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6:38

니켈로디언/역사

1. 개요2. 워너 커뮤니케이션즈 시절
2.1. 전신: C-32.2. 1979년: 개국 초기2.3. 1980년~1981년: 마임 시대2.4. 1981년~1984년: Silver Ball 시대
3. 바이아컴 시절
3.1. 1984년~2009년: Orange 시대, 최전성기3.2. 2009년~현재: 쇠퇴기

1. 개요

니켈로디언의 역사를 서술하는 문서.

2. 워너 커뮤니케이션즈 시절

2.1. 전신: C-3

1977년 12월 1일[1], 워너 커뮤니케이션즈 산하 워너 케이블의 자회사인 워너 케이블 커뮤니케이션즈의 주문형 케이블 TV 시스템인 큐브(QUBE)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큐브 채널 C-3은 핀휠(Pinwheel)이라는 실사극을 방영하는 채널이었다. 핀휠은 동부 기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방송되었다.

핀휠은 바람개비를 뜻하는 영단어로, 실제로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어느 집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2D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번갈아 보여주며, 실제 배우가 분한 캐릭터와 소품으로 만든 캐릭터가 있었다. 핀휠을 제작한 사람은 PBS의 유아 프로그램 《일렉트릭 컴퍼니》[2]의 자문을 담당한 교육자 비비안 호너 박사.

핀휠은 미취학 아동 대상이라서인지 상당히 정적이고 평온하지만 가끔씩 몇몇 등장인물이 투덜대거나 과일가게가 오픈하는 아침에는 활기를 띠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실사극이지만, 애니메이션이 군데군데 들어간 것이 핀휠의 특징이었다.

비비안 호너는 핀휠을 만들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전국적 방송망으로 실현하려 했는데, 당시까지는 워너의 미끼상품 취급을 받았던 모양이다. 워너 입장에서는 교육 채널을 전국 방송으로 확장하여 HBO를 이길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다는 듯하다.[3]

2.2. 1979년: 개국 초기

개국 초창기인 1979년 당시의 영상

1979년 4월 1일, 큐브 C-3를 모태로 어린이,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의 전문 케이블 네트워크 니켈로디언(Nickelodeon)이 개국했다. 여전히 큐브에서 서비스하기는 했지만, C-3 시절과는 달리 이때부터는 위성 통신으로도 송출되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니켈로디언은 1977년이 아닌, 1979년을 개국된 해로 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독립 채널이 아니었어서, 주중에는 오전 8시에서 오후 11시, 주말에는 오전 8시에서 자정까지 방영되었고, 나머지 시간은 스타 채널(훗날의 더 무비 채널)[4]이 송출되었다. 그 해 9월 14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아멕스)가 워너 케이블의 지분 50%를 매입하였고, 이에 따라 워너 케이블은 워너 아멕스 케이블(WAC)이 되었으며, 워너 케이블 커뮤니케이션즈는 워너 아멕스 새틀라이트 엔터테인먼트 컴퍼니(WASEC)가 되었다.

핀휠을 만든 비비안 호너가 핀휠 PD인 샌디 캐버노에게 방송국명을 뭘로 정할지 물었는데 PD는 "니켈로디언."이라고 답했다. 비비안 호너는 그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든 건 아니었지만, 기발하다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채널명이 정해졌다. 앞서 언급했듯 뜻은 동전 영화관. 그래서인지 이 시기의 로고를 보면 Nickelodeon의 'N'자가 카메라처럼 생겼고, 이 N자를 들여다보는 남성이 있었다.

