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20 13:32:59

RMS 퀸 엘리자베스


파일:RMS_Queen_Elizabeth.jpg

1. 개요
1.1. 생애
2. 제원3. 침몰4. 후계선5. 기타6. 관련 문서7. 둘러보기


RMS Queen elizabeth
(1940 ~ 1972)

1. 개요

영국 존 브라운 앤드 컴퍼니[1]에서 건조하고 영국 큐나드 라인에서 운영했었던 대서양 정기 여객선. 모항은 리버풀이고 자매선으로 1934년에 건조된 RMS 퀸 메리가 있다.

20세기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해 침몰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1.1. 생애

1936년 12월 4일 스코틀랜드의 존 브라운 조선소에서 착공되었고 1938년 9월 27일에 진수, 1940년 3월 3일에 취역하고 1940년 4월 24일 처녀항해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RMS 퀸 메리와 같이 병력수송선으로 징발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1년 후, 1946년에 자매선인 RMS 퀸 메리와 같이 정기 여객선이라는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였고 1950년대에 갑판에 수영장을 추가하고, 1965년에는 대대적으로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1960년대 후반 보잉 707, 보잉 747 등 본격적인 제트 여객기들이 등장하면서 대서양 정기 여객선의 자리를 밀어내자, 막대한 유지비와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RMS 퀸 메리가 1967년에 퇴역, RMS 퀸 엘리자베스도 1년 뒤인 1968년 10월에 퇴역한다. 퇴역하고 난 뒤 2달 동안 뉴욕항에 정박해 있다가 1968년 12월 에버글레이즈항으로 옮겨진다.

2. 제원

  • 기공: 1936년 12월 4일
  • 진수: 1938년 9월 27일
  • 취역: 1940년 3월 2일
  • 처녀항해: 1946년 10월 16일
  • 퇴역 : 1968년 12월 8일
  • 만재 배수량: 83,000
  • 총톤수 : 83,673
  • 전장: 1,031피트 (314.2 m)
  • 전폭: 118피트 (36 m)
  • 높이: 233피트 (71.0 m)
  • 흘수: 39피트 (11.9 m)
  • 갑판: 10층
  • 주기관: 12 x Yarrow 보일러, 200,000마력 (150,000 kW)
  • 추친체계: 파슨스 싱글 기어드 증기 터빈, 4축 추진
  • 순항속도: 28.5노트 (52.8 km/h, 32.8 mph)
  • 승객: 2,283명
  • 승무원: 1,000명
  • 무선호출 부호: GBSS
  • 침몰: 1972년 1월 9일
  • 침몰 당시 선령: 34년[2]

3. 침몰

파일:rms queen elizabeth wreck.jpg

원래 퀸 엘리자베스는 RMS 퀸 메리처럼 미국 플로리다에서 해상 호텔로 활용될 계획이었으나 무산되었다. 이후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 항에 정박해 있다가, 1970년 홍콩 출신 해운 재벌 C.Y. 퉁(董浩雲)이 해상 대학 “Seawise University”로 활용할 목적으로 매입하였다. “Seawise”는 퉁의 이름 이니셜 “C.Y.“와 “Seawise(바다를 아는)“를 결합한 말장난이었다.

1971년 홍콩으로 예인된 선박은 Queen Elizabeth에서 Seawise University로 명칭을 바꾸었고, 선체는 흰색으로, 굴뚝은 노란색으로 도색되었다. 해상 교육 프로그램인 World Campus Afloat의 거점으로 1972년 4월 출항을 목표로 개조 중이었으나, 같은 해 1월 9일, 정박지에서 수리 도중 대규모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이 잡히지 않고 폭발음까지 들리며 선체가 붕괴
화염은 빠르게 확산되며 내부 폭발로 이어졌고, 결국 선박은 좌현으로 전복되어 람블러 채널(Rambler Channel) 바닥에 좌초되고 말았다.

이후 몇 년 동안 잔해는 해저에 방치되었고, 1974년부터 한국 해체업체들이 선체 일부를 절단 및 인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8년 인양 작업 중 젤리그나이트 폭약이 폭발하여 잠수부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인양은 중단되었다.

기술적 한계와 비용 문제로 인해 선체 대부분은 인양되지 못한 채 해저에 매몰되었으며, 이후 홍콩 정부의 콰이칭 컨테이너 터미널 확장 및 람블러 해협 준설 공사 과정에서 추가 해체 없이 해저 진흙 속에 덮이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현재 잔해는 콰이칭 9번 컨테이너 터미널과 스톤커터스 브리지의 청이섬 쪽 교각 인근 해저, 약 12m 아래 진흙층 속에 묻혀 있다.

