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12:05:03

동부 솔로몬 해전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투 목록 | 아시아/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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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솔로몬 해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asternSolomonsEnterpriseBurning.jpg
일본군 함재기의 공격을 받는 엔터프라이즈
날짜
1942년 8월 24일 ~ 1942년 8월 25일
장소
솔로몬 제도
교전국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일본|]][[틀:국기|]][[틀:국기|]]
지휘관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로버트 곰리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프랭크 잭 플레처
파일:일본 국기.svg 나구모 주이치
전력 정규항공모함 2척[1]
전함 1척[2]
중순양함 3척[3]
경순양함 1척[4]
구축함 11척
항공기 176기
정규항공모함 2척[5]
경항공모함 2척[6]
개조항공모함 2척[7]
전함 2척[8]
중순양함 15척[9]
경순양함 1척[10]
구축함 25척
수상기모함 1척
수송선 3척
항공기 약 175기
피해규모 정규항공모함 1척 중파 [11]
항공기 20기 손실
90명 전사
경항공모함 1척 침몰[12]
구축함 1척 침몰
수송선 1척 침몰
기타 군함 2척 피해
항공기 75기 손실
290여명 전사
결과
미군의 승리

1. 개요2. 배경3. 전투
3.1. 전초전3.2. 본격적인 전투3.3. 전투 후
4. 결과

[clearfix]

1. 개요

Battle of the Eastern Solomons / 제2차 솔로몬 해전(第二次ソロモン海戦)(일본군 측 명칭)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중에 1942년 8월 24일~25일 솔로몬 제도 주변에서 미국 해군과 일본 해군 사이에 벌어진 해전이다.

일본군은 대동아 공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섬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 병력을 상륙시켰다. 하지만 과달카날은 호주로 가는 교두보의 역할을 하는, 미국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기에 일본군이 과달카날에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합군 수뇌부는 이를 막기 위해 미 해병대 1사단이 과달카날에 상륙하여 비행장을 점령했다.

과달카날에 미군이 상륙하고 헨더슨 비행장을 차지하자, 이 공격에 놀란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 사령관은 연합군에 역공을 가하고 더 나아가 미 해군의 전력을 상실시키기 위해 공격을 준비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asternSolomonsChart.jpg

동부 솔로몬 해전 당시의 지도.

2. 배경

1942년 8월 7일에 미 해병대는 과달카날, 툴라기, 플로리다, 가부투-타남보고섬에 성공적으로 상륙하여 일본군이 건설 중이던 비행장을 점령하면서 과달카날 전역이 시작되었다. 이때 상륙을 지원한 제61기동부대는 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 그리고 와스프 세 항모가 중핵인 부대였다. 근데 항공모함이 포함되어 있었던 제61기동부대가 연료 보급을 이유로 전선에서 이탈, 남아서 수송선을 호위하던 제62기동부대가 미 해군 최악의 전투로 꼽히는 사보섬 해전에서 큰 피해를 보았고, 미군은 솔로몬 제도 주변의 제해권을 상실하면서 솔로몬 제도 주변 해역은 일본 해군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사보섬 해전으로 인해 과달카날섬에 상륙한 미 해병대는 외부의 지원이 끊어진 채 고립되었고 상황 타개를 위해선 일본군이 건설 중이던 비행장을 완공해서 과달카날 근해의 제공권을 장악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일본군이 남기고 간 물자와 부분적으로 재개된 보급으로 버티며 비행장 건설을 진행했고, 갖은 고생을 한 끝에 마침내 완공되어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해져 항공전력 전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대본영은 과달카날이 털렸다는 소식을 듣고, 미드웨이섬을 공격할 예정이었던 일본군 제28연대에 공격 명령을 내려 테나루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가 끝나가는 와중에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더 많은 병력을 과달카날에 수송하고 나아가 미 해군의 함대를 쳐부수기 위해 정규항공모함 2척, 경항공모함 1척, 전함 2척, 그리고 다수의 순양함 및 구축함들로 이루어진 함대를 출격시킨다.

