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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대전광역시장 大田廣域市長 Mayor of Daejeon Metropolitan City | |
현직 | <colbgcolor=#fff,#191919>이장우 / 제13대 (민선 8기) |
취임일 | 2022년 7월 1일 |
정당 | |
홈페이지 |
1. 개요
1.1. 대전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2. 목록3. 생존 중인 전직 민선 대전광역시장4. 역대 선거 결과4.1.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4.2.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4.3.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4.4.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4.5.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4.6.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4.7.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4.8.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4.9.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5. 역대 정당별 전적6. 역대 후보별 순위7. 시정 구호8. 관련 문서[clearfix]
1. 개요
대전광역시장은 대전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95년 1월 1일 이전까지는 직할시장이라고 불렸으며, 1989년 대전직할시가 충청남도로부터 분리 신설될 때까지는 충청남도 대전시장으로 불렸다.대체적으로 나왔던 사람들이 다시 나오고 했던 사람들이 다시 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모습이었다.[1]
여담으로, 충청 대망론 주자였던 안희정의 사례가 있는 충청남도지사가 충청권 대권주자로서 입지가 더 높은데[2] 부산광역시장 - 경상남도지사, 광주광역시장 - 전라남도지사의 관계와 유사하다.
1.1. 대전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rowcolor=white> 대전광역시장 선거 적중 지역 결과 | ||
연도 | 당선인 | 서구 1위 |
1995년 | 홍선기 (63.76%) | 홍선기 (65.51%) |
1998년 | 홍선기 (73.68%) | 홍선기 (73.83%) |
2002년 | 염홍철 (46.61%) | 염홍철 (48.80%) |
2006년 | 박성효 (43.83%) | 박성효 (46.13%) |
2010년 | 염홍철 (46.67%) | 염홍철 (47.33%) |
2014년 | 권선택 (50.07%) | 권선택 (50.48%) |
2018년 | 허태정 (56.41%) | 허태정 (56.79%) |
2022년 | 이장우 (51.19%) | 이장우 (51.03%) |
서울특별시장, 부산광역시장, 대구광역시장, 인천광역시장, 울산광역시장 선거에서는 각 지역의 중구에서 이긴 사람이 시장에 당선되는 징크스가 있는데, 대전광역시는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중구에서 박성효가 1위를 하면서 징크스가 깨졌다.
2. 목록
2.1. 충청남도 대전시장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정부(당적)[3] | 비고 |
관선 충청남도 대전부윤 | ||||
초대 | 황인식(黃仁植) | 1945년 8월 16일~1945년 11월 2일 | 미군정 | |
2대 | 방두환(方斗煥) | 1945년 11월 3일~1946년 3월 29일 | ||
3대 | 1946년 4월 4일~1946년 5월 9일 | |||
4대 | 이석기(李錫基) | 1946년 5월 11일~1947년 10월 29일 | ||
5대 | 1947년 10월 30일~1948년 5월 10일 | |||
6대 | 유광준(兪光濬) | 1948년 5월 11일~1948년 10월 30일 | ||
7대 | 손영도(孫泳道) | 1948년 10월 30일~1949년 10월 29일 | 이승만 정부 | |
관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 ||||
초대 | 손영도(孫泳道) | 1949년 10월 30일~1952년 12월 19일 | 이승만 정부 | |
(간접선출) 민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 ||||
2대 | 임지호(林志浩) | 1952년 12월 29일~1955년 11월 18일 | 이승만 정부 | |
3대 | 박완식(朴完植) | 1955년 12월 27일~1954년 12월 2일 | ||
4대 | 조병순(趙炳順) | 1954년 1월 10일~1959년 3월 19일 | ||
관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 ||||
5대 | 정인권(鄭寅權) | 1959년 5월 19일~1960년 5월 13일 | 이승만 정부 | |
6대 | 김양현(金良鉉) | 1960년 5월 13일~1960년 10월 7일 | 허정 내각 | |
