROM2을 구동할 수 있는 기기 중에서는 가장 나중에 발매되었다.
- 슈퍼그래픽스용 CD-ROM2 어댑터
본체의 형태 때문에 기존 인터페이스 유닛에 장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전용 어댑터. AV-OUT은 인터페이스 유닛이 아닌 슈퍼그래픽스에 자체에 있는 단자를 사용한다. 단순 어댑터지만 구조상 덩치가 꽤 크다.■
4.3. CD-ROM2 통합 기기
- PC 엔진 듀오 (1991) - PC 엔진 본체 기능과 SUPER CD-ROM2 기능을 통합한 일체형 기기. 코어그래픽스 시리즈의 확장 단자는 없고, 이후 PC 엔진의 기본 모델이 됐다. 특징이라면 별도의 모니터와 배터리를 써서 밖에서도 쓸 수 있다. 콘덴서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으며, 후속 기종들과는 달리 어댑터가 다르다. 59,800엔. SUPER CD-ROM2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기기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발매되었다.
- TurboDuo (1992) - 1992년 10월 10일에 발매된 PC 엔진 듀오의 해외 수출판. $299.99.
- PC 엔진 듀오-R (1993) - PC 엔진 듀오의 염가판. 듀오에서 헤드폰 단자와 배터리 단자를 빼버리고 가격을 39,800엔으로 낮췄다. 기존 모델에 비해 하얗고 둥그레 진 것이 특징. 이 모델부터 NEC 로고도 새로운걸로 바꿨다.
- PC 엔진 듀오-RX (1994) - 듀오-R의 리프레시 버전. 색을 약간 변경하고 6버튼 컨트롤러로 변경. CD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29,800엔.
4.4. 휴대형 게임기
- PC 엔진 GT (1990)
- PC 엔진 LT (1991)
4.5. 멀티미디어 기기
- PC-KD863G (1987) - PC 엔진을 내장한 CRT 모니터. RGB로 연결해 화면이 선명하게 나온다. 덕분에 게임잡지 등에서 스크린샷용으로 자주 쓰였다는 듯. 발매 당시 가격은 138,000엔. 모니터이기 때문에 MSX 등의 컴퓨터를 연결해서 쓸 수도 있다.
- X1 twin (1987) - PC 엔진을 내장한 컴퓨터. 메인은 샤프전자에서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 X1이다. 99,800엔.
- 레이저 액티브 PC 엔진 LD-ROM2 팩 (1993) - 파이오니어제 레이저 액티브의 확장 옵션이다. CD, 비디오 CD, LD 호환 플레이어로 추가 팩을 설치하여 PC 엔진과 메가 드라이브를 플레이 할 수 있는 것. 메가 LD, LD-ROM2기능으로 LD로 발매한 LD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기. 39,800엔. 참고로 레이저 액티브 본체 가격은 89,800엔이다.
4.6. PC 엔진의 주변 기기
- 아케이드 카드(1994): 2 MB의 RAM을 추가하는 휴카드형 주변 기기. 이를 이용해 용호의 권과 아랑전설 2, 아랑전설 스페셜이 8비트 게임기임에도 경쟁 기종들보다 더 높은 이식도로 출시할 수 있었다. 나아가 공상과학세계 걸리버보이와 같은 PC 엔진 말기에 아케이드 카드 전용으로 발매한 게임들은 놀랍게도 오프닝 동영상이 들어있는 게임도 있다. 다만 기본적으로 PC 엔진은 8비트 게임기이기 때문에 읽어 들이는 시간이 엄청 길다. 아케이드 카드는 각각 CD-ROM2용인 아케이드 카드 프로와 SUPER CD-ROM2 및 PC 엔진 듀오용인 아케이드 카드 듀오로 나뉘어지며, 공통적으로 2 MB(16 Mbit)의 DRAM을 장착했다. CD-ROM2용의 아케이드 프로 카드에는 SUPER CD-ROM2으로 동작하기 위해 필요한 슈퍼 시스템 카드와 SUPER CD-ROM2 분의 모자란 192 KB(1.5 Mbit)의 SRAM을 포함했으며 그만큼 더 비싸다. 이 아케이드 카드는 플레이스테이션의 메인 메모리와 용량이 동일하다.[27]
- 멀티탭: PC 엔진은 게임 패드 연결 포트가 단 하나만 있었으나 이 주변 기기와 추가 패드를 구입하면 최대 5명까지 동시 플레이가 가능했다. 이를 이용한 파티 게임이 많은 것도 장점이었다.
