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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52B5D><colcolor=#fff> 양수경 梁守景 | Yang Soo Kyung | |
출생 | 1965년 10월 17일 ([age(1965-10-17)]세) |
전라남도 순천시[1]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서울연촌초등학교 (졸업) 상계여자중학교 (졸업)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과 / 학사) |
신체 | 160cm, 49kg |
데뷔 | 1988년 1집 '떠나는 마음' |
소속사 | 싸이더스HQ |
종교 | 불교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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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 80년대엔 가요 경연대회 출신 가수들이 맹활약했는데 양수경도 그쪽 출신답게 빼어난 가창력이 돋보였고, 여기에 청순함과 섹시함을 겸비한 미녀 가수로도 유명했다.전영록, 박강성, 김범룡 등 많은 남자 싱어송라이터들에게서 받은 곡이 꽤 되는데, 본인이 직접 찾아가서 받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강성의 경우는 데뷔 예정곡이었다고...
2. 활동
2.1. 데뷔와 전성기
1988년 1집 '바라볼 수 없는 그대' 가 히트하고, 후속곡인 '그대는', 양수경의 대표곡인 1989년 2집의 '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링크 역시 크게 히트하며 이상은, 이지연과 함께 데뷔부터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여가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1989년에는 이지연과 함께 MBC 10대 가수상 본상을 받으며 스타의 자리를 이어간다. 1990년에는 일본 활동을 시작하면서 국내 활동이 저조했으나 일본에서 부른 데뷔곡인 드라마 「過ぎし日のセレナーデ」의 주제가가 오리콘 탑100에 26주 차트인을 하는 인기를 얻어, 그해 일본 레코드 대상의 최우수 가요곡 신인상을 받는 등, 20개 이상의 방송국에서 연말 가요 시상식 신인상을 수상하며 국외 인지도도 높아진다. 한국 가수 최초 신인상 수상이며 게다가 비트롯 가수인 발라드 가수의 첫 수상, 성공이라는 점에서 한국 가요사에 의미가 크다. 1990년 말 국내에서 3집 앨범을 발표해 대박 히트를 치면서 한국에서도 인기를 이어가고 국외 활동도 병행한다. 이후 1992년까지 강수지, 김완선과 함께 여가수 인기를 놓고 경쟁을 펼치며 여가수 톱자리를 지킨다.
88년~90년 사이에 데뷔한 수많은 신인 가수들이 1집 또는 2집까지만 히트를 하고 부진했던 반면 양수경은 90년대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스타 자리를 지켰으며 1집부터 5집까지 활동 곡마다 실패 없이 모두 크게 히트하며 히트곡 제조기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 여가수로는 드물게 화장품 광고도 찍었으며 음반 판매, 미모, 가창력, 히트곡, 인기, 수상 경력까지 겸비한 실력파로 인정을 받았으며 폭 넓은 연령대에게 사랑받으며 8090 발라드 시대에 발라드의 여왕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대표 히트곡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그대', '그대는', '잊을래', '외면',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못다한 고백', '당신은 어디있나요',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사랑은 차가운 유혹' '한번 더 생각해 봐요'등이 있다.
국내에서도 가요톱텐 5주 이상 1위 등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고, 1990년부터는 해외에 진출하여 일본 NHK 아시아 5대 스타상, ABU(아태 방송연맹)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상 등 해외에서도 꽤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질 정도로 선전했다. 예컨대 1991년 4월 소련의 가요행사인《백야 록 축제》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서 30분간 공연을 했으며#, 1994년 6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94 백야축제》에서〈혼자만의 슬픔〉을 불러 대상을 차지했다. 백야축제에서 최초로 상을 받은 한국인이었다.#[2]
2.2. 은퇴
1998년 1월에 친분이 짙은 가수 선배 전영록과의 결혼 소식이 신문 1면에 크게 실리는 스캔들로 난리가 났었다. 당시 전영록은 이혼한 지 1년이 지났고, 이 둘은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에 전후사정을 확인하지 않고 냉큼 대서특필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터졌다. 당연히 당사자들은 황당한 반응을 보였고, 양수경은 그저 전영록의 열렬한 팬이고 그를 롤모델로 삼으며 가수의 꿈을 갖게 해준 것이고 전영록은 그런 그녀를 상당히 아끼며 자신의 곡을 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결국 스캔들 해명을 위해 7살 연상 음반제작자이자 소속사 대표인 예당 컴퍼니[3] 회장인 변두섭과의 결혼 소식을 알리고 결혼식을 올리며 일단락이 되었지만 당시 최고 연예기획사 대표와 여가수의 결혼 소식인 만큼 이 또한 장안의 화제였다. 당시에 연애하던 관계이긴 했지만 결혼까지는 생각 안했다고 한다.[4] 그리고 결혼 5년 만에 아들을 낳고, 남편을 내조하는 삶을 살게 된다.