RMS 퀸 엘리자베스의 명판 일부(Q와 E)와 닻은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토런스(Torrance)에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 약 10km만 더 이동하면, 자매선인 RMS 퀸 메리가 정박해 있는 롱비치(Long Beach)를 방문할 수 있다.

4. 후계선

자세한 것은 RMS 퀸 엘리자베스 2 문서 참조.

5. 기타

  • 알려지지 않았지만 1943년 1월 ~3월 사이 뉴욕과 영국 사이를 왕복하던 중 파도 높이 12~14m, 풍속 70km/h 이상에 달하는 북대서양 겨울 폭풍을 정면으로 맞이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 항해는 단독 고속 항해(High Speed Troop Transport)로 수행되었으며, 회피나 정박이 불가능했던 상황이었다. 당시 퀸 엘리자베스가 직면한 폭풍우는 자매선인 RMS 퀸 메리가 1942년에 겪은 폭풍우보다도 더 높고 강한 파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퀸 메리가 겪은 파도는 약 10m에 달했으며, 당시 병사들이 배 안에서 굴러다닐 정도로 흔들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퀸 엘리자베스는 이를 능가하는 거친 해상 상태에서도 강철 용접식 선체 구조와 설계상의 안정성 덕분에 큰 손상 없이 항해를 마쳤다. 승조원과 병사들은 극심한 멀미와 공포를 호소했으나, 배는 “파도가 함교까지 들이쳤지만, 칼처럼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이러한 항해 성능 덕분에 퀸 엘리자베스는 무장을 하지 않은 수송선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무적 수송선’으로 불렸다.
  • 퀸 엘리자베스는 1968년 퇴역 후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에버글레이즈 항에 정박 중이었고 이 시기 자매선 RMS 퀸 메리를 매입해 호텔로 개조중이었던 롱비치 시 내부에서는 퀸 엘리자베스까지 매입하여 퀸 메리와 나란히 정박시키는 방안이 비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두 척이 나란히 정박하면 상징성과 관광 효과가 클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 21세기의 세계 최대 크루즈선이 원더 오브 더 시즈라면, 20세기 세계 최대 크루즈선이 바로 이 RMS 퀸 엘리자베스이다.
  • 침몰 20년 이후인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역대 여객선 중 최대 규모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96년 카니발 크루즈에서 10만 톤급 크루즈선이 등장하고 난 이후 여러 선사들이 초대형 크루즈선들을 진수하게 되어 밀려나게 된다.
  • 홍콩에서 화재로 침몰하기 전에 정박했던 미국 에버글레이즈 항에서도 엔진 등 기관부가 고장 난 상태로 방치되어 화재 위험이 있었다고 한다.
  • 1965년 야외 풀장을 갑판에 설치했다. 자매선 RMS 퀸 메리와는 차별화된 부분.
  • 후계선인 RMS 퀸 엘리자베스 2보다도 더 크다.
  • RMS 퀸 엘리자베스가 침몰한 이후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 타이틀은 SS 프랑스가 물려받게 된다.
  • 2차 대전 중 징발될 때 RMS 퀸 메리와 같이 활동했는데, RMS 퀸메리는 매복한 유보트를 속도로 따돌릴 수 있을 정도로 빨라서 [4] 그레이 고스트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자매선인 RMS 퀸엘리자베스는 6년 늦게 건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퀸 메리보다 속도가 2노트 느려 그레이고스트라는 호칭을 받지 못했다.
  • 퀸 엘리자베스는 RMS 퀸 메리의 설계를 개선하여 건조되었다. [5] 그러다보니 퀸 메리보다 엔진 출력, 객실, 앞서 언급한 야외수영장을 포함한 오락시설, 구명정 등 모든 점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화재로 침몰하거나 해체되지 않았다면 RMS 퀸 메리처럼 해상호텔이나 박물관으로 개조, 보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영화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서도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화재로 침몰한 선체 내부를 MI-6의 홍콩지부 비밀기지로 쓰고 있다는 설정이다. 당시 홍콩이 영국령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는 셈.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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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참전의 직접적인 원인이였던 RMS 루시타니아비스마르크 추격전에서 격침당한 전함 HMS 후드를 건조했었던 회사.[2] 자매선 퀸메리 처럼 현재까지 침몰 하지 않거나 해체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으면 무려 선령이 [age(1938-09-27)]년 된 선박이 된다.[3] 이쪽도 메리 1세가 아닌, 엘리자베스 2세의 조모인 테크의 메리 공녀에서 온 명칭. 반면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나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은 확실히 엘리자베스 1세의 이름에서 딴 명칭이 맞다.[4] 2차 대전 당시 잠수함들은 속도, 특히 수중 항주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기는 하다.[5] 외관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RMS 퀸메리는 3개의 연돌을 가지고 있지만 엘리자베스는 연돌이 1개 줄어 2개의 연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