3. 전투

3.1. 전초전

일본군은 가용 가능한 정규항모 쇼카쿠, 즈이카쿠, 류조와 개조항모인 히요, 준요, 그리고 경항모인 즈이호를 한데 묶어 나구모 주이치 중장의 지휘하에 제3함대를 편성하였다.[13]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라바울에서 제11항공함대가 출격해 핸더슨 비행장을 폭격하는 과호작전을 개시했고, 이로 인해 핸더슨 비행장 주변에서 항공전이 연이어진다. 또한, 일본은 미드웨이 이후, 자신들의 암호가 노출됨을 깨닫고 해군용 암호체계인 JN-25의 해독용 난수표를 교체하였다. 때문에 미군은 암호해독에 혼선이 오게 되었고, 사보섬 해전의 참패로 이어졌었다.

과달카날에선 항공전력의 우세로 인해 주간에는 미국이, 야간에는 수상함 전력이 우세한 일본이 해역에서 우세를 가지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과달카날에 수송함대를 급파, 곤도 노부타케가 지휘하는 제2함대가 수송함대를 호위하고 나구모 주이치의 제3함대가 핸더슨 비행장 공습 및 미 기동부대 격멸이라는 임무를 맡게된다.

8월 21일, 일본 육군의 이츠키 대대는 비행장 탈환을 시도하였으나, 전멸 직전의 피해를 입은 테나루 전투를 치른다.

한편 프랭크 플레처 제독 휘하의 임무부대 11과 16, 18은 테나루 전투의 소식을 듣고 과달카날의 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과달카날로 남하했다. 8월 23일 아침, 미 해군의 카탈리나가 일본의 병력 수송선 및 호위함대를 발견한다. 그 수송함대는 과달카날로 향하는 일본의 수송함대였다. 이때 플레처 제독은 오판을 하게 된다. 수송함대는 발견했지만, 여전히 기동부대의 위치는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군의 난수표가 교체된것을 알 리가 없는 정보국의 암호 해독반이 일본 기동부대의 위치를 트럭 북방 해상으로 추정하면서 플레처는 기동부대 간 교전이 당장은 없을 것이라 오판을 하게 된다. 플레처는 와스프가 소속된 제18임무부대의 해상급유를 위해 에피테 섬으로 보낸다. 귀중한 항공모함이 전선에서 이탈하면서 미 해군에게는 항공모함이 새러토가와 엔터프라이즈 단 두척밖에 남지 않게 된다.

3.2. 본격적인 전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S_enterprise-bomb_hit-Bat_eastern_Solomons.jpg
엔터프라이즈에 떨어진 세 번째 폭탄

8월 24일 오전 9시, 미 해군의 비행정이 류조를 발견했다. 오전 11시에도 카탈리나가 마찬가지로 류조와 호위함들을 발견한다. 하지만 류조는 미끼였으며, 주변 해역에서 미 기동부대의 전력이 류조에게로 향하길 기다리는 일본 기동부대가 있었다.[14] 플레처는 이를 정확히 짚어내며 제 16 임무부대의 엔터프라이즈에게 북서쪽 방면 약 400km 정찰 명령을 내린다. 엔터프라이즈에서 정찰 폭격기 16기와 뇌격기 7기가 무장을 한 채로 날아오르게 된다.

한편 일본에게는 미 기동부대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없자 나구모는 핸더슨 비행장 폭격을 명령한다. 류조에서 이함한 14기의 제로센과 공격대, 라바울에서 날아오른 24기의 G4M 육상 공격기들이 비행장을 공격했으나, 핸더슨 비행장에서 이륙한 캑터스 비행대가 이를 저지하며 제로기 6대와 공격대에 큰 피해를 입으며 물러난다. 반면, 미군은 F4F 4대 손실의 경미한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플레처 제독은 움직이지 않고 엔터프라이즈가 보낸 정찰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핸더슨 비행장이 공습을 받게 되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플레처 제독은 오후 1시 45분, 38기의 공격대를 류조를 향해 발진시킨다. 그러나 새러토가의 공격대가 류조를 향하던 사이, 엔터프라이즈의 정찰기가 북서부 방면에서 쇼카쿠와 즈이카쿠 발견 후 폭격을 가하고, 주변의 폭격대 또한 공습을 가했으나 명중탄은 없었다. 일본 주력부대의 발견 소식은 곧바로 미 함대에게 타전되었지만, 예비기가 비어있는 새러토가만 무전을 수신하고, 예비대가 있던 엔터프라이즈와 류조에게 향하던 공격대에게도 전달되지 못했다.