2001년에 자신이 직접 기획 제작한 동요 음반을 발매했고, 2004년에는 드라마 OST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5].
잘 나가던 8090세대 가수이며, 또 놀라운 인맥들을 자랑한다. 1994년 당시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던 이종범, 선동열과 함께 투 앤 원(Two&One)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해 음반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해태 구단 측에서 연봉을 줄 돈이 없기 때문에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앨범 만들면 보너스 내주기 딱 좋다며 단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이 계기로 이종범, 선동열과 친분이 생겼다.
2.3. 복귀
가수 활동을 중단한지 20년[6] 만인 2016년 7월 부로 KBS2 불후의 명곡에서 전설로 출연하여 지상파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20년 만의 무대여서인지 1부 시작하면서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부르다 반가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한 관객과 눈을 마주치고서 감정이 북받쳐 잠시 울컥한 모습을 보여줬다. 첫 번째로 경연에 오른 알리의 경우, 무대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감격스러워 했다. 다음 달인 8월에는 KBS1 콘서트 7080에서 그녀의 단독 컴백쇼를 이례적인 1시간 풀타임 형식으로 편성하여 방영하여 화제가 되었다.2017년 2월 21일 불타는 청춘에 새친구로 출연했다.
27년 만의 단독 콘서트 포스터.
2017년 9월, 27년만의 단독 콘서트를 열면서 컴백을 선언했다.
3. 여담
- 1993년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으나, 우승 보너스를 못 주는 상황에 이르자 음반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때 그녀는 선동열, 이종범과 함께 'Two&One'이라는 이름으로 앨범 녹음을 했다. 이 당시 양수경은 선동열을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시도, 선동열이 매운 김밥을 먹게 만들기도 했다.
- 불타는 청춘에 고정 출연 중이지만 2018년 12월 4일 방송분에서 10년째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 2018년 9월 16~23일에 복면가왕 85차 경연에서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어 과일바구니라는 가명으로 오랜만에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가수로서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으나, 아버지, 여동생[7], 그리고 남편인 변두섭마저 차례로 떠나보내야 하는 큰 아픔을 겪는 긴 공백기로 인해 생활고를 겪었음을 밝혔다. 연예계 복귀도 녹록지 않았다고. 불타는 청춘으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한 현재는 김치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음을 밝혔다.
- 발라드 가수이지만 성인 취향의 음악을 하고 싶어 트로트의 뽕끼를 입힌 발라드를 몇 곡 불렀고, '당신은 어디 있나요'[8]나 '한번 더 생각해 봐요' 처럼 세미 트로트라고 볼 수 있는 곡들도 불러왔다. 또한 창법만은 트로트가 아닌 발라드 창법을 구사했기에 1990년대에 들어서는 '비혼', '자유선언'과 같은 트렌디한 곡들도 소화해낼 수 있었다. 장르별 랭킹에서는 트로트 스타일 곡들도 발라드로 분류해 발라드 순위에 집계되었고 트로트 가수들이나 연령대가 높은 가수들은 출연할 수 없었던 KBS 젊음의 행진에 트로트 곡을 들고도 유일하게 무대에 올랐고 자주 출연했다.
- 정말 의외의 팬이 있는데, 다름 아닌 전설적인 스레시 메탈 밴드 메가데스의 전성기를 함께 한 레전드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먼. 마티 프리드먼은 메가데스 탈퇴 후 일본에 거주할 정도로 일본 문화에 익숙한데, 그 당시 일본 가요계에 진출한 양수경의 노래를 접한 듯하다.
90년대 미국의 조지 위스턴이 내한 했을 때 한국 곡으로는 '당신은 어디 있나요'를 알고 있다고 했다.
