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4:33:28

대구 희망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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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3. 희망원 1기(민간운영), 그 운영 실태4. 천주교 이관 이후의 희망원 2기
4.1. 원생에 대한 강압적 관리4.2. 시설문제4.3. 외부 자원봉사자 및 내부 직원에 대한 입단속4.4. 허술한 관리 - 직원 프렌들리4.5. 시설 내 의료 문제4.6. 급식 문제
5. 김 부원장 전용 하녀 의혹
5.1. 의문사
6. 주변 주민들의 증언7. 반응 및 여파
7.1. 대중들의 인식7.2. 사태의 원인 파악7.3. 자성의 목소리7.4. 3차 국정감사를 앞두고7.5. 희망원 공식 입장7.6. 대구대교구장 사과문
8. 결과9. 관련 문서

1. 개요

대구광역시립 희망원은 1958년 12월 31일 개설된 대구광역시의 복지시설이다. 초창기 원장은 정인택이었으며 이후 1980년 4월 1일 순수 민간으로만 운영되던 시설이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이관되었다.[1]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동안 정부로부터 전국 우수 부랑인 복지시설로 계속 운영되고 있었고 참여정부 말기에는 대통령상까지 받았을 정도로 대외적으로는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다.[2] #

그러나 생활인들에 대한 학대, 감금, 폭력, 생활인들에게 지원되어야 할 국가보조금 등이 횡령으로 빼돌려지는 등의 비리 문제가 발생하였다. 열악한 시설 운영으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6년 간 309명[3]이 사망하는 등 수십년간 참혹한 인권 유린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대구 희망원은 한국 천주교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고 '천주교가 운영한 '인간사육장'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2. <그것이 알고싶다> 방영

2016년 10월 8일에 #1048, <가려진 죽음 - 대구 희망원, 129명 사망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3. 희망원 1기(민간운영), 그 운영 실태

1958년에는 당시의 사회적 약자 격리시설이 그렇듯 학대가 일상이었다고 한다. 초창기 입소자였던 임대관의 증언에 따르면 전후 부모를 여의고 대구에서 부랑하던 고아였는데 부산 형제복지원과 마찬가지로 격리시설 담당자들이 발견하더니 전용 차량에 강제로 탑승해서 수용했는데 고문과 폭행은 일상이었다고 하며 심지어 개줄을 걸어서 부리기도 하였다. 그는 대가리박기 때문에 이미 탈모가 올 정도였다고 한다. 왼손잡이였던 그는 왼손에 고문을 당해서 왼손이 불구가 되었으며 당시 어림짐작으로 일주일에 평균 5명이 죽어나갔다고 증언했다. 일단 시신은 그냥 대충 장기간 자연 부패되도록 방치하였다고 한다.

부산 형제복지원과 마찬가지로 당시 3~4공 정권에서 대외적 여론 호도를 위한 복지시설 수상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1980년에 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100% 민간으로만 운영되던 시설은 정부에 의해 천주교 대구대교구로 운영이 이관되었다. 부산 형제복지원이 신나게 비판받았지만 이 시설만은 천주교 및 종교단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 때문에 늦어도 2016년까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교황 대사가 방문하고 갈 정도였다.

4. 천주교 이관 이후의 희망원 2기

명목상으로 원장신부를 수장으로 두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자는 김○○ 부원장이었으며 실질적으로도 원장신부보다도 발언권이 훨씬 강했다고 한다. 원장신부는 그저 부원장에 호의적일 뿐이었던 소악당 바지사장에 가까웠다. 애초에 김 부원장은 종교직도 아니었으며 원래 희망원 부원장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대구광역시의 일개 공무원이었지만 인수과정에서 낙하산 인사인지 부원장 자리에 앉았고 실질적으로 2기 희망원 전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에 이르게 되었다.