민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 ||||
7대 | 신기훈(申基勳) | 1960년 12월 30일~1961년 2월 25일 | ||
8대 | 김정우(金正雨) | 1961년 4월 6일~1961년 5월 24일 | ||
관선 충청남도 대전시장 | ||||
9대 | 유문호(柳文鎬) | 1961년 5월 24일~1961년 7월 29일 | 국가재건최고회의 | |
10대 | 배무남(裵武南) | 1961년 8월 12일~1963년 5월 9일 | ||
11대 | 이완종(李完鐘) | 1963년 6월 17일~1964년 2월 20일 | ||
12대 | 이남호(李南鎬) | 1964년 2월 20일~1966년 10월 12일 | 박정희 정부 | |
13대 | 이준규(李俊圭) | 1966년 10월 12일~1968년 4월 15일 | ||
14대 | 이완종(李完鐘) | 1968년 4월 15일~1970년 11월 24일 | ||
15대 | 최재영(崔在英) | 1970년 11월 25일~1971년 8월 10일 | ||
16대 | 심재홍(沈載鴻) | 1971년 8월 11일~1974년 11월 13일 | ||
17대 | 김보성(金保城) | 1974년 11월 13일~1977년 7월 19일 | ||
18대 | 이남두(李男斗) | 1977년 7월 20일~1978년 8월 1일 | ||
19대 | 김보성(金保城) | 1978년 8월 2일~1980년 3월 11일 | ||
20대 | 박봉휘(朴奉輝) | 1980년 3월 13일~1980년 7월 31일 | 최규하 정부 | |
21대 | 이병내(李炳內) | 1980년 8월 1일~1981년 8월 24일 | ||
22대 | 심대평(沈大平) | 1981년 8월 24일~1983년 12월 27일 | 전두환 정부 | |
23대 | 권희탁(權熙卓) | 1983년 12월 27일~1986년 3월 8일 | ||
24대 | 심대평(沈大平) | 1986년 3월 8일~1986년 10월 14일 | ||
25대 | 김홍식(金泓植) | 1986년 10월 15일~1987년 8월 11일 | ||
26대 | 김용성(金容成) | 1987년 8월 11일~1988년 12월 31일 |
2.2. 대전직할시장(관선)[4]
<rowcolor=white> 관선 (임명직) 대전직할시장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정부 | 비고 |
초대 | 이봉학 (李奉學) | 1989년 1월 1일 ~ 1990년 12월 27일 | 노태우 정부 | |
2대 | 홍선기 (洪善基) | 1990년 12월 28일 ~ 1992년 4월 20일 | ||
3대 | 김주봉 (金柱奉) | 1992년 4월 21일 ~ 1993년 3월 3일 | ||
4대 | 염홍철 (廉弘喆) | 1993년 3월 4일 ~ 1995년 3월 29일 | 김영삼 정부 | |
5대 | 김보성 (金保城) | 1995년 3월 30일 ~ 1995년 6월 30일 |
2.3. 대전광역시장(민선)
<rowcolor=white> 민선 (선출직) 대전광역시장 | |||||
<rowcolor=white> 대수 | 이름 | 재임 기간 | 당적[5] | 출신지 | 비고 |
6대 | 홍선기 (洪善基) |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 [[자유민주연합|]] | 대전 서구 | |
7대 |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 ||||
8대 | 염홍철 (廉弘喆) |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 | 충남 논산 | [6] |
9대 | 박성효 (朴城孝) |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 대전 동구 | |
10대 | 염홍철 (廉弘喆) |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 [[자유선진당|]] | 충남 논산 | [7] |
11대 | 권선택 (權善宅) | 2014년 7월 1일 ~ 2017년 11월 14일 | [[새정치민주연합|]] | 대전 중구 | [8][9] |
권한대행 | 이재관 (李在官) | 2017년 11월 15일 ~ 2018년 6월 30일 | 행정부시장 | 충남 천안 | |
12대 | 허태정 (許泰鋌) |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 | 충남 예산 | |
13대 | 이장우 (李莊雨) | 2022년 7월 1일 ~ 현재 | | 충남 청양 |
3. 생존 중인 전직 민선 대전광역시장
- 홍선기 (1995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재임, 민선 1·2기, 1936년 10월 3일 출생, [age(1936-10-03)]세)
- 염홍철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재임,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재임, 민선 3·5기, 1944년 8월 6일 출생, [age(1944-08-06)]세)
- 박성효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재임, 민선 4기, 1955년 2월 20일 출생, [age(1955-02-20)]세)
- 권선택 (2014년 7월 1일 ~ 2017년 11월 14일 재임, 민선 6기, 1956년 1월 13일 출생, [age(1956-01-13)]세)
- 허태정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재임, 민선 7기, 1965년 9월 12일 출생, [age(1965-09-12)]세)