4.6.1. 게임 저장 장치
PC 엔진은 휴카드라는 특성상 저장이 불가능했는데 이를 위해 등장한 주변기기로 허드슨에서 발매하였다. 텐노코에라고 읽는다.
4.6.1.1. 天の声2
처음으로 발매된 물건으로 PC 엔진 본체의 뒤쪽에 마운트하여 사용한다. 즉 휴카드 게임 전용이다. AA형 전지 2개로 데이터를 보존한다. 데이터는 약 1년을 유지했으며 본체가 켜져 있는 동안 전지를 교환하면 데이터 삭제를 방지할 수 있다.
이름이 天の声2 인 것은 허드슨의 게임 모모타로 전설의 로드용 암호 이름이 '天の声'였기 때문에, '2'는 '세이브 용량이 2KB'라서 2를 붙였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모험의 서랑 비슷한 이유였다.[28]
본체 후면 확장 커넥터에 연결했기 때문에 크기가 크다. 후에 저장 기능은 물론 AV 출력 기능까지 추가한 백업 부스터가 나오기도 했는데 크기가 더 커져서 본체만 하다.
4.6.1.2. 天の声 BANK
휴카드 형식의 게임 저장 장치로 PC 엔진 용 SRAM 카드였다. 지금까지의 외부 저장 장치의 저장 데이터를 4대분 백업 할 수 있었다. 뱅크 전환식으로 게임별 관리는 할 수 없다. SRAM의 데이터를 유지하기 위한 전지가 있으며 동전형 전지 CR2320을 쓴다. 다만 전지가 단자와 납땜되어 있다. 납땜 기술이 있다면 교환도 가능하다.
마지막 뱅크를 비워둔 상태에서 특정 커맨드를 입력하면 마지막 뱅크에 14개분 게임의 최강 세이브 데이터가 나타나는 비기가 있다. 다만 이미 채워진 뱅크를 삭제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중고로 구매한다면 어지간해서는(분해해서 전지를 뺐다가 다시 끼거나 등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
4.6.1.3. 그 외 저장 장치
- 백업 부스터: 게임 저장 기기인 天の声2에 AV출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AV 부스터의 기능을 합친 기기. 때문에 가격은 비쌌다.
- 백업 부스터 2: AV출력이 기본인 PC 엔진 코어 그래픽스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백업 부스터에서 AV 부스터 기능을 제거하고 배터리를 충전 가능한 콘덴서로 대체한 것이다.
- 백업 유닛: PC 엔진 셔틀을 위한 게임 저장 주변 기기이다. 여기도 배터리 대신 콘덴서가 들어갔다.
- 메모리 베이스 128: 저장 용량이 2KB인 PC 엔진 저장 장치와 달리 총 용량이 128 KB에 배터리는 4개나 사용하는 대용량 게임 저장 주변 기기. 게임 패드 단자에 연결해 쓴다. 다만 64배나 되는 꿈의 저장 장치는 아니고 코에이나 아트딩크에서 발매한 시뮬레이션 게임을 위주로 한 20여개의 게임에서만 사용 가능하다.[29][30] 대용량이지만 이쪽 게임 3-4개만 저장하면 금방 용량이 찬다고. 또한 에메랄드 드래곤이나 린다 큐브 같은 게임 안에는 메모리 베이스 128을 조작할 수 있는 유틸리티가 들어있는데 이걸 이용하면 본체에서 메모리 베이스로 데이터를 백업 하는 것이 가능하기에 유틸리티를 위해서라도 게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5. 죠니 터보
북미에서는 PC 엔진 듀오(북미판 명칭 '터보 듀오')의 홍보를 위해 '죠니 터보'라는 마스코트를 내세웠다. 이 마스코트는 당시 PC 엔진 미국 유통을 위해 NEC와 허드슨 소프트가 미국에 조인트 벤처기업인 터보 테크놀로지를 설립했는데, 그 회사 직원들 중 하나였던 '조나단 브랜즈테터(Johnathan Brandstetter)'를 그대로 캐릭터로 만든 것이었다. 코믹스도 몇 권 나왔는데 죠니 터보가 자신들의 게임기가 세계 최초 CD 게임기라고 허위 마케팅을 하는 악의 기업 'FEGA'를 응징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세가는 이런식으로 마케팅을 한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메가 CD는 탄탄한 게임 라인업으로 PC 엔진 듀오 상대로 압승하면서 이 마스코트도 조용히 묻혔다. 하지만 죠니 브랜즈테터는 이후 1998년 플라잉 타이거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과거 PC 엔진 듀오로 출시되었던 게임들의 라이선스를 얻어 닌텐도 스위치로 이식해 발매하고 있는데 '죠니 터보'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31] 그리고 2019년 발매된 인디게임(+α) 크로스오버 게임인 크리스탈 크라이시스[32]에서는 드디어 게임 캐릭터로 등장하게 된다.
