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30 04:37:40

노사신


<colcolor=#fff>
조선 영의정
태조 ~ 연산군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60420, #b82642 20%, #b82642 80%, #960420); min-height: calc(1.5em + 9.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판문하부사
홍영통, 안종원, 권중화, 심덕부, 이화, 이거이, 조준, 김사형
초대

이서
제2대

이거이
제3대

성석린
제4·5대

조준
제6대

성석린
제7대

이화
제8대

하륜
제9대

이서
제10대

하륜
제11대

성석린
제12대

하륜
제13대

성석린
제14대

남재
제15대

류정현
제16대

한상경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17대

심온
제18대

류정현
제19대

이직
제20대

황희
제21대

하연
}}}
제21대

하연
제22대

황보인
제22대

황보인
제23대

이유
제24대

정인지
제25대

정창손
제26대

강맹경
제27대

정창손
제28대

신숙주
제29대

구치관
제30대

한명회
제31대

황수신
제32대

심회
제33대

최항
제34대

조석문
제35대

이준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36대

박원형
제37대

한명회
제38대

홍윤성
}}}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39대

윤자운
제40대

신숙주
제41대

정창손
제42대

윤필상
제43대

이극배
제44대

노사신
제45대

신승선
제46대

한치형
제47대

성준
제48대

류순
}}}
}}}}}}}}}
노사신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0ad73> 조선 정승
태조 ~ 연산군
{{{#!wiki style="margin: 0 -10px -6px; min-height: calc(1.5em + 6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좌의정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문하좌시중 문하좌시중 → 문하좌정승
초대

배극렴
제2대

조준
문하좌정승
제2대

조준
제3대

심덕부
제4대

성석린
제5대

민제
문하좌정승 문하좌정승 → 좌정승 좌정승
제6대

이거이
제7대

김사형
제8대

하륜
제9대

조준
좌정승 판의정부사 → 좌의정
제10대

하륜
제11대

성석린
제12대

하륜
제13대

남재
좌의정
제14대

하륜
제15대

류정현
제16대

박은
제16대

박은
제17대

이원
제18대

류정현
제19대

이직
제20대

황희
제21대

맹사성
제22대

최윤덕
제23대

허조
제24대

신개
제25대

하연
제26대

황보인
제26대

황보인
제27대

남지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27대

남지
제28대

김종서
제29대

정인지
}}}
제30대

한확
제31대

이사철
제32대

정창손
제33대

강맹경
제34대

신숙주
제35대

권람
제36대

한명회
제37대

구치관
제38대

황수신
제39대

심회
제40대

최항
제41대

조석문
제42대

홍달손
제43대

박원형
제43대

박원형
제44대

김질
제45대

홍윤성
제46대

윤자운
제46대

윤자운
제47대

김국광
제48대

최항
제49대

한명회
제50대

조석문
제51대

심회
제52대

윤필상
제53대

홍응
제54대

노사신
제55대

신승선
제56대

정괄
제57대

어세겸
제58대

한치형
제59대

성준
제60대

이극균
제61대

류순
제62대

허침
제63대

박숭질
제64대

신수근
<colbgcolor=#c00d45,#94153e> 역대 정승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역대 영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우의정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문하우시중 문하우시중 → 문하우정승
초대

