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5:35:42

류홍(고려)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 역대 태묘 배향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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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주 류씨의 계보도
양의공
류소
광숙공
류홍
정간공
류인저
명의왕후
하원군군
<colcolor=#A9A9A9><colbgcolor=#A52A2A> 고려의 상서병부판사
고려의 중서문하성 평장사
류홍
시호 광숙공(匡肅公)
삼공 사도(司徒)
직위 문하시중(門下侍中)
본관 정주 류씨(貞州 柳氏)
이름 홍(洪)
아버지 양의공 류소
(襄懿公 柳韶)
배우자 낙랑국대부인(樂浪國大夫人) 김씨[1]
자녀 1남 4녀
아들 - 류인저(流仁著)
장녀 - 명의왕후(明懿太后)[2]
차녀 - 하원군군(河源郡君)[3]
삼녀 - 정주 류씨[4]
사녀 - 정주 류씨
생몰연도 1038년 이전 ~ 1091년 11월 22일
1. 개요2. 생애3. 재임 관직4. 가족관계

[clearfix]

1. 개요

고려 시대 선종 대의 문신.

문벌귀족인 정주 류씨(貞州 柳氏)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 류소, 본인, 아들 류인저까지 삼대가 모두 배향공신이 되었다. 류홍의 숙종과 혼인하여 고려의 국구(國舅)가 되었다.

2. 생애

아버지 류소는 북방에 나가 천리장성을 쌓고 거란을 통제하여 고려의 국방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류홍도 그런 아버지를 닮았는데, 《고려사》에 아들인 류인저 열전의 기록을 보면 류홍이 무략(武略)[5]에 관한 지식이 많았고, 이를 통해 관직에 출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병법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국방 및 외교에 대한 대책을 과거 사례에 빗대어 말할 줄 알았으며 대책이 대부분 적중해 선종에게 중용되었다.

상서성 소속인 병부[6]의 장관인 상서병부판사(尙書兵部判事이 되었으며, 이후 중서문하성의 차관인 평장사(平章事)까지 올라갔다.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 平章事)[7]로 류홍은 3등급 차관인 셈이다. 선종 재위 8년 11월에 사망하였고, 광숙공의 시호를 받았다. 후에 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3. 재임 관직

본인의 묘지명은 실전됐지만, 그의 넷째 딸인 하원군군(河源郡君)의 묘지명이 남아있다. 묘지명엔 류홍의 최종 관직이 적혀있다.
  • 문산계 품계: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정 4품 품계
  • 직위: 문하시중(門下侍中). 중서문하성 소속으로 최고위직
    • 검교직: 검교태부(撿挍太傅). 검교직은 명예직으로 단순히 이름만 걸친다는 의미이다.
    • 수직: 수사공(守司空)
  • 훈위: 상주국(上柱國). 1등급 훈위. 가장 높은 훈위이다.
  • 시호: 광숙공(匡肅公)

4. 가족관계

류홍의 부인는 낙랑국대부인(樂浪國大夫人) 김씨(金氏)이며 경주 김씨 김원충의 형인 김원황의 장녀이다.

류홍은 문벌귀족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딸을 당시 문종의 왕자 계림공에게 시집 보냈다. 이후 계림공은 조카인 헌종을 퇴위시킨 뒤 왕위에 올랐고, 그의 딸은 유일한 왕후가 되었다. 그 덕에 류홍은 중서문하성의 장관인 문하시중에 추증되었다. 딸인 명의왕후는 많은 자식을 낳았고, 그 중 맏아들 왕우가 후에 임금이 되어 고려의 국통을 잇게된다. 즉 류홍은 예종의 외할아버지이며, 예종 이후의 모든 고려의 왕은 류홍의 후손이 된다.

넷째 딸인 하원군군(河源郡君)은 명의왕후의 동생으로 영평현(鈴平縣) 개국백(開國伯) 파평 윤씨 윤관의 3남인 윤언식(尹彦植)과 혼인하였다. 또한 네 딸 중 한 명은 문정공(文貞公) 강릉 김씨[8] 김상기의 아들이자 김인존의 동생인 김고(金沽)와 혼인하였다.

[1] 경주 김씨 김원황의 장녀[2] 숙종의 제1비[3] 파평 윤씨 윤관의 3남 윤언식(尹彦植)의 부인[4] 강릉 김씨 김상기의 차남 김고(金沽)의 부인[5] 국가 정책상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계략[6] 지금의 국방부[7] 평장사는 네 등급이 있었는데 1등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2등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3등 문하시랑평장사, 4등 중서시랑평장사이다.[8] 당시엔 명주 김씨(溟州 金氏 )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