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2:33:37

경기동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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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장파에 대응하는 학생운동 단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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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형성 (8-90년대)2.2. 민주노동당 장악과 전성기 (2001~2012년)2.3. 통합진보당에서 실패와 와해 (2012~2014년)2.4. 노동운동 기층으로, 그리고 진보당에서의 재기 (2015년 이후~)
3. 사건 사고4. 경기동부연합의 정치 테크닉5.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NL 계열 운동권 정치 집단. 경기동부라는 약칭으로도 불린다. 2013년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의 주축으로, 현재의 진보당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NL계의 전국통합조직이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1]의 지역지부 중 하나인 경기동부연합에서 기원하였다. 2008년 전국연합이 해산하면서 지부인 경기동부연합도 공식적으로는 해산하지만, 이후에도 이들은 진보운동 안팎에서 끈끈한 인적, 사상적 네트워크를 이루어 활동해왔기에, 편의상 이들과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그룹들을 경기동부연합이라고 지칭한다. 경기동부로 지칭되는 인사들이 경기동부연합은 이미 해산하고 없는 조직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속 언론에서 경기동부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2]

이석기를 비롯한 핵심세력은 북한의 지령을 받는 민혁당에서 활동하였기에 NL계열 중에서도 강한 친북 경향, 지하조직적 성향을 띠는 편이다.

2. 역사

2.1. 형성 (8-90년대)

경기동부연합의 뿌리는 낙후되었던 광주대단지사건의 기억을 갖고 있는 성남 지역 학생운동이다. 80년대 성남 출신의 대학생들은 '성남시 대학생 연합회'(성대련)[3]을 결성하는데 이후 '터사랑청년회', '성남청년회'[4]등으로 발전하며 지역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용인, 성남 지역 학생운동조직인 '용인 성남지구 총학생회연합(용성총련)'[5] 출신이 초기 경기동부의 주축을 이루는데, 특히 외대 용인캠퍼스는 82학번 이석기를 필두로 경기동부 핵심 세력[6]을 키워내는 본산이 된다.

이들은 1991년 '전국연합'을 결성할 때 성남지부인 성남연합으로 참여하게 되고, 1997년에 용인, 광주, 하남, 이천, 여주까지 포괄하여 경기동부연합으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성남의 노동운동[7]와 빈민운동에 결합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가는데 당시 검소한 생활과 헌신적인 활동 태도로 주목 받는다. 특히 이들이 주도한 96년 북한동포돕기운동, IMF 시기 실업자 돕기 운동은 많은 NL 운동가들 사이에서 모범으로 여겨졌다.

경기동부의 핵심세력은 북한에게 직접 지령을 받고 활동하다가 해체된 민혁당[8]의 영향을 받았다. [9]. 대중조직인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이기도 했지만, 민혁당의 영향을 받아 '지하조직'의 특성을 강하게 띠었고 이는 이후 지하혁명조직 논란[10]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11]

90년대 중후반, 남총련으로 대표되는 NL강경파들에 의해 벌어진 한총련 위기상황에서 이들은 소위 'NL 혁신'계열을 선도하며 학생운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민혁당은 서울대 '구국학생선봉대'[12], 고려대 구국선봉대 청년 등을 지도 했는데 이들은 반미구국 노학연대선봉대(노선대), 사람사랑 그룹을 형성한다. 한총련 의장을 역임한 정태흥을 비롯해 김재연 등이 이곳 출신으로, 이후 이 그룹이 장악한 한대련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출신들도 경기동부의 젊은 피가 된다.

2.2. 민주노동당 장악과 전성기 (2001~2012년)

전국연합은 2001년 충북의 군자산에 모여서 군자산의 약속을 발표해 민주노동당에 입당할 것을 결의한다. 사실 지역 민중운동에 깊이 결합해 있던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은 군자산의 약속 이전부터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군자산의 약속은 당시 NL 최대 계파였던 인천연합의 집단 입당으로 의미가 있다. [13] 결의대로 2001년부터 NL운동가들은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하기 시작했고, 2004년 전당대회에서 창당을 주도했던 평등파[14]를 밀어내고 NL계가 당권을 완전히 장악한다.