결국 새러토가의 공격대는 류조의 공습에 돌입했고, 첫 몇발은 회피한 류조였으나, 결국 4발의 폭탄에 피탄된다. SBD 돈틀리스대가 폭격을 하는 사이 TBF 어벤저 뇌격대 또한 뇌격을 가해 1발의 명중탄을 냈다. 이로 인해 류조는 우현으로 20도 기울어 전투능력을 상실하고 동부 솔로몬의 앞바다에서 함생을 마치게 된다. 일본군은 류조를 상실하였으나, 이는 일본군의 예상대로였고 일본군에게 턴이 넘어가게 되었다.

엔터프라이즈가 일본의 주력함대를 발견함과 동시에 일본군 또한 미 기동부대를 찾아냈다. 류조를 호위하던 히에이의 수상정찰기가 미 기동부대를 찾아낸 것이었으며, 이 정보는 미군의 상황과 달리 일본군 주력부대에 제대로 전달되었다.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1차 공격대를 이함시켰으며, 곧바로 2차 공격대까지 이함시키며 미 항공모함을 격멸하려 하였다. 오후 4시, 엔터프라이즈의 대공레이더에 방위 320도, 거리 140km에서 일본의 공격대를 탐지하여 F4F 와일드캣이 요격을 위해 즉시 날아올랐다. 요격대가 이함을 마친 2분 후, 또 다른 기영이 레이더에 감지된다. 항공유도장교는 이 기영이 일본의 다른 공격대라고 판단, 새로 나타난 기영에 전투초계중인 와일드캣을 출격시켰다. 하지만 이 기영은 정찰 후 귀환중인 엔터프라이즈의 정찰폭격대 였으며, 그 사이 진짜 공격대의 모습이 사라졌다. 약 20분 후, 공격대의 모습이 다시 포착되어 요격대는 다시 해당 공역으로 급파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전이 말썽을 벌여 요격대는 적 공격대의 요격에 실패하였다.[15]

파일:동부솔로몬해전.jpg

일본 공격대는 아무런 방해 없이, 엔터프라이즈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본격적으로 공습에 돌입한다. 오후 4시 40분, 약 20발 이상의 폭탄이 엔터프라이즈에게 집중되었다. 오후 4시 44분에 폭탄 하나가 엔터프라이즈의 후방갑판에 명중해 내부로 관통되었고, 35명의 사망자 및 70명의 부상자를 내며 기저까지 구멍을 뚫어 침수를 유발했다. 이 침수로 엔터프라이즈는 우현으로 3도 기울었으며, 또 다른 폭탄이 후방갑판 주변의 대공포좌에 명중하며 대공포탄이 유폭, 38명의 사망자가 추가로 발생했다. 3번째 폭탄이 2번 엘리베이터 전방 갑판에 명중했으나, 신관의 오작동으로 내부까지 관통하지 못해 피해는 사망자 1명으로 그쳤다. 이후에 나머지 공격대는 엔터프라이즈 주변에 있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네임쉽 노스캐롤라이나에 공격을 시도하나 실패했다. 이 공습으로 엔터프라이즈는 총 74명 전사, 95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는 신속한 데미지 컨트롤을 시도했다. 기저부의 파공은 매트리스로 막고, 격벽을 내려 구획을 격리한 뒤 소화에 돌입했다. 신속한 데미지 컨트롤의 결과로 엔터프라이즈는 응급수리에 성공해 한시간만에 이착함 기능을 수복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하지만 소화작업 중 공습으로 인해 파손된 배관을 따라 소화액과 물이 조타실에 대량으로 흘러들어 조타기계실 침수로 엔터프라이즈의 키가 우현 20도로 고정된 채 조함불능에 빠졌다.

최악의 순간,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날려보낸 2차 공격대는 이미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위치를 잘못 전달받은 2차 공격대는 40도 가량 남쪽으로 변침하여 엔터프라이즈 남쪽 80km 해상으로 날아갔다. 만약 2차 공격대가 제 위치에 도달했다면 조함불능에 빠져 단순한 원운동을 하던 엔터프라이즈는 공습을 받아 격침될수도 있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엔터프라이즈에게는 공습을 면하는 행운이 뒤따랐다. 엔터프라이즈는 보조 모터를 구동해 조함기능을 간신히 되찾으며 해당 해역에서 생환할수 있었다.

