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012e, #01013a 20%, #01013a 80%, #01012e); color: #ffc224; min-height: 34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조지 1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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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 |||
출생 | 1676년 8월 26일 | ||
잉글랜드 왕국 노퍽주 휴턴 | |||
사망 | 1745년 3월 18일 (향년 68세) | ||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런던 | |||
재임기간 | 제6대 재무장관 | ||
1715년 10월 12일 ~ 1717년 4월 15일 | |||
초대 총리 | |||
1721년 4월 3일 ~ 1742년 2월 11일 | |||
제10대 재무장관 | |||
1721년 4월 3일 ~ 1742년 2월 12일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부모 | 父: 로버트 월폴 母: 메리 버웰 | |
배우자 | 캐서린 월폴 (사망) 마리아 월폴 (사망) | ||
자녀 | 6명 | ||
학력 | 이튼 칼리지 (졸업)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컬리지 (중퇴) | ||
종교 | 성공회 | ||
최종 당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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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초대 총리. 책임 내각 정치를 처음 실시한 세계최초의 의원내각제 총리이기도 하다.[1] 또한 휘그당의 첫번째 총리다.2. 생애
잉글랜드 동부의 노퍽 출생으로, 1701년에 서민원 의원이 되었다.이후 1714년 등극한 조지 1세의 지시로 1715년에 10월 제1대장경[2] 겸 재무장관[3]이 되었으나 외교정책면에서 대립, 1717년 물러나서 반정부적 태도를 취하다가, 1720년 남해회사 거품 사태를 계기로 재등장하여 경제문제나 사후처리에 비상한 수완을 발휘함으로써 명성을 떨치고, 다시 제1대장경 겸 재무장관 겸 서민원 의장이 되었다.
1721년, 수상이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책임내각제를 확립하였으며,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영국의 초대 수상으로 간주된다. 이는 당시 조지 1세의 상황 탓도 있었는데, 조지 1세는 항목에도 있듯 독일 하노버 지역 사람으로 영어도 서툰 등 사실상 영국에 큰 애정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의회 견제도 귀찮겠다[4] 자신의 영지 일에 더 집중하면서 영국은 수상이 알아서 하라고 전권을 넘긴 것. 참고로 원래 관습법 국가인 영국에서 오랫동안 수상이란 직위는 없었다. 단지 제1재무위원에 있던 인물을 수상이라 부를 뿐 이었다.[5] 그런데 이 직함이 1714년 10월 신설되었다.
그리하여 월폴은 1721년부터 1742년, 선거에 패하고 물러날 때까지 약 21년간 정권을 유지하였다. 이는 역대 영국 총리 중 최장기 집권 기간이다. 그리고 그동안 그의 휘그당 정권은 국왕과 의원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이후로도 약 30년간 안정되게 집권한다.
1742년 실각한 후 오포드 백작(The Earl of Orford) 작위를 받았다.[6]
3. 여담
- 예술 작품 수집이 취미였다고 한다. 그가 생전에 모았던 그림들은 1779년 로버트 월폴의 손자인 제3대 오포드 백작 조지 월폴이 예카테리나 2세에게 팔아넘겨 현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월폴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다.[7]
- 런던 시계 내 템즈 강의 2번째 교량 건설을 발의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2번째 다리의 건설 이전까지 런던 시계 내에는 1209년에 세워진 런던 브리지[8]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 런던의 교통은 템즈 강의 페리[9]를 통해 이뤄지는게 보통이었는데, 일화에 따르면 어느 날 월폴이 의회에 급하게 가고 있어 템즈 강을 건너야 했는데 강 건너편의 페리 사공들이 술을 마시며 쉬고 있어 월폴을 태우러 오는 것을 거부했고, 이 때문에 월폴이 의회 시간에 늦자 이에 빡쳐 의회에 제2의 다리 건설을 발의, 통과시켜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 바로 앞에 웨스트민스터 브릿지가 세워졌다고 한다. 다만 의회 승인은 그의 재임기인 1736년에 받아 1739년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완공은 그가 사망한 후인 1750년에 되어서 완성된 다리를 지켜보진 못했다.
[1] 여담으로 세계 최초의 대통령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다.[2] 원래 영국 국왕의 최측근으로 왕실의 재정을 담당하는 대신이였다. 이 자리가 지금의 영국 총리로 바뀌었다. 현재도 관습적으로 영국 총리가 이 직위를 영국 국왕의 신하로서 겸직하게 된다.[3] 영국왕의 신하로서 전통적 직위인 제2대장경을 겸직하게 된다. 원래는 1인자가 총리, 2인자가 재무대신으로 발전된것이다. 그렇기에 관저도 총리와 재무장관이 같이 붙어있다.[4] 당시 하노버를 비롯한 대륙유럽은 절대군주제가 여전히 주류던 시절이었다.[5] 사실 이것도 100% 지켜진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대(大) 윌리엄 피트는 후임 수상이 되는 그래프턴 공작에게 이 직함을 던져버렸으며, 로버트 개스코인세실은 이 직위 없이도 수상직을 수행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다만 게스코인세실 수상은 거의 유일한 케이스에 가깝고, 게스코인세실 수상에게 이 자리를 물려 받은 아서 벨푸어가 수상 직에 오르면서 1897년부터 현재까지 모든 현직 수상은 이 직함을 계속 가지게 된다. 물론 이 직위의 재무적 실권은 초기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름 뿐 이었다.[6] 1797년 단절. 지금까지 남아있는 월폴 남작(Baron Walpole)은 동생 호레이쇼의 후손이다.[7] 하지만 월폴 컬렉션 중 하나인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화만은 영국 국립미술관에 전시중이다.[8] 첫번째 다리는 같은 위치에 로만 브리튼 시절 세워졌었으나 1209년에 고정된 영구적인 첫 다리가 세워졌다.[9] 페리라고는 하지만 베네치아의 곤돌라와 비슷한 소규모 보트들이 택시처럼 운용되는 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