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7 21:26:42

충목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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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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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장 / 왕이지르부카 왕고 / 왕올제이투 왕흔 / 왕바스마도르지 왕저 / 왕미스젠도르지 왕토크토아부카
관련 직위: 고려 국왕

고려 29대 군주
忠穆王 / 顯孝大王
충목왕 / 현효대왕
묘호 없음
시호 고려 현효대왕
(顯孝大王)
충목왕
(忠穆王)
원 작위 심왕(瀋王)
성씨 왕(王)
흔(昕)
몽골식 이름 왕바스마도르지
(王八思麻朶兒只)
왕비 없음
부왕 충혜왕
어머니 덕녕공주
능호 명릉(明陵)
생몰년도 음력 1337년 4월 15일 ~ 1348년 12월 5일
양력1337년 5월 15일 ~ 1348년 12월 25일 (11세)
재위 기간 음력 1344년 2월 정미일 ~ 1348년 12월 5일 (4년)
양력

1. 개요2. 생애3.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4. 기타

1. 개요

막장이었던 동생아버지와 달랐던, 고려 왕조 미완의 명군으로 고려의 제29대 국왕. 묘호는 없고, 시호는 충목현효대왕(忠穆顯孝大王). 휘는 흔(昕). 몽골식 이름은 왕바스마도르지(王八思麻朶兒只). 충혜왕의 장남으로, 모후는 1비인 덕녕공주다.

정식 시호는 충목현효대왕(忠穆顯孝大王)으로 원에서 내려준 시호 '충목'을 빼고 '현효왕' 혹은 '현왕'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남자형제는 없고 같은 덕녕공주 소생의 여자형제로는 장녕옹주(長寧翁主)[1] 1명이 있다.

2. 생애

등극한 충혜헌효왕(忠惠獻孝王)의 아들
29대 30대
충목현효왕 충정왕

어린 시절은 원나라에서 보내다가, 부왕인 충혜왕이 숱한 막장 행각 끝에 폐위되자 고려로 돌아가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2]. 왕이 되기 직전 당시 황제였던 혜종 토곤테무르를 알현했는데, 그가 "그대는 아버지를 닮겠는가, 아니면 어머니를 닮겠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왕이 "어머니를 더 닮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니 이 대답을 들은 혜종은 "그대는 그대의 어미를 닮아 영특하고 선하군."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대답이라고는 하지만, 그 나이에 아버지가 얼마나 막장인지 잘 알았을 수도 있고, 충혜왕의 행태를 보면 제대로 된 아버지 역할을 했을지부터가 의문이라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와 가까워서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렇게 왕이 되었지만, 나이가 어려서 모후인 덕녕공주의 섭정을 받았다. 그래도 충혜왕대에 조성된 정치 폐단을 수정하는 데 힘썼고 정치도감을 설치하여 주로 권문세족들에게 유명무실해진 토지 제도를 개혁하는 데 노력했다. 또한 이들이 독점하던 녹과전의 폐단을 시정하여 원래 주인들에게 되돌려 주었으며, 양전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나라에 기근이 들자 구제하기도 했으며,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3대 실록의 편찬을 시작했으며 서연을 열어 학문 진흥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렇듯 어머니의 섭정 속에서도 착실히 치적을 쌓아갔지만 안타깝게도 재위 4년만인 1348년 10월에 병이 들었고, 2개월 뒤인 12월에 김영돈[3]의 집에서 승하했는데, 이 때 보령이 12세였다. 수명만 조금 길었으면 선정을 베푼 기록으로 미뤄 보건대 명군, 나아가 성군이 될 기질도 보였지만, 승하 당시 나이를 생각해 보면 그 선정이라는 것도 국왕 자신의 뜻이라기보다 덕녕공주와 중신들의 의향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왕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재위 말엽에는 외척과 환관의 전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다른 의견으로는 원나라 공주인 어머니의 힘을 이용해 개혁을 추구했다는 설도 있다. 숙부인 공민왕 역시 아내 노국대장공주의 신분을 이용해 개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원 간섭기의 임금 중 누구보다 정사를 열정적으로 돌본 임금이다.[4]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부왕을 닮지않고 어머니를 닯겠다는 명석한 대답을 했고 비록 수렴청정을 했다고 하지만, 원나라 공주인 어머니의 신분을 이용해 권문세족이 침탈한 토지를 몰수하고 신진사대부를 등용하는 동시에 양전 사업과 실록 편찬 작업을 하는 등 꽤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앞의 주장대로 이 모든 업적을 다 덕녕공주가 주도했다고 하기에는 꽤 무리가 있다. 게다가 충목왕이 즉위하던 당시 고려 국왕 자리는 거의 허수아비 신세로 신하들이 상국인 원나라의 재가를 받아 교체 요청을 하면 얄짤없이 폐위되던 자리이다. 그 예시가 바로 이복동생인 충정왕이다. 하지만 충목왕은 그런 움직임이 없었고, 게다가 12살에 요절한 점도 살펴보면 지금 시대나 옛날이나 8살은 굉장히 면역력이 약화되는 시기이다. 어머니의 품 안에 좀 더 있었다면 오래 살았겠지만, 8살이라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정사를 열정적으로 보고 계속되는 권문세족과의 전쟁 그리고 계속되는 개혁의 좌절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요절한 걸로 보인다. 게다가 하필이면 충목왕 집권기, 특히 1348년흑사병이 전 유라시아 대륙초토화시키던 시점이다. 흑사병은 1346년부터 1353년까지 7년간 전 세계를 휩쓸었다.[5] 충목왕은 안 그래도 면역력도 약한 어린이였고. 당시 위생상태도 안 좋았는데, 정치로 인한 스트레스까지 쌓인 상황에서 전염병, 특히 흑사병에 걸려서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충목왕이 명군의 자질이 있었기에, 몽골이라면 치를 떠는 공민왕도 조카인 충목왕이 선정을 펼친 점을 감안해 충목왕의 모후인 덕녕공주를 대비의 예로 꽤나 융숭하게 대했으며 충목왕을 9묘에 모시기도 했다.