조준
제2대

김사형
문하우정승
제2대

김사형
제3대

성석린
제4대

민제
제5대

하륜
문하우정승 우정승
제5대

하륜
제6대

이서
제7대

이무
제8대

성석린
우정승
제9대

이서
제10대

조영무
제11대

이무
제12대

이서
우정승 판의정부사 → 우의정 우의정
제13대

조영무
제14대

남재
제15대

이직
제16대

류량
우의정
제17대

남재
제18대

박은
제19대

한상경
제20대

이원
제20대

이원
제21대

정탁
제22대

류관
제23대

조연
제24대

황희
제25대

맹사성
제26대

권진
제27대

최윤덕
제28대

노한
제29대

허조
제30대

신개
제31대

하연
제32대

황보인
제33대

남지
제33대

남지
제34대

김종서
{{{#!wiki style="margin: -16px -11px"
제34대

김종서
제35대

정분
제36대

한확
}}}
제37대

이사철
제38대

정창손
제39대

강맹경
제40대

신숙주
제41대

권람
제42대

한명회
제43대

구치관
제44대

황수신
제45대

박원형
제46대

황수신
제47대

최항
제48대

홍윤성
제49대

강순
제50대

김질
제50대

김질
제51대

윤사분
제52대

윤자운
제53대

김국광
제53대

김국광
제54대

한백륜
제55대

성봉조
제56대

김질
제57대

윤사흔
제58대

윤자운
제59대

윤필상
제60대

홍응
제61대

이극배
제62대

노사신
제63대

허종
제64대

윤호
제65대

신승선
제66대

정괄
제67대

어세겸
제68대

정문형
제69대

한치형
제70대

성준
제71대

이극균
제72대

류순
제73대

허침
제74대

박숭질
제75대

강귀손
제76대

신수근
제77대

김수동
<colbgcolor=#c00d45,#94153e> 역대 정승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역대 영의정
(태조-연산군 · 중종-광해군 · 인조-경종 · 영조-정조 · 순조-고종)
}}}}}}}}}}}}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익대공신
{{{#!wiki style="margin: -5px -11px; padding: 5px 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468년 10월 28일 예종에 의해 책록
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 (1등)
신숙주 신운 류자광 한계순
한명회 }}}
{{{#!wiki style="margin: -32px -1px -11px"
수충보사정난익대공신 (2등)
박원형 박지번 심회 이극증
이복 이부 이서 이준
이침 정현조
수충정난익대공신 (3등)
강곤 권감 권찬 김효강
노사신 류한 박중선 서경생
신승선 안중경 어세겸 윤계겸
이존명 정인지 정창손 정효상
조득림 조석문 조익정 한계희
한백륜 홍응 }}}}}}}}}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좌리공신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471년 3월 2일 성종에 의해 책록
순성명량경제홍화좌리공신 (1등)
권감 김국광 신숙주 윤자운
정현조 조석문 최항 한명회1
홍윤성
순성명량경제좌리공신 (2등)
김질 송문림 심회 윤사흔
이정 이침 정인지1 정창손1
한계미 한계희 한백륜 구치관
순성명량좌리공신 (3등)
강곤 김겸광 강희맹 노사신
박중선 서거정 성봉조 신승선
양성지 윤계겸 이극배 이극증
이숭원 임원준 정효상 한계순
한치형1 홍응
순성좌리공신 (4등)
구문신 김교 김길통 김수녕
김수온 김순명 류수 류지
박거겸 선형 신정2 신준
심한 어유소 오백창 우공
윤필상1 이극돈3 이석형 이수남
이숙기 이승소 이철견 이현
이훈 정난종 정숭조 한보
한의 한치례 한치의 한치인
함우치 허종 황효원
1 1504년 갑자사화로 인한 제명, 1506년 중종 때 복권
2 1482년 성종의 인신을 위조해 남의 재산을 탈취한 혐의로 인한 제명
3 1504년 조카 이세좌와의 연좌로 인한 제명, 1511년 중종 때 복권
}}}}}}}}}
<colbgcolor=#b82642><colcolor=#fff>
조선 영의정
선성부원군(宣城府院君) 문광공(文匡公)
노사신
盧思愼
출생 1427년(세종 9)
사망 1498년 9월 30일[1] (향년 70 ~ 71세)
(음력 연산군 4년 9월 6일)
재임기간 제44대 영의정
1495년 4월 23일[2] ~ 10월 13일[3]
(음력 연산군 1년 3월 20일 ~ 9월 16일)
봉호 선성부원군(宣城府院君)
시호 문광(文匡)
본관 교하 노씨
자반(子胖)
보진재(葆眞齋), 천은당(天隱堂)
부모 부친 - 노물재
모친 - 청송 심씨(1399 ~ ?)[4]
형제자매 형 - 노회신(盧懷愼), 노유신(盧由愼)
남동생 - 노호신(盧好愼)
부인 청주 경씨(淸州慶氏) 경유근(慶由謹)의 딸
자녀 슬하 4남 1녀
장남 - 노공필(盧公弼, 1445 ~ 1516)
차남 - 노공저(盧公著, 1449 ~ ?)
3남 - 노공석(盧公奭, 1451 ~ ?)
4남 - 노공유(盧公裕, 1458 ~ ?)
장녀 - 능성 구씨 구장손(具長孫)[5]의 처

1. 개요2. 생애3. 평가4. 기타5.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조선 전기의 문신.

2. 생애

혈통으로는 세종의 장인인 심온의 외손자이다. 소헌왕후의 이종조카이기도 하다.[6] 그리고 그의 할머니는 민제의 차녀로,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는 그의 이모할머니가 된다. 왕족과 얽힌 대단한 혈통인 셈.

1451년(문종 1년) 생원시, 1453년(단종 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곧 집현전 박사에 선임되었다.

1463년에는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홍문관 직제학을 겸하여 세조가 주석(註釋)한 역학계몽(易學啓蒙)의 주석서 요해 (要解)를 증보하여 편찬하고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1465년에는 호조판서가 되어 최항과 함께 경국대전 편찬을 총괄하였다. 같은 해에 호조판서에 임명되었다. 1467년 말에는 건주위 여진족 정벌의 공으로 군공 2등을 받았다. 1468년에는 남이, 강순 등의 역모[7]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 3등에 올라 선성군(宣城君)에 봉해졌다.

1471년에는 성종 즉위를 보좌한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82년에는 선성부원군(宣城府院君)으로 진봉(進封)되었다.

