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관파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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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29176e><colcolor=#fff> 대한제국 대정군수 남만리 南萬里 | |
| 출생 | 1863년 |
| 경상북도 의성 | |
| 사망 | 1909년 (향년 46세) |
| 본관 | 영양 남씨 |
| 자 | 붕익(鵬翼) |
| 부모 | 아버지: 남유환(南有煥) 어머니: 안동 김씨 |
| 직업 | 군인, 관료 |
1. 개요
구한말의 군인, 관료. 춘생문 사건 당시 조선군 친위대의 중대장으로 참여하여 태형 100대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군문을 벗어나게 되어 대한제국군에는 편입되지 않았다. 최종 계급은 조선군 정위.2. 생애
1863년에 태어났다. 의성 출신의 유학자였던 류도수(柳道洙)에게서 학문을 수학했다고 한다.연무공원을 졸업한 뒤 친군 장위영의 초관(중대장)으로 배치되었다. 이후 장위영 영관 등을 지내다가 1894년 별군관(別軍官)과 정위에 임명되었다. 동학 농민 혁명 당시 관군으로서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의 농민군 상황을 정탐하는 공을 세웠다.
1895년 조선군 친위대의 중대장이 되었다. 중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춘생문 사건에 병력을 제공한 혐의로 태100대에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 이후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사면되었다. 이후에는 안의군, 거창군, 흥해군, 천안군, 대정군, 평택군 등의 군수로 근무했다.
1902년에 제주도의 대정군수로 부임하여 4년간 지방관으로 근무했다. 이 시절에 탐라지를 편저했는데 도쿄대학에 소장본이 있다. #
1909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족보에는 묘소가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신평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여담
간찰이 남아 있다.춘생문 사건 당시 주조선 프랑스공사관에서 작성한 외교문서에서는 Nam Man-li란 이름으로 나온다. # 해당 문서에 따르면 남만리는 이도철에 의해 협박당해 병력을 끌고 나왔다고 증언하는데, 정작 정변군에 적극 가담하고 도주하지 않고 체포된 것으로 볼 때 실제로는 협력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 증손녀인 남화인이 춘생문 사건과 관련하여 독립유공자로 포상신청을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