4. 역대 선거 결과
역대 민선 대전광역시장 | ||||||
1995 | 1998 | 2002 | 2006 | 2010 | ||
자유민주연합 | 한나라당 | 한나라당 | 자유선진당 | |||
홍선기 | 염홍철 | 박성효 | 염홍철 | |||
2014 | 2018 | 2022 | ||||
국민의힘 | ||||||
권선택 | 허태정 | 이장우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주요 후보 득표율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구분 | 주요 후보 득표율 | ||||
1995년 | 1위: [[자유민주연합|]] 홍선기 63.76% 2위: [[민주자유당|]] 염홍철 20.93% 3위: 변평섭 10.84% | |||||
1998년 | 1위: [[자유민주연합|]] 홍선기 73.68% 2위: [[국민신당(1997년)|]] 송천영 18.03% | |||||
2002년 | 1위: 염홍철 46.61% 2위: [[자유민주연합|]] 홍선기 40.20% | |||||
2006년 | 1위: 박성효 43.83% 2위: [[열린우리당|]] 염홍철 41.14% 3위: [[국민중심당|]] 남충희 10.45% | |||||
2010년 | 1위: [[자유선진당|]] 염홍철 46.67% 2위: 박성효 28.50% 3위: [[민주당(2008년)|]] 김원웅 23.28% | |||||
2014년 | 1위: [[새정치민주연합|]] 권선택 50.07% 2위: [[새누리당|]] 박성효 46.76% | |||||
2018년 | 1위: 허태정 56.41% 2위: [[자유한국당|]] 박성효 32.16% | |||||
2022년 | 1위: 이장우 51.19% 2위: 허태정 48.80% | }}}}}}}}} |
4.1.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염홍철(廉弘喆) | 112,607 | 2위 |
[[민주자유당|]] | 20.93% | 낙선 | |
2 | 변평섭(邊平燮) | 58,346 | 3위 |
| 10.84% | 낙선 | |
3 | 홍선기(洪善基) | 342,959 | 1위 |
[[자유민주연합|]] | 63.76% | 당선 | |
4 | 이대형(李大衡) | 23,953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45%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819,604 | 투표율 66.93% |
투표 수 | 548,529 | ||
무효표 수 | 10,664 |
민선 시대 처음으로 했던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선거에서 자민련에서 공천을 받은 관선 대전광역시장을 역임한 홍선기 후보를 공천받았고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에서는 역시 그전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과 관선직 대전광역시장을 역임한 염홍철 후보를 공천받았다, 공교롭게도 관선직 대전광역시장을 역임한 후보들끼리 대결로 관심을 받았다. 결과는 역시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지원의 힘입어서 자유민주연합 홍선기 후보가 34만 2959표로 초대 민선 대전광역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지역별로도 대전광역시 5개구에서 압승을 거뒀다.
4.2.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3 | 홍선기(洪善基) | 286,255 | 1위 |
[[자유민주연합|]] | 73.68% | 당선 | |
4 | 송천영(宋千永) | 70,414 | 2위 |
[[국민신당(1997년)|]] | 18.12% | 낙선 | |
5 | 조명현(曺明鉉) | 31,796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8.18%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888,968 | 투표율 44.44% |
투표 수 | 395,124 | ||
무효표 수 | 6,659 |
4.3.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염홍철(廉弘喆) | 191,832 | 1위 |
| 46.61% | 당선 | |
3 | 홍선기(洪善基) | 165,426 | 2위 |
[[자유민주연합|]] | 40.20% | 낙선 | |
4 | 김헌태(金憲泰) | 15,780 | 4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3.83% | 낙선 | |
5 | 정하용(鄭夏容) | 38,445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9.34%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987,180 | 투표율 42.32% |
투표 수 | 417,809 | ||
무효표 수 | 6,326 |
선거에서는 대전광역시 최초로 3선에 도전하는 홍선기 후보와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선기 후보에게 패했던 염홍철 후보와의 대결이었다. 다만 결과는 홍선기 후보는 3선 도전에 실패했다.