3.3. 전투 후

항공전이 끝을 맺고 난 후, 곤도 제독의 제2함대가 잔존 수상함을 모아 미 기동부대를 다시 격멸하려 했지만 미 기동부대는 이미 해역에서 이탈한 후였기 때문에 미 기동부대를 찾을수 없었고, 나구모 제독의 제3함대 또한 항공전에서 손실을 입고 철수해 항공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철수하게 된다. 이때 제18임무부대의 와스프가 재보급을 마치고 북상하던 상황이었기에 일본군의 철수는 적절한 판단이었다.

24일이 끝난 후, 일본 해군은 한가지 큰 착각을 했는데 그것은 24일의 전투에서 나구모가 2척의 항공모함에게 피해를 입혀 전선에서 이탈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전선에서 이탈한 것은 엔터프라이즈 뿐이었다. 하여튼 미 해군의 항공모함이 전부 과달카날에 없으므로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다나카는 다시 과달카날에 상륙할 병력을 태운 수송선들과 경순양함 진츠 및 구축함들, 그리고 제8함대의 중순양함들로 이루어진 호위함대를 이끌고 과달카날로 향했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헨더슨 비행장들의 항공기들은 이 호위함대를 공격하여 진츠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수송선 중 하나를 격침시켰다.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구축함 무츠키가 수송선에 다가가지만 비행장에서 날아온 4기의 B-17 폭격기에게 공격당해 침몰했다. 진츠가 공격당했을 때 정신을 잃었던 다나카 제독은 다른 구축함 카게로로 옮겨지고, 수송선들과 호위함대는 더 이상의 피해를 입기 전에 후퇴하며 일본군의 과호작전은 실패로 끝을 맺게되었다.

미 해군도 한시름 놓을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31일, 산호해를 초계하던 새러토가가 I-26의 뇌격에 손상을 입고 전선을 이탈하였으며, 9월 15일에는 와스프가 I-19의 어뢰에 격침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다나카의 호위함대가 겪은 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순양함 아오바의 동부 솔로몬 해전 항목 참조.

4. 결과

전투는 일본 해군이 류조를 손실하고, 과호작전에 실패하며 미 해군의 승리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엔터프라이즈와 새러토가가 전선을 이탈하게 되었으며, 와스프가 격침되어버려 동부 솔로몬에서 작전이 가능한 미 항공모함은 없다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 대신에 진주만에 있던 요크타운급 호넷이 솔로몬 제도 주변으로 파견되어 작전을 수행했고, 엔터프라이즈 또한 어떻게든 수리를 하여 한달 뒤 작전이 가능해지게 되았다.

문제는 이 전투에서 미 해군은 단 7명의 조종사를 잃었으나, 일본 해군의 경우 61명의 수많은 베테랑 조종사들을 잃었다는 점이며, 이후 어떻게든 베테랑들을 긁어모은 일본군은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또다시 베테랑 조종사들을 다수 잃고, 실력이 뛰어난 조종사들을 더 이상 양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결과는 필리핀 해 해전의 처참한 패배로 이어졌다.


[1] 새러토가, 엔터프라이즈[2] 노스캐롤라이나[3] 포틀랜드, 뉴올리언스, 미니애폴리스[4] 애틀랜타[5] 쇼카쿠, 즈이카쿠[6] 류조, 즈이호. 다만 류조는 당시 일본 해군 분류에서는 정규항공모함이었다.[7] 히요, 준요[8] 히에이, 기리시마[9] 아타고, 타카오, 마야, 초카이, 묘코, 하구로, 쿠마노, 스즈야, 치쿠마, 토네, 아오바, 키누가사, 후루타카[10] 나가라[11] 엔터프라이즈[12] 류조[13] 다만 연공서열상 곤도 노부타케가 높았기 때문에 형식상 곤도가 지휘하는 제2함대 휘하에서 제3함대를 운용하는 형식을 취했다.[14]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 이후, 정규항모의 대량 손실을 우려해 경항모를 앞세워 정찰과 화력을 흡수하는 사이, 정규항모가 적의 주력을 치는 전술을 쓰게되었다.[15] 미 해군의 항공대는 무전의 주파수를 모두 같은 주파수로 사용했고, 파일럿들의 잡담과 명령이 한데 섞여 제대로 된 명령이 하달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