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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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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前 축구 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1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Димитър Бербатов / Dimitar Berbatov | |
본명 | 디미터르 이바노프 베르바토프 Димитър Иванов Бербатов[1] | |
출생 | 1981년 1월 30일 ([age(1981-01-30)]세) | |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블라고에브그라드 | ||
국적 | [[불가리아|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89cm / 체중 78kg | |
직업 |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 |
소속 | <colcolor=#000000,#e5e5e5> 선수 | 피린 블라고에브그라드 (1990~1992 / 유스) CSKA 소피아 (1992~1998 / 유스) CSKA 소피아 (1998~2001) 바이어 04 레버쿠젠 (2001~2006) 토트넘 홋스퍼 FC (2006~20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8~2012) 풀럼 FC (2012~2014) → AS 모나코 FC (2014 / 임대) AS 모나코 FC (2014~2015) PAOK FC (2015~2016) 케랄라 블래스터스 FC (2017~2018) |
국가대표 | 78경기 48골[2] (불가리아 / 1999~2010) |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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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가리아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스트라이커.2. 클럽 경력
2.1. 바이어 04 레버쿠젠
처음에는 주전이 아닌 조커로 활약했으나 이후에는 주전으로 성장하여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활약한다. 비록 리그 우승이나 챔스 우승은 달성하지 못 했으나 2002년에는 챔스 결승에 진출하여 출전해서 준우승을 달성했다. 이 때가 레버쿠젠이 미하엘 발락과 함께 그 유명한 콩레블을 기록한 시즌이다.주전 스트라이커가 되고 난 후에는 매 시즌 두 자리 수 골을 기록하며 분데스리가에서도 좋은 선수로 평가받았다. 토트넘으로 이적하기 전 2005-06 시즌에는 21골을 득점하며 25골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에 이어 득점 2위에 올랐다.
2.2. 토트넘 홋스퍼 FC
2006년 여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한 그는 토트넘에서의 2년간, 98경기 45골을 기록하고 뛰어난 테크닉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탑급 공격수로 불렸다.토트넘 시절 뛰어난 개인기와 패싱력을 지닌 베르바토프와 민첩하고 결정력이 뛰어난 로비 킨의 조합은 EPL 최강 투톱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장신의 벨바가 떨궈주고 킨이 넣는 경우도 가끔 있긴 했지만, 그런 경우보다 벨바가 일종의 섀도우로 활약하는 경우가 보다 일반적이었다.
토트넘에서 환상적인 두 시즌을 보내면서 2008년 여름, 맨유 측에서 베르바토프의 영입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적 협상에 소극적이었던 다니엘 레비 회장의 사무실을 찾아가 책상을 발로 걷어차면서 다소 과격하게 보일 수 있는 항의와 2008-09 시즌 개막 이후 태업성 플레이를 보이면서 이적 시위 끝에 2008년 9월 1일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 날 3075만 파운드의 당시 프리미어 리그 역대 2위의 엄청난 이적료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입단했다.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팬들의 큰 기대와는 달리 시즌 초반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빠른 역습과 스피디한 플레이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이는 베르바토프와 맨유의 경기 스타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데 베르바토프의 경우 최소한의 움직임을 통해서 에너지 전부를 볼 터치와 볼 소유에 온 감각을 실어 플레이하는 편이고, 맨유는 빠르고 정확한 플레이를 지향해 활동량과 볼 터치, 슛, 패스 등 거의 모든 영역에 에너지를 쏟으며 플레이했다. 결국 08-09 시즌은 리그 31경기 9골이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냈다.2008-09 시즌: 43경기(선발 36경기) 14골 9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1 | 29 | 2 | 9 | 9 |
챔피언스 리그 | 9 | 5 | 4 | 4 | 0 |
FA컵 | 3 | 2 | 1 | 1 | 0 |
합계 | 43 | 36 | 7 | 14 | 9 |
09-10 시즌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를로스 테베스가 이적한 공백을 메우지 못하며 수많은 맨유 팬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본인도 부진하면서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는지 토트넘 시절이었다면 골 넣을 법도 한 찬스들을 날려먹으며 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리그에만 출전하였고, 토너먼트 이후에는 거의 출전하지도 못했다. 결국 4-3-3으로 포메이션을 전환하여 원톱에 웨인 루니를 중용하면서 루니를 중심으로 하는 전술로 변경되어 아예 벤치로 밀리면서 거의 기용되지 못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아는지 전 시즌에 비해 경기 때마다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여전히 득점력이 다소 떨어지기에 맨유팬들에게 신뢰를 되찾지 못했으며[3], 계속해서 이적 루머에 시달렸다.