4.4.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염홍철(廉弘喆) | 217,273 | 2위 |
[[열린우리당|]] | 41.14% | 낙선 | |
2 | 박성효(朴城孝) | 231,489 | 1위 |
| 43.83% | 당선 | |
3 | 최기복(崔基福) | 6,442 | 5위 |
[[민주당(2005년)|]] | 1.21% | 낙선 | |
4 | 박춘호(朴春鎬) | 14,899 | 4위 |
[[민주노동당|]] | 2.82% | 낙선 | |
5 | 남충희(南忠熙) | 55,231 | 3위 |
[[국민중심당|]] | 10.45% | 낙선 | |
7 | 고낙정(高樂正) | 2,707 | 6위 |
| 0.51%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77,468 | 투표율 49.42% |
투표 수 | 532,568 | ||
무효표 수 | 4,527 |
선거결과로는 박성효 후보가 가까스로 이겼지만 지역별로는 편차가 있었다. 당시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는 대덕구와 유성구 그리고 동구에서 이겼지만 중구와 서구 패배했다. 반대로 박성효 후보는 중구와 서구에서 이겼지만 3곳(대덕구, 유성구, 동구)에서 패배했다.
4.5.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성효(朴城孝) | 168,616 | 2위 |
| 28.50% | 낙선 | |
2 | 김원웅(金元雄) | 137,751 | 3위 |
[[민주당(2008년)|]] | 23.28% | 낙선 | |
3 | 염홍철(廉弘喆) | 276,122 | 1위 |
[[자유선진당|]] | 46.67% | 당선 | |
7 | 김윤기(金潤起) | 9,074 | 4위 |
[[진보신당|]] | 1.5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127,547 | 투표율 52.92% |
투표 수 | 596,683 | ||
무효표 수 | 5,120 |
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박성효 | 염홍철 | 격차 |
전체 | 28.2% | 48.4% | 20.2%p |
4.6.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박성효(朴城孝) | 301,389 | 2위 |
[[새누리당|]] | 46.76% | 낙선 | |
2 | 권선택(權善宅) | 322,762 | 1위 |
[[새정치민주연합|]] | 50.07% | 당선 | |
3 | 김창근(金昌根) | 9,009 | 4위 |
[[통합진보당|]] | 1.39% | 낙선 | |
4 | 한창민(韓昌旼) | 11,346 | 3위 |
[[정의당|]] | 1.76%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07,972 | 투표율 54.03% |
투표 수 | 652,671 | ||
무효표 수 | 8,165 |
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박성효 | 권선택 | 격차 |
전체 | 48.2% | 49.8% | 1.6%p경합 |
지역별로도 권선택 후보는 17대, 18대 국회의원을 했던 고향 중구에서는 가까스로 졌지만 신도심과 과학벨트가 있는 서구와 유성구에서 승리했고 박성효 후보는 대전광역시의 원도심인 중구에서 360표차로 이겼고 19대 국회의원을 했던 대덕구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거뒀고 대전역이 있는 대전광역시 동구에서는 가까스로 박성효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
4.7.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허태정(許泰鋌) | 393,354 | 1위 |
| 56.41% | 당선 | |
2 | 박성효(朴城孝) | 224,306 | 2위 |
[[자유한국당|]] | 32.16% | 낙선 | |
3 | 남충희(南忠熙) | 61,271 | 3위 |
[[바른미래당|]] | 8.78% | 낙선 | |
5 | 김윤기(金潤起) | 18,351 | 4위 |
[[정의당|]] | 2.63%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219,513 | 투표율 57.97% |
투표 수 | 706,983 | ||
무효표 수 | 9,699 |
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허태정 | 박성효 | 격차 |
전체 | 60.0% | 29.4% | 30.6%p |
자유한국당은 박성효 전 대전광역시장이 공천되었다. 원래는 친박 돌격대로 알려진 이장우 전 동구 의원이 공천될 가능성이 높으나 출마를 포기했고 그나마 시장 후보로 남아있던 박성효가 공천됐는데, 친박에다가 대전광역시장 시절에도 대전광역시의 주요 현안들을 죄다 다른 지역에 빼앗기는 등 대전광역시 시민들에게도 좋은 인식이 없다. 심지어 대전광역시장 임기 시절에 나무만 심다가 임기를 끝냈다는 말까지 있었다. 이는 박성효 전 시장의 주요 공약 중 한가지가 삼천만 그루 나무 심기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은 바른정당 시절부터 대전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던 남충희를 단수 공천했다. 민주평화당은 서진희 후보, 정의당은 김윤기 후보가 대전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허태정 후보가 56.41%의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되었다. 위 아 더 월드로 통일된 대를린이 다시 나타난 건 덤. 참고로 박성효 후보는 이번 선거 결과까지 합산한다면 대전광역시장 선거에 4번 출마하여 3번이나 떨어졌다.
