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1 23:27:49

김병현(독립운동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11, #a11 20%, #a11 80%, #a11); color: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단장
김원봉
고문
김대지 황상규
단원
강세우 강인수 고인덕 곽재기
권정필 권준 김광추 김기득
김방우 김병현 김상옥 김상윤
김성숙 김시현 김익상 김지섭
김철호 나석주 남정각 박문희
박자혜 박재혁 박차정 박희광
배동선 배중세 배치문 서상락
송천흠 신악 신영삼 신채호
신철휴 오성륜변절 유자명 윤세주
윤치형 이구연 이병철 이병희
이성우 이수택 이육사 이종암
이태준 정이소 최수봉 황옥불확실
최용덕 한봉근 한봉인 홍가륵
유시태 이원대 이원기 윤병구
유석현 정율성불확실 문시환 이춘암
공약 10조
① 천하의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
②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을 희생하기로 함.
③ 충의의 기백과 희생의 정신이 확고한 자라 함.
④ 단의(團義)에 선(先)히 하고 단원의 의(義)에 급히 함.
⑤ 의백(義伯) 1인을 선출하여 단체를 대표함.
⑥ 하시(何時) 하지(何地)에서나 매월 1차씩 사정을 보고함.
⑦ 하시 하지에서나 매 초회(招會)에 필응함.
⑧ 피사(被死)치 아니하여 단의에 진(盡)함.
⑨ 1이 9를 위하여 9가 1을 위하여 헌신함.
⑩ 단의에 배반한 자는 처살(處殺)함이다.
5파괴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④ 각 경찰서
⑤ 기타 왜적 중요기관
7가살
조선총독 이하 고관
② 군부 수뇌
대만총독
④ 매국노
⑤ 친일파 거두
적탐(밀정)
⑦ 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
조선혁명선언 황옥 경부 폭탄사건 }}}}}}}}}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독립운동가. 박희광, 김광추와 함께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의용군 제5중대 3인조 암살단(친일파 토벌대)중 1인이다.

2. 생애

1924년 6월 1일에 윤영기의 안내로 중국 무순 방면의 고등계 첩자이며 무순조선인회 악질 친일파 정갑주(鄭甲周)와 그 가족을 현장에서 암살하며 사형 선고문을 붙이는 공을 세운다

1924년 6월 7일 봉천성 보민회 회장 최정규 암살을 시도하였으나, 최정규가 숨어 최정규 암살은 실패, 그의 장모 이씨는 현장에서 살해, 처 허균은 총상을 입혔다(처는 총상후 몇 일뒤 사망하였다.)

1924년 6월 7일 김광추, 박희광과 함께 봉천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불발로 실패하였다.

저녁 금정관(金正館)에서 군자금을 삼백원을 받아 나오다 중국관헌에게 김병현, 박희광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김광추는 달아나 조선인 집에 숨어서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몇 일뒤 일본 밀정의 밀고로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총격전 끝에 현장에서 순국하였다.[1]

김병현, 박희광의 체포 현장에서 증거물로 권총 세자루, 실탄 160발, 폭탄 한 개, 사형 선고문 여러장을 압수했으며, 체포된 박희광과 김병현은 중국관헌, 일본영사관으로 인도되었다가 관동청지방법원의 재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직과 조직원의 보호를 위해 비밀을 지켜냈다.

1943년까지 뤼순형무소에서 신채호, 이회영, 우덕순, 박희광 등과 함께 수감 생활을 했었다.


[1] 김광추는 총격전을 벌이다 현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