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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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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인
파일:김삼락.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김삼락
KIM Sam-rak
출생 1940년 6월 19일 ([age(1940-06-19)]세)
평안북도 박천군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학력 강릉후진초등학교
강릉중학교
동북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연세대학교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해병대 축구단 (1964~1967)
양지 축구단 (1967~1969)
한국상업은행 축구단 (1969~1970)
감독 해군 축구단 (1972)
동북고등학교 (1980~1983 / 코치)
대한민국 U-20 (1983~1984)
동북고등학교 (1985~1990)
대한민국 U-17 (1985~1987)
대한민국 U-20 (1988~1989)
대한민국 U-23 (1990~1992)
아시아 학생축구선수권 대표팀 (1998)
행정가 축구지도자협의회 의장 (1987)
중고등학교축구연맹 부회장 (1988~1998)
대한축구협회 이사
국가대표 24경기 2골 (대한민국 / 1963~1968)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4.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 감독. 연령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두루 지휘한 감독이었다.

그 유명한 "일본은 축구 관두고, 야구나 해라!" 발언을 한 감독이다.

2. 선수 경력

한국전쟁 당시 남한 쪽으로 내려온 실향민 출신으로 강릉에 자리를 잡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강릉중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후 서울의 축구 명문고 동북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고, 1959년 초대 AFC U-19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청소년 대표에 뽑히면서 처음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1960년에도 청소년 대표로 아시아 챔피언십에 나가 2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약 국가대표급 유망주로 부상한다.

1961년 대학에 진학하고 나선 국가대표 상비군 선발전에 여러차례 나갔으나 선발되진 못하였고, 이후 연세대 소속으로 전국체전과 한일 교류전 등 수 차례의 우승의 주역이 되며 1963년 므르데카컵에 나서는 국가대표팀에 드디어 첫 선발된다. 이후 1964년 올림픽 축구 본선에도 출전하나 3전 전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대학을 떠나 해병대 축구단에 입대하며 처음 실업축구 무대에 데뷔했다. 1967년에는 중앙정보부가 야심차게 창설한 사상 초유의 정보부 직속 축구단 양지 축구단에 선발되어 1968년까지 활약했다. 이후 한국상업은행에 입사해 1970년까지 선수생활을 한 뒤, 일반 근무직으로 옮겨 회사원의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3. 감독 경력

상업은행에서 나온 뒤 1972년 잠시 해군 축구단 감독을 맡았으나 오래가진 못했고, 이후 축구가 아닌 자영업을 두루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성공은 하지 못했다. 운수업, 요식업 등 다양한 시도를 했던 것으로 과거 기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회택의 설득으로 다시 축구계로 돌아오게 된다.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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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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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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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박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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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황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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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이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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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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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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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박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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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박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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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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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우상권 / 손명섭
강준영 / 이병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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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안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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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한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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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함흥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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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박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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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유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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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장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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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이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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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오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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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유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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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유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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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김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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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박종환
(박종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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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김삼락
(김삼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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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정병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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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대

오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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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김삼락
(김삼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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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안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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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남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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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박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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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원흥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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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박이천
(박이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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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박창선
(박창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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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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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대

박성화
(박성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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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조동현
(조동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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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홍명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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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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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수
(안익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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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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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
(정정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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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김정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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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중
(김은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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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이창현
(김은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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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대

이창원
(이창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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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기
박종환호 김삼락호 정병탁호

1980년대 들어 그는 모교인 동북고등학교의 코치직부터 시작해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83년 SE 파우메이라스로 지도자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고 1983년 12월부터 박종환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았다. 그러나 1984년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그만 태국에게 승부차기로 발목을 잡히며 4개국이 겨루는 본선 진출에 실패해버렸고, 1985년 동북고로 돌아간다.
그러나 1985년 말 다시 한번 그에게 U-17 대표팀 감독이라는 기회가 주어졌고, 김삼락 감독의 17세 이하 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FIFA U-17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해 8강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이 성적으로 김삼락 감독의 입지도 상당부분 회복되어 축구계에서 꽤나 큰 발언권을 가지게 된다. 이 시기부터 김삼락씨는 축구지도자협의회 대표를 맡게 된다. 그리고 1987년 말, 당시 축구계에 큰 파문을 낳은 항명 파동을 주도하며 최순영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을 끌어내리는 데 일조한다.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기
오근영호 김삼락호 안세욱호

이후 이종환 신임 대한축구협회 회장 체제에서 다시 U-20 대표팀 감독을 맡아 아시아 대회에 출전했으나 4위에 그쳐 또다시 세계대회 진출에는 실패했다.

3.1.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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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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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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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김삼락
(김삼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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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아나톨리 비쇼베츠
(비쇼베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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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허정무
(허정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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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박항서
(박항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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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김호곤
(김호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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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핌 베어벡
(베어벡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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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박성화
(박성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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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홍명보
(홍명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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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이광종
(이광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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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최문식
(이광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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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신태용
(신태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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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정정용
(정정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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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김봉길
(김봉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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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김학범
(김학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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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황선홍
(황선홍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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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미정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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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 1994년 K리그의 신생구단이자 자금력이 열악하기로 유명했던 전북 버팔로 구단을 돕는 성금 모금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축구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 늦깎이 대학생으로써 잠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해병대 입대 후 다시 복학하지 못하고 있던 연세대학교에 1998년부터 다시 복학하여 1999년 기어코 졸업을 해내는 열의를 보였다.
  • 2000년엔 본인이 거주하는 고양시 풍동에 축구카페를 차린 것으로 언론에 다시 보도되기도 했다.#
  • 주먹계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1960년대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 이강환칠성파, 이화룡의 이화룡파, 이정재의 이정재파 등 향후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게 되는 유명 조폭들의 조직원들과 술을 먹으면서 두루 친해졌다고 한다. 이런 뒷 배경 때문에 당시 살벌한 분위기로 유명했던 연고전 축구에서도 고려대 응원단이 김삼락에게는 별 말을 못했다고 하며, 축구를 안했으면 조폭이 되었을 수 있다는 축구계의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