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11 16:25:52

명안공주


조선의 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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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 추존 국왕 · 왕비 · 추존 왕비 · 왕세자 · 왕세자빈
후궁 : 환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왕자 : 목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왕녀 : 익조 ~ 연산군 · 중종 ~ 철종
※ 작호가 있거나 성년까지 생존한 사람만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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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현종의 왕녀
명안공주 | 明安公主
파일:명안공주묘.jpg
명안공주·해창위 합장묘 전경
출생 1665년(현종 6년) 6월 30일(음력 5월 18일)
사망 1687년(숙종 13년) 6월 25일(음력 5월 16일)
(향년 21세)
능묘 취몽헌 오태주 묘역[1]
경기도 안산시 사사동 산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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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전주 이씨
온희(溫姬)
부왕 현종
모후 명성왕후
형제자매
1남 3녀 중 3녀 [ 펼치기 · 접기 ]
큰 언니 - 명선공주
오빠 - 숙종
작은 언니 - 명혜공주
부군 해창위 오태주(海昌慰 吳泰周)
자녀 슬하 1남
양자 - 오원(吳瑗)
봉호 명안공주(明安公主)
}}}}}}}}} ||
1. 소개2. 생애
2.1. 탄생2.2. 혼인2.3. 가족들의 사랑2.4. 인현왕후전의 등장인물
3. 가족 관계4.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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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조선 제18대 국왕 현종과 왕비 명성왕후의 셋째 딸.

먼저 태어난 언니 명선공주, 명혜공주가 요절했으므로 숙종에게는 사실상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이었다.

2. 생애

2.1. 탄생

1665년(현종 6) 5월 18일 명성왕후의 몸에서 태어났다. 현종이 직접 수결하고 작성한 작명 단자에 그녀의 이름이 남아있는데, 이름은 온희(溫姬)이다. 현종은 딸이 운수가 한량없이 좋기를 바람에서 작명 단자의 하단에 '기수태다재(其數太多哉)' 라는 글씨도 남겼다.

2.2. 혼인

1680년(숙종 6), 전 참판 오두인의 아들 오태주를 부마로 맞이하여 가례를 올렸다. 오두인은 서인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고, 이로 인해 효종과 현종의 딸들이 모두 서인과 혼맥을 이루게 되었다.

이때는 하필 가뭄이 극심하여 나라의 형편이 매우 어려운 지경에 있었다. 그러나 숙종은 명안공주의 집을 성대하게 지어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사신이 들어올 때는 으레 은과 비단을 바치는데, 비단은 모두 공주에게 하사한 기록도 있다.[2]

2.3. 가족들의 사랑

왕실의 금지옥엽인 명안공주를 향한 사랑은 숙종만의 것이 아니었다. 김석주[3]가 지은 명성왕후의 행장에서는 "명선(明善), 명혜(明惠) 두 공주가 서로 잇달아 일찍 세상을 뜨고, 명안공주(明安公主)도 또 어려서부터 병약(病弱)하여, 후(后, 명성왕후)께서 몹시 가엾게 여기시고 사랑하셨으나"[4] 라는 언급이 있다.

또한, 궁중에 천연두가 유행해 명안공주는 어머니와 오빠를 보러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명성왕후는 섭섭하고 그리운 마음에 "(못 본지) 달포(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되어가니, 더욱 섭섭 그립기 무궁무궁하여 하노라" 하면서 타락묵과 전을 한글 편지[5]와 같이 보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명성왕후가 명안공주의 사저에 방문했는데, 가기 전에 숙종이 하루 뒤 돌아오시라고 했으나 돌아오지 않자 명성왕후에게 "아무리 섭섭해도 내일은 부디 돌아오십시오" 라고 재촉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만큼 각별히 생각한 듯.

2.4. 인현왕후전의 등장인물

한편, 명안공주는 인현왕후전의 등장인물 중 하나이다. 인현왕후가 폐출되는 날에 명안공주가 울고 불며 붙잡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박태보가 문초를 당할 때 대궐 안에서 매질하는 소리가 향교동까지 들렸다는 묘사가 있다. 당시 향교동에는 명안공주의 집이 있었다.
명안공주 이 변을 들으시고 크게 놀라 후께 비옵고 오열 비탄하여 옷을 잡고 흐느껴 우시며 능히 말씀을 이루지 못하니, 후께서 탄식하고 위로하여 말씀하시되, "화와 복이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니, 나의 복이 없고 천한 탓인즉 다만 어명대로 받들어 모실 따름이라. 누구를 원망하리요마는 공주 이렇듯 동정하시니 은혜 잊을 길이 없소이다."
《인현왕후전》

그러나 인현왕후전의 이러한 묘사는 역사적 정확성이 떨어져 신뢰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명안공주는 기사환국이 일어나기 전 1687년(숙종 13) 5월 16일에 사망했다. 이 당시 숙종은 10일 동안 수라에 올라오는 반찬을 줄이라고 했고[6], 날씨가 무더위에 염을 하기도 전이라고 여러 신하들이 만류했으나 직접 빈소를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니까 공주가 죽을 당시만 해도 숙원 장씨가 총애를 받고 있었으나 경종이 태어나기 전이었고, 인현왕후의 왕비 지위에도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인현왕후의 왕비 지위에 문제가 생긴건 경종이 태어나고 장렬왕후가 더 장수하지 못하고 사망한 게 크다. 숙종의 성격과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공주가 아니라 대비나 대왕대비 정도의 지위의 왕실인물 정도만이 브레이크가 가능했는데 명성왕후와 장렬왕후가 죽은 상황에서 인현왕후의 폐위를 막는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다만, 공주의 시가도 서인이기에 인현왕후와 친밀하게 지냈을 가능성이 높고, 공주의 시아버지 오두인을 비롯한 86명이 인현왕후의 폐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던 일이 인현왕후전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해창위 가문은 부마였기에 삭탈관직의 처분 정도로 다행히 멸문지화는 피했다.

3. 가족 관계

  • 시부 : 오두인(吳斗寅, 1624 ~ 1689)
  • 시모 : 상주 황씨(尙州 黃氏)
  • 남편 : 해창위 오태주(海昌慰 吳泰周, 1668 ~ 1716) - 시조 오인유(吳仁裕)의 18세손
    • 양자 : 문목공 오원(文穆公 吳瑗, 1700 ~ 1740) - 시동생 오진주(吳晋周)의 아들

4. 매체에서


[1] 경기도 기념물 제186호 지정[2] 숙종실록 15권, 숙종 10년 3월 15일 신사 1번째기사. #[3] 명성왕후와 사촌이다.[4] 明善、明惠兩公主相繼早逝, 明安公主又自少病弱, 后甚憐愛之. 숙종 9년 12월 28일 기사.[5] 한국고문서자료관, 해주오씨 오태주가 명안공주 관련유물.[6] 내의원의 반대로 4일로 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