어떻게 보면 정말 불쌍한 선수이기도 하다. 09-10 시즌에 리그에서 12골과 5어시스트로, 수치상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필이면 그가 오기 전에 있던 선수가 90분동안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선수인 카를로스 테베스고, 옆에는 마찬가지로 90분을 뛰어도 안 지치는 웨인 루니가 뛰니, 상대적으로 훨씬 불성실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거기다 베르바토프를 믿고 보내버린 테베스가 맨시티에서 대폭발 해버렸으니 더더욱 배가 아플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테베스에 비해 전방 압박과 수비 가담이 떨어지고, 장신의 타겟 공격수임에도 몸싸움을 즐겨하는 유형도 아니기 때문에 원톱에서는 한계가 있고, 루니와 같이 쓰자니 불협화음으로 맨유의 장기였던 역습이 죽어 버리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라서 퍼거슨 감독과 많은 맨유 팬들로부터 아쉬움과 분노를 자아냈다.[4]
2009-10 시즌: 43경기(선발 29경기) 12골 7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3 | 24 | 9 | 12 | 5 |
챔피언스 리그 | 6 | 1 | 5 | 0 | 1 |
FA컵 | 1 | 1 | 0 | 0 | 0 |
EFL컵 | 2 | 2 | 0 | 0 | 1 |
커뮤니티 실드 | 1 | 1 | 0 | 0 | 0 |
합계 | 43 | 29 | 14 | 12 | 7 |
2.3.1. 2010-11 시즌
프리시즌 때부터 괜찮은 모습을 보여서 또 희망고문하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개막 후 정규리그에서도 계속 좋은 모습을 보이며 드디어 돈값하는건가 하는 설레발이 나오기도 했다.2010년 9월 19일 리버풀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을 때 설레발은 극에 달했고 벨바 찬양이 넘쳐났다.[5] 특히 몸싸움을 회피하려 하고 장신에 비해 공중볼에 약하다는 비판을 듣던 그가 수비수와 적극적으로 경합하며 헤더로 골을 넣은 첫번째, 세번째 골은 지난 두 시즌 그에게 실망했던 맨유팬들에게 다시금 기대감을 갖게 해주고 있다.
2010년 11월 13일 아스톤 빌라전에서 개인플레이의 끝을 보여주었다. 베르바토프로 인해 팀의 흐름이 끊기는 모습이 많이 연출되었다.
그런데, 11월 28일 블랙번과의 경기에서는 혼자 5골을 넣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6] 조석은 베기옥이라고 깠다. 블랙번을 상대로 베기옥을 날리는 베르바토프가 핵심. 이후 커뮤니티에서 베르바가 찬스를 날려먹을 때면 지구인들이여, 나에게 힘을 나눠줘!라는 드립이 등장하고 있다.
과연, 그 직후 발렌시아 CF와의 챔스 조별예선에서 수많은 기회를 다 까먹으면서 베기옥을 모으고 있음을 알렸다.
그리고 12월 27일 선더랜드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했다.
12월 29일 버밍엄 원정전에서도 1골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이후 3개월 만에 나온 연속 경기 골 기록이다.
하지만, 1월 5일 스토크시티 전에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90분간 베기옥을 적립하면서 나니에게 성질을 부리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1월 23일 벌어진 버밍엄 시티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 또 다시 베기옥을 터뜨렸다. 유독 몰아넣기가 두드러지는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번 해트트릭으로 축구 커뮤니티에서 양민학살자의 이미지를 완전히 굳혔다.
이런 시각은 다소 베르바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맨시티에서 최고의 활약을 하고 있는 카를로스 테베스도 경기당 골분포를 보면 베르바토프와 별 차이가 없다. 1월 26일 기준으로 보면 베르바토프가 20경기 중 9경기에서 필드골을 넣었고, 테베즈는 21경기 중 8경기 필드골, PK 포함하면 9경기 골을 기록하고 있다.
즉, 몰아넣기니 뭐니 한다면 테베스도 마찬가지라는 소리. 이때문에 시즌 종료 후 둘이 공동 득점왕을 먹었을땐 쌍으로 비웃음을 당했다.
그러나 테베스는 활동량과 수비가담과 압박에서 베르바토프와 비교도 안 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맨시티 전방에서는 온갖 공간을 찢어발기며 맨시티 공격전개의 핵심역할을 맡고 있다. 당연히 베르바토프보다 고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1월 26일, 블랙풀과의 시합에서 만회골, 역전결승골을 터뜨리며 2경기 연속 멀티골을 기록했고, 베르바토프의 활약에 힘입어 맨유는 2-0으로 지던 경기를 뒤집었다. 이 날까지 리그만 따지면 20경기 18골. 이 위로는 오직 호날두(20경기 22골)와 메시(17경기 19골)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치차리토에게 밀리면서 다시 벤치신세로 전락했다. 그런데 득점왕 경쟁을 펼치던 테베스가 부상당하면서 벤치 멤버 득점왕이 탄생할 공산이 커졌다.
3월 19일 30R 볼턴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교체출장하여 조니 에반스의 퇴장으로 인해 수적 열세 상태인 후반 43분에 천금같은 결승골을 넣으면서 리그에서 2연패로 선두 자리가 흔들리던 맨유를 구해냈다. 리그 19번째 골로 득점 선두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리버풀전 해트트릭, 블랙풀 원정 역전골과 함께 가장 영양가 있던 득점이었다. 4월 9일 32R 풀럼과의 홈경기에서 리그 20호 골을 기록했다.