이전에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어린이들로부터 적지 않은 인기를 끌었다.[5] 다만 아직 후세에 기억될 인기 프로그램은 몇 나오지 않았는데, 그나마 존재가 잘 알려진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 《Nickel Flicks》: 흑백 단편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를 소개한 프로그램. 진행자는 존 모시타 주니어. 훗날 1981년 페덱스 광고를 통해 '빠르게 말하는 사람'으로 유명해지지만, 엄연히 니켈 플릭스가 존 모시타 주니어의 데뷔작이다! 개국일인 1979년 4월 1일부터 방영되었던, 최초의 니켈로디언 오리지널 프로그램 5개 중 하나였다. 그러나 폭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항의를 받게 되었는데, 폭력 수위가 높았던 것은 아니고 폭력을 일체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던 당시의 니켈로디언 정책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 이로 인해 중도 종영되면서 최초의 캔슬된 니켈로디언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까지 덤으로 거머쥐고 말았다. 1979년 말에 종영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방송 영상이 전혀 남아있지 않는 환상의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이 프로그램을 다룬 유튜브 영상에 존 모시타 주니어가 직접 댓글을 달았으니 참조. 니켈로디언이 신문에 광고를 해서 신문에 실린 타이틀 사진만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긴 한다.
  • 《By the Way》: 마찬가지로 개국일부터 방영되었으나, 그 해 또는 1980년 초에 종영된 것으로 보인다. 존 모시타 주니어가 니켈 플릭스를 첫 캔슬된 프로그램이라 한 것을 보아서는 1980년 종영이었거나, 1979년 종영되었지만 그나마 이쪽이 아주 조금 더 오래 갔거나, 혹은 단명했어도 중도 종영이 아닌 단순 종영이었던 듯하다. 워낙 옛날 프로그램이고 역사도 짧아서 방송 녹화 자료가 없었으나, 2018년딱 하나가 발굴되었다.
  • 《America Goes Bananaz》: 약칭은 Bananaz. 큐브의 본사가 있는 콜럼버스에서 촬영해서 원래 타이틀은 'Columbus Goes Bananaz'였다. 니켈로디언 오리지널 프로그램은 아니고 큐브 C-1(Columbus Alive!) 채널에서 방영하던 버라이어티 쇼로, 핀휠과 마찬가지로 큐브 개국일인 1977년 12월 1일부터 방영하였다. 1977년 첫 방송부터 1978년까지는 마이클 영(야구선수 마이클 영과는 다른 인물)이 진행했는데, 이 시기 게스트들 중에는 아놀드 슈워제네거, 앤디 카우프먼, 척 존스 등이 있었다. 1979년에 마이클 영이 ABC의 토크쇼인 《Kids Are People Too》[6]의 진행자로 옮겨가면서 하차하고, 랜디 해밀턴이 뒤를 이었다. 이후 곧 개국할 니켈로디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니켈로디언으로 옮겨 방영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니켈로디언이 전국 방송망으로 출범할 예정이었기에 니켈로디언이 개국하기 3개월 전, 아직 C-1에서 방송 중이었던 1979년 1월 19일에 타이틀을 America Goes Bananaz로 바꾼 것. 하지만 1979년 12월에 마이클 영이 Kids Are People Too에서 하차하고 랜디 해밀턴이 후임이 되었고, 랜디 해밀턴이 떠난 Bananaz는 그대로 종영되었다.[7]
  • 《Video Comics》: DC 코믹스를 소개한 프로그램. 이것도 원래는 큐브 C-1 채널에서 방영했었다. 니켈로디언에서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방영되었다. TV로 보는 만화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Video Comic Book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오프닝 테마가 발퀴레의 기승이었다고 한다.
  • 《Children's Classics》: 1979년 12월 3일부터 1980년 또는 1981년까지 방영된 것으로 보인다.

2.3. 1980년~1981년: 마임 시대

1980년 사이 슈나이더가 비비안 호너의 뒤를 이어 제2대 대표에 취임했다. 니켈로디언의 로고가 바뀌었고 마임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 ID도 생겼다. 이 시기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바가 없으나, 앤솔로지 시리즈나 C-3 때부터 방영된 핀휠을 제외한 니켈로디언 최초의 장수 프로그램인 라이브와이어[8]가 이 때 처음 방송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꽤 있었다는 증거일지도.

한편 같은 해에 WASEC은 더 무비 채널을 24시간 독립 채널로 전환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니켈로디언의 오후 방송 종료 후에 다른 채널이 연달아 송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1980년대에는 First Row Features[9], Special Delivery[10] 등 앤솔로지 시리즈가 편성되기도 했었다. 당시에는 오리지널 프로그램이 정말 적었으니, 해외에서 볼 만한 작품을 수입하여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제격이었던 듯하다.

2.4. 1981년~1984년: Silver Ball 시대

1981년에 Silver Ball이라는 새로운 로고가 공개되었다. 로고송도 생겼고, 닉(Nick)을 약칭으로 내세운 것도 이 시기부터이다.

1981년 4월 12일에 허스트 커뮤니케이션즈ABC가 손잡고 만든 음악예술 전문 채널 Alpha Repertory Television Service(약칭 ARTS)가 개국했다. 이 날부터 니켈로디언은 매일 오전 8시에서 오후 9시까지 13시간 방영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ARTS가 송출되었다.