2기 희망원의 전말이 알려진 시점에 그는 지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6년 초부터 익명의 투서들이 대구광역시 주요 공기관 및 천주교 단체에 송신되는 걸 시작으로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하였고 시민단체와 야권 정치인들로 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가 발족해 2016년 9월 19일 현장 조사를 하자 깨끗한 것처럼 보이려다가도 몇몇 의혹에 대해서 변명하는 시설 관리자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은 현장 조사 후 일단은 관리 중역에 있는 바지 사장 및 그 하수인 성직자들과 어찌해서 면담까지 하였다. 그 중 배식 의혹에 대해서는 "식자재 구매 내역을 옳게 검수하지 않았다 이거지요"라고 하면서 극구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시민 연대쪽에 우리가 조사를 받는 게 아니라, 그래서 일단은 의원님 선에서만 응답받도록 하겠습니다"라면서 이 간담회가 더 알려지는 것을 어떻게든 원치 않는 눈치였다. 또 어떤 사제는 "공정하게 모든 부분들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환영하지만, 악의를 먼저 가지고 와서 그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좀…"이라면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러한 전말은 국가인권위원회 및 진상위의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늦게 잡아도 2014년부터 2016년 중순까지 전체 수용 인원의 10%인 129명이 사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4.1. 원생에 대한 강압적 관리

25년간 근속했던 전 스탭 강○○ 씨의 증언에 따르면 수용인들을 한 방에 쑤셔넣는 건 기본이었으며 폭염 같은 집중 관리가 필요한 기간도 예외는 없었다. 이때 사망자가 나와서 성직자로 구성된 상부에 호소해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담당 선생한테 이야기하라는 식으로 일축했다. 자신이 당시 근무했던 동 건물에서 8년을 일한 동안 관리직 성직자들이 올라온 일들이 없었다고 한다.

6년 근속했던 전 스탭 민○○ 씨의 증언에 따르면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수 원생의 신체에 몸을 구속당한 흔적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

심리안정실이라는 이름의 독방은 명목적으로는 조현병 환자의 '폭력성 행위 방지'를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외부에서 잠그고 내부에서는 정상적으로 빠져나올 길이 없는 사실상의 독방으로 운영하다시피 했다. 강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 독방에 수용되는 이들은 규율을 어긴 원생에게 징계라고 해서 심하게는 3주~1달 이상 격리시켰다고 한다.

직원들에 의한 폭행 의혹도 제기되었는데 특히 말이 어눌하거나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대상으로 집요하게 뺨을 때리는 식으로 은밀한 폭행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4.2. 시설문제

목욕탕의 구조도 전혀 장애인에 대한 고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관리도 허술해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목욕하다 미끄러져서 죽어도 모를 정도.

4.3. 외부 자원봉사자 및 내부 직원에 대한 입단속

그동안 외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숱하게 왔지만 대부분의 외부 봉사자들에게는 정해진 코스로만 봉사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근속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실상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6년 근속했던 전 스탭 민○○ 씨의 증언에 따르면 상부 관리직들이 '봉사자로서 을 지켜라, 여기서 본 것을 그대로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걸 삼가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또 공익으로 근속했던 최○○씨는 희망원 측에서 입단속을 부탁하는 전화를 받았다고도 한다.

시설의 부조리를 함구하는 것은 종교인이었던 중간 이상 관리직들도 마찬가지여서 전직 직원이었던 박○○씨는 "신부님이 이렇게 이야기하셨어요. 한 울타리 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서 되겠냐, 구타 장면을 목격한 건 알겠지만 물증도 없는 네 증언만 가지고는 그냥 처벌을 해야 되겠냐"는 식으로 나왔다고 증언했다.

그나마 내부에서 작성한 자체 감사 보고서도 '모든 규칙에 의거되고 잘 처리… 전문적이고 잘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하며… 회계 처리가 적정하였다'는 식의 짧은 자화자찬이 전부였다. 이에 대해서 임성무 사무국장은 "작은 시민사회조차도 감사보고서를 A4 한쪽으로 쓰지 않습니다"라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4.4. 허술한 관리 - 직원 프렌들리