3.1. 정규 앨범
- 공식 데뷔 전 앨범 《친구 생각》 (1984년)
- 데뷔 1집 《바라볼 수 없는 그대》(1988년)
- 2집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1989년)[9]
- 3집 《당신은 어디 있나요》(1990년)
- 4집 《Asian Dream》(1991년)[10]
- 5집 《한 번 더 생각해 봐요》(1992년)
- 6집 《잊어야 할 때》(1993년)
- 7집 《혼자만의 슬픔》(1994년)
- 8집 《Blue Wedding》(1996년)
- 9집 《후애》(後愛) (1999년)
- 친구 생각
- 내 님은 예쁜 새
- 바라볼 수 없는 그대
- 그대는
- 인연
- 외면
-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 잊을래
- 못다한 고백
- 당신은 어디 있나요
-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 사랑은 차가운 유혹
- 가슴에 묻어둔 사람
- 내 생일이 멀지 않았어요
- 알 수 없는 이별
- 한 번 더 생각해 봐요
- 어디든 데려가 줘요
- 슬픈 연인
- 잊어야 할 때
- 혼자만의 슬픔
- 내일이 오면
3.2. 미니 앨범
- 《양수경 미니앨범》 (2016년)
3.3. 베스트 앨범
- 《양수경 골든》
- 《양수경 Best》
- 《양수경 카페음악 1, 2, 3》
3.4. 참여 앨범
3.5. 일본 앨범
- 《愛されてセレナーデ》 (1990년)
- 《涙の虹を渡れば》 (1991년)
- 《 いつかきっと微笑みへ》 (1992년)
- 《泣きながらほほえみながら愛しながら》 (1993년)
- 《ニューベストナウ》 (1994년)
- 《全曲集》 (1995년)
- 《ふるえる》 (1996년)
- 《どんなKISSも憶えてる》 (1996년)
- 《鳳仙花〜韓国古謡集》 (2003년)
- 《港が見える丘〜昭和名曲集》 (2005년)
- 《ゴールデンベスト》 (2011년)
[1] 성장기는 서울특별시 노원구에서 보냈다.[2] 이 공연에서 훗날 러시아 대통령이 되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인연이 생긴다.[3] 과거 서태지, 이승철, 듀스, 룰라, 최수종, 김정은, 이정재, 최지우, 황수정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속했다.[4] 주영훈이 작곡한 비혼을 임상아와 작업중이었는데 변두섭 대표가 요청해 양수경이 불렀고, 대신 임상아에겐 뮤지컬을 즉흥적으로 만들어 주면서 데뷔시켰다. 결론적으로 대표적인 윈윈 사례가 되었다.[5] 당시 그녀는 탤런트 채시라가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애정의 조건’의 주제곡 ‘후애’를 불렀고, 이 곡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6] 사실 마지막으로 활동했던 8집 앨범이 1996년에 나왔기 때문에 20년만의 컴백이라 보는게 맞다. 이유는 원래 9집을 내고 활동하려 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앨범 발매가 전격 취소되었고 양수경은 지인들에게만 홍보용으로 찍은 앨범을 몇 장 선물했다고 하며, 앨범 활동 역시 백지화시켰다. 후에 여러 OST에 9집의 수록곡 일부를 삽입해 다시 부르기도 하였다. 음원은 전곡을 공개하였다.[7] 동생이 지병으로 죽고 슬하의 두 자녀들, 즉 조카들을 양자로 거두었다. 친자식으로는 아들 한 명을 두었다.[8] 작사, 작곡가인 김범룡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주현미에게 주려 했던 곡인데 모종의 사유로 양수경의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9] 국내에서 CD가 1990년부터 발매되었기 때문에 3집을 발매하면서 1집, 2집 일부 곡을 묶어 CD 1집으로, 2집 일부 곡, 3집을 묶어 CD 2집으로 발매하며 LP와 달리 벅스, 유튜브 등 음원 사이트와 CD 앨범에서는 2집의 곡들 중 '인연', '잊을래' 등은 3집과, '외면',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등은 1집으로 찢어져 있고 2집의 표지 사진은 1집, 2집이라는 표기는 3집이 쓰고 있으며 4집도 CD는 3집으로 발매되었고 5집부터 CD와 테이프가 동일하다.[10] '사랑은 차가운 유혹' 외의 활동곡은 '가슴에 묻어둔 사람' 이나 '내 생일이 멀지 않았어요' 가 아닌 '오늘도 어제처럼' 이다. 대부분의 삽입곡이 아시아의 여러 곡들을 번안한 것이며, 이외에도 이선희의 'J에게' 리메이크 버전이 수록돼 있다.