주중 챔스경기로 치차리토는 벤치로 시작 루니는 욕설로 인한 징계로 결장 FA컵 4강전 선발로 기회를 잡았으나 골문앞 결정적인 찬스 2개를 날려버리면서 미래가 더욱 더 암울해졌다. 찬스 중 하나는 박지성이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에 한국팬들의 반응은 매우 처참했으며 이후 사타구니 부상 때문에 아예 명단에서 빠지고 챔스 4강 샬케 원정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하지만 한국내에선 이미지 탓인지 부상 문제로 빠졌다기보단 마치 맨유에서 쫓겨날 상황이라는 분위기다. 그리고 맨유와의 재계약이 불발되었다는 소식이 떴다. 당시 치차리토의 놀라운 활약과 루니의 부활 등으로 아쉽다는 반응이 그다지 없었다.
첼시 FC와의 사실상 우승팀 결정전에서도 벤치를 달구셨는데 재밌는 것은 경기가 끝난 후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보였고 자신을 벤치로 몰아넣은 치차리토마저도 격하게 안은후 쓰담쓰담을 해주는 대인배 기질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시즌 막판 37라운드에서 맨체스터 시티의 카를로스 테베스가 스토크 시티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함으로써 득점 공동 1위가 되어버렸으며 38라운드, 블랙풀과의 경기에서 넣으라고 찔러준 어시도 날려먹는 기적의 골결정력을 보여주며 결국 득점왕이 날아가는가 싶었지만 반대쪽에서 경기하던 맨체스터 시티의 테베스 역시 삽질을 거듭하면서 공동 득점왕을 수상하게 되었다.[7]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는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을 알자마자 미친듯이 화를 냈다고 한다.[8] 이건 뭐 같은 처지였던 훌륭한 멘탈로 유명한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을 영감탱이라고 욕했을 정도였으니까, 충분히 이해를 할 만 하다. 고국인 불가리아에서 한 인터뷰에 의하면 혼자 라커룸에서 TV로 경기를 봤다고. 사실 제외될만 했던게 객관적 전력으로 맨유가 바르셀로나에 밀리는데 역습을 노릴때 템포가 죽는 베르바토프보다는 치차리토가 훨씬 위협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그 이전까지 기복 심한 베르바토프의 폼을 생각하면 선발로 넣긴 불가능했고 후보로 번뜩이는 모습을 보이기엔 확실히 애매했다.
맨유를 떠날 것이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이지만, 본인은 계속 맨유에 남을 것이라며 잔류 선언을 했다. 다만 잔류를 원하는 본인 의사와 달리 맨유가 계속 그를 안고갈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연봉 인상을 안 해주면 이적도 불사하겠다며 본격적인 다툼에 돌입하였다. 이래저래 계륵이 되었다. 득점왕을 차지했음에도 기복과 몰아치기가 심한 시즌이었고, 여전히 전술에서도 그렇게 좋은 연계를 보여주지 못해서 날이 갈수록 입지가 좁아졌던 시즌이었다. 이적해온 치차리토가 놀라운 활약을 보이며 후반기 주전으로 도약하며 벤치로 밀려난 시간이 많았고, 극후반기 FA컵에서의 심각한 부진으로 사실상 시즌 아웃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리그 우승 확정 + 득점왕 차지를 위해 출전한 블랙풀전에서도 그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한 끝에 챔스 결승에서도 제외되었다. 맨유에서 베르바토프가 그나마 빛난 유일한 시즌이지만, 그 안에서조차 기복을 반복하고 주전과 후보를 오간 어찌보면 현대 축구로의 변화 과정에서 애매한 베르바토프라는 선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즌이었다.
2010-11 시즌: 42경기(선발 32경기) 21골 6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32 | 24 | 8 | 20 | 4 |
챔피언스 리그 | 7 | 6 | 1 | 0 | 1 |
FA컵 | 2 | 2 | 0 | 0 | 1 |
커뮤니티 실드 | 1 | 0 | 1 | 1 | 0 |
합계 | 42 | 32 | 10 | 21 | 6 |
2.3.2. 2011-12 시즌
11-12 시즌은 대니 웰벡의 임대 복귀와 웨인 루니의 미칠듯한 포스, 거기다가 최고의 조커인 치차리토에 한물 갔어도 양학용으로는 손색이 없는 마이클 오언까지 공격자원이 넘쳐 그야말로 출전할 자리가 없다.그러나 팀이 부상신이 걸린탓에 초중반부터는 어느 정도 출장기회를 잡고 있는데 골 결정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중. 그러나 뉴캐슬전에는 어느 정도 슈팅을 날리지 못한 걸 보면 기복은 조금 남아있는 듯 하다.
