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1012e, #01013a 20%, #01013a 80%, #01012e); color: #ffc224; min-height: 34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조지 1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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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월폴 | 스펜서 컴프턴 | 헨리 펠럼 | 토머스 펠럼홀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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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펠럼홀스 | 존 스튜어트 | 조지 그렌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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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윌리엄 피트 | 윌리엄 그렌빌 | 스펜서 퍼시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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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 CH | |||
<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 출생 | 1943년 3월 29일 ([age(1943-03-29)]세) | ||
영국 잉글랜드 서리주 카숄턴 | |||
재임기간 | 제72대 총리 | ||
1990년 11월 28일 ~ 1997년 5월 2일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1013a><colcolor=#ffc224>작위 | 가터 기사 (Order of the Garter) | |
부모 | 톰 메이저 볼(1879–1962) 그웬 코티스 | ||
학력 | Rutlish School (졸업) (-1959년) | ||
종교 | 개신교 (장로회) | ||
정당 | |||
의원 선수 | 5 | ||
의원 대수 | 48, 49, 50, 51, 52 | ||
지역구 | 헌팅던셔 → 헌팅던 | ||
문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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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72대 영국 총리.1990년부터 1997년까지 6년 5개월 동안 영국의 총리직을 지낸 보수당의 정치인이다. 그런데 전임과 후임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한 탓에 6년 반이나 총리로 재직했음에도 인지도는 낮다.
현재 영국의 생존해있는 전직 총리 가운데 최고령자이다.
2. 생애
2.1. 유년기
1943년 서리 지방에서 서커스 단원의 아들[1]로 태어났다. 세례는 존 로이 메이저(John Roy Major)로 받았지만 전시의 혼란스러운 행정 탓이었는지 로이라는 미들네임은 생략되고 존 메이저로 출생신고가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정작 본인은 그 후로도 꿋꿋이 미들네임을 사용한다. 가세가 점차 기울어지면서 16살의 나이에 학교를 자퇴한 이후 각종 허드렛일을 전전[2]하면서 살아가다가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 취직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고 평소부터 관심이 깊었던 정계에 본격적으로 투신한다.2.2. 정치인
이미 16살의 나이에 보수당에 입당했던 메이저는 보수당 내 소장파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는 소위 청년 보수당(Young Conservatives)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당 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각종 지방의회를 거쳐 1979년 헌팅던셔[3]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마거릿 대처 역시 이 젊은 정치인에게 눈길을 들이기 시작했고, 메이저는 1987년 대처에 의해 재무부 차관으로 발탁된 데 이어서 1989년 7월 개각에서는 외무연방부장관으로, 3개월 뒤에는 재무장관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한다.한편 대처는 인두세를 도입했다가 강력한 반발을 맞이한다. 그 여파로 1990년 11월 14일에 열린 보수당 당수 1차 선거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했으며, 이에 대처는 보수당 중진들의 압박을 받아 2차 선거에 불참했고 당수직에서 사임한다. 대처가 당수직에서 사임하자 많은 야심가들이 대처의 후임에 도전했고 메이저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대처가 출마한 1차 선거 당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 때 대처에게 도전하여 대처의 몰락을 초래한 인물은 메이저가 아니라 바로 마이클 헤즐타인이라는 인물.
11월 27일에 있었던 2차 투표에서 메이저는 대중적 지지도는 낮았지만 대처의 지지에 힘입어 여유있게 다른 경쟁자들을 누르고 보수당 당수직에 선출되었다. 375명의 대의원에게서 185표를 받았다고 한다. 과반수 달성까지 두 표가 모자랐지만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적으로 앞섰기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이 선거 후 줄줄이 사퇴했고 그 덕에 당수직에 오르게 된다. 이와 동시에 47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 총리에 오르게 된다.
메이저가 당수직에 선출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그의 정치적 위치였다. 비타협적이고 강경했던 대처와 달리 메이저는 상대적으로 타협적인 사람이었으며, 비록 보수당이지만 노동자 출신이라는 그의 출신 배경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던 것.
