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역대 태묘 배향공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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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191970> 성종 문의대왕 배향공신 이지백 李知白 | ||
시호 | 미상 | |
향직 품계 | 추증 대광(大匡) | |
삼공 | 추증 사도(司徒) | |
직위 | 추증 내사령(內史令) | |
성씨 | 이(李) | |
이름 | 지백(知白) | |
생몰연도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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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과 생몰년도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 성종 대의 신하로 중국 문화 유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2. 생애
983년, 좌승(佐丞) 품계를 받고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임명되었다. 뒤에 민관어사(民官御事)로 승진하였다.993년, 소손녕이 군사를 몰고 쳐들어 왔을 때 땅을 내주자는 할지론과 남쪽으로 파천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이지백은 서희와 함께 그 제안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상소했다.
"태조께서 나라를 처음 세워 왕통을 드리우셨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충신이 한 사람도 없어서 갑자기 국토를 경솔하게 적국에 주고자 하니, 원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의 시(詩)에서 말하기를, ‘천리의 산하(山河)를 가벼이 한 어린아이, 두 왕조의 문무백관이 초주(焦周)를 한탄하였네.’라고 하였으니, 대개 초주가 촉(蜀)의 대신으로서 후주(後主)에게 영토를 위(魏)에 바치라고 권하여 오래도록 웃음거리가 되었음을 일컫는 것입니다.
경솔하게 토지를 분할하여 적국에 주어버리는 것이 어찌 연등회(燃燈會), 팔관회(八關會), 선랑(仙郞) 등 선왕(先王)의 일을 다시 시행하고, 다른 나라의 다른 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국가를 보존하여 태평한 정치에 이르는 것만 하겠습니까.
만약 옳다고 여기신다면, 마땅히 먼저 천지신명에게 고하시고, 그 후에 저들과 싸울 것인지 강화할 것인지는 오직 성상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 고려사 서희 열전 중.
이지백은 서희와 함께 불교와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국풍파의 대표였다. 고려는 광종 이래 유교 중심의 화풍파가 대세였는데, 여기에 더해 성종 대의 유교 중심 정책으로 인해 팔관, 연등회가 폐지되면서 당시 사회가 많은 갈등을 겪은 것을 보여준다. 결국 성종은 이지백과 서희의 의견을 존중해 거란과 맞서기로 하였고, 서희가 소손녕과의 담판에서 성과를 거둠에 따라 중단되었던 팔관회와 연등회 등이 다시 열리게 되었다.옛사람의 시(詩)에서 말하기를, ‘천리의 산하(山河)를 가벼이 한 어린아이, 두 왕조의 문무백관이 초주(焦周)를 한탄하였네.’라고 하였으니, 대개 초주가 촉(蜀)의 대신으로서 후주(後主)에게 영토를 위(魏)에 바치라고 권하여 오래도록 웃음거리가 되었음을 일컫는 것입니다.
경솔하게 토지를 분할하여 적국에 주어버리는 것이 어찌 연등회(燃燈會), 팔관회(八關會), 선랑(仙郞) 등 선왕(先王)의 일을 다시 시행하고, 다른 나라의 다른 법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국가를 보존하여 태평한 정치에 이르는 것만 하겠습니까.
만약 옳다고 여기신다면, 마땅히 먼저 천지신명에게 고하시고, 그 후에 저들과 싸울 것인지 강화할 것인지는 오직 성상께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 고려사 서희 열전 중.
995년, 외교관으로서 거란에 가 방물(方物)을 바쳤다. 이후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1027년(현종 18년), 성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배향공신인 만큼 분명히 시호가 있었겠지만 사서에 보이지 않는다. 후 1033년(덕종 2년), 대광(大匡)으로 추증되었다. 고려사 예지 태묘 기록엔 사도 내사령으로 나온다.
3. 역임 관작
이지백의 역임 관작 | ||
향직 품계 | <colbgcolor=white,#191919><colcolor=#191970>좌승(佐丞)[1] | |
추증 대광(大匡)[2] | ||
직위 | 간의대부(諫議大夫)[3] 민관어사(民官御事)[4] | |
추증 내사령(內史令)[5] | ||
삼공 | 추증 사도(司徒)[6] |
4. 대중매체에서
사극 천추태후에서 배우 전무송 씨가 이지백 역을 맡았다. 황주 가문과 진작에 선이 있고 다혈질에 조급한 성격의 인물로 묘사되었는데, 이전에 전무송이 보여주었던 현명하고 차분한 캐릭터와는 전혀 맞지 않아서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이는 사실 배우 본인보다는 연기 지도 및 각본 연출에 실패한 제작진의 탓이 크다. 게다가 엄연히 성종의 배향공신인데 천추태후를 진작에 지지한 답시고 반역을 일으키는 그녀를 지지하다가 성종에 의해 국문을 받고 귀양가 노환으로 퇴장한다.[1] 3품 2등위 품계.[2] 2품 1등위 품계. 사후 추증.[3] 고려 대간 부서의 차관. 국왕에게 간쟁하여 시사를 논하는 직업이었다.[4] 6관 중 민관의 장관. 민관은 호적 및 정부 재정관리 담당부서이다.[5] 내사문하성의 장관.[6] 삼공 중 제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