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0 06:30:34

김상기(의흥부원군)


金上琦
(? ~ ?)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3.1. 조상3.2.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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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원 간섭기의 인물. 본관은 전주 김씨김경손의 증손자다. 고려 중기의 재상 김상기와는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다.

2. 생애

1343년 11월 22일, 에서 온 사신이 충혜왕을 끌어내린 날. 제군만호 김상기는 압령관 권겸, 나영걸과 원에서 파견된 고용보를 따라, 다른 제군만호와 함께 활과 검으로 무장한 채 여러 집을 옮겨다니며 수색에 나섰다. 그 대상은 충혜왕에게 아부하며 권력을 쌓은 간신들의 집으로, 군소 박양연, 임신, 최안의, 김선장, 승신 등 모두 10명이 수감돼 처벌을 받았다. 한편 덕성부원군 기철과 이문 홍빈이 권정동성사에 임명돼 정사를 바로잡을 것으로 기대됐다.
(전략) 채하중을 우정승으로, 한종유를 좌정승으로, 이제현판삼사사로, 김륜·권겸·박충좌를 찬성사로, 나익희·손수경을 참리로, 김승사·김상기를 삼사우·좌사로 임명했다.
『고려사』 권37, 세가, 충목왕 즉위년 4월 계유.
이듬해 1344년 4월, 충목왕이 즉위한 해의 인사에서 원의 도움을 받아 정치 개혁을 주도한 권겸은 찬성사에, 김상기는 삼사좌사에 임명됐다. 고려의 앞날이 밝을 것 같지만, 충혜왕이 폐위된 뒤 채워진 이 인사는 친원 인사와 그 친척의 비중이 컸다. 병신정변으로 목숨을 잃은 기철, 권겸은 말할 것도 없고, 우정승에 오른 채하중은 심왕을 옹립하려고 왕을 모함하던 인물로 참리에 오른 손수경과 마찬가지로 공민왕이 반원 노선으로 갈아탄 뒤에 죽임을 당했다. 이제현만큼은 권부의 사위로 권겸의 매부였지만 공민왕을 도와 개혁에 앞장섰다.

「이공수묘지명」에 따르면 김상기의 관직은 삼중대광 의흥부원군에 이르렀다.

3. 가족관계

3.1. 조상

충선공 김혼은 추성익대공신 계림부원군으로 판삼사사를 역임했다. 김자흥은 첨의평리 계림군으로 1311년 60세의 나이로 죽었다.

3.2. 자녀

  • 처: 교하 노씨
    • 사위: 이공수

「조인규사당기」에 따르면 노영수(노책의 부친)의 차녀가 삼사사 김상기에게 시집갔다. 또 「이공수묘지명」에 따르면 김상기의 딸은 이공수와 결혼했다. 둘은 자녀를 갖지 못했고 친척의 딸을 양녀로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