2.3. 총리 재임 시기
취임 2년차였던 1991년 말 걸프 전쟁이라는 커다란 파도가 다가온다.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느라 울며 겨자먹기로 참여[4]한 걸프 전쟁에서 영국은 커다란 부채(30억 파운드)를 얻었고, 이 부채는 영국 경제를 다시 침체기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여기에 더하여 1992년 검은 목요일로 파운드화의 가치가 대폭락[5]한 것은 덤. 대처 재임기동안 금융규제의 완화로 국내외 자금이 대거 금융시장으로 유입되었는데, 기껏 활성화시켰던 금융시장이 경색되버린 실정이었다.
그렇지만 1992년 4월의 총선에서 메이저는 재선에 성공한다. 메이저가 재선에 성공했던 원동력은 대처가 도입한 인두세로 인하여 노동당의 핵심 지지층들인 노동자들이 유권자 등록을 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6]
1992년의 선거에서 깜짝 역전승을 거두며 메이저가 권력의 기반을 탄탄히 다진듯이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경제는 집권 초 침체를 벗어나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보수당 내에서는 스캔들[7]이 터졌고[8], 심지어 마스트리흐트 조약과 관련하여 보수당 내부 반란표를 통제하지 못해 조약 비준이 부인되는 굴욕까지 맛본다.[9] 여기에 1995년 5월에는 스코틀랜드 내 지방 자치 선거에서 참패를 맛보자[10] 보수당 내에서 '메이저로는 안된다'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전임 총리와는 대비되는 메이저 본인의 무미건조한 이미지도 발목을 잡았다.
이에 메이저는 1995년 7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당수직 사퇴와 조기 당 내 경선을 실시한다. 다행히 이 승부수가 먹혀들어 메이저는 존 레드우드 전 웨일스 장관을 꺾고 당수로 재신임을 받지만 결국 1997년 5월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에게 역사에 남을 대패[11]를 겪고 총리직을 넘겨주고 만다.
총리직 사임 이후에는 2001년까지 하원의원직을 유지하다, 2001년에 열린 53회 영국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은퇴한다.
3.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64 | 런던 램베스 자치구 의회 선거 | 라크홀 | | 752 (27.3%) | 낙선 (5위) | |
1968 | 런던 램베스 자치구 의회 선거 | 펀데일 | 991 (17.4%) | 당선 (3위) | 초선 | |
1971 | 런던 램베스 자치구 의회 선거 | 손튼 | 2,061 (14.3%) | 낙선 (5위) | ||
1974.2[A] | 제46회 영국 총선 | 세인트 판크라스 노스 | 7,926 (28.33%) | 낙선 (2위) | ||
1974.10[A] | 제47회 영국 총선 | 6,602 (27.30%) | ||||
1979 | 제48회 영국 총선 | 헌팅던셔 | 40,193 (55.3%) | 당선 (1위) | 초선 | |
1983 | 제49회 영국 총선 | 헌팅던 | 34,254 (62.4%) | 재선 | ||
1987 | 제50회 영국 총선 | 40,530 (63.6%) | 3선 | |||
1992 | 제51회 영국 총선 | 48,662 (66.2%) | 4선 | |||
1997 | 제52회 영국 총선 | 31,501 (55.3%) | 5선 |
4. 기타
- 1991년 2월, 걸프전과 관련해 전쟁내각(War Cabinet) 각료회의를 주최하다가 IRA에 박격포로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영국 내각 전체가 날아갈 뻔한 상황. 정말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이 때문에 다우닝 가 10번지의 대문이 목제에서 철제로 바뀌게 된다.
- 평민 출신이지만 2005년에 기사 작위를 받아서 이후로 존 메이저 경이 공식 호칭이 됐다.
- 2019년에 기밀 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메이저 정부 때인 1995년, 맬컴 리프킨드 당시 국방장관이 러시아를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시키자는 의견을 냈는데 당연하지만 내각 안에서 반대가 있었고 그 해 1월 리프킨드 장관의 의견은 거절당한다.