하지만 시즌 중반 이후로는 경기 출전이 줄어들었고, 루니와 웰벡 투톱으로 가면서 이제 얼굴도 보기 힘들어졌다. 간혹 유로파 리그나 컵대회에서나 보는 게 전부였다. 결국 맨유 입단 후 가장 적은 경기에 나섰고, 이렇다할 활약도 없었던 터라 맨유 팬들에게서 서서히 버림받기 시작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로빈 반 페르시의 맨유 영입설로 인하여 베르바토프가 맨유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 4시즌간의 맨유 생활을 접으려는 것으로 예상된다.
2011-12 시즌: 21경기(선발 11경기) 9골 2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프리미어 리그 | 12 | 5 | 7 | 7 | 0 |
챔피언스 리그 | 3 | 2 | 1 | 1 | 0 |
유로파 리그 | 1 | 1 | 0 | 0 | 1 |
FA컵 | 1 | 0 | 1 | 0 | 0 |
EFL컵 | 3 | 3 | 0 | 1 | 1 |
커뮤니티 실드 | 1 | 0 | 1 | 0 | 0 |
합계 | 21 | 11 | 10 | 9 | 2 |
2.4. 풀럼 FC
2012년 여름 로빈 반 페르시의 영입으로 남은 벤치 자리마저 사라지자 베르바토프는 결국 맨유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당초 ACF 피오렌티나 행이 거의 확정적이었지만 본인이 잉글랜드에 뛰고 싶다는 이유로 풀럼 FC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적했다. 이적 당시 행동이 세리에 팬들의 정나미를 완전히 떨어트려 버렸다. 애초에 피렌체 메디컬테스트가 잡혀서, 피오렌티나 구단 자체에서 비행기값까지 지불한 상태에서 유벤투스가 제의를 하자마자, 유베로 간다며, 유베 또한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비행기값을 지불했지만, 유벤투스까지 뒷통수를 치고 풀럼으로 이적한다.이후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언플을 시전하고 피렌체 팬들의 어그로를 한몸으로 받아드셨다. 이에 대해 피오렌티나 구단측에서도 공식적으로 '베르바토프가 오지 않은 것이 매우 다행스러우며, 그는 피오렌티나의 저지를 입고 뛸 자격이 없는 선수'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풀럼에서 쾌속행진 중이다.
풀럼 리그 데뷔경기인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선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하였지만 다음경기인 리그 4라운드 웨스트브롬과의 홈경기에서 멀티골을 넣어 팀을 3대0 승리에 기여하였다
이후 리그 11라운드 아스날 원정경기에서 멀티득점을 하였으며 31라운드 QPR과의 홈 경기에서도 2골을 넣었으며 팀은 역전승을하여 승점 3점을 확보하였다
2013년 3월 17일 친정팀인 토트넘 원정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12-13 시즌에는 33경기에서 15골을 기록하며 팀 내 득점 1위, 리그 득점 공동 7위를 기록했다.
13-14 시즌은 17경기 4골을 기록하였으며, 2014년 1월 31일 AS 모나코 FC로 임대되었다.
2.5. AS 모나코 FC
이적후 리그에서만 6골을 넣는 등 주전급 선수로 활약하며 다음 시즌에도 잔류하게 되었다.14-15 시즌에는 라다멜 팔카오의 이적으로 AS 모나코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면서 26경기 7골을 기록하였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16강 아스날전에서 중요할때 1골을 넣어주었다. 그렇지만 시즌 후반기 이후 떠오르는 유망주였던 앙토니 마르시알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고, 많은 나이에 고액 주급을 받는 선수이기 때문에 시즌 종료 이후 방출되어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
2.6. 이후
모나코와의 계약 해지 이후 다수의 잉글랜드 클럽들과 링크되었고 아스톤 빌라 FC행이 유력했지만 계약 이견 차이로 결국 이적이 불발되었고, 그리스 클럽인 PAOK FC와 1년 계약을 맺었다. 14경기에서 7골을 기록했으며, 2016년 여름, 계약이 만료되면서 새로운 팀을 알아보았지만 실패했다. 그 후 1년 동안 팀을 못구해 은퇴설 까지 돌았으나, 2017년 여름 예전 팀 동료 웨스 브라운과 같이 인도의 케랄라 블래스터스 FC와 계약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2018년 3월 팀을 떠났다2019년 9월 19일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으나 불가리아가 워낙 못해서 커리어 기간 동안 한번도 월드컵이나 유로에 나가지 못했다. 같은 불가리아 영웅이라고 불리는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하고의 차이점이라고 볼수있다.4. 플레이 스타일
중앙 공격수이지만 후방으로 쳐져서 공격을 전개하는데 뛰어나며, 볼 키핑과 터치는 정점의 수준이다.[9] 트래핑하는 모습이 마치 백작과 같은 우아함이 있다고 하여 '백작'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으며, 공을 부드럽게 받은 후 90도 턴을 하는 베르바토프 특유의 움직임에 '베르바토프 턴'이라는 기술명이 붙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레버쿠젠과 토트넘 시절에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하지만 맨유에 입성한 이후로 그를 향한 비난이 점점 심해진다. 이는 베르바토프가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몸 싸움을 싫어하는 플레이스타일을 가진데다가 스피드도 그렇게 빠르지 않으며 활동량도 몹시 적었기 때문이다. 당시 맨유의 팀컬러는 활동량이 매우 많은 플레이를 중시했고, 베르바토프같이 골만 노리는 공격수는 치차리토같이 출전시간 대비 미친 득점력을 선보이지 않는 한 중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가대표 경기에선 90분 내내 총 2km를 뛰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10] 이러한 스타일은 경기 기복이 심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어쩔때는 10km 정도의 뛰어난 활동량을 보여주다가 어떤 날에는 또 산책을 하는 둥, 전체적인 피지컬과 멘탈의 일관성이 떨어진다. 이적 첫 시즌에도 기존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카를로스 테베스 등이 주축이 된 역습 전술에서 베르바토프가 합류한 뒤 베르바토프에게 공이 가면 공격템포가 죽는다는 평을 받기도 했고, 두 번째 시즌에 호날두와 테베즈가 떠나자 본격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다.