고된 직업이라고 알려져 있는 사회복지사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의 직원들은 처우가 좋았으며 근무 시간도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로 일정했다. 대부분의 직원이 다 그렇게 일하며 칼퇴근을 한다. 특히 이러한 '직원 프렌들리'는 간부급일수록 더 두드러지는데 이런 간부급이 받는 연봉이 타 복지시설의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보다 천만원 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2교대~3교대 등 야간 교대 시스템이 제대로 있던 것도 아니며 대부분의 직원이 퇴근한 후에는 소수의 인원과 관계자만 남는데 그 안에서는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원생들을 모니터링할 인원은 부족하고 자연스레 원생들은 방치되며 원생들을 구별 없이 대충 몰아넣는(것으로 추정되는) 수용 형태다 보니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상대적으로 건장하고 험상궂은 원생들이 약한 원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약육강식아수라장이 되기 일수였다.[4] 원생 간의 폭행이 사인으로 의심되는 시설 희생자들도 종종 있었다. 이런 희생자들은 보통 병으로 죽었거나 자기 실수로 죽었다는 식으로 사망진단서가 끊어졌다고 진상위에 참여했던 야당 국회의원 중 한 명이 밝혔다.

심지어 원생들이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동안 직원들은 원장신부 축일 파티를 성대하게 치른다면서 인근 성당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연습/시행하였다는 관계자 증언까지 나왔다. 2~3주 동안 연습하는데 하루 전이 되면 직원들이 시설 일은 뒷전이고 오히려 그 시간대에 축일 파티 리허설에 매진했다고 한다.

4.5. 시설 내 의료 문제

양심 있는 하급 직원이 문제가 생긴 원생에게 응급조치를 취하려고 하면 상급자 직원이 봉사자의 영역이 아니라면서 제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약품 관리의 경우 냉장 보관해야 할 약품들이 상온인 일반 수납장 안에 유통기한이 다 되어 가도록 굴러다니는 경우가 숱했다. 담당 직원의 말에 따르면 냉장고 공간이 모자라서였다고 하지만 9월 19일 진상위 현장 조사에 따르면 냉장고에는 약보다 남아도는 술, 기타 식품 같은 것들이 먼저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투약 과정 자체도 문제였는데 항상 칼퇴근 본능에 시달리는 절대 다수의 직원들이 칼퇴근하더라도 약은 먹이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인해 저녁 때 먹어야 할 것을 한낮에 먹이는 일이 빈발했다. 게다가 처방의 대부분도 수면제 성분인 클로르프로마진인데 안 그래도 빈속에 먹는 것이라 약효가 더 강할 수밖에 없었고 정작 저녁 먹을 때 원생들이 졸려서 빌빌댔다.

또 어떤 홍보사진에는 야외에서 장사진을 세워 놓아 가면서 1명씩 천천히 정신병리용 약을 먹이는 모습이 버젓하게 내걸려 있었는데 땡볕 아래라 그렇다고 하면서 장기 근속직원도 충격적이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관리 인원 부재는 의료적으로도 자연스레 적용되어서 직원들이 대부분 출근한 시간이 되면 간호 인력도 부족해 의료 사각에 놓이는 경우가 훨씬 빈발했다. 윗선의 고의적 지시인지는 불명이지만 이러한 시설 내 응급상황이 일어나는데도 119를 부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중간 의료진조차도 119가 어딘지 모른다면서 119를 부르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희망원에서 불과 1마일 정도 위치한 지역 119에서는 희망원 쪽의 응급 제보를 접수받은 기록이 전혀 없으며 지역 119 서장조차 희망원의 문제점을 신문을 보고서야 알게 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한술 더 떠서 서장이 "공공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은 내부적으로 쉬쉬해서 노출이 안되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내부에서 알리지 않고 싶은 그런 것도 있지 않나 당장 타박상 같은 경우는 눈으로 드러나잖아요."라고 증언하면서 고의적으로 신고를 안 했음을 의심했다.