2000년대 한총련 혁신파[15]였던 사람사랑 계열, 반미구국 노학연대선봉대(약칭 '노선대')[16] 등의 조직을 통해 서울, 경기지역 여러곳의 총학생회를 수권하며 NL계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노리기 시작한다. 이들은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이나 다함께 등 범좌파가 주로 활동하고 있던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를 장악하였고, 한총련을 이어 출범한 한대련을 장악하고 반값 등록금 운동이 주목 받으면서 2000년대 중반 이후 NL계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완전히 잡았다.

민주노동당을 장악한 NL계열의 패권주의와 일심회 사건으로 드러난 종북성향으로 PD계열이 탈당하여 분당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2012년 다시 통합진보당을 결성하여 19대 총선에서 야권연대로 13석을 차지하는데, 그중 이석기, 김미희, 이상규[17], 김재연[18]광주전남연합 출신 김선동, 오병윤까지 6명이나 원내에 진출하여 전성기를 구가한다.

2.3. 통합진보당에서 실패와 와해 (2012~2014년)

2012년 총선 과정에서 있었던 당권파의 패권적인 행태로 뒷 이야기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당시 당 대표 이정희[19] 의 야권연대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 경선에 부정 개입했다는 배후로 지목된다. [20]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이 화제가 되면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경기동부의 실세가 이석기라는 것이 드러나고[21] 이들의 비민주적인 행태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는 옹졸한 태도가 드러나면서 많은 충격을 주었다. 전국운영위원회의에 난입하여 회의진행을 막는 당권파들

이후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에서 지하혁명조직(RO)을 주도한 것 역시 이들이라고 밝혀지면서 결국 2014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통합진보당 해산이 결정된다. 이석기는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구속수감된다.

2.4. 노동운동 기층으로, 그리고 진보당에서의 재기 (2015년 이후~)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조직이 와해되자, 경기동부 성향의 간부부터 조직원 까지 모두 지역의 노동운동으로 내려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기존 노동운동들이 신경쓰지 못했던 열악한 환경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운동, 택배노동자 운동, 건설노동자 운동 등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며 노동운동계에서 기반을 다시 다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간간히 이석기 석방운동을 벌여나가기도 한다. [22]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광주전남연합과 창당한 민중연합당김재연, 김선동 등이 출마했지만, 비례대표 득표율 0.61%로 정의당에게 압도적으로 밀리는 건 물론 녹색당에도 밀려나며 영향력의 감소를 확인하였다. 경쟁계파인 인천연합울산연합과 비교하면 더욱 처참하다. [23]

2017년 울산연합이 창당한 새민중정당과 합당하여 민중당을 창당하였고,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김미희, 김재연, 홍성규 등이 민중당으로 출마했으나 모두 의미있는 득표를 하지 못한채 낙선하였고, 민중당이 1%대 지지율을 받으면서 비례대표로 출마했던 이상규도 낙선하였다.

2020년에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최초의 경기동부연합 출신 후보 양경수[24]를 55%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시키는 파란을 일으켰다. 다만 양경수 위원장의 당선에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내부 선관위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어서 진보당으로 당 명칭을 바꾸고, 2022년 지방선거를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울산 동구청장[25]을 당선시키고 정의당보다 많은 의석[26]을 획득한 것이다.