- 크리켓의 열렬한 팬이다. 총리 직에서 물러난 후로 정계 활동보다 크리켓 경기장에서 더 자주 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 2019년에 기밀 해제된 문서에 따르면 영국 올림픽 협회장이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영국 올림픽 대표팀 경기 관람을 위해 애틀랜타를 방문하기를 원했다는데 그 때 당시 잉글랜드가 파키스탄을 상대로 크리켓 경기를 치르는 바람에 애틀랜타 방문을 포기했다고 한다.#
-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소설판 제 1장에 영국 총리가 나오는데, 작중 배경 시간대를 두고 따지자면 이 사람이 총리이던 시절이다.[14] 다만 그냥 '머글 수상'이라고만 언급되기 때문에 존 메이저인지는 소설 내에서 정확히 언급되지 않으며 구체적인 묘사를 살펴보면 평행세계로 봐야 한다.[15]
- 1997년 다이애나 스펜서의 죽음 이후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의 후견인으로 임명됐다. 2018년 해리 왕자의 결혼식에 정치인은 초대하지 않기로 했지만 메이저와 니콜라스 솜스 하원의원[16]은 초대됐다.
- 첼시 FC의 팬이다. 총리 시절에도 스탬포드 브리지를 자주 드나들었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4와 5에서 등장한다. 배우는 조니 리 밀러. 제작진에서 시즌 5~6에서는 다이애나 비와 왕실 간의 갈등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윈스턴 처칠, 해럴드 윌슨, 마거릿 대처 등 비중이 큰 과거의 총리들에 비해 출연 빈도는 다소 줄었다. 하지만 여왕과 매주 접견을 하는 위치인만큼 꽤 자주 얼굴을 비추기는 한다.
첫 등장은 시즌 4부터지만 이때는 비중이 없고 시즌 5, 1 화에서 총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왕실 소유의 요트를 정부예산을 들여 수리해 달라는 여왕의 요구, 구태의연한 늙은 여왕 대신 왕이 될 야심이 있는 젊은 왕세자 찰스[17]의 은밀한 양위 지지 요구, 다이애나의 시집생활에 관한 한탄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날 밤 벨모럴 성의 숙소에서 세상 걱정 없이 흥청망청 노는 왕실과 영국 상류층들의 한심한 작태를 바라보며 국민들을 하나로 단합시키고 모범이 되어 이끌어야 할 왕실의 구태스러운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본다.[18] 6화에선 쿠데타 이후 서구권 지도자중 처음으로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보리스 옐친과 만난다. 옐친의 인상에 대해 묻는 여왕에게 쿠데타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고 호감형이자 호쾌한 친영파이지만 욕설을 내뱉고 테이블을 수시로 두들기며 맨정신일때가 별로 없다는 솔직한 인상평을 내린다. 9화에선 이혼 절차를 밟는 찰스와 다이애나 부부의 중재를 여왕에게 부탁받고 양측 사이를 오가며 조율한다. 10화에선 노동당에게 기록적인 대패를 당하고 토니 블레어에게 총리 자리를 내놓으며 물러나게 되는데 여왕에게서 역사가 어떻게 기록하든 자신은 존 메이저를 훌륭한 총리 중 하나로 꼽을 거라며 침착하고 솔직하며 믿음직한 모습이 그리울 거라는 호평을 받는다. 새 총리가 되는 토니 블레어에게 '좋은 자리예요, 즐겨요.' 라는 쪽지를 남기고 퇴장한다. - 20세기에 재임한 총리중 토니 블레어와 더불어 현재까지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크라운에 대한 평가를 내렸는데 시즌 5 첫 화에서 찰스 3세가 총리와 직접 대면하여 자신을 지지해주고 여왕의 양위를 은근히 바랐다는 식의 내용을 말도 안되는 왜곡이라고 비판하며 오랜만에 언론에 목소리를 냈다.[19]