이에 대해서 시설 측에서는 119보다는 연계병원을 주로 이용했으나 그 연계병원이라는 게 시설에서 20~30분정도 떨어진 소규모 병원[5]들이다. 심지어 가장 먼 연계병원이라는 시설은 영천시에 위치해 있다. 이러다 보니 그 멀고 먼 후송 과정에서 원생이 사망하면 도로 돌아와서 진단 끊어주기 일쑤였다. 그나마도 사고사로 처리하면 경찰과 엮여서 골치아파질 테니 시설 내의 윗선에서 거의 내사 처리 수준으로 덮는다는 것이다. 하급자들은 입바른 소리만 해도 찍히기 때문에 제대로 고발하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4.6. 급식 문제

섭식장애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밥을 먹일 때 식탁이나 자리에 앉히려고 하는 시도도 없이 그냥 누운 상태에 올라타서 밥을 우격다짐으로 떠넣으라는 지시를 했다. 잘못하다가 식품이 기도에 막혀서 죽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방식인데 그냥 감행했다고 한다. 이때 밥을 먹는 원생은 제대로 음식이 들어갈 일도 없으니 음식을 뿜는 게 다반사였으며 섭취도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처음에 이렇게 밖으로 드러난 문제는 급식에서 썩은 사과가 나왔다,
-임성무, 천주교 대구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6] 전 사무국장
[7]

이것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원생들 급식으로 썩은 사과가 배급되었다는 의혹에서 시작되었다. 게다가 당시 썩은 사과를 배급한 영양사는 3개월 감봉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만 내려졌으며 그나마도 얼마 안 가 오히려 승진까지 했다. 진상위 조사과정 중 이 의혹에 관해서 해당 영양사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납품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형사고발조차 되지 않았는데 이는 사과가 영양사의 친오빠가 운영하던 농장에서 공급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배식을 허접하게 하는 동안 상급 직원들은 고기를 청구하는 식으로 단가 조작, 수량 부풀리기 등으로 식자재 납품 비리를 저질렀다. 익명의 투서에 따르면 2012년의 식자재 납품 과정에서 챙긴 착복 차익만 해도 무려 3.15억에 달한다.

5. 김 부원장 전용 하녀 의혹

1988년 입소 후 2011년에 사망한 서○○원생은 입소한 지 10년 된 1998년부터 부원장의 개인 비서로서 부원장 앞에 자주 들락거렸는데 주로 부원장 집안의 허드렛일을 맡았다.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수준이었고 정신질환자였지만 온순한 성격 때문에 저항감이 덜해서 기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월급 4만원으로 부려먹었다.

부원장의 아들 역시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는데 허드렛일로도 모자라 부원장의 아들까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부원장의 아들과 관련된 잡무까지 떠넘겼다. 당시 부원장 아들에게 붙었던 전직 활동보조사 중 한 명은 서씨가 부원장 집으로 들락날락한 것에 대해 "제가 알기로 자발적으로는 희망원에서 그렇게 못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서씨 스스로 부원장 집을 들락날락한 게) 당연히 상궤에서 대단히 벗어난 일이라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25년 근속 前 직원 역시 지적장애도 있던 그런 사람(서씨)을 자기 아들 돌보라고 보낸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이 사실은 중급 직원 이상이었으면 공공연하게 아는 비밀이었지만 하급자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상부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입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잡일로 부려먹은 것도 문제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부원장이 서○○에게 자신의 아들과 성적인 접촉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전 관계자 송○○씨가 고발한 사례에 따르면 아들에게 목욕을 시키는 과정에서 아들의 음경 부분을 씻으라고 집요하게 강요했으며, 나중에는 아들이 TV를 보는 일상생활 도중에도 아들의 음경을 만지라고 했다. 이때는 서씨가 거부 의사까지 밝혔지만 강제로 하게 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연령이 낮아 순한 성격에 순종적이라고 해도 2010년부터 그녀가 지쳤는지 하녀 일이 힘들다는 고통을 호소했다는 기록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이 김 부원장을 취재했을 때 부원장 내외는 그녀가 일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했지만 성접대 강요에 관해서 묻자 이를 극구 부정했다.