3. 사건 사고

  • 민주노동당 시절 북핵 옹호 발언(진보정당들은 원래 기본적으로 반핵입장이다.), 2007 대선에서 본래 심상정과 노회찬이 대선후보로써의 지지율이 높았으나 이 둘이 분열한 틈을 타 권영길 후보를 대선후보를 내세웠고 거기에 선거운동만 잘했어도 상당한 득표율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을 뜬금없이(참고로 권영길 의원도 동의하지 않았다.) "코리아 연방"이라는 주요공약으로 내세워 참패했다. 2006년 지방선거의 10.2%는 물론이고 2002년 대선 때의 3.9%에도 못 미치는 3.0%의 득표율을 얻었다. 이 때문에 심상정 의원이 주도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했으나 비상대책위원회가 일심회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당원을 징계하려 하자 이를 부결시켜 이에 열받은 PD계가 대거 진보신당으로 탈당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는 5년 뒤에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의 분당으로 반복되었다.
  •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는 이유로 주민센터 직원에게 행패를 부린# 이숙정 전 성남시의원 행패사건 당시 여론의 비난이 엄청나게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징계가 매우 늦어졌던 사례가 있었는데 이때도 이숙정 전 의원의 배후에 경기동부연합이 있어 당내 징계 여론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여론으로부터 제대로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욕만 더 먹었다.
  • 통합진보당에서 서기호 판사를 영입하고 비례대표로 당선권에 두려고 방침을 정하자 이를 좌절시키고 당선권에서 먼 14번에 배치시키고 비례대표 당선권에는 모두 자신들 세력하의 인물들로 채워버렸다. 이 사건은 오히려 이정희 공동대표가 다른 공동대표들과 상의없이 영입했다가 서기호 판사만 새된 경우이다. 서기호 판사를 영입하려고 한 자리는 원래 촛불시위를 이끌던 박원석(전 참여연대 사무처장) 씨가 유력했던 상황이었다.(이건 시민단체 쪽 영입을 맡은 심상정 공동대표가 밀고 있었다.) 비례대표 당선권까진 당권파가 차지했으며 이는 당원들의 직선투표의 결과다.
  •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가 통합초기 당무를 거부하는 사태가 있었는데 이때도 통합경선을 준비하던 시기에 이들이 개입하여 여론조작 및 경선개입을 하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당내경선 룰이 비당권파에 너무 불리하다거나 불공정한 당 선관위 운영 때문이었다. (여론조작과는 다르다.) 결과는 유시민의 판정승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는 평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2012년 총선의 비례대표나 지역구 선출 과정을 보면 판정승이라고 보기는 애매하다.
  • 경기동부의 핵심인 성남시 중원구 전략공천에 성추행 전력이 있는 윤원석 후보(경기동부의 기관지격인 민중의소리 대표. 이석기도 민중의소리 이사 출신이다.)를 후보검증 당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통과시켰으며, 여론의 비난에도 꿈쩍않다가 윤원석을 사퇴시키고 옆 동네인 수정구 출마를 준비하던 김미희를 내세웠다. 그리고 김미희가 당선되고 국회의원이 되자 경기동부의 개입을 입증하면서 중원구민들의 분노를 사는 중이다.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부정선거가 있었음국민참여당 출신 당원들이 문제제기를 하였다. 비례대표 공천을 위한 경선 중에 온라인 투표 소스코드 유출, 경선투표 참가신청 명부와 경선현장에 비치된 경선투표 참가자 명부가 다른 점에 투표결과조작, 부정선거 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였고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검찰에 수사의뢰도 불사하겠다는 강경대응 방침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이 일의 배후를 '패권파'로 지목하였는데 사실상 '경기동부'를 지목한 것이나 다름없다.진상조사 내용 물론 여기에 더더욱 한심하기그지 없게끔 한 대 맞고 두 대 치는 것도 아니고 당권을 줄 테니 대충 넘어가자라고 뒷거래를 제안함으로써 점점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거기에 중앙위원회 때 폭력사태까지 일으키면서 막장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선거연합 또는 후보 단일화의 연결고리로 공동지방정부를 내세웠다. 광역단체장 중 3명, 기초단체장 중 28명이 공동지방정부를 내세웠다. # 민주노동당은 성남시에서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와 단일화를 하였는데, 이후 이재명 성남시장 인수위원회에 경기동부측 인사들이 참여한 것이 밝혀졌다. #
  • 오랫동안 민주당계 정당에 몸담아 왔다가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미래로 옮긴 이원욱 의원은 2024년 2월 25일에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종북세력이 주도하는 정당에 비례 상위순번과 민주당 사람이 현직 의원인 지역구를 넘겨주는 등 그들에게 더 많은 의석을 얻어주려는 모습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한다"며, "경기동부연합의 숙주"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경기동부연합 세력을 중용하는 등 경기동부연합과 긴밀한 관계라는 것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는 경기동부연합이 이전에 비해 더욱 세련되어진 운영의 묘를 선보이고 있으며, ‘산 옮기기’라고 불리는 경기동부의 저인망식 세력 확장에 민주당이 잠식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야권에서 나온다고 보도했다. #