정작 드라마 상으로는 다른 총리들에 비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여타 총리들과 달리 재임 중의 실정이 나타나지도 않고 개인적인 추문이나 인간성에 대한 비판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 메이저와 왕실 사이의 친밀했던 관계를 감안한 것인 듯하다.혹은 아직 살아있어서 고소미가 두려웠을수도 - 메이저 본인과 메이저의 후임자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은 일대귀족 작위를 관례적으로 제의 받지만 거절했다. 이유는 각자 다르긴 하다. 메이저는 진정한 정계 은퇴[20], 토니 블레어는 영국 귀족원 축소 추진 당사자로서 받기 껄끄러웠던 점, 고든 브라운은 귀족원을 선출직 상원으로 바꾸자는 입장이라 그렇다. 블레어는 과거부터 관례상 받아오던 가터 대훈장을 2022년 수여 받아 경 칭호를 얻었고 브라운은 2024년 컴패니언 오브 어너 훈장을 수여 받았다. 그러나 이 관례는 2023년 데이비드 캐머런이 외무영연방개발부장관직을 맡기 위해 일대귀족직을 받으며 깨지고, 이듬해 총선에서 은퇴한 테레사 메이도 일대귀족직을 받았다.
- 재임시절 1차세계대전당시 겁쟁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당한 영국군인들의 사면을 전사한 군인들에대한 모욕이라며 거부한 전적이있다. 때문에 사면은 10년 후로 미뤄졌다.
[1] 근데 메이저의 아버지는 메이저가 태어났을 당시에 이미 65세였다. 늦둥이도 이런 늦둥이가...[2] 여담이지만 이 시기 전기배공일을 하다가 자신의 정적이자 후임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를 만난 적도 있다고 한다. 중산층 이상의 지지를 받는 보수당의 존 메이저는 노동자 집안 출신이고 공립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이다. 반대로 토니 블레어는 변호사 아버지를 둔 중산층 츨신이며, 스코틀랜드에서 유명한 기숙사립학교에 나오고, 옥스퍼드 대학교를 나왔다. 보수당 정치인들이 퍼블릭 스쿨 - 옥스퍼드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등 러셀 그룹 소속 대학에 나오고, 집안이 중산층 이상이고 노동당에서는 제러미 코빈과 같은 서민층이고, 공립학교 출신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성장 과정을 보면 반대로 되어 있다.[3] 헌팅던셔는 이 선거구에서만 10선을 한 전 국민자유당 당수였던 데이비드 렌튼의 선거구였다.[4] 사실 영국 내에서도 참전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일단 막후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대처가 걸프전을 지지했다.[5]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통일 과정에서 막대한 독일 마르크화가 시장에 풀렸다. 그러자 독일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막는다는 이유로 금리를 미친듯이 인상하는데, 문제는 유럽 국가들이 서로의 환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로 약속한 것. 그러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금리를 올리는데 문제는 독일보다 경제 구조가 취약했던 국가로서는 그게 경제 불황을 가져온 것. 영국도 그 중 하나였고, 결국 이러한 영국 경제의 취약한 점을 노린 헤지펀드들의 공격으로 파운드화의 가치가 폭락하게 된 것이다. 이때 이탈리아나 스웨덴 같은 나라들도 제대로 피봤다.[6] 대처는 유권자 등록을 하는 데 인두세를 물려서, 인두세를 안 낸 노동자들은 유권자가 될 수 없었다.[7] 흔히 "Back to Basics"이라고 하는데, 메이저가 1993년 다시 영국 사회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내세운 표어였는데, 그 이후 스캔들이 하도 많이 터지다보니 야유의 의미로 바뀌었다. 전두환 정부 시절 "정의 사회 구현"과 비슷함 셈.[8] 장관급 인사들이 불륜을 저지르거나 사생아를 낳는 정도가 약한 수준이었다. 