5.1. 의문사

2011년 11월 27일 사망 당시 사인은 폐렴 및 호흡부전이었는데 죽기 1일 전의 상태를 감안하면 거의 급사 수준이라 사망 직전의 의료처리 과정을 미필적 고의에 가깝게 방치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망하기 1주일 전 시작은 분명히 감기였는데 관리 소홀인지 병이 사망 하루 전 패혈증으로 악화된 것이었다. 3차 이송으로 지역 대학병원에 이송되었는데 큰 병원 중환자실에서 관리해야만 살아날 수 있는 상황에 2차 이송병원이었던 좀 더 작은 병원으로 역후송했다. 이는 의학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대단히 상궤를 벗어난 일이었다고 김대희 교수(가톨릭대 의대)는 지적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당시 희망원 간호팀장은 오히려 "대학병원 의료진이 그분은 가망이 없으니까 2차 병원으로 옮기라는 처방을 내려서 우리가 옮겼다"고 해명하고 자체적으로도 '가망 없음'으로 기재했지만 패혈증의 경우 가장 나쁜 순간만 잡아내면 암과 비교해서 생존율이 훨씬 높은 상황임에도 갑자기 가능성이 없다면서 역후송한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고 김대희 교수는 지적했다.

당시 결정권에 대해서 당시 간호팀장은 당직자보다도 윗선의 입김이 셌다면서 2차 병원 역후송을 묵묵히 지시받고 수행했다고 항변했다. 상급자인 사무국장은 "(우리도) 3차 병원에 있겠다 이런 부분으로 이렇게 건의도 하고 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을 못한 것은 저희의 실수입니다" 라면서 항변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정황을 낱낱이 물고 늘어진 바에 따르면 2차 병원으로 옮긴 장본인은 간호팀장임이 기정사실화되었다.

6. 주변 주민들의 증언

시골 오지나 섬 같은 곳에 있는 격리시설[8], 그 외 각종 닫힌 사회적 환경과 달리 다른 시민들이 사는 아파트나 민가에 둘러싸였기 때문에 시설에서 나는 소리를 인근 주민들이 듣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새벽에 매를 맞는 소리인지 뭔지 몰라도 시끄럽거나 으엉으엉거리는 애들 우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새벽에도 소리가 났다"고 호소했지만 외부인의 한계 때문에 관리가 조금 미흡한 정도로만 여긴 사람도 있었다. 아파트 경비에도 민원이 들어왔고 경비원도 그 소리를 들었는데 특히 여름밤에 막 고함을 지르고 여자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더라는 증언을 했다.

7. 반응 및 여파

사실상 대한민국의 모든 장애인 권익단체가 폭발했다. 특히 그 중 대부분을 차지하며 탈시설 아젠다를 밀어주는 진보 계열 장애인 권익 단체들에서는 더더욱.

희망원 측은 해명에 나섰지만… 문제는 해명 기사가 난 곳이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운영하는 매일신문이었다.

7.1. 대중들의 인식

천주교, 특히 천주교 대구대교구 이미지가 추락할 것은 자명했으며 일어탁수 효과로 인해 한국 천주교에 대한 전체적인 여론 하락도 불가피해졌다. 이 사건의 파급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다른 천주교 관련 복지시설도 감사 대상이 될 것이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면 그동안 정의구현사제단 같은 교내 진보 세력 및 기타 관련자들에게서 의혹 수준으로만 제기되었던 꽃동네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도 시험대에 제대로 오를 수 있을 가능성이 생겼다.

7.2. 사태의 원인 파악

관리 신부들까지 하나같이 부원장의 무소불위에 순순히 따를 정도로 부조리를 묵인하고 찬동했는지에 대해서 임성무 정의평화위 전 사무국장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자체가 역사적으로도 일제강점기 중말기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앞장섰던 교구 중 하나였으며 희망원의 인수인계가 있던 1980년에는 대한민국 제5공화국의 시작에 있는 국보위 산하 단체인 국가보위입법회의에 대구대교구 사제 2명이 요직을 차지할 정도로[9] 권력을 쫓아온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에서는 1983년에 1대 희망원 원장신부를 청와대로 초청해서 오찬을 하기도 하였다. 다만 '인수하고도 개선되지 않은 원인'을 당시 대구대교구의 친정부적 성향에서 찾을 수는 있어도 '인수 이후 수십 년동안 개선되지 않은 원인'을 모조리 친정부적 성향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이런 면에서는 '내가 맡은 기간동안 터져서는 안 된다'는 담당 사제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의심해야 한다.[10]

그리고 가톨릭의 사회적 신뢰가 굳건했는데[11] 오히려 이게 허점으로 작용해 시민단체가 스스로 신경쓰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의 오판이라며 이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에도 책임이 있다면서 자책하고 있다고 서승엽 대구 시민단체 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회고했다.