고려왕조 역사상 가장 아웃사이더 왕이었는데 아버지는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귀축이었고 동생은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고 여동생은 출가외인 그리고 가장힘이되주어야할 할머니 공원왕후 마저 자신의 편이아니었다 자신의 편은 오직 모후인 덕녕공주 뿐이었을 정도 게다가 4년동안 계속되는 권문세족과의 전쟁까지 그야말로 안습이 따로없다.

숙부인 공민왕은 이러한 안습한 인생을 살다간 조카를 가여워해 충목왕을 9묘에 모시고 형수이자 충목왕의 모후인 덕녕공주를 보살폈고 또다른 조카인 충목왕의 동복여동생을 고려로 귀환시켜 보살펴주는등 조카의 가족들을 보살펴 주었다.

3. 대중 매체에서의 모습

드라마 신돈 초반부에 등장하는데, 자주 골골대며 쓰러지다가 죽음을 맞는다. 어린 나이에도 영특해서 자신이 죽으면 어머니인 덕녕공주(배우는 김여진)가 정치적으로 몰락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어머니에게 당부한다.

4. 기타

휘가 昕(아침 밝을 흔)이었는데, 문제는 이 글자를 쓰는 흔 씨가 있었다는 것. 이에 이 성을 쓰던 사람들은 예외 없이 성을 바꾸어야 했는데, 예천 권씨 전부와 안동 권씨 일부의 본관이 바로 이 흔씨이다. 아래가 그 내용이다.

예천 권씨 시조 흔적신(昕迪臣)은 고려 중엽 보승별장을 지냈다. 예천 권씨는 본래 흔(昕)씨였는데 고려 명종 때 '흔승단'이 안동 권씨 '권백서'(權伯諝) 집안에 장가을 갔고, 그의 아들이 어머니 성을 따라 '권섬'(權暹)이 되어 예천 권씨 득성조라고 한다. 안동 권씨 족보에는 '권백서'(權伯諝)가 아닌 '권백시'(權伯時)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신종 원년에 고려 명종이 예천의 흔씨(昕氏)에게 권성(權姓)을 내렸다고 내용이 있다. 또는, 예천 권씨 무진보(戊辰譜)에 따르면 예천 권씨는 '충목왕'(忠穆王)의 휘 "흔"(昕)을 피하여 외가 였던 '권'(權)씨로 개성했다고 한다. 안동, 예천 권씨는 고려 초기 내외손 관계를 시작하여 조선, 현재까지 통혼을 하고 있다. 예천 권씨는 안동 권씨와 같이 고려 초기에 시작되어 매우 오래된 한국 토본이다. 흔씨는 고려 초기에 시작된 성본인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1] 생몰년 미상이기 때문에 누나인지 여동생인지는 불명이다.[2] 역대 고려 군주들 중에서 최연소 즉위다. 대조되게 가장 최고령으로 즉위한 군주는 강종으로, 즉위 당시 나이가 60세였으며, 또한 유일하게 60대에 즉위하였다.[3]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때 고려군 총사령관 김방경의 손자다. 충목왕 당시에는 정치도감의 판사로 국가의 기강을 다잡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4] 증조할아버지인 충선왕이나 할아버지인 충숙왕도 초년에 개혁을 펼치긴 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충선왕은 말년에는 정치보단 학문에 집중하였고, 충숙왕은 아예 음주 가무로 소일했다.[5] 흑사병 최초 발병은 1344년 킵차크 칸국으로 추정되는데, 1345년 연말부터 유럽인도 방면으로 확산되기 시작해서, 1346년부터 그야말로 흑사병이 전 세계를 학살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