이때부터 인기 프로그램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는데, 특히 《You Can't Do That on Television》[11]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라이브와이어》가 니켈로디언 내에서 인기를 얻었던 프로그램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니켈로디언을 안 보던 시청자들도 보게 된 니켈로디언의 첫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니켈로디언에서 만든 것은 아니지만, 니켈로디언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품이다. 니켈로디언의 첫 시트콤 프로그램이며, 훗날 닉이 독자적으로 만든 코미디 및 일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이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주 소재로 나오는 슬라임은 니켈로디언에서 두고두고 써먹게 된다.[12]

이외에도 영화 관련 정보를 어린이들에게 알려주는 《Standby... Lights! Camera! Action!》[13]레너드 니모이였다! 1화에서 니모이가 인터뷰한 사람은 16세 영화평론가(!)였다고 한다.], 과학 프로그램인 《Mr. Wizard's World》[14], 음악 프로그램 《Nick Rocks: Video to Go》[15], 드라마 프로그램 《The Third Eye》[16]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방영되었다.

이 가운데 제작을 중단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핀휠이다. 니켈로디언 개국 이후에도 핀휠은 니켈로디언의 플래그십 프로그램으로서 3-5시간 편성되면서 방송을 이어갔으나, 1984년에 제작을 마쳤다. 하지만 종영되지 않고 이전 방영분을 다시 틀어주는 형식으로 방영을 이어나갔다.

한편 큐브는 처음에는 주문형 케이블 TV의 시초로 주목을 받았으나 가장 중요한 수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니켈로디언은 기성 채널들과 힘겹게 경쟁을 이어가며 분전했으나, 수입 방영한 프로그램의 인기만으로 채널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1984년까지 약 1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는 등 어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워너-아멕스 케이블의 손실은 1982년까지 약 9900만 달러에 이르렀기 때문에 니켈로디언의 손실은 WAC 전체의 손실의 1/10도 되지 않았다. 워너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갖고 있던 지분을 도로 매입하며 두 회사는 다시 갈라서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워너는 WASEC를 MTV 네트웍스라는 이름으로 독립시켰고, 곧 바이아컴이 MTV 네트웍스를 인수했다.[17] 큐브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니켈로디언은 적자로 인해 높은 퀄리티의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하는 것도, 프로그램을 수입해 방영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특히 사회 의제를 다룬 프로그램인 《Going Great》[18], 《Against the Odds》[19]가 모두 실패했고, 니켈로디언은 상황을 타개할 대책 마련에 고심하게 된다.

니켈로디언과 채널을 공유하던 ARTS는 1984년에 NBC 계열 채널 중 하나였으나 죽을 쑤고 있었던 엔터테인먼트 채널과 합병하여 Arts & Entertainment Network(A&E)로 재탄생했다. 닉과 A&E는 계속 한 채널 두 살림을 꾸려 나갔다. 니켈로디언 방송종료~A&E 방송개시 영상 그러다가 A&E가 1985년 1월부터 24시간 채널로 변화하게 되었고, 1984년 6월에 니켈로디언이 먼저 24시간 독립 채널이 되었다.

사이 슈나이더는 대표에서 물러나고, 1980년부터 프로그램 제작자로 활동해온 제럴딘 레이본느가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MTV ID 영상의 제작자인 프레드 세이버트와 앨런 굿맨은 니켈로디언의 전성기를 이룩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시기 만들어진 ID 영상은 1980년대 초 CG 수준을 감안하고 볼 때 굉장히 독창적이고, 로고의 공을 잘 형상화한 편이었다. 로고송도 대체로 호평. 지금도 1980년대 초반의 니켈로디언을 연구하는 방송 동호인들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983년 ID 녹화 테이프 복원 영상[20] 2010년대 이후 니켈로디언의 최전성기가 끝남에 따라 이 시기를 주목하는 방송 동호인들이 많아져서, Silver Ball 시대가 어떻게 재조명이 될지에 대해서도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3. 바이아컴 시절

3.1. 1984년~2009년: Orange 시대, 최전성기

The First Kids' Network
Nick Is Kids
설립 초기에는 캐나다영국 등지의 애니메이션을 수입해 방영하는 식으로 운영되었으나 수입해올 수 있는 작품의 수가 한계에 달하게 되자, 점차 재방송과 광고 따위로 시간을 때워야 하는 사태에 직면했다.[21] 1990년에 니켈로디언 스튜디오가 건립되면서 1990년대부터 니켈로디언에서 자체적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방영하기에 이르는데 이것들을 통틀어서 '닉툰'이라고도 한다. 니켈로디언의 진정한 역사가 시작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1984년 10월 1일, 새로운 로고가 제정되었다.[22] 프레드와 앨런의 주도 하에 두왑을 이용한 참신한 ID도 만들어졌다. 두왑 ID 예제 기타 프레드/앨런 ID 예제 이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하나 둘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던 니켈로디언은 이제 본격적인 내실 다지기에 들어간다.