6. 대한민국의 경우
한국에서는 메가 드라이브나 슈퍼 패미컴과 달리 네오지오와 함께 고가의 게임기로 부잣집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게임기로 유명하였다. 당시 1970~80년대생 게이머들에게 멀티 플랫폼 환경은 고사하고 어느 한 기종이라도 갖추면 정말 축복 받은 가정 환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 또한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인기 작품이 가장 나중에 나왔기 때문에 여타 기종에 비해 실제 게이머 인구는 적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한국에서도 PC 엔진 자체는 여러 번의 정식 수입 시도도 있었고 용산에서도 PC 엔진 듀오 위주로 손쉽게 구할 수 있어서 접하기 그렇게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다. 게임 잡지에서도 PC 엔진 게임 소개는 균등하게 하고 있었기에 뇌내 플레이로 보완(...)할 수도 있었고 PC 엔진만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마니악한 잡지도 있었다.잘 알려져 있는 사실은 아니지만, 대우전자보다 먼저 알파무역 이라는 곳에서 1989년에 초대 PC 엔진과 CD-ROM2시스템을 들여 왔는데, 높은 가격[33] 홍보 부족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조차 적다. 그래도 정식 수입이라 메뉴얼은 한국어화 했다.
용산전자상가의 사람 잘 지나다니는 곳에 위치한 상점에서는 PC 엔진 듀오를 이용하여 PC 엔진 게임들의 시연 영상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PC 엔진 듀오용 CD-ROM2 게임들은 애니메이션 같은 비주얼에 CD-DA를 이용한 뛰어난 음악이나 일본어 음성이 나오는 경우도 많았기에 누구라도 지나가다가 정신없이 구경했을 정도였다. 특히 1994년 겨울에서 1995년 봄에 세가 새턴과 플레이스테이션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출시된 게임이 빈약해 PC 엔진 듀오쪽이 더 눈에 띄었을 정도였다.
6.1. 대우 재믹스 PC 셔틀
1990년 5월에 대우전자에서 'PC 엔진 셔틀' 모델을 '재믹스 PC 셔틀'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휴카드만 꽂을 수 있고 CD-ROM 드라이브 장착은 불가능한 모델이다. 확장 단자는 있지만 셔틀 전용 확장 유닛만 달 수 있는 사양이라 CD-ROM2 유닛을 장착할 수 없다.참고로 대우전자에서 '재믹스'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다른 게임기들은 MSX 베이스이기에 이 PC 셔틀은 재믹스 시리즈에서 보면 상당히 이질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삼성전자에서 들여온 슈퍼겜보이(메가 드라이브)와 현대전자에서 들여온 슈퍼 컴보이(슈퍼 패미컴)와의 경쟁에 밀려 1991~1992년 경에 결국 단종했다.
6.2. 해태 슈퍼콤 바이스타
1993년 4월 해태전자에서 '슈퍼콤 바이스타'로 수입해 판매했다가 흑역사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인켈 등에 CD 플레이어 등을 제조 납품하던 해태전자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대뜸 수입했다. 특이한 점은 세가나 닌텐도의 게임기들에 비해 마이너인 기계를 전자 업계에서 마이너였던 해태전자에서 수입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세가와 닌텐도의 게임기 판매 계약은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에서 선점한 상황이긴 했지만, 이미 한국에서 2번이나 실패해 철수한 기종을 해태전자에서 또다시 수입해 판매한다는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
기판을 비롯한 주요 부품은 NEC 홈 일렉트로닉스에서 공급받았으며, 북미판 TurboGrafx-16과 거의 같다.# 그래서인지 패드에는 TURBOGRAFX 16으로 각인해 놨다. 다만 북미판 TurboGrafx-16과 다른 점은 하우징을 해태전자가 만든 것으로 썼고, 해태전자가 도터 보드를 만들어 넣어 이것을 통해 TV와 컴포지트 단자로 연결할 수 있었으며, 확장 단자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CD-ROM2는 장착 불가. 사실 기판에는 확장 단자의 흔적은 있지만, 확장 단자 커넥터를 납땜하여 붙이지 않았고, 하우징에는 아예 막혀있다.
