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6 22:33:58

문공원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 역대 태묘 배향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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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 문씨 가문 출신 배향공신
의종 명종
정경공 문공원 충숙공 문극겸
<colcolor=#000><colbgcolor=#fff> 고려국 춘추관 차관
고려국 상서성 이부 장관
고려국 중서문하성 차관
문공원
시호 정경공(貞敬公)
본관 남평 문씨(南平 文氏)
출신지 전라도 남평현
이름 공원(公元)
묘지 조양산(朝陽山) 동쪽 언덕
→ 오관산(五冠山) 천태사(天台寺) 근처
생몰연도 1084년 ~ 1156년 12월
1. 개요2. 가족관계3.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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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중기의 문관으로, 무인 관리 집안 출신이다. 후 문공인, 문공원, 문공유 삼형제가 가문을 크게 일으킨다. 고려사엔 본인의 기록이 적지만 본인의 묘지명이 현존하여 기록이 살아남았다.

2. 가족관계

본관은 남평 문씨(南平 文氏)이다. 본인 문공원 묘지명엔 자신의 증조부와 조부의 기록이 남아있지만 절묘하게 그 부분들만 훼손되어 누구였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조부의 생전 관작은 알아볼 수 있는데, 신호위 대장군(神虎衛 大將軍) 및 초맹 중랑장(抄猛 中郎將) 직을 맡고 있었다. 전자는 고려 중앙군인 2군 6위 중 신호위 소속 대장군[1]이며 후자는 초맹반 소속 중랑장[2]이다.[3] 즉 문공원은 무관 집안 출신이다.

후 아버지 문익(文翼)이 중서문하성 소속 정3품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직까지 올라가 중견 문관직을 맡았다. 어머니는 부인 유씨(柳氏)다.

형으론 문공인(文公仁)이 있으며 동생은 남평군 개국자(南平郡 開國子) 문공유(文公裕)이다. 조카로 문공유의 아들 문극겸이 있다.

문공원은 인천 이씨 가문 이자연의 손녀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선 아들이 없었고 딸이 4명 있었다. 딸 모두가 장성해 결혼했다. 이 중 본인의 외손자이자 3녀의 아들 조영심(趙永心)이 문공원의 행장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3. 일대기

  • 직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 - 판이부사(判吏部事) - 수국사(修國史)
  • 시호: 정경공(貞敬公)
묘지명에 기록된 문공원의 마지막 관작이다. 고려사엔 그의 시호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묘지명 덕분에 알 수 있다.

문공원은 나름 높은 무관 가문 출신이다. 조부가 대장군이었는데, 이는 상장군 8명, 대장군 8명이 모이는 중방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고위 관직이었다.

그의 아버지 문익이 무관이 아닌 문관직을 제수하는데 성공했고, 이는 문씨 삼형제가 음서로 관직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문공원은 처음엔 음서제로 낮은 관직을 얻었지만 인종 대의 과거시험에 장원 급제하면서 화려하게 커리어를 시작한다.

인종은 그를 마음에 들어 했고, 점차 승진해 봉각(鳳閣)[4]에서 일하며 강한 발언권을 가지게 됐다.

인종 대에 여러 일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묘지명이 훼손되어 알기는 어렵다.

후 만73세의 나이로 죽었고, 의종은 직접 묘지를 선정해주어 조정의 원로에게 예우를 갖추었다.

[1] 무관직 중 서열 2위.[2] 무관직 중 서열 4위.[3] 초맹반은 고려명종이 조직한 국왕 친위대인데, 명종보다 한참 전 예종 ~ 인종 대 인물인 문공원의 조부가 소속되어있다. 아마 묘지명과 고려사 중 한쪽이 틀린 것으로 보인다.[4] 중서문하성의 별칭. 고려 최고 정부기관이기에 이런 별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