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5 16:47:01

월화원부인


고려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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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제23부인
월화원부인 | 月華院夫人
생몰년 미상
성씨 기록실전
부모 부친 - 대광 □영장(大匡 □英章)
부군 태조
자녀 기록없음
직위 부인(夫人)
작호 월화원부인(月華院夫人)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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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창업군주 태조의 제23부인. 호족 대광 영장의 딸이다. 본관성씨는 실전이 되어 알 수 없다.

2. 생애

월화원부인도 기록이 사라지거나 누락된 다른 부인들과 마찬가지로 기록이 많이 실전되었다. 이렇게 인멸된 이유는 고려 왕실에서 그녀의 위치가 높지 못하였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태조는 고려를 세운 뒤 호족세력을 통합하는 방법의 하나로 혼인정책을 추진하였고 그 대상은 즉위를 도와준 무장세력, 학문적 능력을 가진 문사층, 귀부해온 지방호족 및 신라왕족과 같은 광범한 세력이었다.

월화원부인이 제23부인의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가문이 신라 왕족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에, 이를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 태조를 도왔을 것이며, 이러한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태조는 월화원부인을 후비로 맞아들인 듯하다.

자녀는 기록이 없으며 그녀의 궁원인 월화원 또한 본관이 실전되었기에 어디에 있었는지 위치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바이다.

월화원부인의 부친 영장(英章) 927년 왕건 휘하의 해군 장군으로서 대야성을 점령한 영창(英昌)이 있고, 신라시대부터 章과 昌이 혼동되어 쓰였으므로 동일인물이 아닌가 추정된다. 〈징효대사탑비〉에도 영장이 나오는데, <징효대사탑비>에 나온 인물은 탑비로부터 가까운 순서대로 기록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월 또는 영월과 가장 인접한 대도시 원주의 호족으로 추정된다. 영월에 은거하던 궁예가 의탁한 양길 역시 원주의 도적이었으며 이 당시 원주의 호족으로는 원극유의 원주 원씨가 있었다.

3. 가족관계

  • 친정
    • 아버지 : 영장(英章)
  • 배우자 / 남편
    • 남편 : 태조 왕건(王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