덧붙여 바이스타에는 기본 게임으로 '에어종크'를 내장했다고 광고했는데, 이 에어종크의 원제는 PC 電人(PC 전인). PC 원인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횡스크롤 슈팅 게임이다.[34] 한국의 해당 게임기 TV CM에서도 애니로 만든 PC 전인(에어종크)이 적들과 싸우는 모습이 나온다.
특이하게도 바이스타판 정발 PC 엔진은 보안경을 포함했다는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웠는데, 이 보안경을 포함한 이유는 이 게임기가 나오기 전 게임과 얽힌 광과민성 발작이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었기 때문.[35]
해태전자 측에서는 이듬해인 1994년부터 주요 부품을 순차적으로 국산화 하려고 했지만 판매 부진으로 1년도 채 되지 않은 1994년 1월에 단종했고, 해태에서는 바이스타의 실패 이후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바이스타 CD라는 이름으로 북미판 터보 듀오를 들여올 계획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
7. 그 밖에
게임패드의 스타트 버튼 명칭이 START가 아닌 RUN이라고 되어있는게 특징이다.1차 저장 매체인 휴카드가 작다는 점 때문인지 원래와 완전 같은 휴대용 버전도 있는데, 세가의 게임 기어처럼 TV튜너를 내장한 버전(PC 엔진 GT)도 있고, 휴대용보다 조금 큰 모니터 일체형 준휴대용 버전인 PC 엔진 LT도 있다. 문제는 가격이 현재시점으로 봐도 미칠 듯이 비싼 지라 결국 잊혀졌다. 특이사항으로 PC 엔진판 컬럼스는 일반적인 PC 엔진 또는 듀오에 연결하면 2인 대전 모드를 플레이할 수 없고, 휴대용인 GT 두 대에 연결해야만 대전 모드가 나오는 괴랄한 사양.
대표적인 서드파티사로는 나그자트 등을 꼽을수 있었다.[36] 슈팅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게임과 아케이드 이식작을 하청개발 이식을 통해서 퍼블리싱하였다.
하지만 정작 후속기인 PC-FX는 콘솔 게임 하드 사상 최악의 성과를 자랑하는 패배 하드의 하나(...).
이 게임기의 마스코트라 할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액션 게임인 PC 원인 시리즈의 어원이 바로 이 게임기의 이름이다. 일본어로 原人(げんじん)과 engine(エンジン)의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
발매하지도 못한 게임과 한정으로 발매한 게임도 있다는 듯. #
고전게임 갤러리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최고의 게임기는 PC 엔진 듀오입니다"라는 꾸준뻘글이 올라온다. PC 엔진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까려는 의도인 듯.
초차원게임 넵튠 시리즈의 옐로 하트(스포일러 주의)가 PC 엔진의 의인화 캐릭터.
현재 남성향 미소녀 독자참여 프로젝트로 유명한 전격 G's 매거진의 원래 출발도 PC 엔진 정보지이다.