니켈로디언이 24시간 독립 채널이 되면서 편성 시간 범위가 확장되고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방영이 가능해짐에 따라, 1985년 7월 1일에 야간 시간대 블록인 Nick at Nite[23]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1988년 1월 4일에는 닉 주니어(Nick Junior→Nick Jr.) 블록이 편성되었고, 기존의 니켈로디언 주력 프로그램들이었던 미취학 아동 전용 프로그램은 닉 주니어로 옮겨갔다.[24] 1992년에는 토요일 오후 8시에서 10시까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SNICK 블록이 만들어졌다.

핀휠은 1988년 닉 주니어 블록 편성이 시작되면서 닉 주니어 시간대인 주중 아침 시간에 방송되었다. 이미 캔슬된 프로그램의 이전 방영분을 방영하는 것이었긴 하지만 어쨌든 닉 주니어 최초의 방송 프로그램이다. 즉, 핀휠은 니켈로디언의 전신이지만, 다르게 보면 닉 주니어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핀휠은 1990년에 완전히 종영되었고, 그 뒤는 《Eureka's Castle》[25] 등 다른 닉 주니어 프로그램들이 이었다.

기존 미취학 대상 프로그램이 닉 주니어 블록으로 빠지면서, 니켈로디언은 새로운 자체 프로그램들을 많이 만들게 되었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니켈로디언 스튜디오의 완공 덕분에 가능한 일. 특히 닉툰이야말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니켈로디언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데, 첫 닉툰 세 개가 바로 더그의 일기, 러그래츠, 그리고 저주받은 명작 렌과 스팀피였다. 광기의 시작 이후 우당탕탕 로코와 친구들, 캣독, 네모바지 스폰지밥, 티미의 못 말리는 수호천사 등, 니켈로디언의 전성기를 수놓는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드라마 쪽도 강세를 보여서, 《유령캠프》[26]Are You Afraid of the Dark?으로, 호러 스릴러 청소년 드라마이다. 5시즌까지(1992년 8월 15일 ~ 1996년 4월 20일)는 캐나다 ytv와 동시 방영했다가, 종영 이후 부활하여 6~7시즌(1999년 2월 6일부터 2000년 6월 12일)은 패밀리 채널과 동시에 방영했다. 시즌 7 종영 후 무려 19년이 지난 후인 2019년 10월 11일부터 신 시리즈 방영중. 원래 청소년 전용 블록인 SNICK에서 방송했으나, 2019년 신 시리즈는 SNICK이 없어진 후라서 별도의 블록이 아닌 그냥 니켈로디언에서 방영되는 듯.] 같은 청소년 드라마부터 드레이크 앤 조쉬 같은 코미디까지 수작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졌다.

기존 닉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했었던 버라이어티 쪽도 비중은 줄었을지언정 《더블 데어》, 《올 댓》, 《아만다 쇼》 등의 프로그램들이 명성을 이어갔다. 노스탤지어 크리틱이 닉 에피소드에서 다룬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바로 이 때 만들어진 것.[27]

이에 힘입어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던 니켈로디언도 슬슬 몸을 불리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세서미 워크숍(상술한 일렉트릭 컴퍼니의 제작사)과 합작으로 Noggin이라는 채널을 만들었고[28], 그 산하에는 The N이라는 블록이 2002년부터 2007년 12월 31일까지 운영되었다. 1999년에는 게임 쇼 및 스포츠 전문 채널인 Nickelodeon Games & Sports for Kids(약칭 Nick GaS)[29]가 개국했으나, 2007년 12월 31일에 폐국하고 그 자리에는 Noggin의 블록이었던 The N이 독립한 The N(채널)이 들어섰다.[30]

2001년부터 2009년 9월 28일까지는 일요일 오후 6-9시에 청소년 대상 블록인 TEENick도 있었다. 그런데 상술한 2007년에 개국한 채널 The N에서도 낮에 TEENick 프로그램을 틀어주다가, TEENick이 폐지된 날 The N이 TeenNick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실상 TEENick 블록과 The N 채널이 'TeenNick'으로 합병한 것처럼 되었다. 한편 비슷한 성격의 블록인 SNICK은 2005년 이후에는 TEENick의 토요일 에디션으로 존속하다가 TEENick이 TeenNick으로 바뀌면서 완전히 사라졌으며[31], SNICK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2021년 현재도 같은 시간대에 블록을 편성하는 중.