전성기라 할 수 있는 토트넘 시절에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서 최전방을 거닐다가 볼이 오면 감각적인 볼 터치로 볼을 키핑하고, 2선에서 침투하는 로비 킨이나 아론 레넌, 저메인 제나스 등에게 찌르는 등, 꽤 좋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맨유에서 같이 공격하는 테베스나 루니, 박지성, 긱스 등과 비교하면 맨유의 팀컬러와는 간극이 있다. 호날두까지 포함해서 기존 공격진들이 이상적인 역습 전개가 가능했던 건 빈 공간 쇄도, 패스, 드리블 돌파와 득점 모두 가능한 자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박지성이 공간을 많이 잡아주고 호날두가 득점을 많이 했다는 특징이 있으나, 그들 사이의 역할 수행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 비교하면 베르바토프는 스피드가 느리기 때문에 템포가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드리블 돌파를 하거나 빈 공간에 쇄도를 해서 수비진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고, 본인이 공을 받아서 뭐라도 해야 한다. 허나 이런 점은 기존 맨유의 컬러와는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루니, 박지성, 테베즈 3명은 모두 뛰어난 활동량으로 상대편을 압박하고 팀의 빈 공간을 잘 메꾸는 능력이 있었지만, 베르바토프에겐 이런 플레이를 요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히려 지금은 사장된 간단한 몇번의 터치와 키핑으로 기회를 창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그에게 어울린다 볼수 있을 정도였고, 그나마 맨유에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피지컬을 이용한 타겟맨 롤도 애초에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수 없었다. 한마디로 미드필더 전원이 그를 위해 좋은 곳에 패스를 배달해줘야 하는 플레이가 그에게 맞았지만, 맨유는 그 정도로 그에게 득점을 매달려야 하는 팀도 아니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보통 강팀을 상대할 땐 미드필더 진영을 튼튼히 하는 4-3-3 전술[11]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베르바토프의 스타일을 살릴 수 있는 점유율 축구는 상대하기 쉬운 팀과의 경기에서만 사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루니가 부상으로 빠질 때는 베르바토프가 원톱으로 나섰는데,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베르바토프가 가진 많은 장점도 결국 공이 자신에게 오지 않고서는 발휘되지 않으며, 드리블 돌파와 같은 옵션도 없다. 그러기에 본인의 장점이 엄청나게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맨유가 4-4-2로 회귀하게 만드는 한계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맨유에서 같이 뛴 리오 퍼디난드는 인터뷰를 통해 "베르바토프는 절대 게으른 선수가 아니다. 경기가 끝난 후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그가 언제나 우리 팀에서 제일 많이 뛴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며 베르바토프를 노력파 선수라 평가했다.
여담으로 박지성에게 패스를 하지 않아서 박빠들의 조롱을 받던 선수라 저평가되었다며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고 준수했다고 하는데, 당대에 700억 가까이 주고 사온 선수가 4시즌 142경기 56골 24도움에 그친건 결코 만족할 성적이 아니었다. 중미는 제대로 된 자원을 데려오는 게 아니라 긱스와 스콜스를 활용하고, 윙어는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던 퍼거슨이었지만 스트라이커 하나만큼은 무리하더라도 컴플리트 포워드 스타일의 최고급 자원을 선호하던 퍼거슨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당장 베르바토프 전 맨유의 스트라이커는 테베스였는데, 그는 활동량, 슈팅 , 피지컬 등 만능에 가까웠고 공미를 설수 있을 정도로 시야도 훌륭했다.
5. 평가
맨유에 있을 당시에도 스탯 자체는 준수했고, 2010-11 시즌은 공동 득점왕을 수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플레이 스타일이 너무 어정거린다는 것과 약팀한테만 골을 몰아박는 특성 때문에 인정받지도 중요하게 쓰이지도 못했다. 더욱이 당시로선 높은 이적료를 퍼부은 선수치고 스텟이 준수한 정도에서 머문 것 역시 아쉬웠던 부분. 득점왕을 한 시즌에도 후반기에는 사실상 선발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그 다음 시즌에는 벤치를 달궜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맨유에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은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는 단계였다는 것과 스타일 문제가 크다. 안드리 셰브첸코와 페르난도 토레스의 경우와도 비슷한데 이 두 선수와 베르바토프의 공통점이 매우 많다. 부진의 원인은
1. 높은 이적료
2. 기량 저하(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전 소속팀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여준 뒤 이적 후 몰락했다.)