허태정 후보의 당선으로 인해 대전 도시철도 2호선을 트램으로 하는 정책이 추진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4.8.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허태정(許泰鋌) | 295,555 | 2위 |
| 48.80% | 낙선 | |
2 | 이장우(李莊雨) | 310,035 | 1위 |
| 51.19%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1,233,557 | 투표율 49.66% |
투표 수 | 612,639 | ||
무효표 수 | 7,049 |
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353535> 후보 | 허태정 | 이장우 | 격차 |
전체 | 49.6% | 50.4% | 0.8%p경합 |
초반엔 중구와 동구 표가 먼저 개표되면서 이장우 후보가 앞서나가다, 후반에 허태정의 홈스테이트인 유성구 표가 쏟아지면서 추격을 했지만 결과는 3%p 내외 격차로 이장우 후보가 이겼다.
세부적으론 유성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모두 이장우 후보가 이겼는데, 특히 둔산신도시가 있는 서구가 이장우의 손을 들어주며[12] 허태정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물론 유성구에선 5%p 나마 앞섰지만, 인구가 절반 정도 적은 중구에서 9% 앞서서 유성구의 우위를 상쇄했을 뿐더러, 앞의 서구까지 거들면서 허태정 후보가 석패했다.
이제 동대전이 보수 정당 우위, 서대전이 더불어민주당 우위란 대를린 장벽이 사실상 무너지고, 유성구 vs 대덕구, 서구 vs 중구, 동구 구도로 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게 되었다.
또한 광역의원, 기초자치단체장 모두 유성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궤멸되면서[13] 더불어민주당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하지만…
4.9.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0 | ||
| 00.00% | ||
2 | 0 | ||
| 00.00% | ||
계 | 선거인 수 | 투표율 00.00% | |
투표 수 | |||
무효표 수 |
선거 벽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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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장 출구조사 결과 | |||
<colbgcolor=#eeeeee,#353535> 후보 | ○○○ | ○○○ | 격차 |
전체 | 00.00% | 00.00% | 00.00%p |
5. 역대 정당별 전적
민주당계 정당 | 보수 정당 | 제3후보[14] | |
1회 | 변평섭 | 염홍철 | 홍선기[15] |
| [[민주자유당|]] | [[자유민주연합|]] | |
낙선 10.84% | 낙선 20.93% | 당선 63.76% | |
2회 | 홍선기[16] | - | 송천영[17] |
[[자유민주연합|]] | [[국민신당(1997년)|]] | ||
당선 73.68% | 낙선 18.12% | ||
3회 | - | 염홍철 | 홍선기[18] |
| [[자유민주연합|]] | ||
당선 46.11% | 낙선 40.20% | ||
4회 | 염홍철 | 박성효 | 남충희[19] |
[[열린우리당|]] | | [[국민중심당|]] | |
낙선 41.14% | 당선 43.83% | 낙선 10.45% | |
5회 | 김원웅 | 박성효 | 염홍철[20] |
[[민주당(2008년)|]] | | [[자유선진당|]] | |
낙선 23.28% | 낙선 28.50% | 당선 46.67% | |
6회 | 권선택 | 박성효 | - |
[[새정치민주연합|]] | [[새누리당|]] | ||
당선 50.07% | 낙선 46.76% | ||
7회 | 허태정 | 박성효 | 남충희[21] |
| [[자유한국당|]] | [[바른미래당|]] | |
당선 56.41% | 낙선 32.16% | 낙선 8.78% | |
8회 | 허태정 | 이장우 | - |
| | ||
낙선 48.80% | 당선 51.19% | ||
9회 | ○○○ | ○○○ | - |
| | ||
- | - |
6. 역대 후보별 순위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rowcolor=#000,#fff>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6위 |
1회 | 홍선기 | 염홍철 | 변평섭 | 이대형 | ||
2회 | 홍선기 | 송천영 | 조명현 | |||
3회 | 염홍철 | 홍선기 | 정하용 | 김헌태 | ||
4회 | 박성효 | 염홍철 | 남충희 | 박준호 | 최기복 | 고낙정 |
5회 | 염홍철 | 박성효 | 김원웅 | 김윤기 | ||
6회 | 권선택 | 박성효 | 한창민 | 김창근 | ||
7회 | 허태정 | 박성효 | 남충희 | 김윤기 | ||
8회 | 이장우 | 허태정 |
7. 시정 구호
시장 | 시정 구호 |
홍선기 | <colcolor=#000,#fff> 위대한 대전, 긍지 높은 시민의 시대 |