니켈로디언의 몸 불리기는 해외 니켈로디언 채널 개국으로도 이어졌다. 니켈로디언 코리아(舊 닉 코리아, 2005~2022), 니켈로디언 재팬(1998~2009[32], 2018~2022) 등도 이 시기에 런칭되었다.

레이본느의 뒤를 이어 1996년부터 대표를 맡아왔던 허브 스캐넬이 2006년에 사임하고, 사이마 자르가미가 새 대표로 취임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블록 및 채널들이 복잡한 변경 과정을 거친 것은 새 대표의 취임과 관련이 있을지도?

3.2. 2009년~현재: 쇠퇴기

2009년에 30년이 넘게 사용했던 로고를 대신할 새 로고를 발표했다. 그러나 로고 변경 이후 니켈로디언이 급격히 쇠락하는 바람에, 올드 팬들은 로고 변경 이전의 닉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이들 중에서도 강성 팬들은 "로고 변경 이전이 좋았다. 로고 변경 이후의 닉은 우리가 알던 닉이 아니다."라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33]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2011년에 본격 추억팔이 블록The 90's Are All That을 TeenNick에 끼워넣어 올드 팬들을 달래주고 있기는 하다. 이 블록은 이름이 여러 번 바뀌다가 2019년에 NickRewind로 명칭이 변경된 상태.

그래도 처음 몇 년간은 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부분이 있었을지언정 아이칼리마다가스카의 펭귄 등을 통해 건재를 과시했으나,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퀄리티 저하 논란과 2010년대 이후 닉툰의 흥행 부진 등으로 인해 올드 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니켈로디언은 팬 우롱의 달인 문단에서 보듯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라도 중간에 캔슬하는 경향이 있는데, 캔슬 후 새로 런칭한 프로그램이 계속 잘 되면 좋았겠지만 2010년대 이후의 신작들은 그 이전의 작품들보다 상대적으로 흥행이 부진했기 때문에 지속적인 시청자들의 이탈을 초래했다.

2018년 2월과 3월에 각각 부치 하트맨과 댄 슈나이더가 니켈로디언을 퇴사했으며, 같은 달엔 존 크릭팔루시의 과거에 대한 폭로가 빚어졌고[34] 11월엔 스티븐 힐렌버그가 세상을 떠나는 등 여러 악재에 시달렸다. 한편 2006년부터 대표를 맡아 왔던 자르가미는 12년만에 사임하였고, 브라이언 로빈스가 새 대표에 취임했다.

2022년 중반에 파라마운트+가 출범함에 따라, 자사의 니켈로디언 채널들을 폐국시키고 있다. 과거 디즈니가 그랬듯이 미국이나 대다수 유럽의[35] 채널은 폐국을 보류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일하게 밥줄삼아 연명하는 스폰지밥마저도 더 이상 예전 수준의 인기 애니메이션이 아니게 되었다.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들 소재 등 여러가지 면에서 크게 내세울 게 없다.