3. 환경의 변화(특급 에이스라도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고 새 팀에서의 역할변경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겹쳐지면 부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4. 위의 모든 것이 합쳐진 비판(높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온 선수가 위의 이유로 비판받게 되고 나름 스탯을 찍어준다고 해도 이적료가 발목을 잡는다. 언론과 팬들에게 이렇게 씹히고 극복을 못하게 된다면 결국 토레스와 셰브첸코의 사례가 되는 것이다.)
맨유에서 꽤 잘한 선수였지만, 이적료 인플레이션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12]
2. 기량 저하(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전 소속팀에서 절정의 모습을 보여준 뒤 이적 후 몰락했다.)
3. 환경의 변화(특급 에이스라도 기량이 조금씩 하락하고 새 팀에서의 역할변경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겹쳐지면 부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4. 위의 모든 것이 합쳐진 비판(높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온 선수가 위의 이유로 비판받게 되고 나름 스탯을 찍어준다고 해도 이적료가 발목을 잡는다. 언론과 팬들에게 이렇게 씹히고 극복을 못하게 된다면 결국 토레스와 셰브첸코의 사례가 되는 것이다.)
맨유에서 꽤 잘한 선수였지만, 이적료 인플레이션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12]
여러모로 유니크한 플레이 스타일로 인해 이름을 남겼고, 또 나름의 활약도 했지만 빅클럽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 CSKA 소피아 (1998~2001)
- 불가리아컵: 1998-99
- 토트넘 홋스퍼 FC (2006~2008)
- 풋볼 리그컵: 2007-08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8~2012)
- 프리미어 리그: 2008-09, 2010-11
- 풋볼 리그컵: 2009-10
- FA 커뮤니티 실드: 2010, 2011
- FIFA 클럽 월드컵: 2008
6.2. 개인 수상
-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2010-11
- UEFA컵 득점왕: 2000-01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2007년 4월, 2011년 1월
- PFA 올해의 팀: 2006-07, 2010-11
- 키커 올해의 팀: 2003-04, 2004-05
- 리그 1 이달의 선수: 2014년 4월
- DFB-포칼 득점왕: 2001-02
- 토트넘 홋스퍼 올해의 선수: 2006-07
- 풀럼 올해의 선수: 2012-13
- 모나코 올해의 선수: 2013-14
- 불가리아 올해의 축구 선수: 2002, 2004, 2005, 2007, 2008, 2009, 2010
- 불가리아 올해의 인물: 2009
6.3. 출전 기록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13]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98-99 | PFC CSKA 소피아 | 파르바리가 | 11 | 3 | 0 | 5 | 3 | 0 | 0 | 0 | 0 | - | 16 | 6 | 0 | ||
99-00 | 27 | 14 | 0 | 4 | 2 | 0 | 2 | 0 | 0 | - | 33 | 16 | 0 | ||||
00-01 | 11 | 9 | 0 | 0 | 0 | 0 | 4 | 7 | 0 | - | 15 | 16 | 0 | ||||
합계 | 49 | 26 | 0 | 9 | 5 | 0 | 6 | 7 | 0 | - | 64 | 38 | 0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99-00 | 바이어 04 레버쿠젠 II | 레기오날리가 | 7 | 6 | 0 | 0 | 0 | 0 | 0 | 0 | 0 | - | 7 | 6 | 0 | ||
00-01 | 바이어 04 레버쿠젠 | 분데스리가 | 6 | 0 | 2 | 0 | 0 | 0 | 0 | 0 | 0 | - | 6 | 0 | 2 | ||
01-02 | 24 | 8 | 1 | 6 | 6 | 0 | 11 | 2 | 0 | - | 41 | 16 | 1 | ||||
02-03 | 24 | 4 | 6 | 3 | 0 | 0 | 7 | 2 | 0 | - | 34 | 6 | 6 | ||||
03-04 | 33 | 16 | 9 | 3 | 3 | 1 | 0 | 0 | 0 | - | 36 | 19 | 10 | ||||
04-05 | 33 | 20 | 5 | 3 | 1 | 0 | 10 | 5 | 1 | - | 46 | 26 | 6 | ||||
05-06 | 34 | 21 | 9 | 3 | 3 | 0 | 2 | 0 | 0 | - | 39 | 24 | 9 | ||||
합계 | 154 | 69 | 32 | 18 | 13 | 1 | 30 | 9 | 1 | - | 202 | 91 | 34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06-07 | 토트넘 홋스퍼 FC | 프리미어 리그 | 33 | 12 | 9 | 8 | 4 | 3 | 8 | 7 | 3 | - | 49 | 23 | 15 | ||