4. 경기동부연합의 정치 테크닉

경기동부연합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들의 계파에 속하는 인물들을 마구 끌어다가 당권자나 위원장, 총선 후보로 꾸역꾸역 올리기 시작했다. 물량 공세에 질린 당 중앙위원들은 직장/집 주소로만 지구당을 선택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었다. 그러나 경기동부연합은 특정 지역에 유령회사를 설립한뒤 자신들의 계파에서 추천한 후보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도봉구에 살면서 중구에서 일하는 민주노동당 당원이 관악구에 유령회사를 설립해버리고, '나도 관악구에서 일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미는 예비후보 밀어도 되지?' 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밀어주는 식.

연속적인 보궐선거로 파악해볼 때 조직에 지령에 따라 총 모을 수 있는 표는 35,000~40,000으로 추정되며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에 따르면 '당장 다음 날 아침에 삭발인원 300명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당내 권력을 잡기 위한 정파 간 암투는 있을 수밖에 없고 설령 진보정당이어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룰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쪽수로 밀어붙이는 행태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그동안 공공연하게 알려져있는 통합진보당 내의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27]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첫 민주노총 위원장이 된 양경수 위원장의 선거에서 부정선거가 내부 선관위에게 적발되기도 했다.

5. 관련 문서


[1]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등 14개 단체와 13개 지역연합으로 구성 되었다.[2] 운동권에서도 일반적으로 NL계열은 전국연합 당시의 지역조직을 기준으로 정파분류를 해 오고 있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광주전남연합과 행보를 같이했기에, 함께 '통합진보당 당권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경기남부연합[28], 서울연합도 사실상 경기동부연합의 영향권에 있다.[3] 대표 박우형은 이석기성일고등학교 후배로 서울대 성남시학우회 회장, 터사랑청년회 회장, 민주노동당 초대 성남수정구 위원장, 김미희 의원 보좌관을 역임. 2018년 민중당 성남시장 후보[4] 정형주가 회장 역임[5] 한총련 출범 이후에는 경기동부총련으로 발전[6] 정형주, 우위영(통합진보당 전 대변인), 한용진(전 경기동부연합 의장), 백승우(김미희 전 의원의 남편), 윤원석(경기동부 기관지 격인 민중의소리 대표), 김홍열, 김근래, 장지화, 강성희, 양경수 등이 대표적. 임수경도 외대 용인 출신인데 대학 졸업후 경기동부 세력과는 활동 방향이 달랐다.[7] 대형공장이 없는 성남의 특성상 일반노조 중심이다.[8] 중앙위원 김영환. 이석기는 민혁당의 전신으로 1980년대 말에 생긴 반제청년동맹(반청) 단계부터 준비위원이었고,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회 위원장이었다.[9] 이때문에 운동권 인사들은 증언이나 관련 기사를 보면 '경기동부연합은 존재 하지 않는다', '경기동부연합이 아니라 경기남부위원회'라는 말이 섞여서 나온다. 즉 합법적 조직인 '경기동부연합'이자 불법적 조직인 '경기남부위원회'라는 이중적 신분인 것이다. 이것이 통진당 부정투표 사건이 터진 이후 언론과 대중들이 명칭에 대해 헷갈린 근본적인 원인이다. 과거 버전 문서에는 이석기는 경기동부연합 멤버가 아니라 경기남부연합 출신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양자가 실은 한몸이라는 것을 헷갈린 것이다. 김영환, 진중권같이 운동권 핵심부에 접근 해본 사람들이 언론에 기고하기를 경기동부연합의 실체는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라는 것이다. (없어진 줄 알았던 민혁당, 민노당 이어 통진당까지 장악)[10] 대법원에서는 실체가 인정되지 않았다[11] 민혁당 영남위원회의 영향을 받은 울산연합도 만만치 않지만, 울산 노동운동계에서 PD계열과 협력도 자주 하면서 그나마 덜 한 편이다.[12] 대장 홍성규[13] 당시 말하던 NL 주류는 인천연합을 지칭했다. 오히려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는 경기동부가 인천연합보다 사실상 "세련된" 운동을 주장하고 NL 활동가들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이다. 