2019년 현재 PC 엔진의 상표권은 허드슨을 인수한 코나미와, KDDI의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BIGLOBE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원래 허드슨과 NEC 홈 일렉트로닉스가 공동으로 상표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허드슨은 2012년 코나미에 흡수되었고, NEC 홈 일렉트로닉스는 2000년에 사업을 종료하고 2002년에 청산하는 과정에서 여러 회사로 권리를 이관했는데 그 중 PC 엔진 상표권을 BIGLOBE에 이관했다. 2006년에 ISP 사업부를 분사하여 NEC BIGLOBE가 되었다가 2014년 사모펀드에 매각하고 2016년 KDDI가 인수했다.#
8. 게임
자세한 내용은 PC 엔진/게임 문서 참고하십시오.9. 복각판 : PC 엔진 미니
자세한 내용은 PC 엔진 미니 문서 참고하십시오.[1] PC 엔진과 CD-ROM2을 연결해 주는 상자 같은 물건. 그러니까 두 개가 올려져 있는 받침대 같은거. 그러나 단순히 결합용 크래들이 아니라 추가 메모리, 배터리 백업 세이브 기능에 컴포지트 출력을 지원하는 기능도 탑재했고, 서류 가방처럼 들고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2] 본체 오른쪽 위에 놓인 게 PC 엔진 LD-ROM2팩. 왼쪽에 있는건 메가 LD 팩이다. 이 확장팩들을 레이저액티브 정면 좌측 하단부에 부착하면 해당 기종의 게임들을 즐길 수 있다.[3] NEC의 자회사였으며 주로 가전제품을 제조, 판매하였다. 2000년에 사업 종료, 2002년 해산하였다.[4] 유럽 모델은 16이 빠져있고 G는 소문자로 돼있다.[5] 사정이 복잡한데 유럽에 내려고 재고를 뒀다가 미국에서 죽쑨 것을 확인한 뒤 NEC 홈 일렉트로닉스가 유럽에 발매할 모델을 전량 취소했다. 때문에 해당 국가의 유통사를 통해 수입했는데 그 모델이 서로 달라지면서 이렇게 된 것. 수입은 했지만 인기가 없는건 마찬가지였다.[6] 허드슨의 쿠도 히로시 사장은 '딱히 팔 생각도 없다. 제발 한 개만 만들어 주면 한다. 내 책상 위에 패미컴보다 좋은 게임기가 있으면 된다.' 등의 얘기를 했다. 세이코 엡손의 담당자가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라는 얘기를 하자 쿠도 히로시 사장은 '돈이라면 얼마든지 낼 수 있다. 뭣하면 지금 여기에 쌓아 보이겠다.'라고 대답했고, 담당자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 버렸다고.[7] 허드슨의 공동 창업자 쿠도 유지는 철도 동호인으로 유명하다. 참고로 허드슨이라는 사명 역시 C62 증기 기관차에 쓰이기도 한 증기 기관차 4-6-4 차륜 배열법의 다른 이름이었던 허드슨 배열에서 유래한 것이다.[8] 1983년에 패미컴을 이미 발매한 것을 보고 NEC에서도 젊은 사원들을 주축으로 컴퓨터 이외에 뭔가 해 보자는 기획이 있었으나 당시 NEC에는 게임기, 특히 CPU를 자체적으로 만들 능력이 없어서 기획을 진행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9] 공식으로 부르는 명칭은 '시디롬롬' 이다.[10] 아사히 신문 2001년 12월 1일 석간, 위크엔드 경제 제765호 "그 실패가 이렇게 태어났다."[11] 91년 발매된 휴카드용 POPULOUS는 휴카드에 32KB의 메모리를 장착한 ROMRAM 휴카드라는 방식으로 부족한 메모리를 확장한다.[12] 스트리트 파이터 2가 휴카드로 발매되었는데 내장음원만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의 음악을 들려준다.[13] 기본적으로 팔콤, 코나미 등 당시 업계를 대표하는 게임음악팀의 작품이 많았고 천외마경의 경우에는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오케스트라 음원이 수록되기도 하였다.[14] 듀오부터는 외부 단자가 사라졌다.[15] 듀오 이후의 CD-ROM2 통합 기기에는 기본적으로 SRAM이 탑재되어 있는데, 이것을 FRAM으로 교체하여 데이터의 영구 보존 및 세이브 용량을 늘리는 개조 기법이 존재한다. FRAM 개조에 자주 사용되는 FM1808칩을 사용할 경우 텐노코에 뱅크 4개분의 용량을 본체에 내장시킬 수 있다.[16] 단 파일 시스템이 다른 것 이외에 특별한 복사방지 기술은 적용되어 있지 않아서, 오늘날에는 공개된 ISO 이미지를 공CD에 굽기만 하면 별다른 문제없이 게임이 실행된다. 