염홍철 | 가장 살기좋은 대전 건설 |
박성효 | 함께 가꾸는 대전, 함께 누리는 행복 |
염홍철 | 세계로 열린 대전, 꿈을 이루는 시민 |
권선택 | 시민을 행복하게, 대전을 살맛나게 |
허태정 | 새로운 대전, 시민의 힘으로 |
이장우 | 일류 경제도시 대전 |
8. 관련 문서
[1] 집권 여당 소속, 민선 구청장 출신 후보가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한 특이한 징크스가 있었으나, 유성구청장 출신의 허태정과 동구청장 출신의 이장우가 연속으로 당선되면서 깨졌으며, 연임한 인물은 홍선기 전 시장이 유일하다. 구청장을 포함한 민선 기초자치단체장 출신의 광역단체장은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도 많지 않고 구청장만 한정할 경우 더더욱 적다.[2] 충청북도지사는 충청북도 자체가 충청남도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는 동네고, 역대 민선 지사들도 대부분 무난한 스타일의 공무원 출신이 대다수라 튀지 않고 안정적으로 도내 행정 사무만 주로 수행했기에 외부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참고로 민선 8기 김영환은 최초의 의료인 출신의 충청북도지사이다.[3] 선거 당시 당적.[4] 1995.1.1. 광역시로 명칭 변경.[5] 선거 당시 당적.[6] 2005.3.8.
탈당.
2005.4.20.
[[열린우리당|]] 입당.[7] 2012.11.16.
[[새누리당|]]으로 흡수 합당.[8]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9]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시장직 상실.[10] 원래 염홍철은 당적이 한나라당이었지만 2005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11] 즉 텃밭이라고 여겨지던 호남권에서조차 대참패한 것인데, 하물며 광주광역시장, 전라남도지사 자리도 당시 군소 정당급으로 작아져 오늘 내일하던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에게 내줬을 정도로 대패한 선거였다.[12] 대전광역시 서구에서 이장우 후보가 3,927표 앞섰는데, 둔산1·2·3동에서만 1,160표 앞섰다., 물론 갈마동과 월평동에서도 이장우 후보가 이긴 건 덤이다.[13] 이후 유성구 을 지역 국회의원이였던 이상민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유성구 3, 4 선거구 민주당 의원 2명도 이상민과 같은 길을 택하였고, 나머지 민주당 소속 유성구 2 선거구 의원이 자살하면서 대전광역시 민주당 광역의원들은 비례대표 1명을 빼고 모두 궤멸당했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장은 중구청장이 중도 낙마하고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면서 2석으로 늘긴 했다.[14] 3% 이상 득표자만 기재.[15] 보수 정당 후보.[16]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17] 보수 정당 후보.[18] 보수 정당 후보.[19] 보수 정당 후보.[20] 보수 정당 후보.[21] 제3지대 정당 후보.
탈당.
2005.4.20.
[[열린우리당|]] 입당.[7] 2012.11.16.
[[새누리당|]]으로 흡수 합당.[8] 2015.12.28.
으로 당명 변경.[9]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시장직 상실.[10] 원래 염홍철은 당적이 한나라당이었지만 2005년에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11] 즉 텃밭이라고 여겨지던 호남권에서조차 대참패한 것인데, 하물며 광주광역시장, 전라남도지사 자리도 당시 군소 정당급으로 작아져 오늘 내일하던 민주당(구 새천년민주당)에게 내줬을 정도로 대패한 선거였다.[12] 대전광역시 서구에서 이장우 후보가 3,927표 앞섰는데, 둔산1·2·3동에서만 1,160표 앞섰다., 물론 갈마동과 월평동에서도 이장우 후보가 이긴 건 덤이다.[13] 이후 유성구 을 지역 국회의원이였던 이상민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유성구 3, 4 선거구 민주당 의원 2명도 이상민과 같은 길을 택하였고, 나머지 민주당 소속 유성구 2 선거구 의원이 자살하면서 대전광역시 민주당 광역의원들은 비례대표 1명을 빼고 모두 궤멸당했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장은 중구청장이 중도 낙마하고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면서 2석으로 늘긴 했다.[14] 3% 이상 득표자만 기재.[15] 보수 정당 후보.[16]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17] 보수 정당 후보.[18] 보수 정당 후보.[19] 보수 정당 후보.[20] 보수 정당 후보.[21] 제3지대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