2024년 3월, TV 키즈쇼에 대한 실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Quiet on Set'가 공개되면서 니켈로디언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추락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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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 18년 후인 1995년 12월 1일, 대한민국 최초의 애니메이션 방송국인 투니버스가 개국했다.[2] 원제는 The Electric Company. 칠드런즈 텔레비전 워크숍(CTW)(現 세서미 워크숍)이 제작하여, 1971년 10월 25일부터 1977년 4월 15일까지 방영되었다. 빌 코스비(1973년까지), 모건 프리먼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쇼트 서커스'라는 밴드('방송용' 밴드로 볼 수 있으나 구성원들은 실제 뮤지션)가 비슷한 영단어들로 노래를 불렀다. 다섯 명이 힘을 합쳐 알파벳과 영어 관련 초능력을 발휘한다는 내용으로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나, 한창 인기를 누리던 때에 캔슬되었다. 마지막회에서 역대 출연진들(빌 코스비 등 3명 제외)과 쇼트 서커스의 역대 멤버들이 모여서 여느 때처럼 영단어로 라임을 맞추며 시청자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노래를 부르며 종영을 알렸다. 종영 이후에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후술할 Noggin(CTW와 니켈로디언의 합작 채널)에서 일부 에피소드를 분량을 약간 편집하여 재방영하기도 하였다. 이후 2009년 1월 23일부터 2011년 4월 4일까지 PBS에서 리부트가 방영되었다. 한국에서도 AFKN에서 원판을 방영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2011년경에 EBS English에서 초능력 친구들 일렉트릭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리부트판을 방영했었다. 당시 편성표[3] 당시에는 워너 커뮤니케이션즈가 타임과 합병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워너 케이블과 HBO는 경쟁 관계였다. 1990년에 타임과 워너 커뮤니케이션즈가 타임 워너로 합병하면서 HBO는 워너 계열이 되었다.[4] 1973년 4월 1일 개국. 워너 브라더스의 영화를 TV로 방영하기 위해 개국되었다. 1979년 1월 1일에 이미 위성 통신 송출을 개시하였다. 그 해 12월 1일에 채널명을 더 무비 채널로 변경.[5] 채널 설립 시기인 1979년에는 미국에서 어린이 엔터테인먼트 위주 채널이 거의 전무하던 시기였는데, 앞 문단에서 언급한 PBS가 있긴 했으나 교육, 다큐멘터리 위주 채널이고 ABC, CBS, NBC에서 저연령층, 전연령층 위주의 애니메이션들을 방송해주긴 했지만 이들 모두 어린이 위주 채널은 아니었다. 디즈니채널은 니켈로디언이 개국한 지 4년이 지나서야 개국하였다.[6] 1978년부터 1982년까지 방영된 토크쇼 및 시사(Newsmagazine) 프로그램으로, '아이들도 사람이다'라는 이름 그대로 미국 내에서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킨 토크쇼로 꼽힌다. 마이클 영이 2대 진행자였고, 후술할 랜디 해밀턴이 3대 진행자였다.[7] 공교롭게도 Kids Are People Too 역시 랜디 해밀턴을 마지막으로 1982년에 종영했다. 1986-87 시즌에 신디케이전 형식으로 일시 부활했는데, 이 때는 마이클 영이 진행했다.[8] 6년 정도 방영했기 때문에 나무위키의 '장수 프로그램' 목록에는 등재되지 못했다. 지금의 니켈로디언 프로그램들을 기준으로 봐도 오래 가지 않은 것 같아 보이지만, 니켈로디언에서 순수 오리지널 프로그램으로 5년을 넘긴 건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후술할 Special Delivery는 다른 작품을 방영해 준 앤솔로지 시리즈이므로 제외.[9] 영국 영화를 틀어준 프로그램. 1980년 2월부터 1982년 1월까지 방영되었다. 매주 방영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방영하지 않은 주도 있었던 듯하다.[10] 1980년 4월 6일부터 1993년 9월 13일까지 방영. 첫 회에 틀어준 게 릭 데린저의 콘서트라고 한다. First Row Features와 마찬가지로 매주 방영이지만 띄엄띄엄 방영한 듯.[11] 원래 캐나다 C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인데 방영되던 도중에 이것을 니켈로디언이 수입한 것. CTV에서는 1979년 2월 3일부터 1990년 3월 25일까지 방영되었고, 니켈로디언은 1981년에 방영을 시작하여 본가에서 종영된 해인 1990년까지 틀어줬다.[12] 다만 시리즈 초반에는 썩은 음식으로 슬라임을 만드는 등 지금 정서와는 다소 맞지않는 부분이 여럿 존재한다. 담당 배우들은 당연히 이러한 슬라임을 좋아할 리가 없었고, 유해성분에 대해 불만을 많이 가지게 되면서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슬라임의 주재료를 오트밀과 젤라틴을 비롯해 비교적 안전한 재료로 바뀌게 된다.[13] 영화인과 인터뷰를 하고, 프로그램 이름처럼 영화가 촬영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1982년 12월 5일부터 1987년 3월 31일까지 총 20부작으로 방영되었다. 