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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대학교 자연사박물관에 있는 로저 베이컨의 동상 |
1. 개요
로저 베이컨(Roger Bacon) 또는 라틴 인명으로 로게리우스 바코누스(Rogerius Baconus)는 1214년 출생하여 1294년 6월 11일 사망한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수사로, 중세 영국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2. 생애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1240년대 파리 대학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처음으로 강의했으며, 그의 스승 로버트 그로스테스트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연구했다. 성 아우구스티노 이래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시녀론에 입각하여 새로운 철학으로 기독교 교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신념 하에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연금술, 수학, 시각론, 천문학, 점성술 등의 학문을 연구했다. 또한 다른 학문들이 줄 수 없는 가르침을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하며, 경험학을 제창하고, 후기 스콜라 철학을 이끌어 나갔다. 이전 버전에는 로저 베이컨이 스콜라 철학을 정면으로 비판했다고 쓰여 있었는데,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오히려 현대 학계를 포함한 다수는 로저 베이컨이 스콜라 철학에 근거한 학문을 펼쳤다고 본다.동시대의 도미니코회 소속의 주교 성 대 알베르토[1]가 그의 지적 라이벌이기도 했다.
이 시기는 과학과 종교, 철학과 신학의 경계가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을 때였다. 십자군 전쟁 이후 서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 이슬람 철학자들의 주장에도 관심을 보였던 로저 베이컨은 도미니코회나 프란치스코회 내 보수파에게서 경계받고 있었다. 그는 초기적인 형태의 대학들이 설립되던 당시에 옥스퍼드 대학과 파리 대학 등에서 연구하는 신진 학자의 일원이었기에, 전통적인 수도원 중심 학문을 지향했던 이들에게는 정적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프란치스코회 총장이자 대표적 보수파 스콜라 철학자인 성 보나벤투라가 에티엔느 탕피에 파리 주교에게 교리에 어긋나는 학설을 받아들인 학파들을 고발하였고, 파리 교구가 그것들을 모두 단죄하는 바람에 로저 베이컨도 함께 프란치스코회에서 추방당했다. 그 뒤 무려 14년 동안이나 이탈리아 안코오나의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80세가 되던 해에 풀려났지만 2달 뒤에 사망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방금 전 문장의 내용과 이전 버전에 쓰여있던 내용은 모두 근거없는 낭설로, 로저 베이컨의 저서는 출판 금지를 받지도 않았고 멀쩡히 당대 학자들 사이에서 이용되었으며, 감옥에 14년동안 수감되어 있단 것 역시 근거 없는 헛소리이다. 그리고 명목상으로는 '교리에 어긋나는 학설'이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프론치스코회 내 파벌다툼과 그의 모난 성격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감옥에 갇히거나 가택연금을 당했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곧 풀려난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면, 로저 베이컨은 말년에 죽기 전까지 저술에 몰두하다 마지막 작품인 <신학 개요서>을 출간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중세시대에 이성을 사용해 지식을 탐구하려는 시도가 없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오류이다. 로저 베이컨은 교부 철학자들의 권위에 의존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학문을 경외하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 탐구한 전형적인 당대 중세 스콜라 철학자였고, 이 중에서는 비교적 신학문 수용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을 뿐이다. 근대 과학의 태동을 만들었느니, 선구적인 근대인이었느니, 근대적 학문 시도로 인해 악마로 비난받았다느니 하는 내용들 모조리 어떤 근거도 없는 계몽주의자들의 중세 폄하의 일환일 뿐이다. 계몽주의 학자들은 로저 베이컨이 최초로 과학적, 근대적 사고를 한 인물이라고 띄워 주었는데 이 역시 현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완전히 논파되었다. 현대 학계는 베이컨의 과학적 성취를 당대 중세 자연철학의 맥락 안에서 이해하지, 계몽주의자들처럼 시대적 맥락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띄워주는 짓거리 따위는 하지 않는다. 또, 이전 버전에는 그가 마치 프란치스코회 다른 학자들과 완전히 대립된 이단이었던 것처럼 말했는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 역시 충실한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로서 보나벤투라로부터 이어진 학문적 흐름을 이어받았음을 시사한다. 연속성 논쟁 문서 참조.
3. 기타
- 《장미의 이름》을 읽어보면 직접적으로 출현하지는 않아도 수도 없이 그의 이름이 나오는데, 설정상 주인공 아드소 수사의 스승인 윌리엄 수사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즉, 아드소 수사의 사조부 격이 되는 셈이다.
- 유럽에 최초로 중국에서 만들어진 화약의 존재와 그에 대한 설명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정체불명의 문자가 적혀 있는 것으로 유명한 보이니치 문서의 중간 소유자 중 한 사람이었던 얀 마르치가 이집트학 연구자인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에게 보낸 서신에서, '보이니치 문서를 로저 베이컨이 썼다는 말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베이컨이 암흑 시대에 진보적으로 동방의 학문에 관심을 보인 것에서 기인한 듯 하지만, 오늘날에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아직까지 보이니치 문서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 징기스칸 4에서 영국의 장수로 등장한다. 정치/전투/지모가 65/21/57이며, 내정특기가 상업/건설/문화가 있다. 전투력이 낮으면서 전투특기가 화공 하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