진보 계열의 장애인 권리 단체에서는 "결국 거기도 전형적인 시설 문제 터질 게 터졌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7.3. 자성의 목소리

2016년 6월 12일 바티칸에서 집전된 '병자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자비의 특별희년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월한 신체를 가진 것이 대중의 신화가 된 사회에서 장애는 감춰야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배계층의 안녕을 위해하기 때문에 불완전한 신체의 사람을 격리해서 돌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질병과 장애에 대해 눈을 감은 것과 같은 착각입니다." 라면서 장애인에 대한 격리 처우가 무조건 최선은 아니며 우선 이들이 격리되기보다는 사회에 어우러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의 강론을 하였다.

아일랜드인 천노엘 파트리치오 신부[12]한국어로 "그분들을 지역사회 안에 들어오지 않게 결정하는 분들은 누구에요? (중략) 우리 천주교회가 예언적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장애인들뿐 아니라 사회 약자들을 우리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하였다.

익명의 희망원 관계자는 "희망원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징벌을 해야 되지만 결국엔 특정한 사람에 대해 벌을 주는것이지, 변화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희망원에 진정한 변화가 있기를 희망합니다."라면서 일순의 징벌도 징벌이지만 시스템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다른 익명의 관계자는 이 의혹으로도 희망원이 일순에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작은 희망을 바란다면서 이 의혹이 시스템 변화에 대한 불씨가 되기를 희망하는 투로 대답하였다고 한다.

7.4. 3차 국정감사를 앞두고

<그것이 알고싶다> 고발 보도가 방영된 시점에도 시설은 치부를 감추고 있었는데 10월 14일 3차 국정감사를 앞둔 상황에서 관계자들이 독일로 연수를 가려던 사실이 밝혀져서 급히 취소된 것과 대량의 문서들이 황급히 폐기되었다[13]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것이 3차 국정감사 비판 측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변수가 되었다.

7.5. 희망원 공식 입장[14]

깊은 마음의 상처를 드려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보다 투명하고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로 거듭 나겠습니다)

- 희망원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교구민들에게 드리는 말씀 -

신자 여러분들께 사과 드립니다

신자 여러분의 기대와 신뢰에 미치지 못해 그 누구보다 책임을 통감하는 희망원 원장입니다. 최근 일부 언론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 인권문제와 회계비리 보도 내용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대해 희망원을 책임지고 있는 원장으로서 무엇보다도 그동안 희망원을 사랑해주시고 자원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주셨던, 그리고 교회가 하는 일에 깊은 신뢰를 보여주신 교우분들께 깊은 마음의 상처를 드려 송구스럽습니다.
여러 교우분들의 기대에 부응치 못하고 누를 끼쳐드렸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관리감독을 잘못한 저희의 책임임이 분명합니다. 보다 나은 희망원 운영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문제가 생기게 돼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세상이 변화하고 있지만 그에 맞지 않게 대처했으며, 투명한 운영을 통해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시설을 만드는 일에 부족했던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규정과 운영방식을 개선하겠습니다

최근 언론 보도를 접하시고 참 많이 놀라셨을 것으로 압니다. 희망원에서 지난 2년 8개월 동안 129명이 사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해의 소지도 많습니다.
희망원에 입소하시는 분들 중 많은 경우 만성질병으로 고통 받다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시설을 찾는 분들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망자가 다른 시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게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정신질환을 앓고 계시는 분들도 희망원에 입소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때로는 지역주민들에게는 이상한 고성이 들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 여부를 떠나더라도 직원들이 환자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돌보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이번을 계기로 시설 내 규정과 운영방식을 철저하게 개선해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의 인권이 한층 더 존중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희망원 실상은 언론보도와는 많이 다릅니다

