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한석산 일대에서 제5보병사단이, 한석산 북동쪽 설악산 가리봉 능선에서 제3보병사단이 북한군 5군단을 맞이해 싸웠고 5월 7일부터 10일까지 제3군단 예하 제9보병사단 30연대가 북한군 제12사단과 매봉 및 한석산 일대에서 맞붙은 전투다.2. 1차전 (4.22 ~ 4.25)
참고자료4월 22일, 양구-원통선에서 북한 5군단의 선제공격을 맞이해 국군 3, 5사단이 전투를 벌였다.
4월 23일 두 사단들의 분투를 지원하기 위해 7사단 3, 5연대가 5사단에, 8연대는 3사단에 각각 배속되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 3사단 22연대가 한석산을 탈취당했다.
4월 24일 3사단에 배속된 7사단 8연대가 한석산을 탈환했으나 이 과정에서 강태조 일병을 포함한 상당수가 사상당했다.
4월 25일 병력을 증원받은 북한군은 한석산을 다시 탈취하고자 1개 연대급 공세를 펼쳤고, 이에 곳곳에서 백병전이 벌어졌으나 결국 북한군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말았다.
5월 2일 국군 3사단과 9사단이 교대하면서 3사단에 배속된 8연대 역시 9사단 30연대에게 한석산 전선을 인계했다.
3. 2차전 (5.7 ~ 5.10)
5월 7일 동부전선의 국군 6개 사단이 2일 내려진 미8군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춘천-인제-미시령-속초를 잇는 미주리 선(Missouri Line)을 향해 공세를 펼쳤고, 이 중 인제 우측에 있던 한석산은 일대를 감제할 수 있어 특히 중요했다. 그래서 이 날 새벽 30연대 3대대가 한석산 남쪽 매봉(1,066고지)을 먼저 확보해 이를 거점으로 한석산을 탈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적의 저항 앞에 야습이 돈좌되고 만다.5월 9일 9사단 30연대 3대대가 매봉을 확보했다.
5월 10일 30연대 1대대가 한석산을 점령함으로서 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투에서 30연대는 72명의 전사자와 2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매봉과 한석산을 장악하고 적 895명 사살, 42명 생포, 4트럭 분량의 보급품과 탄약을 노획하였다.
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 5월 16일부터 시작된 현리 전투의 패배로 9사단은 한석산을 포기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