새턴이나 PS1 등 여타의 CD-ROM 게임기들이 기본적으로 모드칩 등의 수단을 이용하지 않으면 복제 CD를 돌릴 수 없는 것과 비교하면 복제방지 대책이 원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17] 확장 단자가 뒤로 튀어나와있어서 그렇다. 재밌는건 나중에 나온 슈퍼그래픽스도 실루엣만 보면 T자 라는것. 그리고 둘 다 일본판 인터페이스 유닛에 장착이 안 된다.[18] 다라이어스 플러스는 일반 PC 엔진에도 플레이 가능하지만, 그런 경우 보스 전에서 글리치가 발생한다. 그러나 진행에 딱히 문제는 없다.[19] 샘플을 구워내기 위해서는 공장에 데이터를 납품해서 마스터 ROM을 만들 때와 같은 공정을 거쳐야만 했다고 한다. 한 번에 100 만엔 이상 깨졌기에 시험 삼아 구워냈더니 안돌아가가거나 하면(...)[20] CD-ROM의 용량이 640 메가바이트나 돼서 그걸 에뮬레이트 하기위해 여러 개의 하드 디스크를 연결해다가 CD 1장 대신 쓰곤 했다고 한다. 기재값만 해도 1,000 만엔 가까이 되다보니 프로그래머 여럿이 하나를 공유 해서 사용.[21] PC 엔진판 이스 1, 2도 이식을 담당한 알파 시스템에서 막상 개발에 착수한 직후에 게임기의 메모리 용량이 모자란 것을 깨닫고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발매를 취소할 뻔했지만, CD-ROM2와 PC 엔진 본체를 연결해 주는 인터페이스 유닛의 내부에 있는 ADPCM 음원용 메모리의 64 KB DRAM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해 어렵게 128 KB(1 Mbit)의 메모리를 확보해 이식에 착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CD라는 매체를 통해서 음성, 컷신, CD 디지털 오디오 음악을 넣은 PC 엔진판 이스 I・II 합본은 뛰어난 이식 품질을 자랑했다.[22] 확장 단자의 핀 가운데 몇 개가 영상 출력을 담당해 이 핀에서 컴포지트 단자로 연결한 것이다. 그러니까 PC 엔진 본체는 단자만 없을 뿐, 컴포지트는 물론 RGB 출력까지 지원한다. 그래서 PC 엔진용 AV 부스터를 직접 만드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일본어 주의)[23]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이나 메가 CD와 달리 전원을 하나만 연결해도 된다.[24] 단 어떤 게임에서는 단순 경고문구에만 그치지 않고 미니게임을 별도로 수록하는 경우도 역시 있다.[25] 이렇게 [26] TV와 게임기의 RF 출력을 선택할 수 있는 기기. PC 엔진은 자동식이었다.[27] 메인 메모리만 그럴 뿐 버퍼 메모리나 비디오 메모리로 할당한 용량을 합치면 당연히 플레이스테이션쪽이 더 많다.[28] 정태룡은 패스워드고 뭐고 다 귀찮아서 그냥 기계를 며칠 동안 켜놓은 채 모모타로 전설을 플레이하여 클리어 했다고 밝혔다.[29] 이 때문에 코에이에서는 '세이브군'이라는 메모리 베이스 128과 동일한 기능의 기기를 판매하기도 했다. 그런데 코에이에서는 자사의 게임에서 백업 메모리가 인식이 안 될 때 '세이브군이 연결해 있지 않다'는 메세지를 출력하는데, 메모리 베이스 128과도 기능이 동일하므로 이걸 써도 된다.[30] 참고로 코에이에서 PC 엔진 CD-ROM2용으로 발매한 게임은 삼국지 3, 푸른 늑대와 햐안 암사슴 원조비사, 노부나가의 야망 전국판, 무장풍운록이 있다. 사족으로 삼국지 3, 전국판을 제외한[37] 나머지 게임은 패미컴판에서 그래픽을 향상한 점 빼고 아주 똑같다(..).[31] 예를 들어 파이터즈 히스토리는 '죠니 터보의 아케이드: 파이터즈 히스토리' 식으로.[32] 참고로 퍼블리셔가 블레이드 스트레인저스를 발매했던 니칼리스다. 그래서 캐릭터 인선 자체는 블레이드 스트레인저스와 공유하는 측면이 많다.[33] 초대 PC 엔진은 14만 9천원 CD-ROM2 시스템은 무려 45만원. 1989년에 이런 가격이라면 웬만한 직장인 한 달 월급에 육박했다.[34] 레드 엔터테인먼트와 나그자트가 공동 개발.[35] 이 때문에 닌텐도와 스트리트 파이터 2가 까였다. 슈퍼 패미컴으로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나오긴 했는데, 정작 원인은 그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나온 게임기가 아닌 패밀리컴퓨터로 캡콤과 무관하게 나온 스트리트 파이터 3 해적판 게임(...)[36] 썸머 카니발 92 렛카정도의 예외를 제외하면 PC 엔진이 현역에서 물러날때까지 우직하게 PC 엔진에 게임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