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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문용형 文龍炯 | |||
출생 | 1920년 10월 4일 | ||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운성리 솔안마을 (現 함경남도 함흥시 해안구역 운성동)[1] | |||
사망 | 1978년 4월 7일 (향년 57세) | ||
부산직할시 영도구 (現 부산광역시 영도구) | |||
본관 | 남평 문씨[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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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강한옥[3] (1928 ~ 2019) | ||
자녀 | 2남 3녀 장녀 문재월(1949년생) 장남 문재인[]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1953년생) 차녀 문재성(1955년생) 삼녀 문재실(1957년생) 차남 문재익(文在益)(1958년생) | ||
학력 | 함흥농업학교 (졸업) | ||
경력 | 흥남읍사무소 농업계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주군청 농무과장 거제포로수용소 노무자 | ||
종교 |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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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인 문재인의 아버지. 본관은 남평 문씨다.2. 생애
2.1. 초기 생애와 흥남시청에서의 공직 생활
1920년 10월 4일 조선 최대의 공업도시였던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운성리 솔안마을(현 함흥시 해안구역 운성동)의 남평 문씨 집성촌에서 아버지 문정기(文廷夔)와 어머니 신안 주씨 사이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1936년 함흥농업학교에 입학하여 1940년 졸업하였으며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함흥부 예하 흥남읍사무소 농업계 계장으로 근무하였다. 문재인의 자서전인 《문재인의 운명》에서 해당 대목을 언급한 내용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전략)… 아버지는 일제 때 함흥농고를 나왔다. 그 곳 분들은 '함흥농업'이라고 불렀다. 함흥고보와 함께 함경도 지역의 명문이었다. 아버지는 인근에서 수재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업어 키우기도 했다는 큰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입학시험을 앞두고도 별로 공부하는 모습을 못 봤는데 집안에서는 물론 인근에서 혼자 함흥농업'에 입학했다고 한다. 졸업 후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 그때 공산당 입당을 강요받았으나 끝까지 버티고 안 했다고 한다. 유엔군이 진주한 짧은 기간 동안 농업과장도 했다. 그리고 피난을 내려왔다 …(후략)…
《문재인의 운명》 111페이지
《문재인의 운명》 111페이지
2.1.1. 근무 시점 논쟁
이때 문용형이 졸업 후 합격한 '공무원 시험'이 일제강점기 당시의 시험인지, 1945년 10월 3일, 삼팔선 이북에 소련군정이 성립된 직후 흥남 지역에서 별도의 공무원 시험이 시행되었는지, 1948년 9월 9일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북한 정부를 수립한 뒤에 공무원 시험이 시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상기 자서전 내용만으로는 알기 어려우며 소련군정 또는 북한 성립 초기의 공무원 인사에 관한 자료가 필요할 것이다. '졸업 후'가 '졸업 직후'라는 말이라면 '일제강점기에 시험을 치고 공무원이 되었는데 해방 이후에도 계속 근무했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자서전의 내용만으로는 '졸업한 뒤 공백기를 가지고 해방 후 공무원이 되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도 있다.문용형이 계장의 직위를 역임한 것은 해방 이후로 추정되는데 이에 대해 2023년 9월 6일 국회 브리핑에서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문 전 대통령 부친이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한 것은 일제 치하가 아니라 해방 후"라고 밝혔다. # 이는 자서전의 내용 가운데 '북한 치하에서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했다'고 서술한 내용과 일치한다. 그가 만약 소련군정 이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면 최소 1945년 10월 이후 임용되어 5년 이내의 기간 동안 근무한 것으로 그 가운데 1948년 9월에서 1950년 12월 사이의 어느 시기에 계장을 역임하게 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반대로 함흥농고 졸업 직후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면 그의 공직생활은 이보다 더 길어진다.
아들인 문재인은 박민식의 해당 발언에 대해서 곧바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친은 일제시대인 1940년 보통문관시험(현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며 “이는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 해방 전 일제시대에도 관리(공무원)를 하셨다는 걸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박민식을 옹호했다. 하지만 보통문관시험 합격자 명단은 조선총독부의 관보#에 수록되어 있는데 하태경 의원이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용형이 일제강점기에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는 결정적인 근거는 현재까지 전혀 찾을 수 없다.
