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왕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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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고려 현종의 제3왕후 원성왕후 | 元成王后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bd0e, #f9d537 20%, #f9d537 80%, #e6bd0e); color: #670000); color: #670000; min-height: 31px" {{{#!folding [ 기타 작위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고려 덕종 · 정종조 추존 왕태후 원성왕태후 | 元成王太后 | }}}}}}}}} | |
출생 | 990년대 추정 | ||
고려 양광도 수주 안산현 김은부 사저 (現 경기도 안산시) | |||
사망 | 1028년 8월 21일 (향년 미상) | ||
고려 개경 장경궁 (現 경기도 개성시) | |||
능묘 | 명릉(明陵) | ||
재위기간 | 고려 연경원주 | ||
1016년 6월 15일[1] ~ 1018년 9월 5일 | |||
고려 연경궁주 | |||
1018년 9월 6일 ~ 1022년 11월 21일 | |||
고려 제3왕비 | |||
1022년 11월 21일 ~ 1028년 8월 21일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본관 | 안산 김씨 | |
부모 | 부친 안산현개국후 김은부 (安山郡開國侯 金殷傅, ? ~ 1017) 모친 안산군대부인 인천 이씨 (安山郡大夫人 仁川 李氏) | ||
형제자매 | |||
배우자 | 현종 | ||
자녀 | |||
종교 | 불교 | ||
작호 | 연경원주(延慶院主) → 연경궁주(延慶宮主) | ||
시호 | 광선자성순성신절양덕영목공혜용의원성왕태후 (廣宣慈聖順聖信節良德英穆恭惠容懿元成王太后)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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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제8대 현종의 제3왕후. 현종의 시호인 원(元)문대왕과 같은 원(元) 자 돌림이다.2. 시호
대표적인 시호는 원성태후(元成太后) 및 원성왕태후(元成王太后)인데 《고려사》 <후비 열전>에는 원성(城)태후라고도 기록되어 있다.[2]현종 19년 7월에 사망하자 시호를 원성왕후(元成王后)라 한 뒤 명릉에 장사지냈다. 이후 맏아들인 덕종이 보위에 오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성왕태후(元成王太后)로 추존했다. 또한 후에 용의(容懿)와 공혜(恭惠)의 시호를 추가했다.
이후 의붓아들이자 사위이자 조카인 제11대 문종이 영목(英穆), 양덕(良德), 신절(信節), 순성(順聖)의 시호를 추가했고, 인종 18년(1140년) 4월에 자성(慈聖)을, 고종 40년(1253년) 10월엔 광선(廣宣)이란 시호를 추가했다.
3. 생애
조부는 안산현 개국후(安山縣 開國侯) 김긍필이고, 조모는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이다.외조부는 소성현 개국후(邵城縣 開國侯) 이허겸이다. 인천 이씨의 시조로, 원성왕후 김씨가 현종과 결혼한 후 인천 이씨의 세력을 크게 확장시켰다. 문종 때 이자연이 중용되면서 외척으로 성장했고 인종때 이자겸이 등장했다. 이자겸은 원성왕후 김씨의 외조부 이허겸이 받았던 소성(邵城) 지방의 작위에 봉해졌다.
아버지는 안산군 개국후(安山郡 開國侯) 김은부, 어머니는 안산군대부인(安山郡大夫人) 이씨[3]이며, 자매로 현종의 제4비 원혜왕후와 제7비 원평왕후가 있다.
제2차 여요전쟁 때 젊은 왕 현종이 거란의 대군을 피해 현 충청남도 공주시까지 내려갔다. 이때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 김은부가 현종에게 큰 도움을 주어 왕은 김은부의 세 딸을 원주(院主)로 맞이했다. 그 중 한 명인 원성왕후는 현종에게 직접 옷을 지어 바쳤다고 한다.
조부모와 부모들은 사후에 당시 관습에 따라 본관지인 안산을 읍호로 하는 작위를 받았다.[4]
슬하에 아들들인 덕종과 정종, 딸들인 문종의 제1비 인평왕후(仁平王后)와 경숙공주(景肅公主)를 두었다.
현종 19년(1028년) 7월에 사망했는데, 38살에 사망한 현종보다 3년 먼저 사망한 것으로 보아 사망 당시 많아 봐야 30대 후반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연경궁
원성왕후 김씨는 연경원을 하사받았는데 두 아들인 덕종과 정종을 낳고 거처가 연경궁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이 궁궐은 활발하게 사용되어 인종의 치세때는 왕후의 궁궐만이 아닌 임금의 정궁으로 쓰이게 되었다.5. 대중매체
- 2009년 KBS 대하사극 《천추태후》에서는 정한비가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