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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6D592><colcolor=#3F6864> 고려 선종의 후궁 원신궁주 | 長慶宮主 | |
출생 | 미상 |
이정의 사저 | |
사망 | 미상 |
본관 | 인주 이씨[1] |
부모 | 부친 평장사 이정 (平章事 李頲) 모친 상당현군 사성 개성 왕씨[2] (上黨縣君 開城 王氏) |
형제자매 | |
배우자 | 선종 |
자녀 | |
거처 | 원희궁(元禧宮) |
작호 | 원희궁비(元禧宮妃) → 원신궁주(元信宮主) |
시호 | 원신궁주(元信宮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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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선종의 후궁.한산후 왕윤의 어머니로 본관은 인주 이씨다.
2. 생애
문종 대의 명신 이자연의 손녀로 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 이정이다. 이자겸과는 사촌지간이다. 선종과 혼인하여 원희궁비(元禧宮妃)라고 불렸다. 선종은 앞서 원신궁주의 육촌인 정신현비,[6] 사촌인 연화궁비[7]를 왕비로 맞았으니 원희궁비(원신궁주)까지 세 명의 인주 이씨와 결혼한 셈이다. 정신현비는 아들 없이 딸만 있었고 연화궁비는 헌종과 수안택주(遂安宅主)를 낳았으며 원신궁주는 한산후 왕윤과 이름이 실전된 왕자를 하나 더 낳았다.선종이 죽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헌종은 병약해 스스로 정사를 볼 수 없었고, 모후인 연화궁비였던 사숙태후가 섭정하며 위세를 떨쳤다. 국정에 깊이 관여하게 된 인주 이씨 집안에서는 원신궁주의 아들 한산후 왕윤을 헌종의 뒤를 이을 다음 왕으로 세워 권세를 계속 이어가고자 했다. 원신궁주의 오빠인 이자의는 인주 이씨 종가의 장손 이자인의 동생으로 한산후 왕윤의 왕위 계승을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이후 숙종이 되는 계림공 등 종친들의 견제에 결국 이자의는 무너졌고, 외척 세력이였던 인주 이씨 집안은 숙청된다. 본디 원희궁(元禧宮)을 하사받은 원희궁비(元禧宮妃)였으나 숙종에 의해 궁주로 강등된 후 1095년 음력 10월 8일 아들들과 함께 본궐에서 쫓겨나 경원군(慶源郡)[8]으로 유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