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72046><colcolor=white> Roanoke College 로어노크 칼리지 | ||
| ||
모토 | Palmam Qui Meruit Ferat Let he who earns the palm bear it. | |
국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소재 | 버지니아주 세일럼 | |
분류 | 사립대학 | |
개교 | 1842년 | |
총장 | Frank Shushok Jr. | |
발전기금 | $142.3 million (2020) | |
재학생 | 1,920명 | |
교색 | Roanoke Maroon (#872046) Mandarin Yellow (#F0B52B) National Blue (#001B74)[1] | |
링크 | ||
로고 | ||
위치 | ||
로어노크 칼리지 영상 |
[clearfix]
1. 개요
로어노크 칼리지 본관 |
로어노크 칼리지는 미국 버지니아주 세일럼에 위치한 사립대학이자 리버럴 아츠에 중점을 둔 리버럴 아츠 칼리지이다.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종합대학이 아닌 단과대학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작은 학교이며, 루터교 계통의 미션스쿨이다 보니 인종차별 극복을 위해 개교 초기에 인디언, 히스패닉, 동양인, 흑인 등 소수 인종의 입학을 많이 받아들인 학교이기도 하다.
2. 역사
1842년, 루터교 목사 David Bittle과 Christopher Baughmann에 의해 설립된 예비학교(Preparatory school)가 로어노크 칼리지의 시초이다. 1847년 현재 위치인 세일럼으로 교지를 옮겼고 1853년에는 로어노크 계곡에서 착안하여 학교 이름을 로어노크 칼리지로 명명하였다.이후 학교 정책에 따라 1876년에 첫 멕시코 학생, 1888년에는 첫 일본인 학생이 입학하였고, 1898년에는 한국인 유학생 서병규가 졸업하였다.[2] 그리고 1930년부터 여학생들의 입학을 허가하였다.
현재 3개 단과대학에(Arts, Science, Business Administration) 83개 전공 학부를 개설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학술 협회인 파이 베타 카파(Phi Beta Kappa Society) 협회에 가입되어있다.[3]
오랜 역사로 교내 몇몇 건물과 기념물들은 미국 사적으로 지정되어있다.
2.1. 연혁
- 1842년 루터교 목사 David Bittle과 Christopher Baughmann가 설립
- 1853년 로어노크 칼리지로 명명
- 1930년 남녀공학으로 전환
- 1992년 개교 150 주년
3. 학부
4. 출신 인물
- 김규식 - 독립운동가. 아래 서술된 이강과는 동창이다.
- 서광범 - 구한말 관료. 당시 주미 대한제국 공사였다.
- 이강 - 대한제국 황자. 흔히 작위명인 의친왕으로 더 알려져 있다.
- 존 맥아피
5. 기타
- 3대 총장 율리우스 드레허(Julius Dreher)가 재임할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아 워싱턴 한국공사관을 방문하여 한국 유학생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호의 덕분에 1893년 김규식, 이강 등 많은 한국 학생들이 로어노크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주미공사 서광범에게 명예 법학석사 학위를 수여하는 등 한국이라는 나라에 호감을 보여주기도 하였다.[4]
- 덕분에 한국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2023년 로어노크 칼리지 역사학부 교수진과 학생들이 방한해 의친왕의 종손 이준을 만나고, 환구단에 참배하기도 했다. 이화여대를 비롯한 국내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중이기도 하다.
- 교내에 로어노크 칼리지 출신 독립운동가 김규식을 기념하는 표지판이 있으며, 2024년 김규식 기념 센터 건립을 추진중에 있다.#
6. 외부 링크
7. 관련 문서
[1] https://www.roanoke.edu/documents/PR/BrandFAQ-web.pdf[2] 이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대학을 졸업한 기록이라고 잘못 서술되어 있는데, 미국 대학을 최초로 졸업한 한국인은 1891년 메릴랜드 대학교를 졸업한 변수이다.[3] 미국 고등 교육기관의 약 10%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창립 이래 회원으로 17명의 미국 대통령 , 42명의 대법원 판사, 13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4] 주미공사로 재직하던 시절 이범진이 방문하기도 했으며, 그의 장남인 이기종이 유학하기도 했다. 참고로 차남은 헤이그 특사로 잘 알려진 이위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