1492년에 좌의정, 1495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훈구파의 일원으로 생전에 사림파들에게는 엄청난 경계와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유는 연산군과 대간들[8] 간의 대립 때 연산군의 편을 들었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늘상 간신이란 딱지가 붙어야 했다.[9] 그러나 무오사화 때는 대승적 차원에서 사림파를 구제하려고 노력하였다. '조정에 청론하는 선비가 없으면 안 된다'며 사림파를 다 쓸어버리려는 유자광을 만류한 것도 이 일환.[10] 조선의 볼테르실제로 무오사화 때에는 그나마 노사신의 탄원 덕분에 목숨을 부지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문제는 그 뒤였지

몇 달 뒤에 "신이 바라는 것은 특별한 것은 없으나, 다만 경연에 부지런히 임하시고 형벌과 시사는 법도에 맞게 하소서."라는 유언을 연산군에게 남기고 사망한다. 물론 연산군은 그의 유언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도 연산군 초기에 연산군을 많이 지지해 준 경력 덕인지 자기와 함께 했던 훈구파인 이극균, 한치형, 성준, 이세좌 등이 갑자사화부관능지당하는 등 끔찍한 결말[11]을 맞은 것과는 달리 본인은 무덤 속에서 편안히 있었다.

3. 평가

개인적 평으로는 척을 지던 사림파에게 소인배 소리를 들었는데, 이러한 평과는 달리 실제 정사와 실록을 보면 인격적으로는 대범하고 유능한 정치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화로 노비송사 문제로 소송까지 있었는데 상대편이 영의정의 권력을 이길 수 없으니 노비 문서를 헌납했다. 그런데 노사신이 이것을 보고서 '내 아무리 영의정이라고 하지만 남의 재산을 부당하게 가로챌 수 없네. 이건 자네에게 돌려주겠고 이런 소송은 다시는 하지 말도록 하세.'하며 노비 문서를 상대방에게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훈구대신이지만 공과 사는 구분하는 인물이었다.

중종반정 후에도 이는 인정받았는지, 신수근이나 임사홍과는 달리 명예를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었다. 그나마 처벌받은 것이라곤 무오사화 때 연산군에게 받았던 상금을 일부 몰수당하는 정도. 노사신을 비판한 사림파들도 한편으로는 '폐주(연산군) 밑에서 잘못한 점도 있지만 잘한 것도 없지 않다'는 식으로 중립에 가깝게 평가했다.

사실 연산군의 편을 들어서 당대와 후대의 사림파들이 비판했다지만, 노사신 생전 때까지의 연산군은 비교적 멀쩡한 왕이었고, 폭군 연산군의 시작의 계기가 된 무오사화[12] 때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림파들에 대한 무분별한 처벌에 반대하고 무마시키고자 노력했으니 그리 흠이 잡힐 일은 아니다. 그리고 무오사화 이전에 노사신이 연산 편을 들었을때의 연산과 대간의 대립 과정을 보면, 연산이 폭군이라는 선입견을 최대한 빼고 볼 때 막나가는 건 연산이 아니라 대간 쪽이었다.

학자로서는 의미있는 서술을 많이 남겼다. 《삼국사절요》를 편찬하고, 1478년 역시 서거정과 함께 《동문선》을 편찬하였다. 1481년에도 서거정과 함께 《동국통감》의 수찬에 참여하였으며, 또 그 해에 서거정, 강희맹(姜希孟), 성임(成任), 양성지와 함께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을 주도했다. 참고로 이 중에서 강희맹과는 심온을 같은 외조부로 둔 이종사촌 관계이다.

4. 기타

노태우가 이 사람의 후손이다. 후대의 인물 노수신과 이름이 비슷해 혼동할 수 있으나 노수신은 광주 노씨라서 노사신과 본관이 다르다.[13]

5. 대중매체


[1] 율리우스력 9월 21일[2] 율리우스력 4월 14일[3] 율리우스력 10월 4일[4] 심온의 3녀로, 소헌왕후의 여동생.[5] 구치관의 손자.[6] 즉, 문종과 세조는 노사신과 이종사촌 관계이다.[7] 물론 강순은 역모를 꾸미거나 준역모급이나 역모에 가까운 행위를 하지 않았다. 단지 남이의 물귀신 행보에 같이 휘말려서 죽었을 뿐.[8] 이들 다수가 사림파 출신이었다.[9] 근데 사림파는 자기 편 아니면 다 소인배로 몰아갈 뿐 아니라, 이중잣대내로남불도 서슴치 않는다. 성종 때에도 유자광을 이중잣대 겸 내로남불로 탄핵했을 정도.[10] 다만 이게 정리 기록인데다가 유자광이 강겸에 대한 정상 참작을 주장한 일도 있는지라 진위 여부가 애매하다.[11] 윤필상 같이 그 당시까지 살아있던 인물들은 다수가 처형되었다.[12] 하지만 무오사화 자체는 세종대왕 이상가는 성군이더라도 김종직김일손을 대역죄로 다스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림파에 대한 피의 숙청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김일손이 김종직이 쓴 시 등등을 악용해 왕실을 능멸했기 때문. 연산군이 폐위되고 사림파가 집권하면서 사화로 인정받았을 뿐이다.[13] 도시조는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