교우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하게나마 희망원의 실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희망원은 2015년부터 관련법 변경으로 인해 하나의 시설이 4개의 시설로 분리 운영하게 됐습니다. 같은 조건으로 일을 하던 직원들이 서로 다른 근로조건과 다른 임금의 시설로 나누어지게 되면서, 여러 갈등이 생겨났고 혼란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많은 의혹과 문제점들이 드러났습니다. 어떠한 진실 해명보다도 먼저 교우분들에게 실망과 아픔을 드려 송구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마음이 아픈 것은, 그동안 우리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마치 교회가 조직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급식비리는 직원들의 관리가 소홀한 점을 이용해 납품업체가 수천만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직원의 제보로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이후 거래 중단과 환수 조치를 했습니다. 그 외에 제기된 3억여 원의 횡령의혹과 이중장부에 대해서는 저로서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디에서 그런 자료가 작성이 되었고,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아직까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이유가 어찌됐든 이런 의혹이 생기는 것 자체가 좀 더 투명하고 열려있지 못해 생긴 일이라 생각하며 더욱 더 깨끗하고 투명한 운영을 하는 희망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못은 겸허히 반성하고 반드시 시정하겠습니다

그동안 희망원은 정기적으로 보건복지부대구시의 감사를 받아왔으며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인권위의 특별조사를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국정감사와 대구시의 특별감사도 예정돼 있습니다.
저희는 이 감사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잘못으로 지적된 점은 책임을 질 것이며 반드시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더욱 투명하고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천주교를 믿고 신뢰하는 많은 분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며, 대구시립희망원은 이번 일을 크나큰 계기로 삼아 주님의 사랑받는 공동체로 거듭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10월 10일

대구시립희망원 박강수(로무알도) 신부
김구노(구노) 신부
박재철(안토니오) 신부
박정봉(아벨) 원장
올림

7.6. 대구대교구장 사과문

존경하는 대구시민과 교구민 여러분,

최근 대구시립희망원과 관련한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대구시립희망원을 수탁하여 운영하고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대구시민 여러분과 교구민들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히 희망원의 모든 생활인들은 물론이고, 희망원에 관심을 갖고 봉사활동을 하며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 사회복지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들, 그리고 이번 일로 걱정하고 실망하신 분들에게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천주교회는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우리 교구도 일찍부터 사회복지 관련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불미스럽게도 이번 희망원 사태와 같은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교구장으로서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진상을 파악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모든 감사에 협조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이 보호받고, 참다운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시민 여러분과 교구민들께 고개 숙여 사과드리며, 이번 일로 상처받은 모든 이들과 교구와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016년 10월 12일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 환 길(타대오) 대주교

10월 12일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가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과문을 작성했다.원문

8. 결과

이 사건으로 인해 대구대교구 소속 배임표 전 희망원 원장신부가 횡령과 감금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희망원 김철재 전 총괄 원장신부가 불법 감금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구속 수감되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희망원 복지행정팀장 등 5명에게 징역 4개월~1년에 집행유예 1~2년을 선고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2018년 1월 16일 대구 희망원 원장이었던 김철재 신부를 욱수본당 주임 신부로 발령했다. 이는 세상에서조차 유죄로 판결난 사람을 성당과 교인을 책임질 주임 신부로 임명한 것으로, 한국 천주교의 인사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천주교 내부에서도 진보적인 부류를 중심으로 이 인사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대구 희망원에 있다가 지역 본당신부로 간 인물 중 하나가 다시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노래방 도우미 부른 신부

이후 대구 지역 진보적 성향의 장애인 단체들[15]의 공격으로 2018년 12월에 희망원의 시민마을이 폐쇄되었고 그곳에 거주하던 장애인 중 일부는 탈시설 단체의 지원으로 가정으로, 또 일부는 탈시설 단체의 임시 보호 시설로 이동됐으나 대다수의 원생들은 가정으로 복귀하지 못했고[16] 남은 원생들과 희망원의 시설, 직원은 대구 시내 비종교계 복지재단인 '전석복지재단'으로 이관되었다.