07-08 | 36 | 15 | 9 | 8 | 3 | 1 | 8 | 5 | 2 | - | 52 | 23 | 12 | ||||
08-09 | 1 | 0 | 0 | 0 | 0 | 0 | 0 | 0 | 0 | - | 1 | 0 | 0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08-09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프리미어 리그 | 31 | 9 | 9 | 3 | 1 | 0 | 9 | 4 | 0 | - | 43 | 14 | 9 | ||
09-10 | 33 | 12 | 5 | 3 | 0 | 1 | 6 | 0 | 1 | 1 | 0 | 0 | 43 | 12 | 7 | ||
10-11 | 32 | 20 | 4 | 2 | 0 | 1 | 7 | 0 | 1 | 1 | 1 | 0 | 42 | 21 | 6 | ||
11-12 | 12 | 7 | 0 | 4 | 1 | 1 | 4 | 1 | 1 | 1 | 0 | 0 | 21 | 9 | 2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2-13 | 풀럼 FC | 프리미어 리그 | 33 | 15 | 3 | 2 | 0 | 0 | 0 | 0 | 0 | - | 35 | 15 | 3 | ||
13-14 | 18 | 4 | 1 | 1 | 1 | 0 | 0 | 0 | 0 | - | 19 | 5 | 1 | ||||
합계 | 229 | 94 | 40 | 31 | 10 | 7 | 42 | 17 | 8 | 3 | 1 | 0 | 305 | 122 | 55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3-14 | AS 모나코 FC | 리그 1 | 12 | 6 | 5 | 3 | 3 | 1 | 0 | 0 | 0 | - | 15 | 9 | 6 | ||
14-15 | 26 | 7 | 1 | 3 | 1 | 0 | 9 | 1 | 1 | - | 38 | 9 | 2 | ||||
합계 | 38 | 13 | 6 | 6 | 4 | 1 | 9 | 1 | 1 | - | 53 | 18 | 8 | ||||
시즌 | 클럽 | 소속 리그 | 리그 | 국내 컵 대회 | 유럽 클럽 대항전 | 기타 | 총계 |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경기 | 득점 | 도움 | |||
15-16 | PAOK FC | 수페르리가 엘라다 | 14 | 4 | 0 | 3 | 1 | 0 | 5 | 0 | 0 | 3 | 0 | 0 | 25 | 5 | 0 |
통산 | 491 | 212 | 78 | 67 | 33 | 9 | 92 | 34 | 10 | 6 | 1 | 0 | 656 | 280 | 97 |
7. 여담
- 프리미어 리그로 이적할때까지 영어를 못했다. 그래서 프리미어리그 입성 당시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국 영화 대부 시리즈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베르바토프의 훈훈한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불가리아 어린이들을 돕는 것. 현재 5가정의 아이들을 서포트 해주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베르바토프의 아주 오래된 여자친구 엘레나와의 사이에서 예쁜 딸을 낳았다고.
- 토트넘 시절부터 탈모끼가 보였는데, 맨유 시절을 거치면서 점점 탈모가 심해지면서 과거의 헤어밴드 착용을 버리게되었고 짧게 헤어컷을 유지중이다. 그러나 이마가 계속 넓어지면서 모나코 시절에는 반삭으로 다니다가 드디어 2016년에 모발 이식을 받았다.
묘하게 앤디 가르시아 느낌이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에 욕도 많이 먹고 이래저래 막판에는 주전 경쟁도 밀리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명단 제외 등 굴욕도 겪었고, 퍼거슨 감독과는 이래저래 좋지 않은 식으로 헤어졌음에도[14] 본인의 드림 클럽이었던 맨유에 대해 악감정은 별로 없고, 오히려 애정이 많은 듯하다. 가끔씩 인터뷰 등으로 현 맨유 팀원들에게 충고를 하기도 하고 맨유의 부진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준다.
- 토트넘 시절 동료인 이영표의 말에 따르면 토트넘 시절 자신의 롤모델이 차범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2024년, 슛 포 러브가 넥슨 아이콘 매치에 베르바토프 섭외를 위해 촬영을 갔을 때 이에 대해 물어봤는데 사실이라며 레버쿠젠에 입단했을 때 팀의 역사를 공부하던 도중에 차범근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름부터 멋진 선수이며 또한 독일에서 뛴 외국인 선수이고 실력도 대단했기 때문에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토트넘으로 이적한 그는 이영표와 만나게 되었고, 이영표에게 차범근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한다. #
- 커리어를 보다시피 이영표, 박지성과 클럽에서 같이 뛴 적이 있으며[15] 차범근, 손흥민이[16] 뛰었던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뛰었다보니 은근 한국 축구 선수들과도 인연이 있다. 그리고 차박손의 공통점은 레버쿠젠이라고 말하려다 박지성이 레버쿠젠에서 뛴 적이 없었던 걸 아쉬워하기도 했다.
다음 생애엔 레버쿠젠에서 뛰겠지
- 2018년에는 영화를 찍기도 했다. 선수 시절부터 굉장히 잘생기고 말끔한 외모의 소유자여서 그런지 양복이 매우 잘 어울린다.