진행자가 다름아닌[14] 1983년 10월 3일부터 2000년 8월 25일까지 방영되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NBC에서 1951년 3월 3일부터 1965년 6월 27일까지 방영했던 《Watch Mr. Wizard》의 진행자였던 과학 저널리스트 돈 허버트가 그대로 진행을 맡은 일종의 후속작이다. 방영 초기인 1983년에는 You Can't Do That on Television, 라이브와이어 다음 가는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89년 7월 21일을 끝으로 제작이 캔슬되었고, 닉 앳 나이트 블록편성 시간대에 그동안 방송되었던 에피소드를 다시 방영하는 방식으로 1995년까지 방송, 이후에는 이른 아침 시간대에 방영하다가 2000년 8월 25일 완전히 종영하였다. 한편 돈 허버트는 1994년에 스핀오프 격으로 《Teacher to Teacher with Mr. Wizard》를 제작했고 역시 니켈로디언에서 방영되었다. 돈 허버트는 "나는 죽더라도, Mr. Wizard's World는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과연 그 말대로 그는 2007년 세상을 떠났으나, 지금도 Mr. Wizard's World는 유튜브를 통해 모습을 비추고 있다.[15] 진행자인 '시카고의 조(Joe from Chicago)'가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프로그램.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방영. 1987년에는 매주 5-6천 건의 요청이 들어왔다고 한다. 같은 계열사 채널인 MTV에 닉 록스에 나왔던 시청자들이 나오기도 했는데, 제럴딘 레이본느가 닉 록스를 통해 음악적 재능을 발굴하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실버 볼 시대 때 탄생한 프로그램이라 실버 볼 시절 니켈로디언 로고의 폰트로 타이틀을 만들었는데, 오렌지 시대에도 닉 록스의 로고는 안 바꾸고 그대로 사용했다. 1991년에는 스핀오프 격으로 《Nick Jr. Rocks》가 방영되었는데, 당연히(?) Nick Jr. Rocks의 타이틀 로고는 오렌지 시대의 폰트를 썼기 때문에 원작의 타이틀 로고와는 완전히 다르다.[16] 1983년 1월 8일에 첫 방영. 3~5개의 외국 오컬트 드라마를 수입하여, 초능력이 나오는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이것도 역시 일종의 앤솔로지 시리즈. 1984년 또는 1985년 종영한 것으로 추정된다.[17] 즉, MTV 네트웍스(現 파라마운트 미디어 네트웍스)는 WASEC의 후신이다. 한편 워너 케이블은 타임과 워너 커뮤니케이션즈의 합병으로 타임 워너가 탄생하면서 타임 워너 케이블이 되었다.[18] 1983년 10월 1일부터 1984년 2월 14일까지 방영된 어린이용 뉴스매거진 프로그램. 원래는 캐나다 CBC의 프로그램이었고 니켈로디언에서 방송되기 전에는 13회까지만 방영되었었으나, 니켈로디언이 수입하면서 CBC에서 방영하지 않았던 26개의 에피소드까지 사 오면서 니켈로디언에서는 39부작으로 방영되었다. 어린이들도 용감하다면 힘든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는 취지로 방영되었으나, 어린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여 니켈로디언 초기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이자 아픈 손가락으로 남고 말았다. 《Nickelodeon Nation》이라는 책에 따르면, 당시 시청자들 중에서도 자존감이 낮았던 어린이들은 Going Great에 나오는 어린이들은 '천재'라서 해낼 수 있었던 것이고 자신들은 평범하기 때문에 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후에도 니켈로디언에서 성공하지 못한 프로그램으로 언급되는 등 흑역사로 여겨지기도 한다. 다만 닉이 점차 애니메이션 및 오락 채널로 굳어진 후에는 Going Great나 후술할 《Against the Odds》 등 교육적 성격의 프로그램을 추억하는 올드 팬들이 생기기도 했다.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Going Great의 리포터로 활약했었다.[19] 1982년 7월 4일부터 1984년까지 방영한 역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위인들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을 어린이들에게 전한다는 취지로 방영되었다. 그러나 시청률이 Going Great보다도 낮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저조했다. 그나마 다큐멘터리여서 시청률이 기대되는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질타는 받지 않고 조용히 종영된 듯하다. 이 프로그램도 초기 니켈로디언의 부진을 나타내기로는 Going Great 다음 가는 안타까운 사례이다.[20] 업로드 일자가 2021년 4월 1일이다. 방송 동호인들의 활동이 왕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21] 1988년부터 1999년까지는 루니 툰 단편들을 방송한 적도 있었다.[22] 단 로고의 폰트와 오렌지색 바탕은 비공식적으로 Silver Ball 시대 말기에도 혼용되고 있었다. 일종의 과도기인 셈.[23] '닉 앳 나이트'로 발음하지만, Night가 아니라 Nite가 정식 표기이다. 발음은 Night와 같이 하여 밤 시간대라는 것을 명시하면서도 Nick의 스펠링과 비슷하게 철자하여 운율을 맞춘 듯하다.[24] 닉 주니어는 2009년에 'Nickelodeon's Play Date'로 리브랜딩되었고 대신 새 자매 채널 Nick Jr.