하지만 '대구시에서 감사를 진행한 결과 전석재단 또한 인사관련 비리가 터졌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전석재단은 뭇매를 맞았고 이에 전석 측에서는 3년간 위탁 운영을 맡기로 한 계약을 파기하고 운영을 포기하였고 전석의 뒤를 이어서 위탁 운영을 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자 시청에서는 시청 복지국 직할인 '대구사회복지서비스원'을 개설하여 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다만 천주교 시절과 전석재단 시절의 직원들의 다수가 여전히 자기 자리를 유지 중이고 새로 시장으로 선출된 홍준표가 시 재정 정상화를 목표로 복지사업을 대폭 축소할 것을 예고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대구사회복지서비스원 또한 노인복지시설인 평생교육진흥원, 여성복지시설인 여성가족재단, 청소년복지시설인 청소년지원재단과 통합된 '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이 됐고 종사자들은 대량의 퇴직 압박을, 이용자들은 자립시설로의 이전(탈시설) 절차를 밟게 되었다.

9. 관련 문서



[1] 1980년대는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권 의식이 희박했던 때라고 쳐도 2010년대까지 주먹구구로 운영되어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의혹이 보도되어 충격을 준 사건이다.[2] 2006년 2월부터 2006년 5월까지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유시민이었다.[3] 심지어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희망원이 운영된 것은 무려 58년, 천주교로 이관된 것도 36년이다.[4]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실제 내부 촬영 영상에 의하면 좀 힘 있어 보이는 원생이 자기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원생을 발로 툭툭 치는 장면이 포착되었으며 진상위 조사 현장에서도 증인으로 나온 몇몇 노인 원생들 역시 힘 센 사람에 의한 폭행 피해를 호소했다.[5] 방송에 나온 연계병원이 표시된 지도에 있는 병원을 찾아보면 대구의료원(지역거점 공공병원), 대구가톨릭대학병원(대학병원), 경산 세명병원(종합병원) 등이 나오는데 소규모로 운영되는 병원은 아니다. 또 영천에 위치한 병원은 정신과 전문병원이다.[6] 정의평화위원회는 교구 산하 정식기구이다.[7]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는 썩은 사과 급식 문제로 넘어갈 때 절묘하게도 선악과와 오버랩시켰다.[8] 가령 장항 수심원은 주변에 민가가 듬성듬성 있어서 주민들도 장항 수심원 수용인과 접촉했지만 통신이 발달한 21세기에도 배가 워낙 안 다니는 오지의 섬인 탓에 이러한 외부인의 접촉 경험이 외부로 퍼질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9]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를 지적할 때 한국어 위키백과국가보위입법회의 문서가 인용되었다. 게다가 가톨릭 관계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국보위에 찬동한 교구이기도 하였다.[10] 가톨릭의 성직 체계는 그 특성상 군대장교 체계와 비슷한 면을 많이 가진다. 때문에 효율성과 체계성을 보여주지만 군대와 마찬가지로 벌어진 사건을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은폐시킬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11] 군사정권 내내 종교단체로서는 민주화 저항의 선봉에 나서며 의식 있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당시 어떤 종교단체보다도 비교적 인식이 좋았다.[12]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오랫동안 장애인 관련 사목을 해 왔다.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대표이자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그룹홈을 도입한 인물이며 2016년 2월에 특별 귀화했다.[13] 장항 수심원 사건이 비교적 뚜렷하게 회자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1997년 당시 신속한 당국의 처리 끝에 당사자들이 미처 관련 문서를 제대로 폐기하지 못한 채로 단죄받아서 이후에도 폐허에 그 문서들이 굴러다닐 정도로 자료 자체는 꽤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14] 인용문의 굵은 강조문은 원문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므로, 임의로 수정하지 말 것.[15] 탈시설 자립 활동을 주장하는 단체들[16] 그도 그럴 게 희망원과 같은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하는 장애인은 '혼자서 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이다. 탈시설이라고 함은 이런 장애인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 가족의 보호를 받게 하는 것인데 장애인이 있는 가정의 절대다수는 가정 유지를 위한 경제활동과 장애인의 생활보조를 동시에 진행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