- 2020년 9월 토트넘 소속 해리 케인의 혹사 논란이 일어나자 지금 백업 스트라이커가 필요하긴 하지만 케인이 워낙 확고한 주전 선수이기 때문에 그의 백업으로 시작할 선수를 구하기는 힘들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재영입하는 것은 어떠냐고 농담했는데 팬들은 진지하게 그가 왔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 2022년 인터뷰에서 맨유로 이적할 당시 맨시티에서도 제의가 왔었다고 밝혔다.그때 어떻게할 거냐고 물었던 에이전트에게 '꺼지라 그래.우린 맨유로 간다'고 했다고 밝혔다.당시는 맨유가 드림 클럽이었고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 생각하고 맨유만 생각했다고 했다.##
- 국대 최다 득점자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불가리아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지만 메이저대회 본선은 단 1번밖에 나가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불가리아의 전력이 악화되면서 유일한 국제대회 출전이 UEFA 유로 2004 본선이었다. 그마저도 스웨덴, 덴마크, 이탈리아와 함께 죽음의 조에 편성되어 3전 전패로 탈락했고 본인도 별다른 활약없이 무득점에 그쳤다. 이후엔 불가리아가 계속 월드컵이나 유럽선수권 예선에서 모두 하위권에 머물며 베르바토프를 더 이상 국제대회 무대에선 볼 수 없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리오 퍼디난드와 네마냐 비디치가 말하길, 베르바토프는 연습을 할 때 주로 수비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에 베르바토프도 "여기선 내가 바레시고 베켄바워."라고 농담하며 이를 인정했다.
- 국가대표 시절 2km만 뛰었다는 루머가 있다. 정확히는 감독의 과도한 비유가 사실로 여겨지는 경우이다. 10월드컵 예선전에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2008년 11월 3일에 한 인터뷰에서 주장단을 포함한 선수들이 더 잘해야한다고 비판한 말이 직역되어서 믿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경기를 보더라도 베르바토프를 비롯한 선수들이 못해도 반코트 정도를 50번은 왔다갔다 하는 걸 볼 수 있다. 105×66m인 올림피코 스타디온인걸 감안하면 정말 안 뛰어도 3km는 걸을 수 밖에 없다.
[1] Dimitar Ivanov Berbatov[2]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3] 37라운드 선더랜드와의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정말 OME라고 해도 할 말 없는 골결정력이었다.[4] 그런데 5골을 터뜨린 블랙번 로버스 FC전을 보면 자신이 섬세한 감각의 패스로 역습을 시작해내고, 엇박자로 쇄도해 골을 터뜨리면서 그 역습을 마무리짓는 모습을 보면, 아예 역습이 죽는 건 아니다.[5] 두번째 골은 10-11 시즌 최고의 골 중 하나로 기억될 거라는 예상이 벌써부터 나올만큼 멋있는 바이시클 골이었다. 꼭 한 번 봐두자.[6] EPL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으로 앤디 콜, 앨런 시어러, 저메인 데포, 세르히오 아궤로와 타이 기록이다.[7] 하지만, 이날 어시스트 하나는 기록했다. 골을 넣은 건 박지성.[8] 후에 맨유를 떠나 풀럼으로 이적한 후에는 이때 팀을 떠났어야 했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9] 사실상 원탑 수준이라 유튜브에 가면 볼 터치만 모아놓은 동영상도 심심치않게 존재하고 축구 커뮤니티 등지에서 볼 터치에 관해 논할 때 베르바토프는 일단 제외하는 경우도 많다. 박지성도 "유난히 퍼스트 터치가 좋았던 선수가 있나요?" 라는 질문에 베르바토프라고 대답.[10] 일반인이 90분간 길을 걸으면 대체로 6km 정도를 간다. 골키퍼조차도 5km는 활동량을 보인다. 후술하겠지만 2km를 뛰었다는 말 자체는 루머다.[11] 원톱에는 주로 웨인 루니가 기용되었다.[12] 물론 베르바토프에게 저 두 선수랑 비교하는 것은 명백한 굴욕이다. 아무리 베기옥이다 까여도 저 둘의 활약상은 말 그대로 먹튀 그 자체였다.[13] 각 리그 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14] 주전에서 밀렸을 때마다 자신이 맨유에 필요한 선수냐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매번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퍼거슨 감독은 "너는 중요한 선수니까 떠나지 말아라"라고 했지만, 끝끝내 자신을 출전시켜 주지 않았으며,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나중에는 앙금이 풀린 건지 은퇴 후 마이클 캐릭이 개최한 자선 경기에 흔쾌히 출전해 퍼거슨 감독의 지휘 아래 경기를 뛰었다.[15] PSV 에인트호번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를 제외하면 이를 충족하는 선수는 의외로 별로 없는데 그나마 베르바토프와 마찬가지로 토트넘에서 맨유로 이적한 마이클 캐릭이 여기에 해당된다.[16] 여기에 손흥민은 베르바토프처럼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