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01:38:16

김심언

金審言
(? ~ 1018)

1. 개요2. 생애

1. 개요

고려 시기의 관료. 김화성의 아버지, 김행경의 할아버지, 김극검의 고조부. 최섬의 사위.

2. 생애

정주 영광현 사람으로 최섬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최섬이 졸다가 김심언의 정수리 위에서 불이 나와 그 기운이 하늘 한 가운데로 붙는 꿈을 꾸고, 이를 이상하게 여기면서 최섬이 딸을 김심언에게 시집보냈다.

성종 때 과거에 급제해 여러 차례 승진했고 990년에 우보궐 겸 기거주가 되었고 가을 7월에 6가지의 바른 신하와 6가지의 그렇지 못한 신하에 대한 것, 자사가 해야 할 6가지의 정치를 적은 상소를 올려 반포해 관청의 벽에 써서 권장과 경계를 삼자고 청하는 봉사 2조를 올리자 성종이 시행하기로 한다.

기거랑으로 옮겨 9월 4일에는 성종이 효도를 강조하는 교서를 내리고 효도한 사람을 표창하자 성종의 명에 따라 그들에게 물품을 하사하려고 파견되었다.

목종 때 주목이 되어 지방으로 나가 농사에 힘쓰고 백성을 구휼해 큰 명성을 얻었으며, 1009년에 현종이 즉위하자 우산기상시가 되었다가 1011년 5월 5일에 예부상서로 옮겼다. 1013년 8월에는 좌복야를 맡아 지공거가 되어 진사를 뽑았고, 9월에는 예부상서에서 수국사로 옮겼다.

1014년 4월 21일에 내서시랑평장사로 옮겼다가 8월 26일에 서경유수로 부임했으며, 1018년에 죽자 조정에서는 3일간 조회를 정지하고 시호를 문안(文安)이라 했다.

김극검묘지명에 그의 후손인 김극검을 통해 가문의 이력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