(채널)가 개국했다가, 'Nickelodeon's Play Date'가 Nick Jr. on Nick으로 바뀌었다. 니켈로디언 산하 블록의 닉 주니어와 자매 채널인 닉 주니어가 공존하게 된 셈.[25] 1989년 9월 4일부터 1991년 11월 10일까지 방영하였다. 하지만 첫 방송부터 핀휠 종영까지는 기존 핀휠 편성 시간대의 일부를 할애받아 방송했기 때문에 사실상 핀휠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간주되기도 한다.[26] 원제는[27] NC가 다룬 것들 중에 유일하게 You Can't Do That on Television만 이전 시대에 만들어졌다. 물론 NC 역시 YCDTTV는 니켈로디언 스튜디오에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언급한 후에 리뷰를 하였다.[28] 합작 개국이지만 세서미 스튜디오는 계속 관여하지 않고 2001년에 운영을 그만두었다. 2009년에 폐국된 후 2015년에 스트리밍 서비스로 탈바꿈하여 2024년에 서비스를 종료하기까지 꽤 오랜 기간 동안 브랜드가 존속하였다.[29] 원래는 블록이었으나 독립 채널이 되었고, 독립 이후에는 Nick GaS 산하에 블록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본가에서 방영했던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이 여기서 재방영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적어도 대략 2003년까지는 닉에서도 프로그램 편성에 있어서 상당히 신경을 써준 듯하다. 참고로 여기서 방영된 프로그램 중에는 원래 본가에서 1992년에 방영되었었던 비디오 게임을 다루는 버라이어티 쇼 Nick Arcade와 Nick GaS 오리지널 프로그램 Nick GaS Gamefarm이 있었는데, 두 프로그램 모두 게임으로 실력을 겨루는 형식으로 지금의 e스포츠 이벤트전과 유사했다. 또 MLS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다루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며, 당시 ID를 보면 PlayStation 2 등의 게임기용으로 발매된 게임들을 소개하기도 했던 듯하다.[30] Nick GaS 폐국 당시 시청자가 찍은 영상을 보면 Nick GaS ID 송출 직후 The N으로 채널명이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댓글을 보면 2020년대에 이르러서도 Nick GaS를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이 은근히 많은 듯하다. 폐국 이후에도 Dish Network에서 Nick GaS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으나 2009년에 완전히 종료하였다. 이후 2019년에 같은 바이아컴CBS 계열 스트리밍 방송 채널 Pluto TV에서 NickGames가 출범했으나, 2020년에 폐국하였다.[31] 2013년 SNICK 21주년을 기념하여 옛날 프로그램을 재방송해주는 TeenNick의 블록인 The 90's Are All That(現 NickRewind)에서 일시 부활한 적이 있으며, 4년 후에 25주년 기념으로 NickSplat(前 The 90's Are All That, 現 NickRewind)에서 다시 일시 부활한 바 있다.[32] 니켈로디언 재팬은 계약 만료로 2009년에 채널을 종료했었다. 이 영상을 보면 ID 영상 같은 게 나오다가 말고 전파가 끊기고 화면이 암전된다. 이와는 별개로 스폰지밥이 방송된다는 예고 영상 도중에 전파가 끊기고 컬러바가 나오는 영상니코니코 동화에 올라갔는데, 전자는 정말로 폐국 당시 영상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후자는 합성일 가능성도 있다. 두 영상은 유튜브에 업로드되었는데, 일부 미국 닉 시청자들은 후자를 보고는 스폰지밥이 '작별인사'를 한다고 슬퍼하는 글로 댓글란을 가득 채웠다(...). 다만 일본어를 알아듣는 일부 양덕들은 "스폰지밥이 '예고 영상'으로라도 마지막 인사를 남기려고 손을 흔들었나 보다"라고 댓글을 남기며 애석해하기도 했다. 예고 도중 컬러바 영상이 정말 폐국 당시의 영상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니켈로디언이 다시 일본에 와 주길 바라던 일본 시청자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행히 무려 9년이 지난 2018년에 부활하였다. 그러나 이미 전성기가 훌쩍 지난 후라 그런지 4년 뒤인 2022년에 다시 폐국하였다.[33] 이들은 1980년대 초 Silver Ball 시대의 ID 등 방송 자료들을 접하고는 "Silver Ball도 멋지고, 1984년부터 2009년까지의 것들은 두말할 것도 없는데 2009년부터의 영상은 역겹다"라는 식으로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ID가 채널의 상징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니켈로디언의 반등과 추락은 유독 로고 및 ID 스타일의 변경 시기와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닉을 지켜본 올드 팬들이 2009년 이후의 ID를 고깝게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34] 이보다 몇달 전, 비슷한 경우로 링컨의 집에서 살아남기의 기획을 맡았던 크리스 사비노가 폭로 사건의 여파로 해고당하는 사태가 있었다.[35] 사실 파라마운트 글로벌은 채널 폐쇄에 디즈니보다는 소극적이며, 특히 유럽의 경우 컴캐스트와의 합작 법인에서 운영하는지라 더더욱 채널 폐쇄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