조선총독부 관보 1941년 자료를 보면 文塚英治(후미즈카 에이지)라는 일본 본토에서는 흔치 않은 성씨를 가진 인명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외지인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흔하던 창씨개명식 이름이다. 해당 인물은 문씨 성을 가진 조선인으로 추측되는데, 문용형의 확실한 창씨개명 이름을 알지 못한다면 결정적인 증거는 되지못한다.
2.2. 흥남 철수작전과 피란
문용형은 해방 이후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강한옥과 결혼하였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인천 상륙 작전 이후인 1950년 10월 말 유엔군이 함흥 지역을 탈환하였는데 자서전에 따르면 이 기간에 그는 계장에서 승진하여 농업과장도 역임했다고 한다. 문재인은 동 자서전을 통해 "문용형이 소련 군정기와 북한 정부 시절, 당국에 의해 매우 시달렸다"고 밝혔으며 이 시달림이 1950년 12월 흥남 철수작전 때 미군을 따라 남한으로 내려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6.25 전쟁이 발발한 뒤 흥남 철수 때 아내 강한옥, 장녀 문재월과 함께 미군 수송함 LST를 타고[5] 남한으로 도피하여 거제도에 도착했다. 이후 이곳에서 장남 문재인이 출생하였다.
거제 명진리에 거주하면서 공무원에 복직하지는 못하고 거제 포로수용소 공사에서 노무로 생계를 이어나갔고 아내인 강한옥은 포로들과 물품을 교환해 받은 옷들을 팔았다고 한다.
2.3. 이후의 삶
문재인이 국민학교 입학 직전 부산 영도구로 이주하였다.문용형은 양말 공장에서 도매로 납품받아 전남지역 판매상들에게 공급하는 등의 사업을 벌였으나 미수금이 많아 제대로 수입을 올리지 못하고 빚만 잔뜩 남기고 사업을 접었다. 양말 도매를 다닐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돌아오는 수준이었는데 그때마다 아들 문재인이 읽을 만한 동화책이나 아동문학, 위인전 같은 것을 사 왔다.
이후 별다른 행적은 남기지 않고 1978년 4월 7일 심정지로 사망하였다. 생전 천주교 신자였으며 부인 강한옥과 장남 문재인 역시 천주교 신자이다.
3. 가계
3.1. 조상
- 8대조: 문언주 (1731 ~ 1795)
- 7대조: 문계일 (1745 ~ 1805)
- 6대조: 문상검 (1759 ~ 1800)
- 5대조: 문조격 (1777 ~ 1833)
- 고조부: 문흥조 (1808 ~ 1866)
- 증조부: 문진홍 (1825 ~ 1866)
- 조부: 문도종 (1844 ~ 1899)
- 부: 문정기 (1882 ~ ?)
3.2. 후손
- 문용형 (1920 ~ 1978) / 妻 강한옥 (1928 ~ 2019)
4. 여담
- 문재인은 자신의 아버지를 “경제적으로 무능했다”고 평하면서도 “원래 조용한 성격인데 사업에 실패한 이후 더 말수가 없어졌다”고 회상했다.
- 동아일보[7]의 고정 독자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부통령을 지냈던 사장 김성수와 이승만과의 갈등이 심해지며 반권위주의 친야당 계열의 논조를 띄고 있었는데 문재인 역시 아버지 어깨 너머로 신문을 오랫동안 보면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겼다고 한다.
[1] 남평 문씨 집성촌이다.[2] 충선공파-의안공파-이곡-관북파 32세손 ○형(○炯) 항렬.(족보)[3] 진주 강씨.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까지 살아서 지켜봤으며 문재인의 재임 중에 사망했다.[] [5] 거제 지역 기록과 문재인의 자서전 운명에서는 부모님이 LST를 탔다고 했고 2017년 방미 중 연설에서는 메러디스 빅토리 호를 탔다고 했는데 강한옥 여사의 기억상 날짜와 정황상 LST에 가깝고 방미 연설에서는 유명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6] 즉, 문재월은 6.25 이전 이북에서 출생했기에 문용형과 강한옥의 자녀들 중 유일한 실향민이다. 문재인을 비롯한 나머지 자녀들은 거제 정착 후 태어났기에 실향민이 아닌 실향민 2세이다.[7] 조선일보는 창간 시점부터 일관되게 반공 우익 성향을 보인 반면 동아일보는 완전히 보수언론으로 굳혀진 1990년대 이후와 달리 상황에 따라 진보적인 언론관을 띄인 적도 있었다. 1987년 보도지침을 어기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힌 언론사도 동아일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