또한 인천연합계의 분화와 일정 수준의 과거 패권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연성화되면서 경기동부연합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NL 계열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초기에 민주노동당에서 용산 지구당 사태를 비롯해서 문제를 많이 일으킨 NL 정파도 인천연합이었다.[14] PD계열 출신과 노동운동 중앙파[15] 믿기진 않겠지만 경기동부는 과거 NL 주류의 패권적 행태를 비판하며 떠올랐다. 당시엔 한총련의 강경파(남총련 등)나 범민련을 비롯한 NL의 주류는 남한 민중들의 현실 문제보다는 반미, 통일 문제에만 집착했는데, 경기동부연합은 광주 대단지 사건 이후 성남지역의 도시빈민운동,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민중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해방운동을 주장하였다.[16] 고려대, 경희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 총학생회를 수권했고 이후 자본주의 연구회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통합진보당 의원을 지낸 김재연이 외대 총학생회장 시절 이 계열을 대표해 한총련 의장에 출마하나 강경파에 밀려 낙선한다.[17] 서울연합 출신[18] 노학연대선봉대 출신[19] 지하에서 활동하던 이석기가 대중성이 없었기 때문에, 대중성을 위해 당대표로 끌어들인 '얼굴마담'이라는 설도 있다. 이정희 대표 본인은 서울출신에 서울대를 나와 경기동부연합과 학연지연적인 고리가 없고 이 때문에 약간 겉도는 모습이 있는데, 이석기가 수장으로 있는 RO 조직에 초대 받지도 못했다.[20] 3월 22일에 진중권이 이정희 대표 주변에 계파가 존재한다고 폭로하였고, 이때 작성된 딴지일보 정치부장 물뚝심송이 쓴 우리안의 괴물 - 경기동부 @는 내용이 어렵긴 하지만 경기동부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글로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앞서 언급한 진중권의 기사와 함께 이 두 가지 기사는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각종 기사에 꼭 인용되는 글. 경기동부 세력은 위의 기사를 반박하기 위해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조직에 대하여 '실체가 없다, 이미 해산되었다며' 존재를 부인하며 논점을 흐리는데, 경기동부의 지도부 중 하나인 정형주는 한겨레의 경기동부연합의 몸통을 만나다 인터뷰에서 진중권의 주장을 반박하며 경기동부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통진당 이정희 대표의 경우 그 조직의 실체가 무엇인지 당 대표인 지금도 알지 못한다는 소리까지 하였다. 위에서 설명했듯 단체가 해산되었다고 해서 그 밑에 있던 사람들도 흩어진 것은 아니다. 주요 정당 내에 비공식적으로 계파로 존재하는 친이, 친박, 친노 등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21] 이석기는 국회의원이 되는 순간까지 워낙 지하에서 활동했기에 경기동부연합 핵심이 아니면 다른 NL운동가들도 이름을 몰랐다.[22]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이 경기동부연합이 주체가 된 시위가 있었는데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소리가 나왔을 때 다른 시위대 쪽에서 비난이 일기도 했을 정도였다.[23] 인천연합은 정의당 비례대표에서 당선자를 냈으며, 울산연합은 정의당, 노동당과 연대로 지역구 의원 2을 배출했다. 그에 비해 경기동부는 구미갑 선거구에서 38%의 득표를 확보한 것이 최대 성과, 그것도 일대일구도로 인한 어부지리로 얻었기 때문이다.[24] 외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장, 경인총련 의장 출신[25] 울산연합계 김종훈[26]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17명[27] 사실 이들이 쓰는 방법은 역사가 오래된 방법으로 대학교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써먹은 방법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체코슬로바키아의 무혈 쿠데타와 같은 동유럽 공산화와 연관성이 있는 부분이다. 좌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일단 2차대전 전후 미국이 이탈리아 총선에 우파 진영에 자금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개입하기도 했고 뉴라이트 계열에서 대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자신들이 교육시킨 인원을 투입하여 그들에게 자금을 대주었다는 의혹이 있다. 서구에서는 French Turn이라고 해서, 한자어로는 "가입 전술"#일본어 위키피디아이라고 하여 굉장히 오래된 전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