나중엔 앨런 던컨 의원이 저소득층을 위해 만들어진 주택보조금을 받아 싸게 집을 사다 걸리고, 보수당의 신진 스타로 떠오르던 스티븐 밀리건 의원이 자기색정사로 질식사를 하더니 심지어는 의회에서 특정 질문을 던지는 조건으로 돈을 받아 챙기는 사건까지 터졌다. 1992~1996년 총 5년간 목이 날아간 장차관급 의원만 해도 16명이나 된다.[9] 여기에 분개한 메이저는 반란표를 던진 자당 의원 8명을 그대로 출당시켜 버린다.[10] 그 당시 스코틀랜드는 노동당 표밭이었다. 그걸 감안해도 너무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오히려 스코틀랜드 보수당의 지지율이 상승해서 스코틀랜드 국민당에 이어 지지율 2위가 되었고 노동당은 추락하여 근소한 차이로 3등을 하는 상황이 돼서 스코틀랜드가 노동당의 텃밭이라는 소리는 옛말이 되고 있다. 그러나 2024년에는 스코틀랜드 국민당의 미적지근한 독립투표에 대한 피로도로 다시 노동당 표밭으로 변모했다.[11] 의석 비율로만 놓고 보면 이때 노동당이 창당 이래 사상 최고의 총선 성적을 거두었다. 얼마나 대단한 승리였는지는 노동당 문서 참고.[A] 1974년에는 선거가 두 번 있었다.[A] [14] 혼혈왕자 1장의 시간대는 1996년 7월이다. 머글 총리가 "7월에 이토록 짙은 안개라니, 이건 정상이 아니야." 라고 중얼거린 장면이 있으며 호그와트 마법 학교는 9월 1일에 학기를 시작해 다음해 6월 30일에 학기가 끝난다. 이후 두달간의 하계 방학을 한다. 즉 5권 불사조 기사단의 시간대는 1995년 7월 1일 ~ 1996년 6월 30일까지였으므로 다음권인 혼혈 왕자의 첫장은 1996년 7월 1일부터다.[15] 묘사를 보면 퍼지가 머글 총리에게 말하길, "귀하는 전임자보다 자신을 더 점잖게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말하며 전임 총리는 마법사의 존재를 반대파의 계략으로 보고 자신을 창문 밖으로 던지려 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여기서 퍼지는 전임 총리에 대한 대명사로 ‘he’를 사용하고 있는데 현실에서 존 메이저의 전임 총리는 마거릿 대처다.[16]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찰스 3세의 시종무관이었으며,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손자로 1983년부터 2019년까지 하원의원을 지냈고, 메이저 내각 때는 국방차관을 지냈다.[17] 이는 당시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의 후광이 컸다. 아직 찰스 3세와 카밀라의 불륜 관계가 폭로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여론조차 구시대적이고 현실을 읽지 못하는 늙은 여왕보다 새로운 젊은 왕의 즉위를 바라고 있었다.[18] 이는 시즌 4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왕실에 대해 평가한 내용과 유사하면서 더욱 직설적이다.[19] 사실 더 크라운에 나오는 총리중에 취급이 좋은 사람이 몇 없다(...).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도 비판받을 만한 행보를 여럿 보이는데다가 해럴드 맥밀런이나 앤서니 이든, 에드워드 히스 등 나머지는 아예 무능한 정치인으로 묘사된다. 그나마 엘리자베스 2세와 사이가 좋았던 해럴드 윌슨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편이지만, 마찬가지로 노동당 내각의 실책이 여왕에게 정치적인 이유로 떠넘겨지는 흐름을 방관하는 등 긍정적이라고 보기는 힘든 장면도 있다. 흄과 캘러헌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다만 이전 총리들은 모두 방영 이전에 사망해 총리의 묘사에 관해서는 견해를 내놓을 수 없었지만, 존 메이저는 아직 살아있었으니 비로소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20] 일대귀족 작위를 받으면 2014년 법 개정 전까진 죽을 때까지 귀족원 의원직을 보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